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마주보기] ⑪ 당신 따라 나도 이 세상 찬란하게 사랑하려네

새미(솔빈)는 숲정이의 딸이다. 숲정이는 새미의 엄마이다. 엄마는 딸이 살아가는 세상을 자연답게 가꾸기 위해 시민운동을 하였다. 정성스럽게 ‘선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좌절과 허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의지를 잃은 엄마가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들을 딸에게 이야기한다. 숲정이와 새미의 딸이자 언니인 백진솔(파랑새)은 지난해 6월 19일 부산 백산초 스쿨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지를 잃어버린 숲정이와 새미는 지친 서로를 바라본다.

치자꽃처럼

행복이 샘솟는 엄마의 새미1야! 어쩌다 어른, 근래 우리 새미가 부쩍 어른이 된 눈빛이라 엄마는 마음이 짭짭하다. 너를 덮친 고통이 너를 빠르게 성장시킨 것 같아 어미는 속상하구나. 6살 아이였던 너는 치맛자락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고집하고, 달랑거리는 귀걸이를 포기하지 않는 깔롱쟁이2였지. 어느 해, 언니인 파랑새3가 무척 아팠을 때, 너는 친척집을 돌며 지내야 했지. 추석날, 아빠를 만나 할머니집 사랑방에서 서로 끌어안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다란 전설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아린 기억이란다. 퇴원을 하고 파랑새가 집으로 돌아온 후, 새미는 막내를 졸업해 버리고 언니를 지키는 의젓한 동생이 되었지. 작년 스쿨존 교통사고로 파랑새가 그 해처럼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 힘겹게 회복한 너의 막내 자리를 박탈당하고 다시 울타리가 되어 이제는 엄마, 아빠까지 보살피고 있구나. 휘청거리는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 새미야, 가엾은 나의 아이야! 고맙고 미안하구나.

3년차 초임교사, 극소수 비교과, 사서교사였던 파랑새의 고달픈 교직생활을 기록한 파랑새의 수첩들을 보며 엄마는 엄마의 일생이 무너지더구나. 파랑새의 엄마가 내가 아니었다면 언니의 사회생활이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적당히 타협하고 고분고분 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면 파랑새가 더 쉽지 않았을까. 조용한 언니가 끝내 저항한 흔적들과 과정의 힘겨움들이 엄마를 미치게 하는구나. 교권은 올바로 존중받아야 정의로움이지. 외부 압력으로부터도 독립된 교권이라야 바른 교육의 시작이겠지. 인간의 존엄성이 뿌리인 민주사회에서 교권 내에서 비교과 초임교사의 인권과 노동권은 당연한 사람의 도리이며, 사회의 정의가 아니겠니? 괴로웠던 파랑새의 3년이 어미로서 찢어지는 가슴이다. 언니를 눕혀 놓고 엄마의 헐벗은 마음은 이리저리 날뛰었단다. 엄마는 진실로 이상한 이상주의자이더구나. 엄마는 온 삶이 다름에 힘차게 당당하였단다. 정성스럽게 열정적으로 엄마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천하였지. 그러나, 파랑새의 고통이 꼭 엄마가 더 큰 원인이었다란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단다. 새미가 엄마를 열심히 응원해주고 격려해주어 간신히 회복은 되어가는 중이지만, 아직도 파랑새의 엄마로서 확신은 서지 않는구나. 그래서 엄마는 지난날 엄마의 기록들을 들춰 보며 엄마 자신을 사유해 보았단다.

20191116일 영화 삽질을 보고.

