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사람
아, 밀양! 담대하게 ‘우리가 밀양이다.’ 마음을 꼿꼿 세워보지만 허물어지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그래도 희망이다. 세차게 내세우고 싶지만 좌절과 절망이 현실이다. 새미1를 의지하며 밀양으로 갔었지. 우리를 확인하는 날이잖아. 송전탑 반대 행정대집행 10년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우리들을 만나는 순간이지.
우리가 밀양이다. 6월 8일. 새미가 엄마를 지켜줘서 고마웠어. 엄마의 밀양은 자귀나무 수술꽃 실가닥이란다. 갈래갈래 슬픔과 고통과 혼돈과 상처와 흉터가 곤란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 무섭고 두려워. 용기로 무장한 지혜를 끌어 모아 회피할 수 없는 지금 그대로를 만나고 또 만나서 가볍게 흩뿌리기를 해보아야지. 우리라는 밀양이 가운데가 제대로 오므려진다면 꿈꾸는 희망이 되겠지. 자귀꽃처럼 화사하게 펼쳐질 거야. 화려 화사한 밀양이여!

새미가 다리 끼우는 노랑색 오리 튜브를 동동 탈 만큼 아기였을 때, 우리 가족은 밀양으로 물놀이를 갔단다. 야심차게 마련한 텐트까지 들고 간 물놀이 장소가 밀양이었지. 그때 들린 밀양천 옆 음식점에서 엄마는 처음으로 송전탑 이야기를 들었단다. 마침 가게 주인 아지매2가 부녀회장이었지. 아지매는 “쎈 전기가 지나가는 송전탑이 이 위로 지나간다 아입니꺼. 서울로 데모도 댕겨 오고 했는데 영 우리말을 들을락꼬 하지를 않는기라예. 이라다가 사람 죽겠어예.” 했었지. 지금 생각해보면 여수마을 주변이었던 다리 위 식당 같다.
약속한 부북면 평밭마을을 가기 전, 엄마에게 특별한 동화전마을과 고답마을 방문을 동행해준 새미님, 고맙습니다. 억장이 무너지는 동화전마을이란다. 새미야! 동화전마을 97번 송전탑 기억나니? 중딩이었던 네가 엄마를 빼앗기고 목 놓아 울었던 곳이지. 밀양희망버스 때였을까? 너와 파랑새랑 같이 갔었잖아. 밀양인 우리들은 우애와 연대의 힘으로 산꼭대기에 황토집을 짓고 그곳을 근거지로 송전탑과 핵발전소를 반대 했었지. 그러다 뺏겼고, 그날은 빼앗긴 우리의 땅에서 경찰들을 몰아낼 작정이었어. 경찰들이 줄지어 송전탑을 감싸 섰고, 밀양들이 나란히 서서 밀고 밀렸단다. 그러던 중 전투경찰 청년이 나무 그루터기에 걸려 넘어져 다치는 소란이 있었어. 감정들이 술렁술렁.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지만 다시 휴전선은 꿈틀. 밀고 당기기를 계속 했지. 엄마는 꼭 되찾아야 할 우리의 땅이었기에 힘차게 또 힘차게 밀었단다.
찰나, 쑤욱 경찰선 안으로 엄마가 잡혀서 딸려 들어갔단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표적이었던 것 같아. 당시 밀양에서 구속되는 사람들은 우선 김해 서부경찰서로 갔단다. 거주지가 김해였던 엄마였으니 당연히 할 일이 있었단다. 다친 밀양사람들도 김해에서 입원하게 되면 엄마가 간병을 하기도 했지. 당황. 경찰의 땅 안에서도 밖만큼 아수라장이더구나. 청년 전투경찰은 많이 다쳤더군. 뼈가 보일 정도였지. 엄마 다음으로 2명이 더 딸려 들어왔단다. 오지랖으로 그분들에게 ‘걱정 마세요’ 안심시켰지만 그분들 중 한분은 소수정당 부위원장이었단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어. 그렇게 전선은 다시 잠잠해졌어. 이미 날은 점점 어두워졌고 엄마는 너희들이 걱정이었단다.

