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굿의 ‘삼공본풀이’에서 발견한 대안적 공동체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작동기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곤 한다. 그럼에도 때로 자본주의 자체가 허약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에서부터 많은 틈을 보게 된다. 틈은 자본주의 작동기제를 벗어나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줄 수 있다. 제주도 굿의 ‘삼공본풀이’에서 그런 틈을 포착할 수 있는 여유의 바탕을 찾아본다.

삼공(三公), 제주도 무당굿에 세 번째로 등장하는 신

제주도의 무당굿에는 ‘삼공(三公)’이라는 신격의 사연을 노래하는 삼공본풀이라는 부분이 있다. 이 신격은 제주도 무당굿에서 가장 중요한 신격은 아니고, 세번째로 중시되는 신격이라 할 수 있다. 현용준은 삼공본풀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제주도의 무당굿에서 구연되는 ‘전상’ 차지 신의 신화인 동시에, 그 신화를 노래하고 기원하는 제차(祭次)1.”2 삼공은 곧 이 정의에 보이는 ‘‘전상’ 차지 신’이다.

여기에서 전상은 무엇인가? 네이버 지식백과에 ‘감은장애기’3 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이야기의 끝을 보면 전상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감은장애기는 어떤 신이 되었던가. 전상을 차지하였으니, 무엇이 전상인가. 장사 일도 전상이요 목수 일도 전상이요 농삿일도 전상이요 밥 먹음도 전상이요 술 먹음도 전상이니 인간살이 모든 일이 전상이다.”4

이러한 서술을 보면, 전상은 문자 그대로 인간살이 모든 일이다. 그렇다면 전상 차지 신은 인간살이 모든 일과 연관되어있는 신이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일상을 관장하는 신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현용준은 전상을 실마리로 삼공본풀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전상’이란 제주 방언은 ‘전생 인연’의 준말로 ‘전생(前生)’의 와음(訛音) 같으나, 그 뜻은 조금 다르게 쓰이고 있다. 일상용어로는 평상시와 달리 술을 마구 먹거나, 해괴한 짓을 하여 일을 망치거나 가산을 탕진할 때 그 행위를 ‘전상’이라 한다. 그래서 도둑질을 하여 몇 번이고 감옥에 출입해도 도둑질할 마음이 일어나고, 노름을 시작하면 가산이 탕진되어도 그만둘 수 없는 것과 같은 것 모두 ‘전상’ 때문이며, 농업·공업·상업 등 어떤 직업에 집착, 몰두하는 것까지도 ‘전상’ 때문이라 해석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전생 인연과 통하는 말인 듯한데, 이러한 ‘전상’을 차지하고 있는 신이 삼공이다. 「삼공본풀이」는 이와 같은 나쁜 ‘전상’을 제거하고 좋은 ‘전상’으로 행운이 오도록 기원하는 제차인 것이다.”5

이 설명을 보면 ‘전상’ 차지 신은, 나쁜 행위인 전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나쁜 생각에 빠지게 하는 것 그리고 어떤 직업에 집착·몰두하게 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설명은 나쁜 전상과 좋은 전상을 구별하여 말하기도 하였는데, 후자에 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감은장애기’의 끝 부분과 현용준의 설명을 종합하여보면, 전상은 인간살이 모든 일이며, 사람들이 나쁜 생각에 빠지거나 무엇인가에 집착·몰두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상 차지 신은 그런 전상을 관장하는 신이다. 삼공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신이 제주도 무당굿에서 점하는 위치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중요한 신 즉 일공(一公) : 무당이 모시는 신 [설문대할망]

두 번째로 중요한 신 즉 이공(二公) : 재수의 신 [삼승할망의 세 아들]

세 번째로 중요한 신 즉 삼공(三公) : ‘전상’ 차지 신 [가믄장아기]

여기에서 일공과 이공은 사람들에게 도움되는 힘이며 사람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보탬이 되는 힘으로 자리매김 되는 비하여 삼공은 그다지 두드러진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삼공[가믄장아기]을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지하는 운명의 신”,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여신”으로 자리매김하는 설이 널리 유포되고 있어 여기저기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6 이렇듯 삼공에 대한 설명은 다양한데다가 종합하기 어려워 보인다. 삼공본풀이를 다시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삼공본풀이, 가믄장아기의 사연

