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⑬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여기 가까이] 시리즈는 단행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의 내용을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바라보는 시대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다.

동물보호잡지를 만들며

동물보호무크 《숨》
출처. 동물보호무크 《숨》 네이버 카페

처음에는 그 어려운 학위논문도 썼는데, 무크지 하나 만드는 게 뭔 대수냐 하는 생각이 있었지요. 동물보호무크 《숨》과의 만남은 그렇게 가볍게 시작되었지요. 일주일 중 하루 재택근무를 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인터뷰, 번역, 연구조사 등의 활동을 통해서 하나하나 컨텐츠를 쌓아두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실에서 하는 작업인지라, 대부분 편집부 내부에서의 소통은 메신저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기획 작업이 끝나갈 때 즈음이었습니다. 갑자기 구제역 사태가 터졌습니다. 동물이 물건이 되고, 동물이 병원체가 되고, 동물이 숫자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폭설이 내려던 날, 편집부 사무실에 찾아가 동물보호잡지의 구제역판을 만들어야 하지 않냐며 담당자와 오랜 시간 회의를 했습니다. 눈이 무던히 많이 내리는데, 차가운 땅에 묻혀야 했던 뭇생명의 고통이 가슴에 애절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동물보호무크 《숨》의 3집 《농장동물들에게 질병을 허하라》 일명 구제역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이 결국 공장식 축산업이라는 괴상한 구조에 자신의 삶을 의존하는 것이고, 결국 구제역 사태와 같이 엄청난 살처분의 상황을 방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금요일 하루 동안은 동물보호잡지와 관련된 연구작업으로 뚝딱뚝딱 공방과도 같은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동물보호운동은 제가 결심한 채식의 유의미성을 규명하는 것이기도 했지요. 저는 페스코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채식을 하면서도 한국사회의 동물의 상황에 대해서 깊게 공감하고 있었던 터라, 아주 쉽게 동물보호운동에 동참하고 지지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냉면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완전한 채식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채식을 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사실 아내가 대부분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 역시도 불가능했겠지요. 아내는 저의 채식을 지켜줄 요량으로, 만난 이후부터 줄곧 고기를 식탁에서 없앴던 것입니다.

이장집과의 만남

2011년 동물보호무크 《숨》의 구제역판을 만들면서, 경기도 파주 인근의 ‘이장집’이라는 곳과 접속하게 되었지요. 저는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고 그곳에 찾아갔습니다. 농장에는 흑돼지들의 축사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흙 목욕을 할 수 있는 얕은 개울이 있었고, 흑돼지들이 꿀꿀거리며 부지런히 널찍한 축사에서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이장님은 풀을 뜯어다가 돼지들에게 주었는데, 돼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흑돼지들은 감정이 풍부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기돼지 한 마리가 재롱을 떨 듯 제 바지에 몸을 비볐습니다. 참 귀여웠죠. 특히 거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교미를 하고, 무리를 지어서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돼지들을 관찰하고 이장님과 풀을 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습니다. 엄마돼지와 아기돼지들이 함께 누워서 서로 교감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이장님과의 만남 이후 구제역은 전국적으로 더 심하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이장집의 흑돼지들을 살처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다급하게 연락이 왔습니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의 활동가들이 현장으로 뛰어갔습니다. 아기돼지며 엄마돼지며 구제역사태의 희생물이 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활동가들의 반대와 야유,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장집의 흑돼지들에 대한 살처분은 기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동영상으로 그 장면을 보면서, 철모르는 아기돼지가 마치 놀이처럼 살처분을 할 트럭에 올라가는 모습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렇게 이장집의 돼지들은 모두 살처분되었습니다. 그리고 활동가들은 이장님과 부둥켜 울었습니다. 동물들을 먼 길을 보내는 심정은 부모가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그해 구제역은 많은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저는 우울과 침묵, 슬픔의 겨울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동물보호무크 《숨》 구제역판 작업이 마무리될 때 즈음에 이장집에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장님의 아드님이 전화를 받았는데, 지방의 흑돼지들을 다시 데려와서 활기 넘치고 장난끼 많은 아기돼지들이 참 많이 태어났으니 보러 오라는 것입니다. 구제역 살처분 트럭에 오르던 아기돼지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죽음의 구덩이에 몰아넣고 숨도 못 쉬게 만들어 살처분하는 것은 끔찍한 홀로코스트와 같습니다. 사진 출처. ArtTower