《삽질, Rivercide: The Secret Six》 (김병기 감독, 2019) 포스터

살아가는 맛! 사람의 맛은 무엇인가. 《삽질》을 보며 마음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노련한 마흔이 되어질 때, 무엇을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 결과 ‘보다 사회적 자아로 살아보자’ 결심했다. ‘보다 사회적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그 당시의 사회적 관심이 4대강 국가사업이었다. 지금은 창녕 함안보에 갇힌 낙동강길을 엄청 사랑했었다. 그 모래톱을, 그 여울을, 그 버드나무들을, 그 흐르는 강을 사랑했다. 국회에서 4대강 예산안이 통과되면 희망이 사라질 것 같아 ‘나로서, 나의 자리에서, 나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당연히 세상은 그 방향으로 굴러가리라 확신이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 4대강 반대 시민홍보를 김해에서 했다. 자료를 모으고 판넬을 만들어 사람들이 붐비는 주말에 세상을 만났다. 문화제도 했다. 부지런히 매우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래서 태어난 모임이 4대강을 반대하는 김해시민 ‘각시붕어’이다. ‘각시붕어’가 우리 동네 이웃사촌들의 환경 소모임 ‘숲정이’가 되었고 숲정이는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이 되었다. 그 당시, 온 정성으로 열정적으로 나는 더 단단하게 뭉쳐졌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흩어져 있었다. 말은 시끄럽게 있었기 때문에 미지근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주로 나의 어린 딸들과 내 편도 아닌 ‘남의 편’인 남편이 나의 무모한 매일을 이해하며 도와주었다. 하지만 공사는 진행되었고 물은 갇혔다. 물은 썩었다. 죽었다. 죽였다. ‘삽질’ 영화를 보면서 강만 나오면 눈물이 났다. 사람만 나오면 사랑은 무엇인가? 생각이 떠오르고 또 떠올랐다. 사랑해 본 사람은 사랑을 안다. 나는 세포적으로 자연을 사랑한다. 그 사랑에 당신이 얼마나 책임집니까? 묻는다면 나는 할 말이 조금 있고, 대체로 할 말이 없다. 나는 단순하고, 당연하게 흐르는 강과 강의 동무들을 사랑한다. 사람들은 흐르는 강이 사랑스럽지 않는 모양이더라, 더런 놈의 전문가 교수 직업인들, 더런 놈의 언론 돈빨이들. 추악한, 너무나 추악한 정치 살인마들. 날렵한 칼날로 그들의 목 가운데를 가늘게 그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고통받는 생명을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온몸 구석구석 피가 살짝 맺힐 정도의 상처를 주고 싶다. 흐르는 강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꼴을 보고 싶었다. 그들이 죽였다. 그들이 파괴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피나게 아프게 했다. 영화 ‘삽질’에서 그래도 ‘사람의 맛’은 ‘사랑하는 맛’이고 ‘살아가는 맛’은 ‘사랑하는 그 자리에 머무는 맛’이라는 것을 보았다.

맞아. 엄마는 불혹을 고민하며 사회적 자아를 확장시킬 결심을 하였고 4대강 반대운동을 첫걸음 삼았었지. 엄마도 청춘 시절 새미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심란하게 고심했단다. 기대에 찼던 거리의 청년 운동에서 폭력적인 주장, 책임 없는 행동을 목격했단다. 현대 대기업의 부당한 노동현장이 당시, 큰 사회적 갈등이었지. 성난 청년들이 현대차 영업점을 물리적으로 타격하고 시위로 꽉 막힌 도로에 빵빵거리는 시민의 차에 올라 쾅쾅 뛰며 위협하는 것을 보았단다. 엄마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 십대부터 교육현장의 부당함에 남달리 예민했던 엄마가 이십대가 되자 저절로 길거리로 나서게 되면서 색다른 사회적 기대치가 있었거든. 여간 실망스럽지 않았단다. 물론 선배 손에 이끌려 골목길로 숨어들어 보기도 하고, 백골단 방망이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는 학우를 부축해 응급실을 찾기도 했었지. 분노도 치솟았지만 해결해 나가는 방법은 공감을 못했지.

방황했단다. 그래서 분주하게 고민하다가 야학인이 되었지. 그러나, 엄마는 야학에서도 주류는 아니었던 것 같아. 성실하게 생활하고자 노력은 하였지만 노동야학, 생활야학, 검정야학을 분류하며 밤낮 토론하는 강학4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 강학이라고 해서 학강5에게 노동자 당사자도 아닌데 노동을 가르치는 것이 옳은가, 20대 대학생일 뿐인 강학의 사유 깊이나 실천이 10대부터 70대 학강보다 우월하다 자신할 수 있겠니? 지식을 조금 더 안다고 생활야학을 표방하며 제대로 철학하고 행동할 수 없다고 판단했단다. 검정야학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지. 물론 엄마는 어떤 야학의 분야에도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은 참여했던 것 같다. 엄마의 청춘시절은 공부방이나 도서원, 야학의 끝물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야학의 강학으로서 가르치며 배우는 사람을 조금 성실하게 했단다. 그 경험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 나름 가치관이 확립된 듯하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을 지키는 사람이 되겠다. 아름다운 사람이 계속 아름다울 수 있도록 아름다움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자.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 못되더라도 아름다운 사람을 보살피는 사람 하자’ 결심했지. 그 출발은 좋은 개인이었고 좋은 가족이었고 좋은 이웃이었단다. 엄마는 결심대로 나아갔지. 실수하고 잘못하면서 대단하지 않더라도 작은 나의 자리에 충실했지. 엄마는 그렇게 불혹, 마흔을 만났단다.

