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야생동물센터 동물들의 행동이 사람에게 주는 작은 울림 하나.

야생동물센터에서 일하다 보면 강의를 할 기회가 생기는데, 그런 자리에서 만난 분들이 묻는 단골 질문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동물이 있었느냐고. 야생동물센터는 구조와 치료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만나는 동물도 그들의 기구한 사연도 참 다양하다. 때문에 가슴에 품은 동물을 일일이 다 말할 수도 없고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나는 그때그때 잠깐 고심해보고 생각나는 동물을 얘기하는 편이다.

이번에도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무슨 주제로 글을 쓸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이대로 있다가는 글을 쓸 수 있는 타이밍을 잡기 어렵겠다 싶어서 컴퓨터를 무작정 켰다. 빈 스크린을 바라보며 잠시 고민해보니 문뜩 떠오르는 건 까치였다.

우리 센터에는 올해 유독 어린 까치가 많이 들어왔었다. 센터에 오는 까치는 다치거나 갇혀서라기보다는 이소1 중에 구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그런 까치를 잘 먹이고 잘 크게 도와줘서 다시 바깥에서 훨훨 날아다니며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일인데 부모 까치의 가르침 없이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는 건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린 동물이 많이 들어오는 늦봄에서 여름 사이에는 같은 종의 다른 개체를 여럿 합사하는 일이 잦다. 공간의 한계와 그들만의 사회화 등 여러 이유가 있는데, 까치나 까마귀 같은 동물은 같이 두면 스스로 먹이 먹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서로 돕는 어린 까치들처럼,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끔 서로가 따뜻한 동화 같은 순간을 건네주면 참 좋을 것 같다. 사진출처 : Josep Monter Martinez  https://pixabay.com/images/id-1168566/
서로 돕는 어린 까치들처럼,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끔 서로가 따뜻한 동화 같은 순간을 건네주면 참 좋을 것 같다.
사진 출처 : Josep Monter Martinez

언젠가 어린 까치가 또 여럿 들어와서 따뜻한 인큐베이터에 둔 적이 있다. 그중 두 마리는 한 번에 구조된 것이었고, 이삼일 후 비슷한 크기의 또 다른 까치가 접수되어 그 두 마리와 같이 지내게 했다. 후에 들어온 까치는 약간 탈진한 듯 기력 없이 인큐베이터 문 가까이에 서 있었고 다른 두 마리는 인큐베이터 생활에 적응해 눈이 감기면서 입을 벌리거나 날개를 늘어뜨리는 둥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편하게 지내고 있었다.

바쁘게 이 일 저 일 하다 보면 흥미로운 순간을 다 포착하진 못하지만 ‘그’ 장면을 본 날 나는 하필 혼자였다. 입원실 복도 너머 인큐베이터 안 속 까치들은 내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들어온 까치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까치 옆에 서 있었고,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까치는 날개에 뭐가 묻었는지 연신 부리로 깃털을 정리해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뭐가 묻은 부위는 사람의 어깨쯤 되는 곳이었다. 부리로 정리하기엔 참 어려운 위치다. 사람이라면 아마 진작에 승모근에 담 와서 포기했을 텐데… 아차 사람은 손이 있었다는 걸 깜빡했다.

하여튼 그 어려운 부위를 부리로 정리해보려던 까치도 잘 안되는 것 같았다. 내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리던 찰나에, 그 옆에 서 있던 먼저 들어온 까치 한 마리가 부리로 그 부위를 살짝살짝 잡았다 떼주기 시작했다. 아마 고군분투하는 까치의 모습을 계속 지켜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도와주는 까치의 행동은 점점 과감해지더니 자기가 그 깃털에 묻은 무언가를 기필코 떼 보이겠다는 듯 열중했다. 후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부분에는 끈끈이 같은 게 살짝 묻었는지, 아주 작은 덮깃이 몇 개 붙어있었다.

결국은 그 둘이서도 해결이 되지 않았고, 내가 도와줘야 했다. 이 까치는 끈끈이 때문에 들어온 게 아니어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하필 거기에만 살짝 묻어있었고 그게 신경이 쓰였나 보다. 비록 그 광경을 찍어놓진 못했지만, 까치들도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은 감동이었고, 큰 발견을 한 것처럼 내 마음은 부풀었다.

아주 어릴 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짧은 동화를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이 속속들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 동화 속 사회는 조용하고 따뜻했으며 조건은 필요하지 않았다. 촛불 하나로 온 집안이 따뜻한 노란색으로 물들어 바깥 칼바람에 살이 에려도 뭐든 품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만 남아있다. 책과 현실은 많이 다르겠지만 가끔은 현실이 책보다 더한 서사를 쓰기도 한다. 저 어린 까치들처럼,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끔 서로가 따뜻한 동화 같은 순간을 건네주면 참 좋을 것 같다.


  1. 이소(離巢) : 동물 새의 새끼가 자라 둥지에서 떠나는 일. 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인현

5년 전 어르신에게 선물 받은 호(仁賢)를 이름 대신 내놓습니다. 살아있으면서 다른 생명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그리고 계속 그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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