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하트 「핵 주권」 ① : 번역

오늘날 하나의 역설은, 핵무기가 야기한 위험들은 줄어들 기미가 없지만 그에 반대하는 사회운동이나 지적인 논쟁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 글의 주장은 효과적인 핵 폐지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핵무기가 맡은 주된 정치적․경제적 역할, 즉 약화되고 있는 주권 권력의 요구를 지원하면서도 동시에 자본의 기능을 강화하는 역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 체제에 효과적으로 맞서고자 한다면 우리는 주권과 자본을 함께 공격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의 「핵 주권 Nuclear Sovereignty」(Theory & Event, Volume 22, Number 4, October 2019,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pp. 842-868)에 대한 번역문으로, 앞으로 게재될 총 6회에 걸친 시리즈 중 첫 번째 글이다.

첫 원폭이 투하된 뒤로, 깨어있는 과학자, 학자, 정치인, 활동가들은 핵무기의 비합리성과 그것이 인류와 지구 생명에 끼친 치명적 위협에 대해 경고해 왔다.1 실제로 오늘날 의도적이고 우발적인 핵 공격의 위험, 아니 전면적인 핵 전쟁의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가 주장하길, “우리는 핵 전멸의 위험이 사라졌다고 믿지만, 오늘날 엄청난 핵 파국의 위험은 실제로는 냉전시대보다 더 크다.”2 그러나 최근 수십 년 동안 핵 위험에 대한 대중의 의식은 시들었고, 핵무기와 핵 기술에 대한 맞선 사회적 항의는 사실상 사라졌다.3 1980년대나 그 이전에 성년이 된 대부분의 좌파 학자들은 여전히 핵무기에 반대하는 핵심 주장을 암송할 수 있지만, 불행히도 내 생각에 젊은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그러한 주장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분별있는 핵정책을 위한 전국위원회〉4가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백만 명의 시위자들을 모았던 1981년 시위와 같은 과거 대규모 반핵시위들은 기억에서 거의 지워졌다. 그 당시 핵무기의 위협과 핵에너지 생산을 연결시킨 강력한 반핵운동들은 전 세계의 좌파들에게 중요한 위치를 점했으며, 특히 유럽에서 1986년 체르노빌 붕괴사고 이후 몇 년 간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오늘날 대규모의 대중적인 반핵의식은 일본에서만 — 일정부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의심할 여지없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참화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 살아남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설적으로 보이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즉 위험이 지속하고 심지어 더 늘어났음에도 사회적 의식 및 정치적 대립은 더 줄어들었다.

핵무기의 위험이 지속하고 심지어 더 늘어났음에도 사회적 의식 및 정치적 대립은 더 줄었다. by Ra Dragon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ioYf9VjGo34
핵무기의 위험이 지속하고 심지어 더 늘어났음에도 사회적 의식 및 정치적 대립은 더 줄었다.
사진 출처 : Ra Dragon

오늘날 효과적인 비핵화 기획은 단순히 대중에게 핵 위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핵무기가 군사․안보 이익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진전될 수 없으며, 심지어 평화를 간절히 호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효과적인 논쟁과 운동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핵무기의 주요 기능을 더 잘 이해해야 하고,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이익이 무엇인지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때 내 주장은 그러한 이익이 대체로 군사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경제적인 것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이해는 군축 과정을 실재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개입되어야 하는 투쟁의 지형을 지시할 것이다.

인류는 왜 자기파괴에 집착하는가?

비록 20세기 후반 내내 핵전쟁과 핵 재앙이 절대적인 파국의 주된 이미지이긴 했지만, 오늘날 대중의 상상력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두려움과 공포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기후변화이다. 마치 인류는 한 번에 하나의 종말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듯이, 이제 핵 전멸은 기후변화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그 두 가지 위험은 많은 점에서 평행선을 그으며 나란히 간다. 핵 재앙과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는 대규모의 파괴와 죽음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끝에는 지구에 사는 인류와 생명 자체를 절멸시킬 잠재력 역시 갖고 있다. (기후 변화 이후의 지구를 다루는 현대의 재난 영화나 소설들은 냉전 시대 대중문화에서 두드러졌던 핵 재앙의 이미지와 비유를 동일하게 반복한다.) 둘째로 이 두 가지 잠재적 위험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기후 변화에 의해 야기되는 현재와 미래의 재앙이 인간 행위의 결과임을 강조하는 것은 ‘인류세’ 담론의 한 가지 중요한 기능이다. 이렇게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인간이 원인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는 것은 일정 부분 인간은 또한 재앙을 피하고 이러한 추세를 뒤집을 힘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하지만 구원의 길이 분명하다고 해도 지배적인 정치세력과 사회세력은 진로를 변경하고 위험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점은 이미 여러 번 입증되었다. 여기에도 기후변화와 핵위협은 나란히 간다.