나이 서른에 엄마는 ‘환경’이라는 주관심사가 결정되었고 장애인 인권이나 교육은 ‘덤‘의 분야였지.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단다. 엄마는 생태, 기후를 포함해서 다양하게 공부했단다. 동시에 ‘풀꽃 친구’, ‘강 따라 산 따라’란 생태모임을 이끌었지. 사회적 자아의 확대로 ‘각시붕어’를 만들었지. 4대강 사업은 생명을 학대하고, 학살하는 잔인한 인간의 욕망이란다. 엄마는 국회는 국회의 역할을 하고, 서울 사람은 서울 사람 역할을 하고, 김해 사람은 지역의 역할을 해서 전체를 메워 나가면 간단명료하다 판단했어. 올바른 역사의 흐름에서 시민에게 주어진 ‘사회적 점’으로서 당연한 역할이었지. 역할의 높낮이는 있을 수 없고 동등하며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내면 정의는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단다. 엄마는 엄마 동네, 김해에서 국회에서 4대강 예산이 통과되기 전, 사람들과 단체들을 찾아다니며 같이 우리의 역할을 하자. 설득하고 설득하였단다. 분명 반대의 목소리는 시끄러웠지만 동참이 어렵더구나. 파랑새와 새미, 그리고 아빠랑 엄마가 4대강의 폭력을 길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알려 나갈 때. 꼭 한 모임이 시민홍보전을 도와주었지. 그 외 대단한 단체들과 이름난 사람들은 엄마의 현장에 오지 않았단다. 엄마가 거북공원에서 부드럽고 흥겹게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음악이 있는 문화제를 개최했단다. 그때서야 몇몇 단체들이 왕림해주셨지. 그때 특히 기억에 남는 단체가 노랑 옷을 맞춰 입고 오신, 봉하마을 아저씨를 좋아하는 분들이었단다. ‘명박을 쥐박’이라며 벌떼같이 거품 물고 아우성이었지만 손발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단다. 엄마는 여당과 야당의 고함만 치는 대립들이 짜증났고, 행동이 모자란 그 주변 사람들은 한심하다 생각했단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했지. 정성을 짜냈지만 흐르는 강은 댐 안으로 고여있는 물이 되었단다.

창녕 함안보 풍경. 좌. 2015년, 중. 2016년, 우. 2024년. 사진제공 : 숲정이

녹조라떼로 강물이 고통당할 때, 야릇하고 씁쓸한 일이 있더구나. 창녕 함안보 크레인 농성장을 열심히 지켰던 어느 분이 지금은 관공서 환경 관련 일을 하신다고 하더구나. 엄마는 시민운동을 하시다가 정치인이 되거나, 민간협력단체에서 지위를 갖는 변신이 탐탁지 않단다. 어떤 자리에서도 일관된 주장과 행보가 있다면 효율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니 좋은 일이지. 하지만 대체로 자리에 매몰되어 직업인이 되어버리는 안타까움이 있더구나. 더러운 것은 시민단체 활동을 훈장같이 신분 변신의 수단으로 삼는 거지. 잡것이랄까. 그래서 사회는 늘 요모양 요꼴이고 생명의 고통은 거대하게 커져만 가는 슬픔덩어리 같다.

