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슬로우 책방 이야기

생태인문서점을 운영하면서 마음의 지도를 만들어가는 한 에코노마드의 여정.

미래가 아닌 지금을 살고 싶어

삼십 대 초반까지 ‘노오력’ 하면 뭐라도 성취할 것 같아 고군분투하며 살았다. 사회에서 낙오되지 않아야 하니까, 주변의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남들 하는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해외여행을 다니며 해소했다.

회사의 중역은 내 회사라고 생각하며 일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거라고 했다. 추가 수당이 없는 야근을 기본으로 열심히 일했지만, 이 회사는 결코 내 회사가 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을 무렵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아침도 거른 채 대중교통에서 시달리며 간신히 책상 앞에 앉자마자 빈속에서 계속 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위, 아래, 위, 아래… 그렇게 몇 주가 흘렀다. 병원에 갈 때마다 환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몇 분 만에 진료를 끝내는 의사들을 마주하는 게 불편해서 미루고 미뤘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생애 처음으로 고가의 종합검진을 받았다. 위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검진 결과 대장에 암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선종이 발견되었다. 큰 수술은 아니었지만 현타가 왔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내 몸 상태도 돌보지 않고 이렇게 살다가는 몇 달 후에 그냥 죽을 수도 있겠구나. 난 무엇을 위해 살아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막막한 질문이 계속 맴돌았다.

간신히 한 달간의 무급 휴직을 받았다. 막막할 때 의지할 수 있는 게 검색창이라니. 헛헛했지만 주변 사람들도 내가 사는 방식과 큰 차이는 없어 보여 달리 방법이 없었다. ‘대안적인 삶의 방식, 전환’ 등의 키워드를 검색하다가 도법스님의 인드라망 강연을 듣게 되었다. ‘우주의 모든 생명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존재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인데, 당시에 강연을 들을 때는 정신이 번쩍 났다. 모태신앙으로 기독교 세계관이 전부였던 나는 절대적인 구원, 정답이 있는 삶의 방식을 교육 받았고, 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았다. 인간과 신 이외의 존재들에 대해서는 궁금해 한 적이 없었다.

“‘인드라’는 본래 인도의 수많은 신 가운데 하나로 다른 말로 ‘제석천’이라고 합니다.신통한 재주로 부처님 전생 때부터 나타나 수행자들을 지켜주는 신이었습니다. 인드라망은 이 제석천의 궁전에 드리워진 무수한 구슬로 만들어진 그물을 말합니다.”

출처 인드라망 홈페이지

도법스님 강의가 끝나고 한 채식협회에 소속된 의사분이 공장식 축산방식의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중학생 무렵부터 함께 산 강아지는 가족이라 여겼지만, 소, 돼지, 닭이 어떻게 크고, 식탁에 올라오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해, 달, 물살이, 네발 동물, 사람이 연결된 생명 평화무늬를 마음에 타투로 새긴 그날, 나는 비건이 되었다. 10여 년 전 일이다. (지난 십 년간 나와 채식과의 관계는 그야말로 애증 관계이다. 여전히 사랑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채식과의 관계를 글로 옮기는 중이다.)

생명평화무늬
생명평화무늬

기독교 서적과 소설 등으로 채워졌던 책장에는 니어링 부부, 장일순, 노자 등 낯선 이름의 책들로 바뀌어 갔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이 다른 생명의 착취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니. 더는 효율과 경쟁의 논리가 앞선 자본주의 시장에 발맞추고 싶지 않았다. 적당히 돈 벌고, 스트레스 받으면 소비로 해소하고, 그렇게 살다가 중년 이후 기력이 쇠해지면 몸을 사리면서 노년을 맞이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티라이츠 서점에서. by 벌똥
시티라이츠 서점에서. by 벌똥

쉬는 동안 귀촌을 할까, 비건 카페를 할까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시도도 해봤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태어나 임금노동으로 익숙해진 내 신체는 이미 시스템이 주는 편안함에 길들어 있었다. 예전에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하며 시티라이츠 서점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서점 문을 열자마자 저항과 연대의 문구로 가득 찬 포스터들, 다양한 모습의 삶과 사유가 기록된 책들로 마음이 설렜다. 무엇보다 계산대에서 일을 보시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젊은 흑인 청년과 열띠게 대화하는 모습, 평일 낮인데도 이 층의 작은 공간에서 활기차게 토론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책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늘 책을 가까이했고, 창업 초기 비용이 다른 자영업에 비해 덜 들고, 약한 체력적으로도 큰 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사업은 자신이 없었지만, 관심이 가는 생태, 페미니즘, 동물권 등의 책을 소개하고, 함께 읽고 공부하고 삶을 나누고 싶다는 상상이 계속되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그럭저럭 굴러갑니다

다섯 평짜리 나의 책방이 자리한 동네는 합정동이다. 조금만 걸어가면 유명 영화배우가 운영하는 ㅂ서점부터 독립서점의 대모 격인 서점을 비롯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독립서점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이런 힙한 동네에서 햇빛도 안 들고,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서점에 와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신기하게도 SNS를 보고 손님들이 드문드문 찾아오셨다. 손님들은 다른 손님들에게 책방을 소개해 주었다. 그저 단순히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생태 관련된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하면서 작은 서점을 운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시작했는데, 예측하지 못한 인연들과 접속되면서 재미있고 일들이 벌어졌다.

