마이클 하트 「핵 주권」 ④ : 번역

이 글은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의 「핵 주권 Nuclear Sovereignty」(Theory & Event, Volume 22, Number 4, October 2019,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pp. 842-868)에 대한 번역문으로, 총 6회에 걸친 시리즈 중 네 번째 글이다.

문화 전쟁으로서의 군사주의

국제무대에서의 핵 주권에 대한 믿음과 국가 내부의 군주적 변형은 사회관계의 지속적 군사화라는 배경에 대응해서 일어나는데, 특히 미국이 그렇다. 전시든 평시든 똑같이 그리고 국내의 사회관계에서만큼이나 국외적 사안에서 군사 논리, 군사적 가치, 군사행위 등이 늘어나면 날수록, 광범위한 외교문제나 사회문제는 군사적 행동이나 군사장비에 의해 해결되거나 심지어 간단히 군사적 방법에 의해서 해결된다. 따라서 군사주의 문화와 핵무기의 정치적 효과는 서로를 강화시키는 관계를 맺는다.

군사주의는 지난 수십 년 간 미국에서의 문화 전쟁에서 거의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베트남전이 끝날 무렵 미국에서는 군사 기지와 군인들, 그리고 군사훈련 등에 대한 의심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심지어 경멸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리고 다른 국가들에서는 훨씬 더 심했던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오늘날은 사실상 무장 세력에 참여하는 일이 훨씬 더 사회적으로 제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주의를 표출하는 일이 미국의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징병제로 인해 군에 들어가는 사람이 폭넓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군대에 있는 누군가를 알았던 과거 시절과는 반대로 오늘날은 인구 대부분이 군에 있는 누군가를 직접 알지는 못하고, 입대자들은 주로 군 가족이나 커뮤니티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상대적으로 제한된 영역에서 나온다. 양대 정당의 정치인들은 군대와 연관된 모든 일에 경쟁적으로 열광적 지지를 보내며, 기업들은 늘 군인과 그 가족에게 할인과 특권을 줄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한다. 항공사는 제복을 입은 군 요원들이 줄서서 기다리는 승객들 앞으로 걸어 나와 제일 처음 비행기에 탑승하도록 권장한다. 비행 중의 승무원들은 다른 승객의 갈채를 유도하려고 군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슈퍼마켓은 베테랑 군인만을 위한 주차 공간을 내주고 스포츠에서는 밀리터리 데이 같은 이벤트를 의무화하면서 병사들과 베테랑 군인을 기리기 위해 미국 국가나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부를 뿐만 아니라, 군용기의 영내 비행을 포함하는 정기적인 행사를 갖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군인의 날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진행하고자 했던 것은 군사적인 모든 것을 찬미하는 널리 퍼져있는 추세의 확장판에 불과했다. 현재 미국에서의 군사주의는 어떠한 의문도 제기되지 않는 선(善)처럼 보이며, 이것은 자신을 군사주의와 성공적으로 연결시킨 모든 이들의 이익을 보장해준다.1 정치인이나 TV의 방송캐스터가 닳고 달은 국기 배지를 달고 나오는 것처럼, 이러한 행사에 동원되는 성조기는 물론 중립적인 상징물이 아닌 애국적 군사주의를 위한 광고현수막이다. 1960년대 휴이 뉴턴은 미국을 병영국가나 전쟁국가라고 불렀는데, 오늘날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2

미국 전역에서 이렇게 군사주의가 표출되는 일이 겉보기에는 국가를 수호하려고 험지에서 목숨 걸고 싸운 군 복무자들에게 사람들이 자발적이고 진심어린 고마움을 표한 것(특히 9.11 공격과 그에 뒤이은 테러주의자의 위협에 대한 지속적인 경보가 있고 난 뒤로)이라 할지라도, 군사주의의 증진은 대체로는 계획된 공공 캠페인의 일환이다. 예컨대 하워드 브라이언트에 따르면 스포츠 이벤트에서 실행되는 몇몇 군 행사는 국방부가 주최한 것이며, 그들은 “스포츠 팀에 군대를 주둔시켜—행사에 전략적으로 앉혀 놓은 현역군인들, 경기 중간 오락거리로서의 ‘서프라이즈 홈커밍’, 풋볼 경기장을 덮은 성조기 등— 군인을 모집하는 도구로 쓴 값”을 지불한다.3 이렇게 군사주의를 홍보하는 비용은 스포츠 팀과 맥주 회사, 자동차 기업, 항공사 등과 같은 기업들이 대부분 지불하는데, 이들은 자사 브랜드에 군대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이 이익이라고 간주한다.

