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경제학을 읽고

GDP 중심의 주류경제학은 더 이상 금융시장의 폐해, 세계적인 불평등, 기후상승, 인구위기 등의 문제를 설명해내지도 못하고 대안을 찾아내지도 못한다. 생태환경이 배제되지 않고 경제의 총괄적인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도넛경제학이 필요하다. 도넛의 작은 동그라미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며, 큰 동그라미는 환경위기를 막는 생태적 한계이다.

공부하기 참으로 막막한 분야가 경제학이다. 뉴스와 신문의 절반 이상이 경제 이야긴데 단편적으로는 좀 알아들을 것 같다가도 그래서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 건지 나중에는 어떻게 될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지금쯤 빚을 내서라도 집 장만을 해야 하는 건가? 주식이 많이 떨어졌는데 그러면 나라 살림이 어려워지는 건가?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따로따로 놀면서 총체적인 모습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어디 좀 제대로 공부해보자 싶어도 이건 뭐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엄두가 나질 않아 지레 포기하게 된다. 뭔가 일목요연하게 큰 줄기를 세우고 싶은 갈급함을 항상 가져 왔다.

영등포에서 협동조합 활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매월 책 한 권을 같이 읽고 나누는 모임을 갖고 있는데, 이번에 읽게 된 책이 ‘도넛경제학’이다. 제목이 장난스러워서 그저 약간의 호기심을 유발하며 대안경제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가벼운 책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경제학의 과거와 현재, 역사와 미래, 거품과 실체를 보여주며 나 같은 문외한도 나름대로 체계를 세울 수 있게 도와주는 제법 깊이 있는 책이다. 그동안 신문을 보면서 상상했던 무수한 수식과 골치 아픈 그래프들을 미련 없이 밀어내고 그저 하얀 바탕에 동그란 도넛 하나만 기억하면 되게 하는, 참 고마운 책이다.

여는 글. 누가 경제학자가 되고 싶어 하는가

인간은 도넛의 작은 원과 큰 원 사이의 공간에서 조화와 균형을 찾음으로써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이 가능해진다. 『도넛 경제학』 본문 삽입 그림.
인간은 도넛의 작은 원과 큰 원 사이의 공간에서 조화와 균형을 찾음으로써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이 가능해진다. 『도넛 경제학』 본문 삽입 그림.

우리에게는 21세기에 닥쳐올 여러 도전을 따라잡을 경제학이 필요하다. 금융시장의 폐해, 세계적인 불평등, 기후상승, 물부족, 인구증가 등의 위기는 주류경제학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2050년의 시민들이 배우는 경제학 이론이, 한참 철 지나간 1950년 교과서에 뿌리를 두고 있고, 게다가 이는 1850년 경제이론에 근거해 있다. 저자는 이 한계를 극복하고 인류의 장기목표를 세워 새로운 경제적 사고를 만들기 위해 도넛경제학을 생각하게 되었다. 도넛의 안쪽 원은 모든 이가 반드시 누려야 할 최소수준의 안녕을 위한 사회적 기초이며, 도넛의 바깥 원은 지구의 생태적 한계선이다. 인간은 이 작은 원과 큰 원 사이의 공간에서 조화와 균형을 찾음으로써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이 가능해진다.

1. 목표를 바꿔라 ( GDP에서 도넛으로 )

GDP, 즉 국내총생산은 오랫동안 한 나라 경제의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으뜸가는 지표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처한 사회적 위기와 생태위기상황을 볼 때, 이렇게 제한된 지표를 기준으로 복잡한 국제관계를 줄 세우기는 불가능해졌다. GDP는 핵심척도나 목표가 아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21세기 경제학의 목표는 우리 지구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모두의 삶이 피어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진보를 가장 잘 묘사하는 움직임은 ‘역동적 균형 상태로의 진입’이다. 도넛의 부족한 부분과 넘치는 부분을 모두 없애고 우리 모두 그 도넛의 안전하고 공정한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2. 큰 그림을 보라 (자기 완결적인 시장에서 사회와 자연에 묻어든 경제로)

시장에 맹목적인 신앙을 바친 결과 우리는 생태적, 사회적, 금융적 붕괴의 절벽에 내몰리게 되었다. 화폐의 흐름을 중심으로 한 자기완결적인 시장이 아니라 경제가 사회 내부, 세계 내부에 안정적으로 둥지를 틀게 만드는 방식으로 사유를 확대하여 우리 시대에 적합한 그림을 그려보자. 그러면 단순히 소득의 흐름만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안녕의 근간이 되는 여러 부의 원천-자연,사회,인간,물질,금융-을 이해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3. 인간 본성을 피어나게 하라 (합리적 경제인에서 사회 적응형 인간으로)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네트워크는 결국 구조와 균형이다. 다양성과 분배다. by Tingey Injury Law Firm 출처: https://unsplash.com/photos/yCdPU73kGSc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네트워크는 결국 구조와 균형이다. 다양성과 분배다.
사진 출처 :Tingey Injury Law Firm

