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들의 마음 씀이 중요했던 시절을 들여다보기 – 기후 위기 속에서 『서경집전』 「우서」 읽기

중국 역사 속 요・순시대 왕들의 마음 씀은, 역사의 맥락에서 떼어놓고 보면 간결하고 매력적인 개념들로 보여서 지금까지도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들을 살펴보는 일은, 그 마음 씀 가운데 몇몇이 지금의 기후 위기 시대에 요청되는 정동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알고 보면 요・순시대도 기후 위기 시대였으니, 그 시대는 지금의 우리가 가장 먼저 돌아보아야 할 시대일 수도 있다.

성인지심, 왕의 마음 씀

『서경』은 『서(書)』라고 불리기도 하고 『상서(尙書)』라고 불리기도 한다. ‘상(尙)’이라는 글자에는 ‘높이다’라는 뜻이 있고 ‘서(書)’라는 글자에는 ‘정치문서’, 달리 말하자면 제왕의 말이 담긴 문서라는 뜻이 있다. ‘상서’는 ‘제왕의 말이 담겨있으므로 존중해야 할 문서들의 모음’ 정도로 그 뜻을 풀어볼 수 있다. 『서경』이라는 책 제목도 ‘제왕의 말이 담겨있으므로 존중해야 할 문서들의 모음’에 고대 중국인들이 경전적 권위를 부여하였음을 보여준다. 사마천은 일찍이 “공자가 시 서를 산정(刪定)했다” 하였다. 즉 지금에 전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서가 있었는데 공자가 불필요한 편을 삭제했다는 것이다.

채침 집전 저, 『懸吐完譯 書經集傳』 (전통문화연구회, 2019)
채침 집전 저, 『懸吐完譯 書經集傳』 (전통문화연구회, 2019)

『서경집전(書經集傳)』은 『서경(書經)』에 대하여 채침(蔡沈 : 1167~1230)이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채침은 주희의 제자인데, 주희의 당부를 따라 10여 년의 시간 동안 작업하여 1206년에 이 책을 완성하였다. 『서경집전』은 『서집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적어도 15세기 이후 조선에서, 주자학이 국가 이데올로기가 된 후에, 『서경집전』은 『서경』의 대표적이며 거의 유일한 주석서가 되었다.

『서경집전』 가운데 앞부분인 「우서」는 요순시대의 정치문서를 모아놓은 것이다. 이 편은 ‘요전(堯典)’, ‘순전(舜典)’,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익직(益稷)’의 5종의 문서로 이루어져 있다. 제목에는 이름들이 등장한다. 고요・익・직은 순의 신하들이고, 요・순・우는 왕들이고, 순・우는 요・순에게 발탁되어 신하 노릇을 하다가 요・순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요의 성씨는 당(唐)이었고, 순의 성씨는 우였다. 채침은 순의 성씨를 가져와 요・순이 통치한 나라를 우나라라고 하였다. 순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우는 하나라의 첫 번째 왕이 되었다.

채침은 『서경집전』의 서(序)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사대(四代)의 글을 나누어 6권으로 만들었으니, 글은 때에 따라 다르나 정치는 도(道)가 같다. 성인(聖人)의 마음이 책에 나타남은 화공(化工)의 오묘함이 물건에 드러나는 것과 같으니, 정심(精深)한 자가 아니면 알 수 없다.”1 채침은, 중국 고대의 역사를 왕조에 따라 4대로 나누고, 『서경』 속의 정치문서들을 왕조 별로 분류하여, 『서경집전』을 「우서(虞書)」・「하서(夏書)」・「상서(商書)」・「주서(周書)」 등 네 나라의 정치문서 모음에 대한 해설서로 구성하였다고 한 것이다. 이어서 채침은 성인의 마음[성인지심(聖人之心)]이 책에 나타나 있다고 하였다. 성인은 요순 같은 사람을 말하니, 이 책에서 성인의 마음은 왕의 마음과 다름없다. 정치문서를 왕의 마음 씀을 중심으로 읽는 것.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일일 수 있겠다. 그러나, 정치에서 왕의 마음은 중요한 것이므로, 『서경집전』은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가운데 「우서」는 왕이면서 성인으로 추앙받아 온 요・순의 정치가 어떠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요임금의 공(恭), 양(讓) ;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 씀

