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 뒤에 숨겨진 착취체제, 자본세를 넘어서 –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를 읽고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셈할 수 있는 것에만 가치를 두기 때문에 셈할 수 있는 돈을 숭배한다. 또한 자본주의 전체 시스템이 번성하려면 강력한 국가와 자본가가 세계의 자연을 재조직할 수 있어야 하고, 식량, 노동, 에너지, 원자재, 사회적 재생산을 가능한 한 적은 비용으로 획득해야 유지될 수 있다.

지금 세계 경제는 미국의 관세 인상 정책으로 요동을 치고 있다. 미국은 세계 각국으로부터 저렴한 상품을 공급받으며 지금 풍요로움을 누려왔으나, 반면에 막대한 무역적자를 겪고 있다. 이러한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정책으로 관세 인상을 펼쳤으나, 저렴한 상품의 공급자 측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소비자 측 모두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움은 자본주의 시스템 덕분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 풍요로움은 다름 아닌 저렴한 것들에 의해 작동해 왔다. 그렇다면 그 저렴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저자는 저렴함은 기술 개발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것들의 착취로 가능한 것이었다. 특히 저렴한 것들을 생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착취의 대상이 된 것은 자연 생태계이기에, 우리는 지금 풍요로움의 과실은 미래 세대가 치러야 할 비용에 기대어 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

인류세보다 자본세

인류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의미로 현대를 지질학적으로 인류세라고 부른다. 하지만 오늘날 기후 변화의 근본 원인은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아니라 자본주의라고 보아서 저자는 인류세 대신에 현대를 자본세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동시에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나머지 지구 생명과의 관계를 엮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라즈 파텔, 제이슨 무어 저,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북돋움, 2020)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셈할 수 있는 것에만 가치를 두기 때문에 셈할 수 있는 돈을 숭배한다. 또한 자본주의 전체 시스템이 번성하려면 강력한 국가와 자본가가 자연을 재조직할 수 있어야 하고, 식량, 노동, 에너지, 원자재, 사회적 재생산을 가능한 한 적은 비용으로 획득해야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자본주의 체제에서 저렴함은 전략이자 실행이고 모든 일을 가능한 한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저자는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등 일곱 가지 저렴한 것들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역사적 사실 중심으로 서술한다.

현대인이 누리는 풍요로움은 저렴한 상품에 의존해 왔으며, 저렴한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인간은 자연을 남용하였다. 비록 자신이 자연의 일부이고 거기에 의존하면서도 말이다. 또한 노동을 시간으로 계산하는 체계를 마련하여 값싼 임금 노동을 정착화하기에 이르렀다. 값싼 임금 노동력을 꾸준히 공급할 수 있도록 자본가는 국가와 협력하여 사회적 재생산을 제어하기 위하여 가정에서의 돌봄 노동을 무임금으로 여성들에게 전적으로 전가하기에 이르렀다. 저렴한 노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저렴한 식량을 노동자에게 제공해야 했기에 농업혁명이 일어났으며,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더 적은 임금으로 저렴한 식량을 구입할 수 있었기에 최저임금의 기준이 낮추어졌다. 저렴한 식량이 저임금을 유도했다면, 저렴한 에너지는 노동 생산성을 향상하는 데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담당하였다. 저렴한 생명은 일찍이 노예의 노동에서 엿볼 수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가 이에 해당한다.

저렴함의 실체

저렴한 것의 생산에 따른 환경을 포함한 여러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여 우리 삶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 당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저자는 현재의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 몇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나 인간과 자연을 나누는 사고 범주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산물임을 인식할 것. 둘째, 사회적 재난에 대한 거국적인 보상 체제를 구축할 것. 셋째, 소득의 재분배뿐만이 아니라 가사 노동의 재분배, 음식의 재분배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재분배가 이루어져야 할 것. 넷째, 지금까지의 인간 중심주의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상상을 해야 할 것 등이다.

지금까지 저렴한 것들로 유지되었던 자본주의는 앞으로도 지속 가능할까? 예를 들면, 가까운 미래에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생산력의 저하로 저렴한 식량의 공급이 불가능하게 되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 저렴한 식량 공급이 작동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안들을 모색하면서도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체제의 세계를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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