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통신] ⑩ 아주 특별하고 귀중한 것

내가 누군가를 보고 어떤 마음이 들고 어떤 말을 해주고 싶다면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들을 보고 마을을 보며 나를 봅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

“이거 안 그리고 다른 거 그려도 돼요?”

oo가 바느질 밑그림을 그리다 말고 물어봅니다.

“뭐든지 그리고 싶은 거 그리면 돼.”

기하학 무늬를 그렸는데 다른 걸 그리고 싶은가 봅니다. 내심 눈에 보이는 것을 건너뛰고 추상적인 표현을 하다니 대단하다! 하고 감탄하던 터라 아쉬웠습니다. 뭘 그리는가 봤더니 장미꽃입니다. 옆에 앉은 친구가 장미꽃을 그린 게 예뻐 보였나 봅니다.

한 주 뒤, 다시 바느질하는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한땀한땀 정성을 쏟고 있는데 oo가 조용히 옆에 옵니다.

바늘땀이 촘촘한 장미꽃
(2021.6.2.)
바늘땀이 촘촘한 장미꽃
(2021.6.2.)

“이거 뜯고 다시 하면 안 돼요? 작게 뜨는 거 말고 크게 바느질 할래요.”

왜 그런지 물어봅니다. 바늘땀이 큰 게 더 예쁘다고 합니다. 작게 한땀한땀 뜨기가 정말 힘들고 그걸 해낸 게 훌륭한데 다른 친구가 한걸 보니 따라하고 싶은가 봐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게 아주 특별하고 귀중하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구슬려 봅니다.

“꽃을 잘 들여다보면 안쪽은 꽃잎이 작거든. 그러니까 촘촘하게 바느질한 게 작은 꽃잎이야. 이렇게 하기 힘든데 뜯기 아까워. 그냥 두고 바깥에는 큰 땀으로 하면 어때?”

“…… 네… 그럼 여기서 매듭 할게요.”

썩 내켜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가 가진 것이 특별한데도 옆에 있는 친구처럼 하고 싶어 하는 마음. 나도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알지요. 나한테 있는 것보다 내가 부러워하는 누군가에게 있는 것이 더 좋아 보이고 그렇게 안 되는 나는 보잘 것 없어 보여요.

아이뿐만이 아닙니다. 어른들을 만났을 때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의 반이 수도권에 있는데 우리는 왜 여기에 있을까요? 라고 물었을 때,

“서울에 못 가서죠.”

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두루뭉술 자신을 돌보고 마을과 아이들을 돌보자는 이야기를 했는데 며칠이 지나서야 하고 싶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못 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고 하는데, 옛날에는 못 생겼다고 했지만 요즘은 개성있다는 말이잖아요.”

바느질? 바늘질?
(2021.6.2.)
바느질? 바늘질?
(2021.6.2.)

이 말을 들은 oo선생님은 ‘굽은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속담에서 착안해 나주 어디에서는 ‘굽은 소나무 학교’가 있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굽은 소나무들의 마음은 다 통하는군요. 나는 굽은 소나무입니다. 그래서 굽은 소나무 아이를 알아봅니다. 우리는 같이 못 생겼으니까, 아니 개성 있으니까 이대로 좋은 거라고 강요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고 지지해야겠습니다. 너는 멋진 아이라고 자꾸자꾸 말해주겠습니다.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두동초 아이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봤습니다. 만들기를 하고 싶고 그 중에서도 바느질을 하고 싶다길래 재료를 준비해 같이 바느질을 합니다. 바느질인지 바늘질인지 헷갈렸지만 둘 다 맞는 걸로 했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오늘 있던 행사는 아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듯하다.

지난번 9번째 만화리통신에서 인용한 어린이 기자의 기사중 마지막 구절입니다. 얼마 전만 해도 무난하게 마무리했다고만 생각했는데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마을지도를 그린 아이들만이 아니라 기사를 쓴 아이에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겠구나. 이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구나.’

그러니 내가 누군가를 보고 어떤 마음이 들고 어떤 말을 해주고 싶다면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겠다고 알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을에서, 마을학교에서 이런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이지요.

나 = 마을 = 아이

무위당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아주아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마을을 보며 나를 본다

이렇게 제목을 쓰고는 말로 전할 수 없으니 비조마을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언젠가 말이 될 때 만화리 통신에 쓰겠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찍었지만 매번 다른 사진들. (좌) 2021. 3. 24. (중) 2021. 3. 30. (우) 2021. 6. 18
같은 자리에서 찍었지만 매번 다른 사진들. (좌) 2021. 3. 24. (중) 2021. 3. 30. (우) 2021. 6. 18

김진희

만화리 비조마을에 살며 만가지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마을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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