구제역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수많은 생명들의 죽음을 초래했고, 그 뒤로도 한동안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살처분을 반복했습니다. 공장식 축산업을 유지한 채 청정국가 자격을 획득하려는 경제논리가 작동하면서, 살처분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동물보호무크 《숨》에서는 백신정책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공장식 축산업이라는 기형적인 구조에서 더 이상 구제역 청정지역을 만들 수 없는 조건일 때, 그때 가장 유력한 방법, 생명을 죽이지 않고도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백신정책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공장식 축산업에 기반한 육식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 역시 필요한 상황인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최근 생활협동조합의 동물복지축산 육류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물론 채식이 최선이지만, 그래도 동물복지축산을 찾는 것은 제값 주고, 제대로 알고, 조금씩, 적게 육식을 하게 되는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류독감 문제가 터지면 달걀 품귀현상으로 우리들의 밥상에 영향을 미칩니다. 좁고 습하고 어둡고 바람도 통하지 않고 태양빛도 없는 공장식 양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명들이 가벼운 감기에도 불구하고, 전멸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공장식 축산업으로부터 벗어난 식탁을 차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죽음의 구덩이에 몰아넣고 숨도 못 쉬게 만들어 살처분하는 것은 끔찍한 홀로코스트와 같습니다. 마치 나치가 만들어놓았던 죽음의 수용소처럼 동물들에게는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주지 않고, 경제논리에 따라 살처분을 반복하고 있는 공장식 축산업 시스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시점입니다. 제가 찾아간 이장집 그곳에는 작은 생명들이 있었고, 살아가기 위한 발버둥과 놀이와 재롱, 의지, 활력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아기돼지의 장난을 다시 보고 싶은 오후입니다.

비덩채식의 전말

2007년 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채식이 그렇게 많이 확산되어 있지 않았지만, 간혹 채식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마치 수행자, 외계인, 별종, 특이체질을 가진 사람을 보듯이 하던 때였지요. 어느 순간 저는 가장 낮은 단계의 채식을 하겠다고 결심하였는데 딱히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고, 고기를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채식하는 선배 한 분을 찾아가 만나기도 했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날 일기에 ‘채식 결심’이라고 써두었지요.

며칠 후 아내와의 첫 데이트가 있었는데, 당시 용산역에서 만나 함께 식사와 술 한 잔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아 헤매다가 겨우 들어간 곳이 하필이면 감자탕 집이었습니다. 감자탕에서 감자만 골라먹고 국물도 먹는 시늉을 하면서 아내에게 채식을 하고 있다고 말했지요. 나중에 듣고 보니 아내는 채식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굉장히 까칠하고 계몽적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지 육식에 대해서 공격적이지도 않고 느긋한 제 모습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채식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된 상황이라서 두루뭉술한 태도를 취한 건데, 아내의 눈에는 오랜 시간 채식을 한 사람이 도통해서 품이 아주 넓은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느꼈나 봅니다.

그 후로 저는 줄곧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와 노력에 힘입어 가장 낮은 단계의 채식을 이어가고 있지요. 이름 하여 ‘비덩’, 다시 말해 덩어리 고기는 안 먹고 고깃국물도 되도록 피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먹는 채식을 의미합니다. 비덩채식은 제가 냉면을 좋아하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었던 방식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냉면육수를 좋아하는 것은 육즙을 빨아먹는 것과도 같다고 저에게 얘기했죠. 그래서 저의 비덩채식은 채식이 아니라고까지도 말합니다. 막상 채식을 하면서, 회식 자리 같은 데를 가면 굉장히 소외된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기 이외에는 반찬은 김치뿐인 회식 자리에서 소주에다 김치를 먹기란 참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창들과 만날 기회가 있을 때면 일부러 중앙자리에 앉아 “나 채식하고 있어”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동창들이 “채식이 건강에 좋다더라”, “공장식 축산업의 현실이 참 비참하더라” 얘기하면 저는 속으로 흐뭇해하면서도 조용히 듣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 후로도 동창들은 대부분의 모임이나 회식을 고깃집에서 잡았고, 저는 점점 동창들과의 회식이나 모임을 피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저의 채식을 지켜주기 위해서 10년 넘게 고기 없는 밥상을 차려주었습니다.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아내가 결혼 초 생협에서 친환경축산 인증이 달린 돼지고기를 사서 김치찌개를 끓인 적이 있는데 제가 거의 먹지 않자 그것도 그만두었지요. 그래도 우유, 달걀, 어류를 먹는 채식이다 보니 먹을 것은 꽤 풍족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굴비를 구워서 5마리를 나란히 접시에 놓아두고 밥을 먹으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는 굴비들이 아이들처럼 나란히 누워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으면서 “굴비가 아이처럼 느껴져서 먹기 어려울 것 같아”라고 말했지요. 그러나 아내는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굴비를 다 해체해서 줄게, 이제는 해체된 어류만 먹으면 되잖아!”라고 말하면서 굴비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었지요. 그 이후 저희 밥상에는 제대로 원형이 남아 있는 어류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요.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변한 것은 참 많습니다. 녹색당에 가입했고, 생명권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고, 생태주의 사상을 삶의 지침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저의 작은 변화는 주변에도 영향을 많이 주었습니다. 저는 딱히 ‘채식을 해야 한다’라고 강변하지도 않고 정당성을 강조하거나 내세우지도 않았는데, 이따금 후배나 친구들이 ‘채식을 몇 개월 하다가 그만두었는데, 다시 시작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사실 저한테 얘기해야 할 이유도 없는 상황인데, 나름대로 채식을 시도하면서 제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저는 채식이 의무나 당위나 책임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취향이나 기호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채식이라는 개인적인 실천만으로 공장식 축산업이라는 육식문명을 모두 끝장낼 수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채식은 과정적이고 진행형적인 작은 실천 중 하나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의 채식을 지켜주기 위해서 노력하던 아내가 환경운동가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아내는 스스로를 위해 고기를 사서 요리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먹게 될 때 거부하지 않는 정도의 채식을 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힘들지 않고 지킬 수 있는 선이라면서 말이지요.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그늘