각시붕어나 납자루는 조개에 알을 낳지. 조개가 없으면 치어6를 기를 수가 없단다. 서로 기대어 생명은 상생한단다. 자연은 어떤 개입 없이 조화롭지. 강의 바닥을 긁어내고 굴곡을 단순화시키며, 강 깊이를 두는 행태는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강의 생명들에게는 방어할 수 없는 폭력이란다. 저항도 허용되지 않지. 대한민국이 설 명절이라 들떠 있을 때, 너와 나, 우울을 숨기며 창녕 함안보를 찾았지. 여전히 ‘보’라고 하지만 ‘댐’에 갇힌 강물은 숨 막힐 녹조가 두렵고, 생명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더구나. 엄마는 낙동강변 등대중학교를 다녔단다. 물론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 엄마는 가장 먼 곳에서 통학하는 학생이었단다. 시골 버스를 갈아타며 다녀야 했으니까. 엄마는 종종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걸어 다녔지. 토요일이면 친구들과 낙동강변 모래 위로 깔깔거리며 느직느직 다녔단다. 땅콩밭을 지나 모래길을 끝으로 윤슬이 반짝였단다. 강여울은 고요했고 버드나무 숲과 어울린 억새와 갈대는 진실로 아름다웠단다. 동창회 때 만났던 고향을 지키는 엄마의 친구은 창녕 함안보 옆으로 딸기 농사를 짓는다고 하더구나. 창녕 함안보가 건설되면 합천댐처럼 관광지가 되어 더 잘 살게 될 거라고 기대가 크더구나. -합천보 주변 농부들은 잘 살까?- 농부의 희망대로 창녕 함안보는 건설되었고 이후 주변으로 안개가 발생하여 주변 농사를 망친다란 보도가 있었단다. 물론 관광지는 되지 못했지. 엄마는 엄마를 맹공격하던 친구의 힘찬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단다. 새미야. 엄마는 이번 창녕 함안보 방문에서 뜬금없이 희망을 보았단다. 건설 직후 몇 년은 낙동강이 아니라 낙동 바다였거든.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강 주변에 둔덕이 형성되고 버드나무 등 수생식물들이 터를 잡아가고 있더구나. 자연이 스스로 살리고 있는 모습이었지. 제발 인간동물이 자연을 이길 수 있고 대상화 할 수 있다는 오만을 버렸으면 좋겠다. 새미 같은 청년들의 힘으로 앞으로 그렇게 되어질 것 같은 꿈이 얼핏 보이더구나. 왜? 너희들의 뒷배는 우주 최강 자연이 버티며 포옹하고 있으니까. 인간도 자연의 질서 안에서 생명 대 생명일 뿐, 자연은 세상 제일 힘이 세단다.

201554일 기록. 어린이날 이브 함안보에서.

가만 눈을 감으면, 아까시 향이 난다. 가만 눈을 감으면, 노을과 눈 맞추는 모래알이 반짝인다. 가만 눈을 감으면, 길게 누운 모래톱은 뾰족한 초록들을 잔뜩 품고 키득거린다. 10년 전 이곳에서. 10년 후 이곳에는, 가만 눈을 뜨면, 반짝이는 모래알도, 품을 초록 뾰쪽이도, 키득거리는 모래톱도 없다. 10년 후나 10년 전이나, 이곳에서 가만 눈을 뜨면 아까시 향은 똑같이 난다.

곧 선거라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하자며 매번 스스로 위안했지만 엄마는 이번에 사람에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스쿨존, 꺼진 신호등 횡단보도 가운데에서 대한민국이 파랑새를 쓰러 넘어뜨렸지. 신호등을 켜지 않고, 그들은 떼어 가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란 듯이 권력 획득을 위해 얄팍한 미소를 짓고 있잖니. 엄마는 누구를 신뢰하고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201463일 기록.

치자꽃이 피었습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데요. 꽃봉오리 보고 싶습니다. 꽃피고 싶습니다. 희망 갖고 싶습니다. 어김없이 녹조로 응답하는 4대강 개떡사업. 누구도 절박함을 제대로 공감해주지 않아도 그래, 내는 힘 쎄. 하였습니다. 대통령이 죽었습니다. 지지한다기보다는 노력했던 그분의 죽음이, 죽을 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가 깊이 슬퍼서 몇 밤을 짐승처럼 울었습니다. 그래도 내는 힘 쎄지. 하며 다시 제자리에서 걸었습니다. 현 정부가 결정되었습니다. 좌절에 내리는 폭설로 버스도 포기한 지리산 길을 걸어 산품에서 오롯이 한밤을 뜬눈으로 지새고 나서야 그래, 난 힘 쎄. 기다리지 뭐 했습니다. 세월호 아이들이 죽었습니다. 이건 아니잖아. 도대체 이건 뭐야! 악. 이 정도로. 이따위로. 놀라운 사실들이 확인되고 의심되고, 훈련받은 똥개들의 짖음이 연속되고. 뭐야? 생명도 사랑도 희망도 원래 똥, 쓰레기인가? 좌절은 땅끝으로 기어들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끝이 없고 씨벌. ‘그래. 낸 힘 쎄다. 그래 간다. 해 봅니다.’ 6월 10일이 다가옵니다. 피로 개헌했다데요. 우리는 그 시절보다 훨 많은 순수 피눈물을 이미 흘렸습니다. 동등한 절반의 희망을 품고 싶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행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치자꽃처럼 내도 시절 따라 피어나고 싶습니다.