위험을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과 연관된 사실은 두 경우 모두 정치인들이 공개적으로 과학을 묵살한다는 점인데, 그들은 과학 전문가들과 과학 공동체 일반이 가진 전문지식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과학에 기반한 증거도 거부한다. 최근 정치인들의 “기후 부정(climate denying)” 현상은 지난 수세기 동안 핵기술과 관련해 일어났던 자동적 수사(dynamic)를 반복하는 것이다. 최초의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계획5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앨버트 아인슈타인, 실라르드 레오 그리고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같은 여러 1세대 과학자들의 경고는 정치현실을 모르는 이들이 사실을 과장한 것이라고 무시되었다.6 소련이 핵 능력을 획득하고 핵무기 경쟁이 냉전대결의 중심축이 되자 저명한 2세대 과학자들은 핵 전멸의 위협뿐만이 아니라, 핵실험만으로도 거대한 인구에 잠재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 초점을 두었다. 특히 핵실험시 방출되는 스트론튬-90은 다양한 정신적․육체적 질병에 더해 선천적 결손증을 야기한다고 말이다. 가장 저명한 과학자들 중에는 벤저민 스폭(Benjamin Spock),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 그리고 알베르트 슈바이처 등이 있었으며, 그들은 핵실험을 중단하고 핵전쟁의 위험을 줄이자고 촉구했다.7 과거의 정치지도자들이 핵과학자들의 지혜를 묵살한 것은 현 세대의 정치인들이 기후 과학과 더불어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여러 형태의 주장들을 거부하는 전조가 되었다.8

두 경우 모두에서 종말의 실질적이고 현재적인 잠재력에 대한 숙고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 삶의 의미를 재평가하도록 이끌었다. 그러한 실존적 성찰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한스 모겐소의 것인데, 1960년대 초반 그는 핵무기의 절대적 특성을 양에서 질로의 이행으로 인식했다. 20세기 초에 재래식 무기가 불러온 끔찍한 대량살상이 질적인 변형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핵전쟁은 삶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죽음도 파괴할 잠재력을 가진다. 즉 핵무기는 개인과 세대는 죽어도 사상과 예술의 가치는 기념비적 유산으로 살아남아 과거 문명을 불멸하게 만든다는 이전의 죽음의 의미를 끝내 버린다. 모겐소가 주장하길, “이렇게 근본적으로 새로운 조건을 위한 사유와 행동에 적응하길 거부하는 것은 이전의 인류와 문명을 파멸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사실이 되풀이될 것 같다.”9 모겐소에 따르면, 인류는 자신의 최후 시험에 실패하고 있다. 오늘날 기후 변화와 관련해 인류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인류는 위험을 분명히 인식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고, 파괴의 힘을 물리칠 일체의 수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류는 새로운 죽음의 늪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아도, 행동하는 대신 꼼짝 않고 얼어붙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인류를 자신의 주제로 삼은 분석은 빠르게 좌초될 것이며, 실제로 이것이 인류세 개념에 대한 가장 지적인 비평가들이 설득력 있게 주장한 바이다. 우리 모두를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린 진짜 원인을 밝혀내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우리는 핵 세상에서, 즉 핵무기와 무기 공장이 가져온 정치권력과 경제적 이윤에서 수혜자가 누구인지를 연구해야 한다. 핵 세상의 분리와 위계를 폭로하는 일은 대량의 파괴, 심지어 절대적인 파괴의 위협에 도전하는 일체의 과정을 위한 필수적 출발점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분석들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면서, 기후변화가 자본주의의 발전의 산물이며 따라서 도래할 파국을 피하거나 완화시키기 위해서 자본주의적 지배에 도전하자고 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전 지구적인 핵 배치는 군사 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논리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하며, 따라서 파국을 막는 일은 자본과 주권 모두에 맞선 투쟁을 필요로 할 것이다. 여기서도 기후변화와 핵위협은 나란히 간다.10


  1. 핵무기에 대한 가장 저명한 비평가들로는 조나단 쉘(Jonathan Schell), 게리 윌스(Garry Wills), 헬렌 칼리코트(Helen Caldicott), 리처드 포크(Richard Falk)가 있다.

  2. 페리의 말은 Clyde Haberman, “‘This is Not a Drill’: The Growing Threat of Nuclear Cataclysm”, New York Times, May 14, 2018에서 인용했다. 조나단 셸은 페리의 견해를 20여 년 앞서 언급한 바 있다. “놀라운 사실은 핵무기의 통제가 냉전의 최후의 날들보다 소련이 없어진 세계에서 더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Jonathan Schell, The Unfinished Twentieth Century: The Crisis of Weapons of Mass Destruction, London: Verso, 2001, p. 65. 특히 냉전 시대에 우리가 얼마나 핵무기의 의도적 사용이나 우발적 사용에 가까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Daniel Ellsberg, The Doomsday Machine: Confessions of a Nuclear War Planner, London: Bloomsbury, 2017을 보라.