경제학에서 바라보는 인간상은 합리적 경제인(호모 이코노미쿠스)으로 이는 경제학 이론의 핵심에 있는 자기중심적 인류로 규정된다. 인간을 끊임없이 자신의 효용을 계산하는, 포만감을 모르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경제학의 이러한 시각을 배운 학생과 교수들은 실제로도 상대적으로 이기적인 경향을 보인다.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달라지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 인류의 모습은 그렇게 좁고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이며 호혜성으로 움직이는 존재다.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서로 의존해 살아간다. 경제학의 전제 자체가 오류인 셈이다.

4. 시스템의 지혜를 배워라 – 기계적 균형에서 동학적 복잡성으로

경제는 수요공급곡선이 저절로 균형을 맞춰나가는 것처럼 그렇게 선형적이고 예측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8년의 금융위기도 예측하지 못했다. 경제란 역동적인 생명 세계 안에서 서로 의존해 살아가는 인간으로 구성된 복잡계로 이해해야 한다. 선형 역학에서 복합적 동학으로 관심을 옮겨야 한다. 경제를 기계로 보는 개념에는 이제 작별을 고하고, 대신 경제는 유기체라는 개념을 포용할 때인 것이다.

5. 분배를 설계하라 – 부자로 만들어주는 성장 신화에서 분배 설계로

‘국가가 부유해지기 위해선 불평등한 시기를 거쳐야 한다’는 이론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불평등과 경제 성장의 관계에 관한 한 규칙성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불평등의 과정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사회불평등이 심할수록 경제성장은 취약해지고 속도도 느려진다. 21세기 경제학자들은 불평등 심화를 경제 설계의 실패로 평가해야 하며, 경제에서 생겨나는 가치가 고르게 분배되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네트워크는 결국 구조와 균형이다. 다양성과 분배다.

6. 재생하라 – 저절로 깨끗해진다는 성장만능주의에서 재생설계로

가난한 나라는 너무 가난해서 생태적인 가치를 추구할 수 없다거나, 경제가 성장하면 그 과정에서 생겨난 온갖 공해도 모두 깨끗이 씻겨 나갈 것이라는 건 근거없는 말이다. 결국 공기와 수질을 보호하는 것은 경제성장 자체가 아니라 시민권력이다. 산업체가 더 깨끗한 기술을 사용하도록 몰아붙이는 것도 수입증가 자체가 아니라 더 엄격한 환경기준을 적용하도록 정부와 기업에 압력을 넣는 시민의 힘이다.

우리는 퇴행적으로 설계된 산업경제를 물려받았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이런 경제를 재생적인 경제로 재설계, 전환하는 것이다. 어려운 도전이다.

7. 경제성장에 대한 맹신을 버려라 – 유일한 지상명령에서 성장불가지론으로

경제성장 논쟁이 정말 절실한 지역은 고소득 저성장 국가들이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S자 곡선의 꼭대기에 다다른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 두세기 동안 고소득 국가들이 보여준 놀라운 경제성장은 대부분 저렴한 화석연료를 통해 가능했다. 성장에 한계가 있다면 우리 세계를 떠받치는 정치적 기초는 무너질 것이다. 심각한 분배투쟁이 나라 안에서, 또 나라와 나라 사이에 생겨날 수밖에 없으며, 사실상 이미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GDP성장의 끝자락에 거의 다다른 나라들이 경제 성장 없이도 번영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경제체제의 설계도를 다시 작성해야 한다.

빈부의 격차와 계급간의 갈등이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지금 우리 도넛의 안쪽라인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기후위기와 더불어 코로나 사태까지 휘몰아치는 지금 도넛의 바깥쪽 라인은 얼마나 찌그러지고 구멍이 나있을까. 북으로 띄워진 전단지는 도넛의 어디쯤에 자국을 내었고,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맞서는 성직자들의 기도는 도넛의 어느 라인을 움직일까.

저자의 말대로 이제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제학자가 되어 도넛라인을 하나하나 그려보고 측정해보며 새로운 경제적 행동으로 도넛을 완성해 나갈 때이다. 나의 탐욕을 알아채고 우리의 돌봄과 살림을 확장해서 아주 반듯한 도넛을 공유할 수 있길 기원한다.

진형탁

자유의지에 기반한 민주적인 생활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래서 협동운동에 관심이 많습니다. 많은 협동운동에 관여했지만 한 번도 잘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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