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이 만든 변화의 기회, 사람이 빠진 정책의 빈틈

지방소멸의 위기와 밀레니얼 세대 청년들의 요구가 맞닿으면서 지역에 청년들의 이주를 지원해주는 정책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역에 정착하기 어려운 청년들을 지원하는 변화는 반가운 일이나 이주한 청년들은 창업 지원을 받는 수혜자, 인구 유입의 성과로 평가되고, 지원정책은 평면적인 단위사업에 그친다. 그들 사이를 통역해줄 완충지대(사람, 기관 및 정책) 없이 청년들과 지역 주민들은 각각 곤란함을 겪는다.

‘지방소멸’. 서울에선 체감하기 어려운 단어지만 한 발짝만 벗어나면 다수의 지자체들은 지방소멸의 위기를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05곳(46.1%)으로 거의 절반이 소멸 가능성이 있다. 이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전체 인구 감소에 있지 않다. 유소년 층과 청년 인구수의 감소와 빠른 고령화로 지역 사회의 인구 구성이 지속가능하지 않고 이는 지방 자치가 불가능해짐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내에 인구소멸의 위기감을 강하게 인식하거나 행정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여전히 흔치 않다.

지방소멸의 위기감이 만든 혁신의 가능성

내가 이주해 살고 있는 의성군은 지방소멸지수(0.151) 1위에 고령화율 38.7%로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경상북도 역시 소멸위험지수 0.2이하의 고위험지역 11곳 중에서 7곳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경북도와 의성군은 지방소멸위기 1위 지역으로의 긴박함과 위기감으로 민선 7기가 출범하면서 ‘이웃사촌 청년시범 마을’이라는 청년유치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간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애쓰면서 행정의 협력 없이, 행정의 언어를 익히지 않고선 지역에 정착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가던 중에 이웃사촌 시범마을 사업 추진 과정에서 몇 번 마주친 적극 행정과 열정적인 공무원분들은 마음에 특별한 감동과 신뢰를 남겼다. 행정과 좋은 어른. 지역살이에 새로운 숙제를 받아든 나는 이곳의 중간지원 기관에 일하기로 했고, ‘민 팀장’이라 불리며 외지에서 이주한 청년 여성이지만 비교적 쉽고 안전하게 지역의 관계망 안에 진입할 수 있었다. 돌고 돌아 결국 나는 지방소멸 1위라는 불명예 덕분에 인구소멸에 대한 강한 위기감과 그에 따른 변화와 혁신의 가능성을 보고 의성군에 이주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된 지역 내의 생산 가능 인구의 유출로 농촌 내에 젊은 세대가 단절되었고, 이는 다양한 방면과 맞물려 인구 구성 악순환을 반복해 왔다. 시간이 흘러 지역 내의 순환되는 경제활동의 침체, 생활 기반 시설, 교육, 의료, 복지, 문화 등이 단절되거나 무너졌다. 읍의 역할을 하고 있는 안계면과 의성읍을 벗어나 리 단위 마을에 들어가 보면 가장 젊은 활동 주체가 5~60대, 그마저도 한두 명에 그치고 그나마도 있는 마을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도시라면 은퇴할 나이가 된 지긋하신 분들이 마을의 청년으로 회관에서 8,90대 마을 어르신들을 돌보고, 음식과 청소를 하고, 마을에 내려오는 사업을 담당하고, 생업에 치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반면, 지원 사업을 받아 대도시에서 내려온 청년들은 사업장이나 주거지를 구하지 못하고 지역과 쉽사리 연결되지 못한 채 각자 고분 분투한다. 기존의 주민들은 이들을 실패자, 말썽꾸러기, 낭만주의자로 바라보며 간단하게 수혜자로 낙인찍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배제하려 한다. 이런 장면들을 자주 목도하다 보면 어쩌면 너무 늦은 것이 아닐까 정신이 아득해져 온다. 이런 현장으로부터 왜 청년이 지역에 필요한지 더 자주 질문해야 하고,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 청년들이 정착하고 어려움을 마주하게 되는지 섬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새로운 흐름 밀레니얼 세대

그래도 다행히 희망은 있어 보인다. 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이 지역 이주를 삶의 새로운 경로로 탐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여러 연유(종교, 건강, 공동체 등)로 귀촌이나 귀농을 지향하는 움직임들이 있어 왔으나 지금의 청년들의 지역 이주는 보다 보편적이고 주류적 시대 맥락을 가지고 있다. 한동안 사용되었던 N포 세대라는 말처럼 과밀화된 도시의 불가능성을 목도하며 자란 청년들은 지나친 경쟁과 성장주의를 피해 지역에 살고자 한다. 이 청년들은 ‘행복’, ‘관계, 공동체’, ‘여유, 쉼’, ‘도전, 자립’, ‘생태, 지속가능성’ 과 같은 단어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지방소멸 위기감을 체감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주도하에 도시 청년의 지역 이주 정책이 전개와 동시에 다르게 살고자 하는 청년들의 요구가 만나면서 근래 몇 년간 지역 청년 사업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중앙정부 중심의 청년사업의 경우 청년 사용자 중심으로 사업을 신설하여 실험적으로 다양한 사업들을 전개하고 있으나 사업 시행 단위인 기초지자체 역량과 협조와 지역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한계점을 보인다. 반면 지방자치단체 중심으로 전개되는 사업의 경우 현 청년 세대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청년을 수혜자나 마을 일꾼으로, 인구 유입을 위한 소모적 수단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지역에 대한 이해와 밀착성 없이, 더불어 청년 세대가 어떤 것을 지향하고 어려워하는지 구체적인 이해 없이 지역과 이주 청년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사이 청년과 고령화된 지역 주민 사이에 균형감을 가지고 사업을 구성하고 전개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