청년 경찰들이 엄마 주변에서 큰소리로 “구속시켜야 합니다!”하며 씩씩거렸지. 씁쓸한 풍경이었단다. 왜? 그들과 엄마는 적으로 만나야만 했을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청년들의 감정 동요를 이해하며 털썩 주저앉은 엄마는 우리 처지가 가엾더구나. 엄마는 문자로 밀양송전탑 반대 대책위와 상황을 주고받았지. 협상 중이라더구나. 엄마는 젊은 전경들의 분노가 너무 이해되었단다. 내 친구가 저렇게 다치고 아픈데. 병원으로 당장 달려가지도 못하는 현실이 얼마나 속상하겠니. (왜 의료 헬기를 띄워주지 않았을까.) 분노를 굳히며 노인이 되어 갈까봐 안타까웠지. 동화전마을 외 흩어진 희망버스팀들은 밀양역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동화전 팀들과 문화제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러나, 동화전 마을 97번 98번 송전탑이 있는 산꼭대기의 밤은 점점 짙어지고 우리들의 전선은 한참 고요하기만 했지. 그러다 엄마와 나머지 두 분 그러니까 인질(포로)들이 풀려났단다. 아마도 갈등의 불씨를 더 키우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겠지. 밖으로 나오니 새미는 대성통곡을 하고 있고 (새미다운 대성통곡) 언니는 낮은 콧노래로 마음을 가라앉히며 너를 쓰다듬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파랑새다운 침착함) 아마도 그날 엄마가 구속 되었다면 난리가 났을 거다. 네 울부짖는 울음소리를 들은 밀양들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날 일이 엄마는 두고두고 네게 미안하단다. 미안해. 막내야. 너무 놀랐지. 사랑해.
동화전마을은 언니가 고딩 때 깻잎 농활을 간 마을이기도 하지. 엄마도 부지런히 그곳을 다녔단다. 동화전으로 밀리기 전 바드리마을 산중턱에서 할매3들이 비닐을 덮고 자면서 밤낮으로 지켰었단다. 체인을 포크레인과 연결해서 목에 묶으며 저항했지만 뺏겼지. 다시 뭉친 곳이 동화전마을이었단다. 처음에는 송전탑 근처 산꼭대기에 흙집을 지어서 항거 했지만 또 밀려 내려와 동네에서 움막을 짓고 연대자들과 주민들이 우리를 지켰단다. 엄마는 수요일 가서 1박하고 목요일 돌아오는 1박2일 연대를 하였지. 갈 때는 꼭 동네사람들과 나누어 먹을 10만원어치의 음식으로 장을 봐 갔단다. 물론 그 경비는 지인들에게 요청했어(그 돈 1원도 엄마 경비에 보탠다거나 하는 따위의 일은 없었단다). 왜냐하면 동화전 마을은 송전탑반대 운동으로 마을공동체가 붕괴된 대표적인 동네였단다. 엄마는 한동네 사람들이 수요일마다 잔칫날처럼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다시 화합하기를 소망했고 의도했었지.
그러나, 사람은 참 야속하지. 자본은 참 잔인하지. 끝까지 함께 하겠다던 마을 이장님까지 변심을 하신 거라. 어느 날, 동네 분들이 우르르 마을입구 가게를 하고 있는 이장님 댁으로 몰려가시더군. 따라갔지. 그리고는 “우째, 사람이 이랄 수가 있습니꺼? 짐승도 아니고 사람이?”, “이 뭐꼬? 와 넘의 집에 와가지고 이케샸노? 주거침입죄다!” 옥신각신. 결국, 이장님은 이웃사촌들을 신고 했고 경찰은 잽싸게 출동 하여 우리들을 몰아냈어. 그 광경이 엄마에게 충격이었단다. 이장님은 밀양 다큐에서 이치우 어르신4 묘소에서 잔을 올리며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눈물을 흘리신 분이셨거든. 정의로 가는 길은 우애와 연대다. 정의의 해법은 공동체회복이란 정답이 무너지는 현장이었지. 사람, 너는 무엇이더냐? 마을공동체가 찢어지고 찢어져 가슴이 미어지지만 이제는 누가 잘 했고 누가 못 했고를 묻어 버리고 생명 대 생명으로 서로의 흉터를 어루만지며 토닥만 했으면 좋겠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상동면 고정리 고답마을이다. 도착하자마자 765송전탑 아래에서 새미가 풀줄기를 빙빙 돌리며 송전 신호를 교란시켰지. 고답마을은 765kv 115번 송전탑을 중심으로 765kv들이 마을을 옥죄며 빙빙 둘러싼 곳이지. 그곳은 엄마가 10년 전 행정 대집행 날 뜯겨 들려 나온 곳이기도 하지. 그때나 지금이나 자두는 알을 키우고 감들이 데구르르 굴러 오디 열매 어깨를 툭툭 치고 있더구나. 송전탑만 없다면 얼마나 평화로운 마을인지. 감탄이 한탄이 되는 동네란다. 그날, 민중의 지팡이인 대한민국 경찰 2000명이 번쩍이는 옷을 입고 칼날을 숨기고 들어 와서는 우리를 습격하고 날카롭게 움막을 난도질냈단다. 지옥 같은 그 전날 밤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단다. 움막으로 올라오는 길들을 경찰들이 막아섰기 때문에 야산을 둘러서 밀양들이 차곡차곡 모였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경찰부대는 가장 강한 성지였던 평밭을 첫 침탈지로 선택했단다. 대한민국 경찰들이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무차별 짓밟았단다. 아우성으로 평밭 127번 129번 765Kv송전탑 예정 움막 유린하고 곧 상동으로 왔단다. 고정리 고답마을 움막은 땅밑으로 흙을 더 파내어 기름통들을 넣어 두었지. 여차하면 불을 싸지르며 저항하겠다란 결기의 상징이었어. 그 위로 판을 깔고 우리들은 생활했었단다. 적들의 진격 소식을 듣고 우리도 대열을 정리했지. 우선 움막 안 구덩이로는 마을 주민분들이 쇠사슬로 몸을 서로 꽉꽉 묶고 앉으셨단다.