비덩채식을 하면서 더욱 마음에 걸렸던 것이 바로 농산물 역시도 다국적 농업기업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의 농업자립도는 23%, 그중 쌀자급율 20%를 빼면 나머지 농산물은 3%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대부분의 채소와 농산물들은 다국적 농업기업의 손아귀에 놓인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문제는 이 농산물들이 대부분 유전자조작 농산물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망연자실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전자조작 농산물 의무표기제도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유전자조작 농산물인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식탁은 다국적 농업기업에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내와 저는 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하기도 하고, 가까운 농협 하나로마트를 이용하기도 하고, 생산자직거래 등을 통해 음식물을 사곤 합니다. 그러면서 먹거리 안전이 위협당하는 현실에서 생활협동조합은 최후의 보루와도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결사소비, 연대소비, 윤리적 소비라는 거창한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필요와 욕구는 생협매장을 자주 방문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사는 가정들의 경우 생협을 통해서 아이들이 먹을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최근 아내는 알음알음으로 소개를 받아 농산물을 구입하는 생산자직거래 형태의 구매방식에 눈을 떴습니다. 그래서 맛있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자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아내와 제가 대형마트를 찾지 않는 이유는 마트에서 판매하는 농산물 대부분이 다국적 농업기업의 그늘 아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값이 싸더라도 안전하면 괜찮겠지만, 며칠을 상온에 놔둬도 싱싱하기만 한 농산물들과 과일들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마트를 끊은 부분은 대부분 생협매장이나 동네슈퍼에서 충당하고 그마저도 힘들면 최소한의 물품을 생산자직거래 농장을 찾아 해결합니다. 그런 저희 역시도 “무엇을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경우에는 그런 생각이 더 들 수밖에 없겠지요. 제가 아는 지인은 농산물꾸러미 상자를 받아서 그것만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의 방법은 알 수 없는 채소나 요리 방법을 모르는 농산물은 일단 다 쪄서 쌈을 싸먹거나 된장에 찍어 먹는 형태로 자신의 밥상을 디자인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고 있는데도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을 보면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로 꾸러미상자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생명을 먹는다는 것

그저 고기 한 덩어리로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생명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사진 출처. PublicDomainImages

먹는다는 것은 물질, 영양, 에너지, 유전자,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을 교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먹는다는 것은 우리의 몸의 물질이나 성분, 유전자,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음식이 사실은 인간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산된 것이며, 어떤 과정에서 유통되며, 어떤 방식으로 가공되는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그 자체로 개인적인 의미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건강, 인류의 건강, 생명의 건강을 챙기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꼼꼼히 따져보고, 마치 선거에서 한 표를 주는 것과 같이 소비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을 호구고객 다시 말해 ‘호갱’이라고 칭하는 이유도 사실은 소비행위에 대한 섬세한 노력과 실천이 미비하기 때문입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과 공장식 축산업에 기반한 육류 등은 지구환경을 오염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건강도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먹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주부들이 나서고, 농민들이 나서고, 시민들이 나서 먹거리 안전에 대한 이슈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생명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섬세한 관심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한 평의 땅도 허락되지 않는 공장식 축산업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 생명이 아프고, 생명이 생명답게 살지 못하고, 생명이 고기 만드는 기계와도 같이 취급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상황입니다. 이 모든 조건과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소비를 향유나 가십거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미학, 윤리, 결사, 연대 등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예전에 고등학교 때 방학을 맞아 시골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닭 한 마리를 잡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닭을 잡는 것에 대해서 잘 몰랐기 때문에, “그래”라고 말하고 뒤뜰에서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앞마당에서 닭 한 마리를 붙잡아 도살하는데 저는 그렇게 비통하고 힘든 닭의 비명은 처음 들었습니다. 닭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참혹한 소리를 냈습니다. 제가 별생각 없이 닭을 먹겠다고 했던 한 마디의 선택이 하나의 생명에게는 얼마나 가혹하고 절박한 상황을 만드는지를 체감했습니다. 그리고 내내 가슴 한 켠에는 즐겁게 뛰어다니던 닭 한 마리가 그려졌지요.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우리는 생산, 도살, 유통으로부터 멀어져 있어 그저 고기 한 덩어리로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생명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애절한 배려와 연민이 우리의 인류문명과 지구환경을 살릴 수 있는 작은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가장 절실하고 치열하게 고민할 시점입니다. 특히 생명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문명의 전환기와 이행기에 서서 생명이 만들어낼 거대한 혁명, 이른바 떡갈나무 혁명을 응시할 시점입니다. 변화의 시작은 작겠지만, 한 톨의 도토리가 만들 울창한 떡갈나무처럼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으니까요.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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