작은 책방들 대부분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며 책을 매개로 다양한 모임을 만든다. 대개 책방을 연 직후는 인지도가 없기에 유명 작가를 초청하고 그 유명세로 책방을 알리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러모로 부담되었다. 찾아온 손님들과 대화를 하던 중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한 번 여기서 해보시면 어때요?’ 라고 가볍게 제안하는 것이 모임으로 이어졌다. 한 환경 잡지 편집장님과 기후 위기 강의를 직접 해보기도 하고, 알고 지내던 예술가와 자연물 워크숍을 열었다. 손님으로 방문했던 한 청년과는 대화하다가 자연식 요리를 공부한다고 해서 채식 요리 모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모임을 하다 보니 서점 밖에서 일할 기회도 생겼다. 출판진흥센터 같은 서점 밖의 장소에 생태 인문 도서를 큐레이션을 하고, 청년 허브와 기후 위기 공론장을 개최하기도 하고, 마포 FM 라디오에서 디제이로 기후 위기와 문화 콘텐츠를 결합한 방송을 만들었다. 시민들이 문턱이 높은 환경문제에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예기치도 않은 디제이를 하다 보니, 외부 강의 기획과 사회를 볼 기회도 생겼다. 심지어 생애 최초 글을 써서 원고료까지 받고, 한 대학교에서 인권강의를 하시는 선생님과 함께 대학에서 비대면 강의를 했다. 너무 주제넘은 일들을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대부분 먼저 제안을 해주신 일이었기에 감사히 생각하며 해나갔다. 애써 기획을 해서 하는 지원 사업 같은 것들은 떨어지기 일쑤이고, 되더라도 피곤함이 뒤따랐는데 우연히 만난 인연들과 놀 듯이 하는 일들은 만족스럽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에코슬로우 책방의 활동들. by 벌똥
에코슬로우 책방의 활동들. by 벌똥

카모메 식당은 아니지만 : 서점에서 만난 사람들

20대 후반인 H는 책방 근처에 사는 주민이다. 글쓰기와 워크숍 등 몇 번의 모임에 참석하면서 점점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대학병원에서 임상심리사로 일하다가 조직의 생리와 자신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아 오랜 고민 끝에 퇴사했다. 하고 싶은 소설 쓰기에 전념하면서 삶의 방향도 천천히 생각해 보는 쉬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고 한다.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작업실을 구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테고, 여러 카페를 전전하며 글을 쓰기도 쉽지 않을 듯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 작업실처럼 서점에 머물러도 좋다고 했고, 그녀도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그녀와 밥도 먹고, 산책도 하고, 교환 편지도 쓰다가 일까지 하게 되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여서 그랬을까 다행히 월세를 내고 그녀와 적게나마 수입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녀는 에코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한 환경단체에 활동가가 되었다. 그녀와는 여전히 느슨하게 만나면서 때때로 일을 도모한다.

기후 위기와 관련한 공부를 하면서 읽는 책 대부분이 서양 관점의 과학이나 사회학이다 보니 문득 동양의 옛 선인들은 생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한 번 읽기는 했지만 제대로 읽지 않은 노자의 도덕경을 꺼내 들었다. 노자가 직접 저술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라 학자마다 그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고는 하지만, 왠지 80장에서 말하는 내용이 와닿았다. 몇십 자도 안 되는 이 짧은 구절 속에 기후 위기를 초래한 이유와 해답이 모두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 위기를 공부하면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 중심적인 서구적 관점으로 교육받게 되었는지 인식하게 되었다. 정말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필요한 욕망이라고 부추기는 기업들, 소유를 늘려나가도 더 부족한 마음이 들도록 자극하는 매체들, 진보와 전환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런데도 성장과 발전은 포기할 수 없는 제일의 가치라고 교육하는 공교육 제도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신재생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는 것도, 탄소 중립을 위한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것도 무엇보다 시급하다. 하지만 정책을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경쟁과 효율의 가치를 넘어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하는 개인들이 모일 때 정책의 방향도 그렇게 바뀔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땅에서 나는 음식, 옷, 거처에 관심을 두고 만족하는 삶, 굳이 수레와 배를 타고 남의 나라의 삶을 동경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 가장 필요한 마음의 생태지도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먹는 것을 달게 여기고,
자기가 입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며,
자기의 거처를 편안해 하고,
자기의 풍속을 즐기게 되리.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소리 개소리 서로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죽도록 왕래하지 않으리”

