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기후송_작곡일지] ③ 밥은 생명 밥은 평화

〈월간 기후송〉의 작곡 일지 4월편(세 번째 곡). 이번 달 노래는 ‘밥은 생명 밥은 평화’라는 곡으로, 제목처럼 밥이 우리에게 올 때부터 먹고 우리 몸이 될 때까지의 전 과정이 생명이고, 평화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짧은 노래.

● 노래를 만들기까지

밥, 밥상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된 후로 그런 노래가 있었으면 했어요. 함께 부를 수 있는…
그런데 이미 있더라고요. 바로 김지하 시인의 시로 만들어진 노래였습니다.

〈밥은 하늘입니다〉 – 김지하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 속에 모시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아아 밥은 모두 서로 나눠 먹는 것.

이 노래는 ‘밝은누리’ 공동체라는 곳을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가사가 너무 좋은데, 단조(마이너) 노래라 좀 우울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식사 시작 때 부르는 노래로는 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이런 의미를 담으면서도 좀 더 밝은 노래가 있었으면 했어요.

그렇게 10년도 넘게 지난 것 같은데요. 그러다가 ‘의례’, ‘전례’, 개신교적 표현으로는 ‘예전’의 중요성을 알고 난 후, 다시 식사 때 부를 ‘식사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은 의례와 반복을 통해 우리 안으로 스며든다.”
“우리의 삶과 문화를 형성하는 대부분은 ‘의식 세계 아래에서’, 즉 우리의 오장육부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것과 관련하여 작동한다.”
“우리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해 온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 이러한 습관과 실천이 우리의 사랑과 욕망을 형성하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예배하는지 결정한다.”

〈오늘이라는 예배〉, 〈습관의 영성〉 참고.

이런 책의 내용, 또 저의 경험들을 통해, 우리가 의식도 하기 전에, 반복되는 어떤 습관이나 실천이 우리 자신을 형성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중에 노래만큼 강력한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아이에게 밥에 대한 의미를 백 마디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함께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 이제 정말 밥에 대한 노래를 만들자!’

● 주제에 대하여

누군가 저에게 “기후위기와 밥의 관계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라고 묻는다면, ‘식량위기’와 ‘건강한 먹거리’ 문제가 바로 떠오른다고 답할 거 같아요.

아마 많은 분들이 한국의 식량자급률이 매우 낮다는 얘기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실제 그렇더라고요. 가축사료용 원재료 곡물을 제외한 주식용 곡물 비율이 식량자급률인데, 2018년 기준, 46.7%로 OECD 최저수준이더라고요. 가축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1.7%로 전 세계 평균이 101.5%임을 비교하면 훨씬 더 낮은 수준이에요. 즉, 수입에 이상이 생기면 언제든 식량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금파(대파), 금배추, 딸기 대란, 양파 대란, 양상추 대란. 이런 말들이 대부분 기후와 관련이 있고 점점 더 심해지고 잦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50년 후면 이제 우리나라에서 사과, 배, 포도는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하니 슬프기도 했어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우크라이나 등의 특정국가에 수입을 의존하고 있어 더 문제인데요. 한 전문가는, “우크라이나 사태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과 캐나다 중서부에 계속되는 가뭄”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아마 많은 분들이 캘리포니아 등 미국 서부에서 연일 대형산불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셨을 텐데요, 이미 작년 생산량이 40%까지 줄었다고 해요. 미국으로부터 가장 많은 곡물을 수입하는 우리는 수입에 큰 차질이 생기면 당장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이 되고 있어요.

우리 농촌 인구의 약 절반이 65세 이상 노인일 정도로 농촌인구의 고령화도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어요. 농가인구도 계속 줄고 있어 앞으로 농사지을 사람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에 따라 전국 논밭 경지면적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농업은 국민의 기본적인 생존을 책임지는 특수한 산업이라 대부분 국가에서는 보조금 등 여러 지원을 통해 농업을 뒷받침하고 있는데요, 이 농업보조금 역시 한국은 매우 적습니다. ‘생산자총수취액 중 농업보조금 비중(2014)’ OECD 평균이 9.8%인데, 한국은 고작 3.8%밖에 되지 않고, 1인당 보조금 수준(2013)도 OECD 평균이 4014달러인데, 한국은 618달러밖에 되지 않더라고요. 국가 전체 예산에서도 농식품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3.1%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국가적으로도 농업은 홀대를 받고 있는 상황이에요.