현재 미국에 널리 퍼져있는 것과 같은 이 모든 군사주의는 사회 전체를 길들이고 질식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과거 군사주의를 비판했던 여러 세대의 학자들의 작업은 오늘날 대체로 기억에서 지워진 듯 보이는데, 그들은 군사주의에 대한 찬양이 어떻게 전시든 평시든 똑같이 사회의 다른 나머지 부분으로 군대의 가치와 관습을 퍼뜨리는지를 강조한 바 있다. 가령 폴 바란과 폴 스위지에 따르면, “군사주의는 사회의 모든 반동적․비이성적 세력을 키우며, 진보적․인간적인 모든 것을 억제하거나 말살시킨다. 권위에 대한 맹목적 존경을 조장하며, 온순함과 순응의 태도를 가르치고 강화하며, 이견을 제시하는 자를 애국적이지 않은 자, 심지어 반역자로 취급한다.”4 페미니스트들은 오늘날 군사주의에 대한 가장 적극적이고 예리한 비판가들인데, 특히 군사주의가 어떻게 젠더화된 지배의 사회적 위계를 자연적․필연적으로 보이게 만드는지를 강조한다. 신시아 엔로에 따르면, “국가 안보가 무엇인지(그리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이해가 군사화되면 될수록, 그 대화는 … 대체로 남성화된 사안이 되는 경우가 많다.5” 더욱이 군사주의는 특수한, 특히나 유해한 형태의 남성성을 증진시키고 그에 의존한다. 병사들의 뼛속 깊이 새겨진 폭력 유형들이 종종 집으로 옮겨지고, 가정폭력을 포함하는 다양한 가족 및 사회적 맥락에서 표출된다.6

2020년 7월 23일 뉴욕 양키즈의 BLM 묵념. 구단주나 수많은 팬들, 그리고 대통령이 친히 운동선수를 비판한 것은 활동가들, 그리고 더 넓히자면 인종주의에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든 이들에게 징벌을 내리기 위한 일종의 대리물이었다.  by Wikimedia Commons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New_York_Yankees_BLM_July_23,_2020_(50146484151.jpg
2020년 7월 23일 뉴욕 양키즈의 BLM 묵념. 구단주나 수많은 팬들, 그리고 대통령이 친히 운동선수를 비판한 것은 활동가들, 그리고 더 넓히자면 인종주의에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든 이들에게 징벌을 내리기 위한 일종의 대리물이었다.
사진 출처 : Wikimedia

경찰의 인종화된 폭력에 저항하고 블랙라이브스매터 운동을 지지하는 미식축구 선수들의 노력은 군사주의라는 파도가 거센 해안을 만나 좌초했다. 이 선수들은 국가 연주나 국기에 대한 경례 시간을 경찰폭력과 국가의 인종주의 문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국가적 상징과 군대에 대한 긍정이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즉 선수들(그들 중 상당수는 군 가족에 속해있다)이 자신들의 시위는 군대를 무시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호소하는 목소리가 완전히 묻혀 버렸다. 더 중요한 사실은 시위자들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강력하게 증명해 준 것으로, 군사주의 사회에서, 특히 애국적 상징에 아주 많은 비용을 치른 스포츠 행사가 치러지는 맥락에서 당국에 반대의사를 표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 상황의 인종적 내용은 모두에게 명백하다. 흑인 선수들의 시위가 거리의 흑인 활동가들을 지지했기 때문에, 구단주나 수많은 팬들, 그리고 대통령이 친히 운동선수를 비판한 것은 활동가들, 그리고 더 넓히자면 인종주의에 반대 시위를 벌이는 모든 이들에게 징벌을 내리기 위한 일종의 대리물이었다. 하워드 브라이언트가 말했듯이, “‘닥치고 경기나 해’라고 말하는 팬의 태도는 부유한 스타 선수에게 향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 의도가 흑인 모두에게 입 닥치라고 말한 것임을 알고 있다.”7 사회 전체에서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수용하게 만드는 이러한 징벌의 시행은 군사주의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연주에 기립하지 않는 NFL 선수는 경기에 뛰어서는 안 된다’고, 심지어 “너는 이 나라에 있어서는 안 돼!”라고 트위터에 올렸을 때, 그가 순종적 태도와 국가적 소속감이 한 몸임을 명시적으로 드러냈다고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8 트럼프는 단지 바란과 스위지가 수십 년 전에 인식했던 것, 즉 군사주의 사회에서 “이견을 제시하는 자는 비애국자 혹은 반역자로 취급된다”는 것을 확정한 것에 불과하다.