움막 안으로는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주민들을 보호하며 미사를 드렸어. 움막 밖으로는 연대자들이 감싸며 섰지. 엄마처럼 자주 드나드는 사람은 제일 바깥 선에서 경찰들을 만나기로 했어. 드디어 대단한 대한민국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경찰들이 우리를 공격했단다. 잠깐. 정말 눈 깜짝 사이 그들은 우리들은 뜯어내어 달랑 들어서 바깥으로 가만히 내버렸어. 경찰들은 야비하게 지프 칼로 움막을 사정없이 난도질해서 부수고 철거했지. 주민들의 쇠사슬을 뺀치로 끊고 가혹하게 끌어냈단다. 그 과정에서 주민 분을 감싸 안고 있었던 수녀님의 손가락을 꺾어 버린 거야. 수녀님은 비명도 지르시지 않았고, 조용히 동그마니 앉으셨어. 아, 눈물이 난다. 수녀님이 보호하던 할매가 들려 나오시자 주변으로 계시던 수녀님들이 꽃잎처럼 다친 수녀님을 포개고 다시 포개며 감싸시더구나. 느린 화면이 되어 한겹 한겹 겹쳐지는 꽃잎들이 얼마나 처량하고 아름다운지. 아름다운 슬픔이었어. 그렇게 우리는 억울하고 원통했었단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단다.

유난히 할매 전사들이 많았던 평밭으로 갔지. 비를 가르며 전국 곳곳에서 오신 밀양 분들은 꿋꿋한 위로였단다. 평밭 주민 분들로부터 10년 전 밀양의 치열했던 현장을 전해 들었지. 이후, 마지막 집결지인 영남루 맞은편 밀양천 둔치로 갔잖니. 유한숙 어르신5 분향소가 있었던 곳이었어. 새미랑 파랑새도 그곳에서 잠을 자기도 했고 연대를 종종 했으니까 기억 날 거야. 떼로 만난 밀양들은 위안으로 감동이었단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서글픔인지 즐거움인지? 하늘의 마음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지. 찰나마다 오만 가지 생각이 솟더구나. 그래,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 슬픔으로 또 기쁨으로. 엄마는 애를 끓이며 생각했단다. 동시에 어렴풋 갖가지 사연들로 그 자리에 오지 않는 이름들 또는 올 수 없었던 스쳐 지나가는 얼굴들이 있었지. 얼기설기 사람살이는 서로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단다. 잘잘못을 시험지 답안 같이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와 빗금으로 분명하게 표시할 수는 없지 않겠니? —당시는 더 그렇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어렴풋 진실과 더 좋은 것이 저절로 천천히 드러난단다.— 그때 그 사람들도 당연히 우리로서 다정한 밀양이었단다. (엄마도 파랑새가 고통 받았던 부당한 교권에 대해 대한민국 교육계를 뒤흔들고 싶었을 때, 송곳 같이 주장하며 주변을 불편하게 했잖니? 그 주변 분들을 밀양에서 뵈오니 미안하고 그렇더라. 그러나,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엄마로서 미친 모정이었단다.)
각자의 방법으로 뜨겁게 사랑했던 우리들이었지. 그 자리에 없는 우리들.