이런 와중에 코로나사태로 주요 국가들이 식량안보를 이유로, 쌀이나 밀 등 곡물 수출금지를 하여 가격이 폭등하기도 했어요. 게다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밀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데, 두 나라의 밀 수출량은 전 세계의 약 30%를 담당할 정도로 많아요.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우리나라의 5대 곡물 수입국이라 더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렇듯 대부분의 식량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기후위기와 세계 안보상황의 변화가 생기면 언제든지 식량위기를 겪을 수 있는 환경이라, 이제라도 농업과 농촌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꾸고 전례 없는 지원을 통해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할 것 같아요.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붙들어 주는 토양을 살리는 것이 시급합니다. 그래서 지원을 하더라도 대규모 농사를 하는 산업농보다는 작은 규모의 소농을 지원해 건강한 먹거리와 더불어 토양을 건강하게 되살리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또한 지금의 장거리 해외 운송은 화석연료 배출을 늘리는 소위 ‘탄소발자국’을 높여서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데 일조하기 때문에 로컬푸드 중심으로 자급률을 높이는 것도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유엔식량계획(WFP)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C 상승하면 약 1억 8,900만 명이 기아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는데요, 결국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가열화로 기후위기가 심해지면 기아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것이죠. 이건 윤리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지구 평균기온이 0.5도 오를 때마다 군사적 대치 가능성이 10~20%씩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듯이 식량위기 문제는 환경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 윤리적 문제임을 기억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 가사

밥은 생명 밥은 평화
하늘과 땅에서 왔으니
소중히 먹고 다시 돌려주며
하늘과 땅처럼 사는 것

함께 길러서 함께 먹는 것
한 상에서 한 몸 되는 것
누구나 먹고 서로 나누는 것
하늘땅 서로 살리는 것

● 가사에 대하여

오랫동안 만들고 싶었으나 생각만 했던 노래라, 일단 가사부터 적어야 노래가 나오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집에서 굴러다니는 아무 종이나 하나 잡고, 밥에 대해 생각나는 것들부터 적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적다보니 제가 생각하는 밥에 대한 생각들이 조금씩 하나로 맞춰지는 것 같았어요.

아내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구하고, 곡조를 흥얼거리며 음절도 맞춰보았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과 같은 가사로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햇님, 구름님, 바람님, 비님, 흙님과 어울려 곡식을 길러낸 착한 농부님,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준 공양주님, 고맙습니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몸에 깃든 어머니 자연 품대로 뭇 생명과 더불어 살겠습니다.

〈식사기도문〉 실상사

이 밥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는 온생명 기운 깃든 밥상 앞에 앉아있습니다.
어우러져 살아가는 해, 물, 바람, 흙, 벌레와
땀흘려 일하는 모든 손길과 하늘 은혜 떠올리니 고맙습니다.
천천히 온 마음으로 서로 살리는 밥으로 살겠습니다.

〈밥상기도문〉 밝은누리 공동체
밥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햇님, 구름님, 바람님, 비님, 흙님’과 ‘해, 물, 바람, 흙, 벌레’ 등 자연의 수많은 것들이 힘을 보탰다. 
사진출처 : Winston Chen
밥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햇님, 구름님, 바람님, 비님, 흙님’과 ‘해, 물, 바람, 흙, 벌레’ 등 자연의 수많은 것들이 힘을 보탰다.
사진출처 : Winston Chen

위는 불교, 밑에는 기독교 계열 공동체의 밥상 기도문인데, 매우 유사한 것을 보고 조금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어요.

몇 가지 공통점들이 눈에 들어왔었는데요, 먼저 밥이 우리 몸안으로 들어오기까지 ‘햇님, 구름님, 바람님, 비님, 흙님’과 ‘해, 물, 바람, 흙, 벌레’ 등 자연의 수많은 것들이 힘을 보탰다는 점이었어요. 그리고 ‘착한 농부님’과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손길’은 농부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었고요, 또한 ‘하늘 은혜’와 ‘어머니 자연의 품’은 이 모든 것들을 있게 한 ‘하늘 어머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겠구나 하는 점들이었어요.

위 기도문들을 보고 가사를 쓴 건 아니지만, 나중에 비교해보니 어느새 ‘저 기도문들이 나에게도 제법 익숙해져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물론 여전히 머리에 많이 머물러 있어서, 마음과 손과 발까지 내려가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요.

농부 혼자 기른 것이 아니니 함께 먹고 나누어야 하고, 같은 걸 먹으니 점점 한 몸이 되어 가는 것, 먹고 싸서 자연에 잘 돌려주어 순환을 이루고 생명을 살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평화, 밥이 주는 평화일 것입니다.

