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잼버리, 그 실패의 기원에 관한 메모

새만금 잼버리가 끝났다. 명백한 실패가 확인되었고, 책임 공방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책임 공방으로는 부족하다. 새만금 잼버리 실패의 기원은 적어도 30년 이상 묵은 우리 사회의 곤경으로부터 기인하기 때문이다. 새만금 잼버리는 다른 조건에 의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을 다루기 위해서는 새만금 잼버리를 둘러싼 30년의 경험을 복기해야 한다.

지난 8월 1일부터 12일까지 한국 전라북도 새만금에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World Scout Jamboree)(이하 새만금 잼버리)가 개최되었다. 행사가 시작된 8월 1일부터 잼버리는 전 국민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당초 전라북도에 위치한 새만금에서 행사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기반시설 미비, 폭염, 폭우, 태풍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잼버리 참가자들은 행사 중반 전국으로 흩어져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기업 등이 제공하는 숙소에 머물며 남은 일정을 소화했다. 야영지에서의 철수 이후 참가자들은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여러 의미와 원칙들이 무색한 시간을 보냈고, 정부가 주도하여 행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K-pop 콘서트는 그 무색함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시민들이 나서서 참가자들에게 사과를 할 정도(연합뉴스, 2023년 8월 9일, 「영국 스카우트 “모르는 한국인들 다가와 사과···놀랍도록 친절”」)의 참담한 실패 이후 새만금 잼버리에 대한 여러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 가장 활발한 논의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책임 공방이다. 책임 공방은 부처 간 공방, 정권 간 공방으로 전개되는 모양새다. 우선 행사의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 유치지의 지방자치단체인 전라북도와 부안군, 국가행사로서 책임을 총괄하는 대통령실 등 어느 기관이 이 커다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했는지 다투고 있다. 그리고 세계스카우트잼버리의 새만금 개최가 확정된 2017년 이후 5년간 기반시설 준비를 소홀히 했다는 ‘전(前) 정권’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정권 간 공방의 핵심인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 같은 문제 제기에 직접 반응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같은 책임공방 속에 시간표를 조금 더 늘린 평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여러 반응 속에서 조금 더 역사적인 관점에서의 평가 역시 잘 확인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활발한 반응이라 할 수 있는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가?”하는 책임 공방은 새만금 잼버리가 촉발할 수 있는 논의의 시간표를 단기적인 것으로 축소하고, 평가의 대상 역시 ‘행사’ 그 자체에만 국한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성찰적 평가를 방해한다. “평창올림픽은 성공했고, 새만금 잼버리는 실패했다”1와 같은 평가가 대표적이다. 또는 잼버리의 장소가 ‘새만금’이었다는 것을 주로 문제화하는 반응도 있는데, 고성이나 전북 무주와 같은 대체 장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만금에서 잼버리를 개최해 실패했다는 평가들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준비 주체의 무능함(정부, 지방정부)과 장소 선정의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이런 평가들은 일관적으로 잼버리라는 행사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잼버리와 같은 성격의 국제적이고 국가적인 행사의 ‘성공’이란 무엇일까? 새만금 잼버리의 실패는 어떤 실패이며, 무엇의 실패인가? 새만금 잼버리의 놀라운 경험은 그 실패의 기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찰적 논의를 촉발시킬 수 있다. 이 글에서 나는 질문의 시간표를 1988년으로 되돌려 이 실패의 기원이 1980년대 후반 형성된 것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갼락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와 2023년 새만금 잼버리

국제행사의 성공과 실패는 어떤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다뤄보기 위해서는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개최된 1988년 서울올림픽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다루기 위해 이 글에서 설정한 시간표의 중요한 준거점이다. 서울올림픽은 1980년대 발전국가 한국의 위기와 그 대응과 관련 있는 프로젝트이다.2 1980년대 한국 발전국가는 국내적으로는 산업화가 야기한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사회통합의 기제가 필요했으며, 국외적으로는 국제사회에 국가 주도 산업화의 성공을 전시하고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메가스포츠 이벤트는 이러한 필요에 부합하는 것이었으며, 1964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올림픽이 중요한 참조점이 되었다. 서울올림픽이 수행한 사회정치는 도시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올림픽에 맞춘 일상을 받아들이게 했는데, 이는 국제사회에 전시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배제하는 과정이었고, 도시 중산층의 소비주의적 일상을 조직하는 과정이었다.3