상처 입은 당신님들.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으며 시간의 강에 녹아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더구나. 엄마는 그 밀양사람들 생각에 눈물이 더 솟더구나.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 밀양 사람들은 강물이 되어 밀양천을 따라 함께 바다로 향한단다.
사람은 무엇입니까? 또 삶이란 뭐란 말입니까? 파랑새를 넘어뜨린 가해자를 엄마가 용서할 필요가 있겠니? 그래도 가해자도 사람이라, 엄마는 죽어가는 생명 하더라도 그는 살아가는 생명 해야겠지. 사람들로 파랑새가 겪는 촘촘한 고통들이 싸늘하지. 언니 몸을 연구용으로 달라는 제안을 거절하자 부당하게 행동했던 사람 의사. 파랑새를 물건처럼 내던지는 CT 촬영실 사람. 의료 과실을 당당하게 ‘실수할 수 있죠’ 오히려 큰소리치는 의사 사람이 있었지. 반대로 눈물 흘리는 호소를 인내롭게 들어주었던 한의사 선생님. 출근 하자마자 파랑새 근황부터 살피는 간호사님. 소리 없이 눈물을 같이 흘렸던 재활치료사님도 있었지. 사람이 고통이었고 사람이 치유였단다. 언니 사고 당일, 언니의 안부보다는 병원 진단서부터 먼저 요구한 행정 우선주의 학교 사람. 비교과 교사, 초임교사에게 부당함을 주었던 학교 사람. 정의롭지 못한 학교를 사회에 고발하고자 할 때 명예훼손으로 우리 가족을 고소하겠다 협박했던 개떡 같은 학교 사람. 그들 역시 사람들이더구나. ‘괴물, 괴물. 이 괴물들아!’ 엄마의 외침은 잠깐의 울림일 뿐 사람들이 파랑새를 잡아먹고 있더구나. 한국사회가 언니를, 내 아이를 폭력 했잖니?
새미야, 죽은 이할매6는 엄마가 반항기 충만한 중딩이었을 때 “평선7아! 세상이 그래 시커멓치만은 아인기라. 못된 사람들은 표가 잘 나니까 니가 나쁜 사람들만 있는 거 같제. 좋은 사람들이 휠씬 더 많다 아이가. 좋은 사람들은 표가 잘 안 나서 니가 잘 모리는 기라. 세상은 살만하데이” 했단다. 청년이 된 스무 살 엄마는 한국 사회가 더러워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단다. 좀 더 선명한 세상을 기대했거든. 그때, 김진숙8 선생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지. 가슴에 뜨거움이 불끈 했었단다. 선생님의 철철 넘치는 인간애에 매료 되었어. 그래서 엄마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결심했단다. 만약, 김진숙 선생님이 누구나처럼 변하는 모습을 중간 중간 보였다면 엄마에게 사회적 자아를 실천할 이유는 진즉 사라졌을 거란다. 선생님의 변함없는 그 모습 그대로의 인생이 엄마에게는 등대였지. 엄마는 나침반으로서 그분을 흠모하며 엄마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었어. 박경석9 선생님도 계시잖아. 박경석 선생님은 엄마에겐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 같은 느낌이란다. 선생님은 도망가고 싶지 않겠니? 현실을 회피하고 싶지 않겠어? 꾸준히 제 자리를 지키며 모진 비바람번개를 견디시는 바위 같은 분이시지. 박경석 선생님은 사람다운 사람을 기다리는 망부석이란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시며 잘게 부서지고 계시는 일상이시지. 사람 대 사람의 일로써 말이야.
파랑새가 쓰러진 마지막 순간, 엄마랑 통화를 하고 있었지. 어느 때처럼 퇴근하며 엄마에게 쫑알쫑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었단다. “엄마, 누구가 나랑 눈 맞추려고 꽃게 걸음으로 내 앞을 지나갔거든. 그래서 내가 안녕하고 인사 해줬어. 너무 귀엽지.” 그 아이는 말이 없는 2학년 학생이었어.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을 (파랑새는 초등학교 사서 선생님이었다.) 찾아오는 마음이 외로운 아이였거든. 그 아이가 도서관 시트지를 살짝 뜯어서 파랑새를 훔쳐보는 걸 언니가 그날 보았대. 그래서 “엄마. 너무 귀엽고 행복해.” 라고 이야기 했었단다. 그러나, 곧 ‘엇!’ 짧은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겼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파랑새와 아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있구나. 파랑새가 어떤 잘못을 했니? 흠도 없이 아름다운 파랑새는 왜? 죽음을 가깝게 만나야 하는 거니? 무지 서럽다. 그쟈. 도대체 사람은 무엇입니까? 또 삶이란 뭐란 말입니까? 파랑새를 죽어라 해야 할지. 파랑새를 살아라 해야 할지. 사람 생명으로서 나무로 심겨지며 뻣뻣해지는 파랑새를 쓸어안으며 엄마생명은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시름시름 시들며 안간힘으로 사랑을 붙잡고 있지만 흐물흐물한 엄마가 되었구나. 새미야. 미안하다. 당차게 빠당빠당한 엄마라면 새미가 얼마나 안심이 되겠니? 물기를 잃어가는 엄마라서 새미야. 정말 미안해. 사랑해.