엄마 따라 연못 위로 동동

조금이라도 행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치자꽃처럼 나도 시절 따라 피어나고 싶습니다. 사진출처 : Karolina Krol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네게 이끌려 4대강 반대 시민홍보에 나섰지. 아빠는 선전물이 날아가지 않도록 삼각대 끝에 큰 돌멩이를 두며 정성스레 판넬을 세웠어. 당신은 우리를 진두지휘 했고, 언니랑 나는 쭈뼛쭈뼛 네 옆에 섰어. 엄마가 큰소리로 “4대강 반대 서명 부탁드립니다!” 외치면 우리 자매는 화들짝 놀라며 잠깐 부끄러워했어. 그렇지만 우리는 아주 작은 소리로 엄마와 똑같은 말을 따라 내뱉었지. 너는 갈수록 더 크게 외쳤어. 우리도 아까보다 더 힘 있는 목소리로, 크게 더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지.

엄마는 옛날부터 이 노랫말로 우리를 재워줬잖아. “둥둥 엄마 오리 연못 위에 둥둥. 동동 아기 오리 엄마 따라 동동. 풍덩 엄마 오리 연못 위에 풍덩. 퐁당 아기 오리 연못 위에 퐁당.” 엄마가 둥둥 하면 우리는 동동. 엄마가 풍덩 하면 우리는 퐁당. 엄마를 따라 했어. 엄마를 따라 소리쳤지.

자신감이 생긴 나는 지나가던 할아버지를 붙잡고 당차게 말했어. “4대강 반대 서명 부탁드립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곤 나를 혼내더라. 네가 뭘 아느냐고. 강물이 넘쳐 죽은 사람이 몇인데 공사하고 댐 만들면 좋은 거라고. 세상 좋아진 줄 알아야지 어디 데모를 하냐고. 그의 분노는 엄마에게 전가됐지. 애들 데리고 선동질하지 말라고. 엄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무섭더라. 언니한테 쪼르르 달려가서야 입술을 삐죽이며 할아버지를 욕했어. 언니는 가만가만 들어줬었다. 엄마의 당당함을 바삐 두 눈에 담으며.

나는 네 딸이지만 엄마만큼 세상 속 아픔과 부조리함에 통감하지 못해. 너의 슬픔에 공감하기에 세상을 이해할 수 있지. 언니도 마찬가지였어. 어른이 된 언니는 눈 앞에 펼쳐진 기울어진 세상이 더 와 닿았을 거야. 그것에 분노할 수 있었던 건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우리는 그때처럼 늘 엄마를 따라하고, 배우고, 공감하잖아. 엄마가 둥둥 하면 우리는 동동. 엄마가 풍덩 하면 우리는 퐁당. 알지? 당신을 향한 언니의 찬란한 사랑을 엄마가 애써 후회하지 말아줘.

눈을 감고 심장을 바삐 움직이는 지금 언니는 2015년 5월 4일 함안보에서 당신처럼. 아까시 꽃향기를, 노을과 눈 맞추는 모래알을, 뾰족한 초록을 잔뜩 품은 길게 누운 모래톱의 장난스런 웃음을 느끼고 있을 거야. 언니는 2014년 6월 3일에 당신처럼. “조금이라도 행복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치자꽃처럼 내도 시절 따라 피어나고 싶습니다.” 말하고 싶을 거야.


  1. ‘우물’ 경상도 지역어.

  2. ‘멋쟁이’ 경상도 지역어.

  3. 행복의 새.

  4. 가르치며 배우는 사람.

  5. 배우며 가르치는 사람.

  6. 어린 물고기.

숲정이

우리 동네를 낮게 아우르는 숲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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