메가스포츠 이벤트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것이라는 이해가 더 이상 공동의 감각이 아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 Fionn Große

그 뒤로도 한국은 여러 차례 메가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한 바 있다. 2002년 월드컵,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등이 대표적이다. 그중 비교적 가까운 메가스포츠 이벤트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 14조원 이상이 쓰인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구축한 인프라의 관리비용에 대한 문제제기와 올림픽 이후 황망해진 지역사회에 대한 언론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연합뉴스, 2021년 10월 1일, 「‘애물단지’ 평창올림픽 경기장, 3년간 135억 적자」). 이미 평창 동계올림픽의 기억은 미래세대에게 부과된 실질적 부담이 되어버렸다. 2014년 인천에서 진행된 아시안게임은 어떤가. 대회 후 매년 100억원 규모의 운영적자가 인천시의 부담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며 메가스포츠 이벤트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것이라는 이해 역시 그 우월적 지위를 잃어가는 추세다. 2018년 캐다나 캘거리시에서는 2026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한 주민투표가 이뤄졌는데, 56%의 주민이 반대의사를 표현했다. 2010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개최된 동계올림픽의 적자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었고, 그 이후 다른 나라에서 개최된 메가스포츠 이벤트 역시 장기적인 재정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BBC 코리아, 2018년 11월 15일, 「캐나다 주민 56% 올림픽 개최 반대」). 이러한 현상들은 메가스포츠 이벤트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것이라는 이해가 더 이상 공동의 감각이 아니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왜 아직도 국가 차원에서는 국제행사 개최가 중요한 주제로 다뤄지고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최근 여러 지방 정부들이 자주 언급하고 있는 MICE 산업(기업회의(Meeting), 인센티브관광(Incentive tour), 국제회의(Convention), 전시사업 및 이벤트(Exhibition&Event))에 대해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도시혁신 정책을 표방했던 박원순 서울시정 역시 꾸준히 MICE 산업이 서울의 미래동력이라 언급한 바 있고, 2018년 시장의 발언에 의해 서울 부동산 시장을 요동치게 했던 ‘여의도-용산 통개발’ 건도 MICE 단지 개발과 연계되어 있다. 경기도도 차세대 먹거리로 MICE 산업을 언급하고 있고, 강원도도 신성장동력으로 MICE 산업을 언급하고 있다. 부산도, 제주도, 인천도 마찬가지로 MICE 산업을 육성하는 것을 도시의 미래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쯤 되면, 한국의 모든 지역이 MICE 산업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모양새라고 볼 수도 있다. 이들 지방자치단체의 청사진대로라면 한국은 MICE 국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MICE 산업에 대한 이 같은 공통적인 태도는 1990년대 이후 지방자치의 부활과 외환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재조정된 정부와 지방정부 간 관계 속에서 재정이 취약한 지방자치단체가 선택한 전략과 관련이 있다.

새만금 잼버리도 이러한 맥락 안에 있다. 전라북도는 새만금 잼버리가 ‘적은 비용을 들여 고효율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이벤트’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4 실제 새만금 잼버리의 유치가 결정된 시점에 한국 사회의 기대는 대부분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것이었다. 전북연구원은 SOC 기반시설 구축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는 6조 4,656억원의 생산과 2조 855억원의 부가가치가 있을 것이라 예측했다. 또한, 잼버리 기간 동안 발생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국가차원에서 1,198억원의 생산, 1,098명의 고용, 406억원의 부가가치가, 전라북도에서는 755억원의 생산, 812명의 고용, 265억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이라 기대했다. 참가자들에 의한 브랜드 제고 효과는 1,595억원으로 내다봤다.5 현재 이러한 기대는 경험적인 차원에서 완벽하게 무용해져버렸다.

