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다시 생각해 보기- 『민주주의 공부』를 읽고

민주주의 위기는 민주주의가 태어날 때 같이 태어났다.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자유와 평등이 지켜지는 한 다원성의 원칙을 결코 버릴 수 없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하는 세력들 또한 민주주의의 다원성 아래 성장한다. 하지만 체제를 위협하지 않는 한 다원성의 원칙은 지켜져야 하며,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지속적 보완이 필요하다.

‘온라인 서점 알고리즘이 추천한 도서’

얀-베르너 뮐러 저 『민주주의 공부』 (윌북, 2022)
얀-베르너 뮐러 저 『민주주의 공부』 (윌북, 2022)

지난달 새로 나온 책이 뭐가 있는지 궁금해 온라인 서점 앱에 들어갔다. 마침 추천 광고 알고리즘이 내게 『민주주의 공부』를 소개한다. 제목에 ‘민주주의’가 들어가 있으니 민주주의에 관한 이야기도 할 것이고, 출판사가 시의적절하게 이 책을 출간했으니 선거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보따리도 섞여 있을 것이라 짐작 정도만 했다. 관심거리가 이 정도고 때도 적절하니, 미리보기를 안 볼 수 없지 않겠는가. 차례에는 흥미로운 단어로 채워져 있었고, 손가락은 이미 ‘바로구매’ 버튼 위에 닿아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해 무엇을 더 알아야 할까. 우리는 민주주의의 무엇을 모르고 있는 걸까. 역자는 민주주의에 대해 무엇을 공부하라고 책의 원제 ‘Democracy Rules’를 살짝 바꾸어 『민주주의 공부』라고 했을까. 공부는 알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 전제는 ‘모른다’다. 그런데 문제는 알아야 하는 ‘무엇’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우리는 살면서 민주주의를 알아야 하는 그 무엇으로 의식하지 못할 때도 많다. 알아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당연히 누리고 사는 그 무엇으로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흔하지 않을까. 민주주의와 관련되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야말로 알아보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다.

이 책은 두껍지 않지만 근래의 많은 정치적 현상을 다루고 있다. 그 현상들은 물론 민주주의와 관련된 것들이다. 여러 나라 사정들이 자주 언급되어 그 나라 사정을 잘 모르는 독자에겐 다소 불편하겠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책 후반부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현재 지구상에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리 오래지 않은 때부터 민주주의 위기를 이야기 한다. 압축해서 그 위기를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자유와 평등이고, 이 핵심적 가치가 위험에 빠진다면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다.

꼬이고 꼬인 세상

냉전의 종식으로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의 상대는 없는 듯 했다. 공산권의 붕괴로 미국은 더 이상 그들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독재정권을 (계획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지지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이때 민주적 가치들은 달러와 함께 전 세계를 휩쓸었고, 민주주의 사회의 보편성은 쉽게 확산되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통신기술의 발달로 민주주의와 그 가치들은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을 거라는 매우 낙관주의적 예상들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21세에 살면서 20세기와 비슷하지만 다른 정치적 경험을 하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러시아에서 푸틴의 지지율이 반전 여론 압박으로 내려가지 않을까, 그러면 전쟁이 빨리 끝나지 않을까 하고 개전 초기 희망했는데, 실제는 반대였다. 지지율은 높아졌다. 『민주주의 공부』에서 강조하는 민주주의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 집회·결사의 자유, 매개 기구(정당, 언론)의 독립성 등 무엇 하나 제대로인 게 없는 나라가 전쟁을 일으켰다. 민주주의 대부분의 가치가 부정 당하는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러시아에서 전쟁에 대한 ‘잘못된’ 보도를 하면 처벌 받는다. 반전집회도 마찬가지일 테다. 러시아의 정치인들은 푸틴 눈치 보기에 바쁘다. 국민들은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혼동하며 푸틴의 팽창 정책에 박수를 보낸다. 민주주의 흉내를 내던 러시아는 21세기 버전 권위주의 통치의 끝판왕을 보여준다.(러시아에서 정치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적어도 최악의 민주주의는 면한 걸까.)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세력의 부상은 권위주의와 밀접히 관련 있다. 사진출처 : Ahmed akacha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세력의 부상은 권위주의와 밀접히 관련 있다.
사진 출처 : Ahmed akacha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켜 전 세계의 이목이 우크라이나에 집중되었지만, 팬데믹과 그 이전에 권위주의는 포퓰리즘이라는 것과 섞여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경제적으로 자본은 국경을 넘어 이윤이 될 만한 곳은 어디든지 가지만, 가난한 자들은 전쟁과 빈곤을 피해 고향을 떠나지만 그들을 환영하는 나라는 없다. 정착한 곳에서는 차별과 배제가 난무했고, 피부색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일은 특별한 뉴스가 아니다. 난민들이 고향에서 쫓겨나 도착한 곳은 서방의 ‘잘 사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그곳에선 기술발전으로 생산성은 증가하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그런 곳에 난민과 이주민들이 정착한다고 하면 그 나라 사람들이 환영할까.) 난민들이 도착한 나라에서 하는 일은 이미 그 나라 사람들이 기피하려는 일이라는 사실은 무시되기 쉽다. 아무리 그 나라가 이주민에 의해 건설되고, 그 나라의 역사가 이주의 역사라고 해도 말이다.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세력의 부상은 권위주의와 밀접히 관련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국민”이다. 다른 ‘불순물’이 섞이기 전에 ‘순수’하고 풍요롭던 과거,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향수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원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메뉴다.