공간, 사람, 삶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정책이 가능할까

지방은 과거 공동체가 그랬듯 여러 세대가 뒤섞여 지낼 수 있는 정책과 제도가 절실하다. 그저 함께 있는 것 이상의 관계 맺기를 위해서는 ‘통역사’의 역할이 필요하다.  by Pixabay 출처 : www.pexels.com/ko-kr/photo/461049
지방은 과거 공동체가 그랬듯 여러 세대가 뒤섞여 지낼 수 있는 정책과 제도가 절실하다. 그저 함께 있는 것 이상의 관계 맺기를 위해서는 ‘통역사’의 역할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 Pixabay

농촌과 도시, 청년과 노인 인구로 선명하게 이분화 될 만큼 공간과 세대 사이에 벌어진 간극은 서로의 입장과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곳 경북 의성처럼 오랫동안 집성촌으로 지내왔던 마을에 연고 없는 새로운 이주자가, 그것도 서울에서 결혼도 안한 미혼 남녀들이 들어오는 것은 마을 어르신들은 한평생 처음 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이주 청년들이 반갑기도 하면서 일견 두려워지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수십 년간 고요했던 마을의 평화를 깨고 무리하게 외부인을 받아들여 애써 변화와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지역민들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말과 태도를 넘어 혈연을 바탕으로 한 깊고 좁은 관계망으로 유지해온 질서와 맥락을 이주해온 청년들도 이해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반면, 자본, 연고, 기술도 없이 지역 사회에 들어온 청년들이 얼마나 막막하고 두려울지 상상해볼 수 있어야 한다. 대개 청년들은 촘촘하게 갖춰진 사회적 기반과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성장하고, 그 안에서 도시 내에 필요한 재원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정보가 수평화 되지 않은 사회를 경험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학력, 커리어로 이어지는 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삶의 여유와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 용감하게 들어온 청년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봐줄 필요가 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간편하게 얻으며 도시 사회적 자본 안에서 의, 식, 주를 해결해왔던 방식으로 농촌 사회를 접근한다면 모든 것이 갈등과 문제의 연속일 것이다.

어느 한쪽의 문제라기보다는 상호 몰이해하다고 볼 수 있다. 모두 한국말을 쓰고 있다고 서로 알아듣고 소통하는 듯 보이나 실상 영어와 중국어를 쓰는 것 수준의 불통의 결과를 낳는다. 서로가 자라온 시대적 공간적 배경, 경제활동 방식, 삶의 양식, 교육 문화 및 언어 사용 방식 등 삶 전반이 대단히 다르기 때문에 이 사이의 의도와 맥락,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줄 통역이 필요하다. 통역해 줄 완충지대(청년의 삶의 방식을 잘 이해하는 마을의 오래된 주민, 마을 생태계를 잘 이해하는 청년)가 없다면 청년들은 초기 정착 이주 단계에서 정보의 불균형으로 상상 이상의 애로 사항을 겪게 될 것이고, 지역 사회 적응 단계 단계마다 청년은 소수자로서 많은 갈등을 겪게 될 확률이 높다. 지역사회에 갈등 유발자로 낙인찍히거나 지역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느라 마을 무수리가 되어 지역에 내려오고자 했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청년이 꿈꾸고 바라던 새로운 가능성과 삶의 터전이 펼쳐지기도 전에 청년 개인은 지역에 실망과 실패를 경험하고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주하려는 청년에게나, 청년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지역 주민들에게나 상호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고 어떻게 하면 서로가 불필요한 갈등과 소모를 피하고 접점에서 만날지 상호 배우고 연습해야 한다. 갈등을 피하고 도려내는 것을 넘어 갈등을 잘 기록하고 관리하는 역할이 청년 사업 내에 분명하게 존재해야 한다.

어느 마을에나 훌륭한 통역사가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통역사 역할은 정부나 지자체가 정보 통합 기관, 전문 담당 인력, 교육 프로그램 배치 등 시스템으로 구현해내어야 하는데 급작스럽게 들이닥치는 청년 사업들은 대체로 그런 준비가 부족하다.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 내에 청년 이주 및 생애주기별 입체적인 로드맵이 설계되어야 하고, 시행단위인 민간과 기초 지자체에서 시행되는 다양한 단위사업들을 민관협치 거버넌스인 중간지원 기관이 권한과 역할을 가지고 청년과 마을에 비빌 언덕, 완충지대 역할을 해내어야 한다.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지원한 청년 사업들이 실패로 남지 않으려면 성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작은 연결고리 만들기와 지속적인 통역 활동에 중요한 열쇠가 있다. 농촌에 풀어내려는 청년 사업은 인구유입의 단순한 성과지표가 아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간으로 전환해 내려는 유연한 시각과 단호한 결정이 필요하다. 이는 어렵지만 지속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상호 간의 인식과 과정에 있다.

민재희(세모)

자립과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을 안고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삶의 형태를 실험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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