노자 80장 일부

MZ 여성 청년들

책방에 관심을 두고 방문한 손님들의 대부분은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들이었다. 채식을 하고, 손수건을 들고 다니고, 빨대를 거절하는 이들은 유별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책방에서 모일 때면 그들은 나만 유별난 게 아니었다고, 다르게 살아서 느끼는 불안함과 외로움을 여기에서는 마음껏 나눌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하지만 작은 공간에서 누구보다 큰 위로를 얻는 것은 나였다. 타고난 우울질 기질에, 시니컬한 성격인 나의 마음 밭에 희망의 씨앗들이 뿌려졌다. 아마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씨앗을 뿌린 게 아니었을까. 실제로 씨앗들을 나눠주고 식물을 키우는 육아일기를 공유하는 경험은 책을 선물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주었다. 그린 워싱을 하는 기업과 정부의 정책을 볼 때마다, 죄 없는 동물들이 살처분 되고, 전 세계 열대우림들이 타들어 갈 때마다, 지구의 쓰레기 산도 모자라 우주에까지 쌓이는 인공위성 잔해 사진을 볼 때마다 인간의 지독한 탐욕에 절망스러웠다. 탄소배출의 주역이자 부의 불평등 구조를 만드는 상위 1%의 사람들이 작금의 사태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과연 호모 사피엔스에게 희망이 있는가. 기후 위기를 공부할수록 이미 임계점을 넘은 것 같아 답답했다. 하지만 변화의 힘을 믿으며 실천해 나가는 기후 위기 당사자들인 청년들과 계속 만나면서 자꾸만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임을 깨달았다.

훈훈한 결말은 아닙니다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라고 이 글을 맺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책방을 열고 햇수로 2년차에 발생한 코로나는 3년 차가 되어도 안정되지 않았다. 책 판매보다는 모임을 통해 꾸려가는 작은 서점은 거리두기를 할 만큼의 크기가 아니었다. 집주인은 서점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가자 자신의 아들들이 작업실로 쓰겠다고 통보해 왔다. 게다가 개업 후에 발병한 족저근막염과 비염 증상은 좀처럼 차도가 없었다. 고민 끝에 몸을 좀 더 챙기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합정동의 서점은 그렇게 문을 닫았다.

다시 백수가 되었다. 그것도 중년 백수. 중년에 다시 무직이라니. 하지만 십 년 전 백수가 되었을 때와는 그 마음이 사뭇 다르다. 어떤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이 가는 만큼 하다 보면 성과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조급한 마음이 줄어들었다. 아니 좋은 게 나쁠 수도 있고, 나쁜 게 좋을 수도 있는 게 인생이 아닐까. 완성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에는 오직 ‘그리고’만 있을 뿐이다. 어정쩡한 지금의 나를 나무라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베란다 텃밭에서 허브 몇 가지와 식물들을 더 정성 들여 가꾼다. 가족이 임대한 노지 텃밭에서 푸성귀를 기르고 벌레들이 좋아하는 식물은 양보하면서 벌레와 함께 주말마다 간단한 밭일을 한다. 동네에서도 책 읽기를 기반으로 한 환경모임을 만들었다. 비건 카페를 하는 사장님, 동네에서 문화기획을 하는 아티스트, 주부, 청년 직장인 여성들이 모였다. 몇 년간 살았지만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내 동네에도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홍대나 합정으로 나가야 나의 문화적, 지적 감수성이 충족된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음을 달리 먹으니 익숙한 것도 새롭게 보였다. 오일마다 여는 재래식 장터가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장을 보고 천천히 집밥을 해 먹는다. 여전히 낫지 않는 발도 정성껏 마사지와 족욕을 해주고 무리하지 않게 돌봐준다. 지금 여기에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찾아본다. 일상에서 하는 일들을 일로 여기지 않고 놀이처럼 해본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책읽기를 기반으로 환경모임을 한다. (우) 텃밭 전경. by 벌똥
(좌) 마을 사람들과 함께 책읽기를 기반으로 환경모임을 한다. (우) 텃밭 전경. by 벌똥

불완전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모일 때

기후 위기 시대에 생태인문서점 이야기에 대한 원고를 제안받고 조금 망설여졌다. 전문가도 활동가도 아닌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자기검열부터 작동한다. 정책을 만들고 마이크를 쥔 대다수는, 시장을 보고 살림하는 시간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많은 기성세대 남자들이다.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더 들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나의 의지는 여전히 나의 탐욕에 패배한다. 때로는 택배도 시키고, 가끔은 배달음식도 먹고, 플라스틱에 담긴 탄산수도 사먹는 나에게 실망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완벽할 순 없기에, 불완전하고 개인적인 평범한 기후위기 시대의 이야기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벌똥

하고 싶은 것을 미루며 살고 싶지 않아 5평짜리 생태인문 서점 에코슬로우를 열었다. 책방에서 따뜻하고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은 낙관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 산책하고, 텃밭을 가꾸고,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고, 읽고 쓰는 삶을 계속하고 싶다. 최근에 불교를 만나고 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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