사실 권위주의도 지역마다 현상이 매우 달라 쉽게 이야기하긴 어렵다. 앞에서 이야기한 ‘잘 사는 나라들’의 사정도 각기 다르고, 그렇지 못한 나라의 사정 또한 같지 않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어렵다. 미국의 트럼프는 강한 권위주의 정치를 했는가, 그것이 러시아·터키와 같은 수준의 권위주의 통치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유럽에서 부흥하는 국가주의와 반이민정책을 표방한 극우 세력이 정권을 잡았는가 하면 또 그렇진 않다. 브렉시트는 또 어떠했나. 그런데 그런 극우 세력이 정치적 영향력을 조금씩 키워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느 하나 쉽게 일반화가 가능하지 않은 사정이다.

민주주의의 위기?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기회

권위주의 정치 세력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서 민주주의 정치 체계를 훼손한다. 권력 획득을 위해 내부적으로 구성원들을 적대적으로 나누고, 자신의 정치적 주장에 이롭게 정당과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이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몇몇의 예외가 있지만) 이들이 권력을 획득하는 방식은 이전과 같이 충분히 물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도 국민과 ‘소통’하고 선출된다. 권위주의 정치세력이 각 지역에서 운영하는 민주적 시스템 안에서 등장하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 체계를 파괴하려는 눈에 띄는 행동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오히려 막기 쉬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행 시스템 안에서 권위주의 정치 세력은 차별과 배제, 혐오를 조장하며 차근차근 등장한다.

상황이 이렇지만 권위주의 세력 자체를 발본색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자신의 시작과 끝 사이에서 겪어야할 운명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원성을 원칙으로 한다. 다원성은 어쨌든 다원성이다. 아무리 현자의 돌을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헛소리하는 한 사람과 그 밖의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같은 땅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스템이다. 현자나 미치광이나 다 같은 한 표를 가진다. 다원성과 평등이 공존해야 민주주의다. 자유의 경계선은 확실하다. 자유는 무한정 확장된 자유가 아니다. “자유의 행사는 두 가지의 타협할 수 없는 경계 안에 머물러야 한다. 정치 체제의 자유롭고 구성원으로서 동료 시민의 입지를 훼손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으며, 모든 사람은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누구도 자신만의 팩트를 가져서는 안 된다.”(P.220~221) 자유는 구성원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사방이 문제투성이여서 답을 찾으려고 돌고 돌아 온 곳은 민주주의가 출발했던 원칙이다. 원칙이 유지되는 민주주의는 위기에 놓인 것이 아니다.

인간이 문명을 이룬 이후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를 개인과 공동체의 가치로 품기 시작한 것은 얼마 안 된 일이다. 근대 민주주의 역사의 길고 짧음이 지역마다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남녀, 인종을 넘어서 참정권을 인정하기 시작한 기준으로 보면 그 역사는 1세기도 안됐다. 그 이전의 시기는 지금의 민주주의를 위해 그것을 강화했던 시기였다. 한 세기도 운영하지 않았는데 위기를 말하기에 빠르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100년도 버티지 못하는 정치 체제를 몇 백 년씩 버텨온 왕조보다 안정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지금의 민주주의가 완벽하니 손대지 말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을 더 들여 완성도를 올리자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현실에서는 더욱 복잡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공론장을 통해 확장된 권리와 한계를 따져야 한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역사 속에 등장하면서, 가진 자들은 늘 그들의 자유를 넓히려고 노력해왔다. 시간은 미래로 열려 있고, 미래에 정치경제적 격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가진 자들은 이전에 해왔던 일들을 계속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업그레이드 된다는 것은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가진 자들의 자유의 범위가 다른 구성원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한계를 정하고 룰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대안 정치 체제를 찾기 전까지, 민주주의에 대한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변화한 시대에 알맞은 업그레이드된 민주주의이다.

업그레이드 패치를 만들기 위한 상상력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의미는 얇지 않다.

김영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만 하다가 2, 30대가 지나가 버린 아저씨. 살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옆에 있는 경기도에 사는 지구인. 행복을 찾아 아직도 고민 중인 호기심 많은 호모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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