‘요전(堯典)’은 요임금의 마음 씀을 “윤공극양(允恭克讓)”2 즉 ‘진실로 공손하고 능히 겸양하심’이라고 설명한다. 겉모습이 공손해 보일 뿐만 아니라 마음 씀에 있어서도 자기를 낮추며,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때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러한 설명은 다음의 서술로 이어진다. “능히 큰 밝혀 구족(九族)을 친하게 하시니 구족이 이미 화목하거늘 백성(百姓)을 고루 밝히시니 백성이 덕을 밝히며 만방(萬方)을 합하여 고르게 하시니 여민(黎民)들이 아! 변하여 화(和)하였다.”3 요임금의 자기를 낮추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 씀이 구족・백성・만방을 아우르는 여민 즉 머리 검은 모든 사람을 어우러지게[화(和]]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요임금이 희씨와 화씨를 사방으로 보내, 지고의 존재를 받드는 의례를 행하고 생업에 필요한 정보[역상(曆象)・인시(人時)]를 전파하게 하였다는 기사가 이어지고 나서, 요임금은 후계 문제를 신하와 논의하는데, 먼저 어리석고 다툰다는 이유로 그의 맏아들 단주(丹朱)를 후보에서 제외하고, 우임금의 아버지 곤(鯀)에게 기회를 주었으나 그는 9년 동안 홍수를 다스리는 공적을 이루지 못하던 차, 우순(虞舜)을 천거 받는다. 우순은 순임금이 되는 사람이다.

순임금의 효(孝) ; 존재의 근원을 조건없이 존중하고 보살피는 마음 씀

“사악(四岳)이 말하기를 “소경의 아들이니, 아버지는 완악하고 어머니는 어리석으며 상(象)은 오만한데도 능히 효(孝)로 화하게 하여[극해이효(克諧以孝)] 점점 다스려서 간악한 데에 이르지 않게 하였습니다.” 하였다.”4 요임금에게 우순을 천거한 관리에 따르면, 우순은, 열악한 가정환경에서 태어났음에도, 효를 가지고 오만한 형[상(象)]까지 포함한 온 가족이 어우러질[화(和)] 수 있게 한 것이다.

효(孝)란 무엇인가? 효는 마음 씀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 판단력이 떨어지는 어머니, 억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형. 이런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막내아들인 우순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우순은 아버지, 어머니, 형이 가지고 있는 악조건을 따지지 않는 데에서 시작한 듯하다. 우순은 무조건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살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마음 씀은 공자의 『논어』에서도 볼 수 있다. “부모를 섬기되 허물이 있거든 부드럽게 아뢸 것이며, 아뢴 것을 따르지 않더라도 더욱 부모님을 공경하며 괴로워도 원망해서는 안 된다.”5 이러한 마음 씀이 정말 가능하였을까? 내가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지금 이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의문일 듯하다.

이런 의문은 잠시 접어두고, 반대로 효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찾아보면, 반시(反始)라는 개념에 주목하게 된다. “천하의 예는 시초를 되돌아보도록 하는 것이다. …… 시초를 되돌아보는 것은 그 근본을 후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6 『예기』 「제의」에 나오는 글이다. 제례의 의의를 설명하는 글이고 제례에는 부모를 향한 것도 있으니, 이 글을 부모에 대한 자식의 마음 씀과 연결하여볼 수 있을 것이다. 반시는 시초를 되돌아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 하나하나가 자신의 시초를 되돌아본다면 부모가 보일 것이다. 『예기』 「제의」는 그 부모를 본으로 보고 후하게 대우하라고 한 셈이다. 유학이 성리학으로 전개된 후 그것을 국교로 삼았던 조선에서 유행한 교양서에는 ‘반시’가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수록되었다. “먼 조상과 뿌리에 보답하여 반드시 제사를 정성스럽게 지내라.”7

보본반시(報本反始) :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돌아감.

추원보본(追遠報本) : 내 존재의 기원을 잊지 않고 보답함.

반시를 정당화하는 말들은 위와 같은 두 사자성어로 압축되면서 지금까지도 꽤 광범위하고 영향력 있게 유통되고 있다. 이 사자성어를 우순에 대한 인물평에서 비롯된 효 개념의 설명에 적용해보면, 사람이라면 반시(反始)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런 마음가짐은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살핌 같은 마음 씀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순이 보여주었으며 그런 행실이 억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형마저도 포함한 온 가족을 어우러지게[화(和)] 하였다는 것이다.