잼버리를 올림픽과 같은 메가스포츠 이벤트와 그 성격이 동일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제행사로서 잼버리가 국가를 통해 수행되는 방식에서는 유사한 메커니즘이 작동했을 것이라 예측해볼 수 있다. 위의 논의들은 그러한 메커니즘의 유사성을 일부 증명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 개최된 이전의 잼버리가 1991년의 고성 잼버리였다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1991년 고성 잼버리 이전에 비서구 지역에서 잼버리를 개최한 국가는 1959년 필리핀, 1971년 일본이 유‘이’하다. 1950년대 필리핀의 특수한 맥락을 고려할 때 예외로 하고, 1964년 올림픽, 1971년 잼버리를 개최한 일본과 1988년 올림픽, 1991년 잼버리를 개최한 한국의 경험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1989년 새만금 간척사업 기본계획 수립과 2023년 새만금 잼버리

새만금이 잼버리 개최장소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새만금 개발이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진출처 : insung yoon

그럼 장소가 새만금이 아니었다면, 2023년 한국에서 개최된 잼버리 행사는 성공적일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도 중요하게 다뤄질 법한 것이지만, 이 글에서 좀 더 관심을 갖는 것은 ‘왜 새만금이었을까?’ 하는 질문이다. 1991년 잼버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고 평가되는 고성이나 야영지로서나 인프라로서나 좀 더 적합하다고 여겨진 전라북도 무주 등 대체지가 있었음에도 ‘새만금’이 잼버리 개최장소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새만금 개발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만금 개발의 역사는 30년이 훌쩍 넘은 것이다. 1989년 기본계획이 수립되었고, 1991년 방조제 공사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새만금 개발은 이어지고 있다. 1987년 선거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새만금 개발은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한 정치인은 대부분 새만금을 통한 전북의 발전을 약속했다.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 새만금 개발에 난색을 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새만금 개발을 지지하기 시작했다.6

1987년 이후 정부 성향과 상관없는 모든 정권의 일관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새만금 개발은 현재 시점까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유지되고 있다. 새만금개발은 왜 완결되지도, 중단되지도 못한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을까? 많은 비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 오래된 개발사업인 새만금 개발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유는 새만금 개발의 추진을 둘러싼 개발정치의 양상 때문이다. 새만금 개발은 그것이 가져오는 효과나 경제적 타당성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전북 지역의 정치적 지지를 동원하고자 하는 정치적 이해관계, 그리고 새만금 개발이 야기하는 물리적 공간의 변형과 관련된 경제적 이해에 의해 동력을 얻었다.7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전라북도와 중앙정부 간 개발 구상에서는 차이가 존재했으나, 개발주의 지향이라는 기본입장은 동일하다.8

새만금 개발의 역사적인 경험 속에 2023년의 새만금 잼버리의 유치와 개최가 존재한다. 농업, 관광, 산업단지 개발 등 한국의 개발주의와 관련된 거의 모든 구상들이 종합적으로 경합한 양상을 보이는 새만금의 30년은 그 자체로도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어 보인다. 그런 맥락에서 잼버리와 같은 국제행사의 개최는 새만금 개발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자극하는 것이었고, 특히 신공항 건설과 같은 인프라 건설의 구체적 계기로 삼을 수 있는 것이었다. 현 시점에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새만금 야영지가 농지로 등록된 장소였다는 세부적인 비판 지점, 새만금 잼버리의 유치와 개최, 그리고 실패가 새만금 국제공항 신설에 미칠 영향에 대한 반응, 전라북도의 책임 여부와 전북특별자치도의 출범과 관련된 쟁점은 모두 새만금의 30년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새만금의 30년과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간 이어진 국제행사에 대한 중앙정부, 지방정부의 적극성도 깊은 관련이 있다. 서울올림픽 이후의 사회정치와 새만금의 30년은 모두 1980년대 후반, 국가 주도 산업화의 종료와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 발전국가의 전략이 어떤 변화를 추구했으며,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귀결되었는지 보여주는 연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에 바로 ‘새만금 잼버리’가 있다.