핵무기의 정치적 역할은 군사주의라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을 벗어나서는 이해될 수 없다. 군사주의 문화는 핵무기의 정치적 역할을 강화시키고, 국제무대에서는 주권이 유효하다는 믿음을, 각 사회 내에서는 권력의 집중화가 필요하다는 믿음을 강화시킨다. 역으로 최종적인 위협이자 삶과 죽음의 결정권자로서의 핵무기의 현존은 군사논리와 군사적 훈육이 사회관계에 스며드는 외견상의 필요와 불가피성을 강화한다.

※ 다음 편에 계속…


  1. Rosa Brooks, How Everything Became War and the Military Became Everything: Tales from the Pentagon, New York: Simon & Schuster, 2017. 비록 저자가 이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비판적이긴 하지만, 이 책은 점점 더 커지는 사회의 군사주의와 문화 전쟁의 군사적 승리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준다.

  2. Huey P. Newton, “Message on the Peace Movement”, in Julian Shabazz, editor, The Genius of Huey P. Newton, San Francisco: Black Panther Party Ministry of Information, 1970, p. 13.

  3. Howard Bryant, “How Did Our Sports Get So Divisive?”, New York Times, May 14, 2018.

  4. Paul A. Baran and Paul M. Sweezy, Monopoly Capital: An Essay on the American Economic and Social Order,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69, p. 209, [한글본] P. 바란 외, 󰡔독점자본: 미국의 경제와 사회질서󰡕, 최희선 옮김, 변형윤 감수, 한울, 1984, 185쪽. 또한 군사훈련과 전쟁시기의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는, Thorstein Veblen, The Theory of Business Enterprise, New York: C. Scribner’s Sons, 1932, pp. 391-393를 보라.

  5. Cynthia Enloe, Globalization and Militarism: Feminists Make the Link, 2nd ed. Lanham, MD: Rowman and Littlefield, 2016, p. 56. 또한 Susan Jeffords, The Remasculinization of America: Gender and the Vietnam War,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9를 보라.

  6. Catherine A. Lutz, Homefront: A Military City and the American Twentieth Century, Boston: Beacon 2002를 보라.

  7. Howard Bryant, “How Did Our Sports Get So Divisive?”, New York Times, May 14, 2018.

  8. Catherine Lucey and Jonathan Lemire, “Trump Suggests NFL Players Who Kneel Shouldn’t Be in Us”, Associated Press, May 24, 2018. https://apnews.com/article/066db5b1b62e41c1a98c46f14f95a802

박성진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전공분야인 영문학에서는 낭만주의에, 비전공분야인 철학에서는 맑스주의와, 탈구조주의에 관심이 많다. 문학과 철학의 접목에 관심이 많다. 특히, 자연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빗발쳤던 낭만주의 시대에 쓰인 시들을 좋아하고,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와 상상력을 좋아한다.

이승준

형식적으로는 시간강사이자 독립연구자이며, 맑스주의자, 페미니스트, 자율주의 활동가 등등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특이체이자 공통체이면서, 풀과 바다이고, 동물이면서 기계이고, 괴물이고 마녀이며, 그래서 분노하면서도 사랑하고, 투쟁하고 기뻐하며 계속해서 모든 것으로 변신하는 생명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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