순임금의 온(溫), 공(恭), 색(塞) ;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고 자기를 낮추는 마음 씀과 성실함

효자여서 천거되고 후계자로 지명된 우순에 대한 또 다른 평가가, ‘순전’에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온화하고 공손하고 성실하고 독실하시어[온공윤색(溫恭允塞)] 그윽한 덕(德)이 올라가 알려지시니, 제요(帝堯)가 마침내 직위(職位)를 명하셨다.”8 온은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너그럽게 대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공은 자기를 낮추는 것으로, 요임금의 마음 씀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였던 것이다. 순임금에 대한 평판에는 성실하고 독실함[색(塞)]도 들어있는데 이것은, 온(溫)과 공(恭)에 비교할 때, 일을 하는 것과 조금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평판을 가진 순에게 요임금은 “오전(五典)을 삼가 아름답게 하라”9는 명을 내린다. 채침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전(五典)은 오상(五常)이니,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 이것이다.”10 요임금은 효자 순에게 5륜을 전인민적으로 의식화시키라고 한 것이다. 순은 맡겨진 임무를 평판처럼 성실히 수행하였고, 왕위를 계승한 후에는 22명의 관리를 등용하였다. ‘순전’의 나머지 내용은 이 22명의 관리들이 어떤 평판을 가졌으며 어떤 일을 했는지를 차례로 설명하고 있다. “순(舜)이 태어난 지 30년에 부름을 받아 등용되시고 30년에 제위(帝位)에 올라 50년 만에 승하하시어 이에 죽으셨다.”11 순이 110년을 살았다는 기사로 ‘순전’은 마무리되었다.

행동방침인 정일집중(精一執中)과 몸가짐인 구덕(九德)

‘대우모(大禹謨)’, ‘고요모(皐陶謨)’, ‘익직(益稷)’ 등 「우서」의 나머지 문서들에는 순임금의 유력한 신하 고요(皐陶), 순임금의 신하였을 때의 우(禹) 등이 순임금에게 올린 계책[모(謨)]과 군신간의 대화가 담겨있다.

이 가운데에는 순임금이 후계자인 우에게 남기는 유명한 당부도 있다. 순임금은 “홍수가 나를 경계하였는데 믿음을 이루고 공을 이룸은 너의 어짐”12이라고 우의 업적을 확인하여준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13 이 말에는 후세에 16자심법[十六字心法]이라는 이름이 붙고 성리학 수양론의 핵심 신조가 된다. 이것은 정일집중(精一執中) 네 글자로 축약되기도 한다.

고요가 우에게 권하는 길한 사람의 아홉 가지 몸가짐도 있다. “너그러우면서도 장엄하며 유순하면서도 꼿꼿하며 삼가면서도 공손하며 다스리면서도 공경하며 익숙하면서도 굳세며 곧으면서도 온화하며 간략하면서도 모나며 굳세면서도 독실하며 강하면서도 의(義)를 좋아하는 것이니, 몸에 드러나고 시종 떳떳함이 있는 것이 길(吉)한 사람입니다.”14 이를 보기좋고 글씨연습에 편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寬而栗(관이율) : 너그러우면서 장엄함 / 柔而立(유이립) : 유순하면서 꼿꼿함 / 愿而恭(원이공) : 삼가면서 온화함 / 亂而敬(난이경) : 다스리면서 공경함 / 擾而毅(요이의) : 익숙하면서 굳셈 / 直而溫(직이온) : 곧으면서 온화함 / 簡而廉(간이염) : 간략하면서도 모남 / 剛而實(강이실) : 굳세면서 독실함 / 彊而義(강이의) : 강하면서 의(義)를 좋아함