● 악보

● 작곡에 대하여

무엇보다 식사송으로, 밥상에서 부를 노래였기에 짧아야 했고, 곡조도 단순해야 했어요. 전형적이긴 하지만 3/4박자가 잘 어울릴 거라 생각을 했고요. 물론 단순하더라도 울림이 있고,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그 어떤 분위기에 맞는 멜로디여야 했는데, 그런 멜로디로 나와서 참 다행이었어요.

11세기 스타일의 그레고리안 찬트 선율이 입혀진 찬송을 작곡에 참고했다. 사진출처 : FNeumann
11세기 스타일의 그레고리안 찬트 선율이 입혀진 찬송을 작곡에 참고했다.
사진출처 : FNeumann

실은 작곡 당시 제가 어떤 종교노래(개신교 찬송가 133장)를 알게 되었는데, 11세기 스타일의 그레고리안 찬트(Gregorian Chant)1 선율이 입혀진 찬송이에요. 반주도 없고 마디도 없는 노래인데, 멜로디가 정말 아름다워서 계속 흥얼거리게 되더라고요. 멜로디를 들으면 뭐랄까요, 고상한 느낌이랄까요. 잘 표현이 안 되지만, 약간 성당에 와 있는 느낌도 들고, 만약 천국에서 노래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같은 그런 멜로디요. 그래서 제가 곡을 만들 때 아무래도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았어요. 물론 ‘밥은 생명’은 좀 더 동양적인 느낌을 주고 두 곡의 공통점이 별로 없긴 하지만요.

코드진행도 예전에 아주 많이 사용된 1-6-2-5 진행을 써서, 아주 익숙한 느낌을 주는 노래가 되었어요. 이 숫자는 예를 들어,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도부터 ‘12345678’이라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1=도, 6=라, 2=레, 5=솔 이고, 여기에 화음을 얹어서 도미솔(C), 라도미(Am), 레파라(Dm), 솔시레(G)로 일련의 코드진행으로 보시면 돼요. 이 노래는 D키(라장조)니까, 1-6-2-5는 D-Bm-Em-A가 되는 것이지요.

한 가지 걸리는 점은 쉼표가 많지 않아서 숨이 조금 찰 수 있고, 조금만 빠르게 부르면 약간 급한 느낌이 없지 않아요. 그래서 실제 부르시게 된다면 급하지 않게 천천히 부르시면 좋습니다.

제 큰아이가 우리 나이로 6세인데, 곧잘 따라하더라고요. 가사 의미와 비슷하게 손짓으로 율동도 알려주니 가사를 더 잘 기억하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은 보통 졸리면 짜증을 내는데, 한동안 잘 부르다가 최근에는 저녁식사 때 졸릴 때가 많다 보니 짜증을 내며 부르기 싫다고 해서 좀 쉬고 있는 중이긴 합니다. ^^;

● 노래 듣기

https://url.kr/jrpxgy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노래를 만드는 일이 많지는 않은데, 이렇게 만들어졌으니 밥상의 중요한 가치를 생각하시는 많은 분들이 식사 전에 함께 불러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다 같이 부를 노래가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일 텐데요, 제 노래가 그렇게 많이 불리는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1. 천주교의 전통적인 단선율 전례 성가의 한 축을 이루는 성가로서 로마 전례 양식 때 사용하는 무반주의 종교 음악이다(위키백과).

김영준

-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론 제가 누군지 헷갈릴 때가.. ^^

- 예술가(음악가)
1인조인디밴드 ‘하늘소년’이란 별명으로 오랫동안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해 왔고, 밴드앨범을 제외하고 여섯 장의 개인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EP앨범, 싱글앨범)

- 종교인
모태 신앙으로 어릴때부터 교회생활을 했습니다. 물론 평범한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 정치인
녹색당에서 20대 총선 후보로 뛰었고,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한 후, 현재는 기후정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 활동했었고, 현재는 ‘기후위기 기독인 연대’를 만들어 기후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기후환경강사
청소년, 성인 등 다양한 대상과 기관에서 기후환경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 남편과 아빠
아내와 두 아들(6세, 3세)이 있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게 된 후로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남은 인생을 여기에 걸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댓글 4

  1. 너무 좋네요^^ 좋은 곡 감사해요~ 흥이 많은 아이와 부르고 싶은데 신나는 동요 버전으로도 편곡이 가능하다면 정말 좋겠네요ㅎㅎ

    1. 아하! 아이들과 부르기 위해 동요버전도 좋은 아이디어인거 같아요~ 한번 시도해볼게요!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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