따뜻한 사람
사람? 사람들을 자주 만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 듣고 기록하지. 타인의 삶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 해. 그런 일을 하다보면 자주 무기력 해져. 내가 상대방 삶 속 찰나에서 발견한 의미와 가치는 절대적으로 단편적이거든. 세상이 흑과 백이 아니 듯, 사람 또한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닐 테야.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어. 아주 따뜻한 글을 쓰는 작가를 만났어. 그의 따뜻한 글을 토대로 이야기 나눴고 기록했지. 알고 보니, 그 작가는 직장 내에서 후배를 가혹하게 괴롭혔던 사람이더라. 분명 사실을 썼어. 하지만 단편적인 사실은 전부가 아니지. 그러면 그 일부의 사실은 거짓이 돼. 사건에 대한 진실을 쫓는 것보다, 사람에 대한 진실을 쫓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 사람은 자신마저도 속일 수 있는 존재이니까.
그래도 거짓된 사람이 싫어. 언니 사고 이후, 어떤 이가 SNS에 안타깝다며 연명서를 공유했어. 며칠 뒤, 자기 사업을 기쁘게 홍보하는 게시물을 올렸지. 이 사람의 양면성을 익히 들었어. 송전탑 반대 현장에 잠깐 가서, 사진 올리곤 바로 밀양 여행지로 놀러가자는 사람. 정치를 비판하지만, 정치인에게 팔짱 끼며 알랑방귀 뀌며 지원금 따내는 사람. 언니의 사고를 이용해서 깨어있는 척 하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어. 언니 사고 게시물을 내려달라고 요청하자, 거절하더라. 이성을 잃은 나는 저주를 퍼부었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언니와 똑같은 일이 생겨라고. 그때, 이 상황을 똑같이 당해라고. 이 고통을 똑같이 음미해라고. 맞아. 거짓된 사람이 싫다는 나 또한 역겨운 말을 기어코 내뱉은 양면적인 사람이지.

그래도 진실된 사람이 좋아. 엄마는 권정생 선생님을 좋아하잖아. 글과 삶이 일치하는 진실된 사람이라 좋아하지. 당신은 어린 언니와 나를 데리고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 갔었어. 오두막집 문 사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던 그였어. ‘진솔빈’. 진솔과 솔빈. 끝말잇기처럼 이어지는 우리 자매 이름. 그 이름들이 삐뚤하게 낙서돼 있는 그의 동화책 『황소 아저씨』와 『강아지똥』을 선생님께 내밀었어. 권정생 선생님은 ‘백진솔 아해10에게’, ‘백솔빈 아해에게’라고 적어 주셨지. 어렴풋이 남아 있는 그는 여전히 따뜻해. 아, 엄마가 말하는 진실됨이란 따뜻함이구나.
엄마는 김진숙 선생님을 좋아하잖아. 행동과 삶이 일치하는 진실된 사람이라 좋아하잖아. 김진숙 선생님은 언니 사고 소식을 건너 들었지. 그는 우리가 중환자실 앞을 애타게 서성일 때 찾아줬어. 선생님은 언니를 자연스럽게 ‘열사’라고 표현하셨지. 언니에게 쓴 편지와 금일봉을 건네 주셨어. 언니에게 그 편지를 읽어줬어. 나중에 만나자는 끝말을 여러 번 곱씹으며. 선명히 남아 있는 그는 여전히 따뜻해. 엄마가 말하는 진실됨이란 따뜻함인 게 확실해.
사람. 거짓된 사람이 나를 죽였고, 진실된 사람이 나를 살렸지. 오직 진실해서 따뜻한 사람만이 상처로 차갑게 굳은 이 냉소적인 마음을 녹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