정동

다음백과 컴퓨터 정보용어대사전에서 정동[emotion] 개념 설명을 보았다.15 그 사전은 이 개념을 “급격히 일어나는 일과적이고 비교적 강력한 감정”이라고 정의하고, 기본적인 정동의 요소로서 공포, 노여움, 기쁨, 놀람, 반감, 미움 등을 들 수 있다고 하고, 정동이 일어나는 메커니즘에는 아직 정설이 없다고 하고, 정동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논리적 정보처리에 대한 방해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정동적 행동이 인간의 본능적인, 효율적으로 프리프로그램(pre-programed)된 적응행동이라는 측면도 가진다는 점 또한 인정하였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정동 (심리학)’ 항목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정동(Affect)은 심리학(psychology)에서 감정(feeling), 정서(emotion), 기분(mood)에 대한 잠재된 경험을 말한다.”16 각주에 의하면 이와 같은 개념 정의17는 2010년에 발간된 심리학 분야의 입문서로 보이는 책 속의 ‘사회적 인지와 태도’ 라는 장을 인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 항목의 ‘역사’ 부분에는 1982년에 라자루스(Lazarus) 라는 연구자가 “정동과 인지 모두 정보 처리 체계 내에서의 효과의 독립적 자원을 구성한다”고 주장한 것이 인용되어있다. 이로부터, 사람의 내부에 있어서이건 외부기억장치에 있어서이건, 이미 1980년대부터 정동은 정보 처리 체계의 일부로 다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브라이언 마수미는 2002년 출판된 저서 『가상계』18에서 정동을 “실제로 존재하는 특정 사물들(정동을 육화하는) 안에 정박된 (기능적으로 제한된) 가상적 공감각 원근19”이라고 정의하였다. 마수미는 ‘가상적’이라는 말을 “실재하지 않는”이 아니라 “있을법한”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정동(Affect)은 심리학(psychology)에서 감정(feeling), 정서(emotion), 기분(mood)에 대한 잠재된 경험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사진출처 : Adrian Swancar

정보 처리, 심리학,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정동을 정보 처리 과정의 결정적 요소로 보게 되면서, 배중률(排中律 Law of excluded middle)-형식 논리-이성의 강고한 결착을 골격으로 하여 왔던 인식론과 세계관은 급속히 변모하여 왔다. 이러한 변모는 이미 19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며, 철학사에서도 바로 그 시기에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등의 철학자들에 의하여 기존의 세계관에 강한 문제 제기가 가하여졌다고 한다. 또한 많은 철학자들이 시간을 더 소급하여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가 이미 유사한 문제의식을 보였었다고 본다. 마수미는 스피노자의 정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정념 안에 있는, 영향 안에 있는, 능동성과 수동성의 구별에 앞서는, 세 번째 상태, 배제된 중간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인 순수하고 생산적인 수용성 안에 있는 하나의 기원.”20 이와 연관하여 마수미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정동으로부터 나온, 정신과 육체의 서로 평행하는 생성-능동becoming-active의 철학”21 [61쪽]으로 설명한다.

윤리학에 있어서 정신의 우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종교의 독단이 지배하고 17세기의 유럽에서는 획기적인 주장임과 동시에, 육체의 지분을 인정하고, 배중률이 배제하였던 중간지대를 육체와 욕망을 방목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세계관은, 본의든 아니든 도덕적 상대주의의 논거가 되어주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멋진 옷이 되어주었다는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지만, 배중률-형식 논리-이성의 강고한 결착이 가진 한계에 강조점을 찍은 철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주저 없이 정동을 기준으로 철학사 전반을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기후환경 위기가 배중률-형식 논리-이성의 강고한 결착을 골격으로 하였던 세계관에 수반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위와 같은 평가를 통하여 기후환경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만한 세계관의 단초를 찾으려고 하는 듯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간단히 지적한 바와 같이, 정동으로부터 나온 철학이, 본의든 아니든 도덕적 상대주의의 논거가 되어주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멋진 옷이 되어주었다는 비평도 불가능한 것이 아님 또한 인정한다면, 정동 이론에 입각한 철학사 평가도 이러한 비평을 의식하면서 행하여져야 할 듯하다.

양(讓)과 효(孝)라는 마음 씀 ; 기후환경위기가 요청하는 정동

『서경집전』 「우서」에 실려있는 정치문서들은 왕들의 마음 씀이 중요했던 시절을 보여주었다. 이 문서들을 읽고 다음과 같이 왕들의 마음 씀을 요약하여볼 수 있었다.