30년 묵은 두 가지 곤경으로부터 기인한 새만금 잼버리

최근 야당의 국회의원이 잼버리 실패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부산에서 개최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엑스포 유치도 ‘물 건너갔다’고 표현해 논란이 된 적 있었다(한겨레신문, 2023년 8월 17일, 「국민의힘, “부산엑스포 물 건너가” 발언 의원 윤리위 제소」). 2023년 새만금 잼버리의 실패를 둘러싼 논쟁이 평창올림픽의 성공을 주장하는 이들이나, 부산 엑스포의 유치를 다시 염원하는 태도로 귀결되는 것은 이상해 보인다. 심지어 평창의 경험과 부산의 미래에 대한 각각의 논의가 그 주장을 제기하는 이들에 의해 마치 경합하는 모양새를 띄고 있지만, 이러한 논의는 모두 국제행사를 통해 국가와 지방이 모두 어떤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공동의 이해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실 일관적인 태도이다. 즉, 물 건너갔다고 말하는 쪽이나, 물 건너갔다고 말하는 것을 탓하는 쪽이나, 모두 새만금 잼버리의 실패를 종합적으로 복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입장이다.

2023년 새만금 잼버리의 실패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이 질문을 역사적인 관점으로 확장시켜 다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새만금 잼버리의 실패를 다루는 여러 논의, 즉 누구의 책임인지를 묻는다거나 장소 선정의 문제를 지적하는 비판은 사실 공통의 전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여전히 새만금 잼버리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하는 전제이다. 새만금 잼버리의 명백한 실패 후에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것은 바로 이 전제를 주제화하는 것이다. 이 전제를 주제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인 이번 실패의 기원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복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새만금 잼버리를 둘러싼 논의의 전제를 주제로 다룰 때, ‘물 건너간’ 것이 무엇인지, 그 물을 건널 것인지 말 것인지, 어떤 물을 건너야 할 것인지와 같은 질문도 함께 주제로 부상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새만금 잼버리의 실패는 적어도 두 가지 곤경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첫째, 더 이상 국제행사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는 곤경이다. 둘째, 30년이 지난 새만금 개발이 완결되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있는 곤경 그 자체이다. 이 두 가지 곤경은 모두 1980년대 후반 형성된 사회현상과 관련 있으며, 서로 연결된 두 가지 곤경이 새만금 잼버리 실패의 기원이라 볼 수 있다.


  1. 이같은 평가는 특히 “전(前) 정권”의 공직자들로부터 이뤄진다. 이낙연(전 국무총리), 임종석(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의겸(전 청와대 대변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 정치인들은 문재인 정부의 평창올림픽 성공과 새만금 잼버리의 실패를 비교하며 현 정권의 무능함을 강조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2. 박해남. 2018. 「서울올림픽과 1980년대의 사회정치」.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3. 위의 글.

  4. 김시백. 2018. 「2023 세계 잼버리 유치 기대효과 및 극대화 방향」. 전북연구원 이슈브리핑 vol 177. 전북연구원.

  5. 위의 글.

  6. 함한희·강경표. 2007. 「어민, 환경운동가, 그리고 정부의 바다인식: 새만금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중심으로」. 《ECO》 11(2), 247~284쪽.

  7. 박순열. 2009. 『불만(不滿)의 새만금』. 한국학술정보(주), 303쪽.

  8. 함한희·강경표. 2007. 「어민, 환경운동가, 그리고 정부의 바다인식: 새만금사업을 둘러싼 갈등을 중심으로」. 《ECO》 11(2), 247~284쪽.

이태영

야마기시즘 실현지(산안마을), YMCA, 체화당과 풀뿌리학교, 녹색당에서 성장하고 배우고 일했습니다. 지금은 제주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소유자나 소비자가 아닌 정체성으로 지역-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이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하는 이가 되고자 합니다. 

댓글 2

  1. 이렇게 우연히 글로 만나게 되니 또 반갑네요. 서울에 다녀가신 행사 소식은 보았는데 먼저 정한 약속이 있어 가보지 못했습니다. 일상 무탈하게 지내시길!

    1. 저도 이렇게 댓글에서 뵙게 되니 더 반가워요, 은희샘! 🙂 잘 지내시죠? 여름이 끝나가네요. 항상 건강하고 무탈하시길 바라요! 제주 오시거든 언제든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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