  3. 셀은 1980년대 초에, “핵무기의 중요성을 측정할 수 없다고는 해도, 핵무기에 대해 생각을 하기에는 세계는 전반적으로 너무 많이 타락했다”(Jonathan Schell, The Fate of the Earth, New York: Knopf, 1982, pp. 3-4)고 탄식하면서도, 그는 일반인들이 핵의 유해함에 대해 잠재적으로 깨어나고 있음을 감지했다. 하지만 당시 아주 짧은 각성의 시기가 있긴 했으나, 그 뒤로는 핵의 유해함에 대한 의식은 줄어만 갔다.

  4. [옮긴이주] 〈분별있는 핵정책을 위한 전국위원회National Committee for a Sane Nuclear Policy〉는 평화주의자들과 반핵운동가들에 의해 1957년 4월 22일에 설립되었고, 이후 마틴 루터 킹의 후원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1993년 〈핵무기 동결 캠페인Nuclear Weapons Freeze Campaign〉과 통합하여 〈평화행동Peace Action〉을 결성했으며, 현재까지도 반핵운동의 한 축에 자리잡고 있다.

  5. [옮긴이주]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공동으로 참여했던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이다. 맨해튼 계획은 미국 육군 공병대의 관할로 1942년부터 1946년까지 진행되었다. 맨해튼 계획은 1939년에 극소수(처음 예산은 6천 달러였다)로 출발하였지만 1945년에는 고용 인구 13만 명, 사용 예산 2억 달러로 성장하였다. 비용의 90% 이상은 공장 건축과 핵분열 원료의 구입에 사용되었고, 10%는 무기 개발에 사용되었다. 연구 개발과 제조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 있는 30곳 이상의 지역에 분산되어 진행되었고, 일부는 기밀 지역이었다. 실라르드 레오(Leo Szilard, 1898-1964)는 헝가리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이다. 1933년 핵 연쇄 반응을 발견하여 핵에너지 이용의 길을 열었고, 1939년에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아인슈타인-실라르드 편지를 보내 핵무기 개발을 비밀리에 건의하여 맨해튼 계획을 추진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 1904-1967)는 미국의 물리학자로, 2차 세계대전 중에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장이 되어 여러 학자들과 함께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한 맨해튼 계획을 수행했다. 1950년 수소폭탄 제조에 반대하였다가 모든 공직에서 쫓겨난 바 있다.

  6. 아인슈타인은 잘 알려진 글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의 세계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를 선악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내릴 권력을 가진 이들이 아직 인지하지 못하고 있죠. 족쇄가 풀린 원자력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구해줄 모든 것을 바꿔버렸으며, 그래서 우리는 전례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Atomic Education Urged by Einstein”, New York Times, May 25, 1946에서 인용.

  7. “원자 폭탄에 대한 추가 실험의 종료는 고통을 겪는 인류가 간절히 바란 희망의 아침햇살 같은 것입니다,” Albert Schweitzer, “A Declaration of Conscience”, Saturday Review, May 18, 1957, p. 20.

  8. 흐루시초프(Khrushchev)는 사하로프(Andrei Sakhanov)가 핵실험의 파괴적 효과를 보여주려고 준비한 자료에 대해 ‘과학자들이 무기 개발의 책무를 지는 반면,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 결정하는 일은 정치 지도자의 책임’이라고 답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그와 회담 상대방인 미국인의 말을 거의 그대로 읊은 것이다. 이는 사하로프의 글(“Radioactive Carbon from Nuclear Explosions and Nonthreshold Biological Effects”, Science and Global Security, 1, no. 3-4, 1990, pp. 175-186, 그 중에서도 특히 p. 175)의 편집자 서문을 쓴 프랭크 폰 히펠(Frank Von Hippel)의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사하로프의 논문은 원래 소련의 학술지 Atomic Energy 4, no. 6, 1956에서 출간된 것이다.

  9. Hans Morgenthau, “Death in the Nuclear Age”, Commentary, September 1961, p. 234. 모겐소의 논문에 대해서는 Alison McQueen, “How to Be a Prophet of Doom”, New York Times, May 11, 2018를 보라.

  10. 기후변화를 자본의 발전에 연결시키는 주장으로는, Naomi Klein, This Changes Everything: Capitalism vs. the Climate, New York: Simon and Schuster, 2014[한글본] 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2016와 Andreas Malm, Fossil Capital: The Rise of Steam Power and the Roots of Global Warning, London: Verso, 2016을 보라.

박성진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전공분야인 영문학에서는 낭만주의에, 비전공분야인 철학에서는 맑스주의와, 탈구조주의에 관심이 많다. 문학과 철학의 접목에 관심이 많다. 특히, 자연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빗발쳤던 낭만주의 시대에 쓰인 시들을 좋아하고,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와 상상력을 좋아한다.

이승준

형식적으로는 시간강사이자 독립연구자이며, 맑스주의자, 페미니스트, 자율주의 활동가 등등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특이체이자 공통체이면서, 풀과 바다이고, 동물이면서 기계이고, 괴물이고 마녀이며, 그래서 분노하면서도 사랑하고, 투쟁하고 기뻐하며 계속해서 모든 것으로 변신하는 생명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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