  • 양(讓) ;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 씀 [요]
  • 공(恭) : 자기를 낮추는 마음 씀 [요, 순]
  • 온(溫) :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운 마음 씀 [순]
  • 효(孝) : 존재의 근원을 조건 없이 존중하고 보살피는 마음 씀 [순]
  • 색(塞) ; 성실한 마음가짐 [순]
  • 구덕(九德) : 길(吉)한 사람의 몸가짐
  • 정일집중(精一執中) : 성인이 되고자 수양하는 사람의 행동 방침

양(讓)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조정되어야 하는 마음 씀이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지 않음.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먼저 할 수 있도록 함. 이것을 사양・양보의 실마리라 할 수도 있고, 이 자체를 양보라 할 수도 있다. 무엇이 진정한 양보인지는 때에 따라 변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음 씀이라 할 수도 있지만, 끊임없는 마음의 움직임이라 할 수도 있다. 이에 비하면 공(恭)과 온(溫)은, 중요하고 값진 것이기는 하지만, 작동의 기제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고 할 수 있다.

효(孝)는 양(讓) 못지않게 유교에서 중시된다. 유교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종교 사상들에서, 효의 근저에 있는 ‘반시(反始)’와 유사한 마음 씀을 중시하는 사상 경향은 공통되게 발견된다. 송나라 시대로 접어들면, 성리학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상은 농경사회임이 분명하여진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생업의 근거인 농경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태어나서 확장된 가족에 가까운 이웃들과 평생을 함께하였다. 그런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가족이 사회의 최소 단위로 공고히 유지될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송나라 시대의 사회에서는 효가 보편적으로 확장 가능한 마음 씀이었다. 요・순의 시대에도 효는 지배층 내부에서 권장되는 마음 씀에 그치는 것은 아니었을 듯하다. 모든 사람에게 권장할만한 마음 씀이었기 때문에 지배층 내부에서 효라는 마음 씀이 권장되는 것도 모든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 듯하다.

색(塞)의 등장은, 그 이전에 비하여 마음 씀의 중요성이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인 듯하다. 색(塞)은 정치적 행동과 좀 더 강하게 연결되는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구덕(九德)은 마음가짐을 넘어 특정한 몸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일집중(精一執中)은 양(讓)에서부터 구덕(九德)에까지 이르는 모든 마음 씀, 마음가짐, 몸가짐을 규율하는 행동 방침이다. 요・순의 시대뿐만 아니라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교적 교양인 사이에서는 가장 중요한 행동방침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니까 같은 요・순시대로 묶이기는 하지만 그 시대 속에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가 크고 복잡해졌을 것이고, 그런 추세 속에서, 왕의 마음 씀 만으로 사회의 안정을 보장하기 어려워져서, 지배집단 구성원들에게 성실한 마음가짐[색(塞)], 천지조화에 따르는[길(吉)한] 사람임을 드러내기 위한 구체적인 몸가짐[구덕(九德)]을 차례로 요구하게 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설득에 도움이 되면서도 실제로는 성인[왕]이 되고자 수양하는 사람에게 가작 강력하게 요구되는 행동방침[정일집중(精一執中)]을 수립하는 대로 변화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왕의 마음 씀의 중요성은 퇴조한 것이다.

오래전에 정일집중(精一執中)에 자리를 내준 양(讓)과 효(孝)는, 정동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정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정도로는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양(讓)과 효(孝)는 상황의 차이에 따라 세밀하게 조정되어야 하는 마음 씀이며,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중요할 수 있는 마음 씀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양(讓)과 효(孝)에는 기후환경 위기가 요청하는 마음 씀으로 볼 수 있는 면이 다분하다.

소유권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을 최소단위로 보고 존중하는 사회에서 양(讓)은 중심으로부터 비켜나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생산과 공급이 넘쳐나는 사회에 사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양(讓)이 필요 없는 사회에 사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그가 소비하는 것들의 원산지와 그것들의 생산에 관련되어있는 노동자들을 생각해보면, 낮은 임금과 낮은 가격이 나의 쉬운 소비생활을 가능하게 하여주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나의 일상은 양보와는 상반되는 착취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음을 인정하게 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 연결을 조금만 더 깊이 따라가 보면 나의 소비가 자원의 고갈과 환경의 파괴를 가속화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양(讓)이 이 모든 현실의 대척점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고, 요・순시대의 양(讓)이 지배집단에게나 요구되었던 것 또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양(讓)을 요・순시대라는 맥락으로부터 떼어내서 지금 여기 지구촌이라는 맥락 속에 자리매김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반사회적인 것도 아닐 것이다. 양(讓)은 기후위기시대가 요청하는 정동이라 할만하다. 지금껏 내가 누린 것을 계속 누리겠다는 생각은 다른 사람의 삶의 기회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그야말로 양보 없는 생각으로, 자멸로 이어질 수 있다.

