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허용 구역] ② 계획 밖의 풍경

‘결국 어떻게든 된다.’ 내가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얻은 무수한 경험들은 결코 내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험들이 누군가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선택하고 만들어낸 것이라 더욱 기쁘다.

지난 6월, 무더위가 갑자기 찾아왔다. 덴마크에 가끔 오면서도 이런 더위를 느껴 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위기다 싶었다. 심지어 습하기까지 했다. 에어컨도 없는 이곳에서, 이런 더위를 겪어본 적 없는 친구들은 무척 힘들어했다.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정말 자주 수영을 하러 갔다.

스웨덴 친구 집에 도착한 날, 친구가 동네를 소개해주며 함께 걸었던 순간. 사진 제공 : 가람

내가 지내고 있는 이곳은 덴마크의 남쪽 끝, 독일과 아주 가까운 작은 시골마을 Gram이다.

이곳에 오게 된 과정은 사실 꽤 우연했다.

2025년 6월, 지원했던 덴마크 예술 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평가위원회의 심사 결과, 귀하는 해당 학업 과정의 대기자 명단에 오르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8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까지도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연락이 오지 않아서, 사실상 나의 한국 생활이 멈춰있었다. 새로운 일을 구하기도 애매한 상황. 심지어 덴마크는 몇 번째 대기자인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뭐라도 찾아내야만 했다. 합격했을 경우와, 합격하지 않았을 경우. 나는 각각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계속 고민했다.

합격을 못해도 덴마크에 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정보를 끊임없이 탐색했다. 페이스북에 덴마크 한인 그룹, 카톡 덴마크 생활 정보 공유방, 워홀 카페도 가입해보며 둘러보던 중, 우연히 페이스북 그룹에서 호이스콜레를 홍보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그 글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르가니스트이자 덴마크 Gram Højskole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하고 있는 은영입니다.

제가 Gram Højskole를 소개해 드리고 싶은 이유는 이곳에는 따뜻한 사람들과 좋은 선생님들, 그리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나답게 머물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Gram Højskole는 덴마크 남부의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 Gram에 위치해 있으며, 도예, 그림, 디자인, 뜨개질, 요가, 자연 체험 등 다양한 수업과 함께 덴마크 문화를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또한 Gram Slot과 함께하는 자연 체험과 Crew & Camp 프로그램을 통해 일하며 학비를 마련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도 있습니다.

한때 호이스콜레를 여러 곳 다녀보는 것이 꿈이었던 나에게는 상당히 끌리는 글이었다. 특히 Crew & Camp라는 프로그램 때문에 더 관심이 갔다. 많은 호이스콜레를 봐왔지만 이런 프로그램은 처음 봐서 새로웠고, 물가 비싼 덴마크에서 이런 기회라니. 며칠 뒤 은영님께 메일을 드렸고, 내 상황을 설명해드렸다. 대학교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갈 수 있는 명확한 시기를 말씀을 드릴 순 없으나,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가고 싶다고. 그치만 그때까지도 간절했던 순위는 이랬다.

1. 예술 대학

2. (워홀로 간다면) 일

그리고

3. Gram Højskole

이젠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조금 더 전문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달까.

하지만 8월이 끝나가던 시점, 아쉽게도 나는 대기자 명단에서 끝이 났다. 많이 아쉬웠다. 준비를 많이 했던 만큼 속상하기도 했다. 괜히 심통 난 마음에 입술도 좀 내밀고, ‘국제학생에게 이렇게 늦게 결과를 알려주는 건 정말 너무했다!’ 투덜거리며, 순식간에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해버렸다. 나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걸. 늘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도 삶은 흘러가니까.

12월, 같이 일하던 루이즈가 담아준 나의 모습. 사진 제공 : 가람

그렇게 지금 덴마크에 도착한 지 7개월이 되었다. 이 학교에는 12월에 도착해서 바로 일을 시작했고, 크리스마스와 새해까지 보냈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웃으며 지내고 있지만, 첫 한 달 동안은 차디찬 겨울과 함께, 예상보다 훨씬 차가운 현실을 마주했다. 많이 울었고, 겁도 많이 먹었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여정 속에서 계속해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결국 어떻게든 된다.’

내가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얻은 무수한 경험들은 결코 내 것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험들이 누군가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선택하고 만들어낸 것이라 더욱 기쁘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왜 Gram Højskole가 나에게 오래 남을 학교가 되었는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가람

알록달록 예술가. 가족과 함께하는 웹사이트 ‘무지개샐러드’ 디자이너.
여섯 살 무렵 엄마에게 뜨개질을 배운 뒤로, 지금까지 계속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아홉 살에는 홈스쿨링을 시작했고, 열아홉 살에는 덴마크 호이스콜레(Højskole)로 떠났다.
꽤 파란만장한 인생을 짧게 설명하는 방법은 아직 찾는 중이다.
못난이 감자와 울퉁불퉁한 토마토를 좋아하고, 실수로 일그러진 유리 공예 작품을 아낀다.
실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더 창조적이고 재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 시기의 나만 만들어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그래서 지금의 불완전함을 즐긴다. 그리고 조금 더 매끈해진 나도, 다시 생길 빈틈도 반갑게 맞이하려 한다. “고된 날도 있겠지만, 쓴맛 또한 사는 맛이니까.” — 채현국 선생님의 말을 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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