오래된 가족이 해체되고있는 지금, 효(孝)는 굳이 되살릴 마음 씀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효(孝)는 관계를 당연시하고 지나치게 중시한 개인을 질식시키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부모를 존재의 근원으로 보는 사고방식도, 적어도 천년 정도는 이어져 온 지지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부모의 존재를 내가 원하지 않았던 조건과 환경 혹은 구속으로 생각하는 관점도 있다. 조건 없는 존중과 보살핌은 일방적 희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사회보장의 경우 만 보더라도, 20대의 내가 참여하기 시작한 사회보장제도가 60~70대의 나에게 혜택을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조건 없는 존중과 보살핌에 대한 믿음과 같은 것 같다. 나아가 가족이 해체된 이후의 나의 생존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우정과 환대를 주고받는 관계의 보장이 없이는 대단히 삭막해질 수 있다. 그런 관계는 곧 조건 없는 존중과 보살핌을 의미하는 것 같다. 조건 없는 존중과 보살핌에 대한 믿음은 자원의 분배, 환경에 대한 책임감에 입각한 생활의 바탕이 되어주기도 할 것이다. 그 믿음이 없다면 미래세대에 대한 약탈이라고 말하여지는 소비를 되돌아볼 계기를 가지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지금은 요・순시대가 아니다. 그렇기에, 양(讓)과 효(孝)같이 아직도 어느 정도 지지받는 마음 씀도 옛 맥락에서 떼어내서 기후환경 위기라는 지금의 맥락 속에서 살펴보았고, 그 결과 이 위기가 양(讓)과 효(孝)를 요청하는 면도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였다. 다른 한편, 역으로 철저하게, 요・순시대 속에서 양(讓)과 효(孝)라는 마음 씀이 어떻게 작동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홍수가 끊이지 않아 치수가 최대 과제였던 요・순시대도 기후환경위기시대였기 때문이다.

[TEXT]
蔡沈[撰], 成百曉[譯註], 『懸吐完譯 書經集傳』 上, 東洋古典國譯叢書 6, 서울 : 社團法人 傳統文化硏究會, 1998.
蔡沈[撰], 成百曉[譯註], 『懸吐完譯 書經集傳』 下, 東洋古典國譯叢書 7, 서울 : 社團法人 傳統文化硏究會, 1998.


  1. 『서경집전』 「서」

  2. 『서경집전』 「우서」 ‘요전’ 1장

  3. 『서경집전』 「우서」 ‘요전’ 2장

  4. 『서경집전』 「우서」 ‘요전’ 12장

  5. 『논어』 「이인」 18장 “事父母幾諫, 見志不從, 又敬不違, 勞而不怨”

  6. 『예기』 「제의」 12장 “天下之禮, 致反始也 …… 致反始, 以也厚其本也 ……”

  7. 『사자소학』 「효행」 49 “追遠報本 祭祀必誠”

  8. 『서경집전』 「우서」 ‘순전’ 1장

  9. 『서경집전』 「우서」 ‘순전’ 2장 “愼徽五典”

  10. 『서경집전』 「우서」 ‘순전’ 2장 채침 주.

  11. 『서경집전』 「우서」 ‘순전’ 28장

  12. 『서경집전』 「우서」 ‘대우모’ 14장

  13. 『서경집전』 「우서」 ‘대우모’ 15장

  14. 『서경집전』 「우서」 ‘고요모’ 3장

  15. 정동 – 다음백과

  16. 정동(심리학) – 위키피디아

  17. Hogg, M.A., Abrams, D., & Martin, G.N. (2010). Social cognition and attitudes. In Martin, G.N., Carlson, N.R., Buskist, W., (Ed.), Psychology (pp 646-677). Harlow: Pearson Education Limited.

  18. 브라이언 마수미(지음), 조성훈(옮김), 『가상계; 운동, 정동, 감각의 아쌍블라주(assemblage)』, 아우또노미아총서 28, 갈무리, 2011.07.30. ∥ Massumi, Brian , Fish, Stanley Eugene (EDT) , Jameson, Fredric (EDT), Parables for the Virtual : Movement, Affect, Sensation (Post-Contemporary Interventions), Duke University Press, 2002.04.09.

  19. 위와 같은 책, 76~68쪽.

  20. 위와 같은 책, 61쪽.

  21. 위와 같은 책, 61쪽.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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