“옛날 강이영성이라는 사내 거지는 윗마을에 살고, 홍은소천이라는 여자 거지는 아랫마을에 살았다. 두 거지는 마을을 찾아 얻어먹으러 가다가 길에서 만나 부부가 되었다. 거지 부부는 얼마 있다가 딸을 낳았다. 딸의 이름을 은장아기라 지었다. 거지부부의 살림은 조금 나아지고, 다시 딸을 낳았다. 둘째 딸의 이름을 놋장아기라 지었다. 다시 막내딸을 낳고 가믄장7아기라 이름을 지었다.

가믄장아기를 낳자, 하는 일마다 운이 틔어 거지 부부는 거부가 되었다. 거지 부부는 태평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호강에 겨워 딸들의 효심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큰딸과 둘째 딸은 부모님 덕에 잘산다고 효심을 나타내었다. 그런데 막내딸 가믄장아기는 “부모님 덕도 있지만, 내 배꼽 밑의 선그뭇(배꼽에서부터 음부 쪽으로 내리그어진 선) 덕에 잘 산다”고 대답하여 불효하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집에서 쫓겨난 막내딸은 들판을 가다가 마를 파는 마퉁이 삼 형제를 만나 그들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다. 마퉁이 삼 형제의 마음씨를 보니, 큰마퉁이와 둘째 마퉁이는 사납고, 막내 마퉁이는 착했다. 가믄장아기는 막내 마퉁이와 부부가 되어 마를 파먹고 사는데, 마 파던 구덩이에서 금덩이와 은덩이가 쏟아져 나와 일약 거부가 되었다.

한편, 가믄장아기를 내쫓은 부모는 갑자기 장님이 되고 재산을 탕진하여 다시 거지가 되었다. 부모가 장님 거지가 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가믄장아기는 남편과 의논하여 거지들을 위해 백 일 동안 잔치를 열어 부모를 찾기로 하였다.

팔도의 거지들이 다 모여드는데, 맨 마지막 날에 장님 거지 부부가 찾아 들어왔다. 그 부부가 자신의 부모라는 것을 안 가믄장아기는 장님 거지 부부를 안방으로 모셔 앉히고 술을 권하며 자기가 가믄장아기임을 알렸다. 부부는 그 말에 깜짝 놀라며 받아든 술잔을 덜렁 떨어뜨렸고 그 순간 눈이 밝아졌다. 그 후 부모는 가믄장아기와 함께 잘살았다.”8

현용준이 요약한 삼공본풀이다. 여기에서 가믄장아기가 바로 ‘전상’ 차지 신인데, 그의 탄생과 더불어 부자가 되었음에도 거지 부부는 그를 버렸고, 그가 버려짐과 동시에 거지 부부는 시력과 부를 동시에 잃지만, 그가 연 거지 잔치 덕에 시력과 부를 동시에 회복하게 된다.

시련을 겪지만 그 시련을 밑거름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푸는 존재가 된 가믄장아기와 유사한 신격들은, 우선 한국 무교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고, 세계 여러 문화권의 여러 종교 속에서도 상당수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인지 현용준은 이 이야기를 이루는 화소(話素)들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마 구덩이에서 금덩이가 나와 거부가 되는 삽화(揷話)는 「서동설화(薯童說話)」에 보이며,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자신의 운복 때문에 잘산다는 내용은 ‘내 복에 산다’형 민담과 흡사하다. 또한 거지들을 위한 잔치를 열어 부모와 상봉하고 부모가 눈을 뜬다는 삽화는 「심청전」의 결말과 유사하다. 이와 같은 점에서 이 본풀이가 상대 서사문학 및 고대소설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이 주목되고 있다.”9 요컨대 가믄장아기 이야기는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믄장아기 이야기만이 가진 특성은 무엇일까?

거지 집안 이야기가 일상 속의 틈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하다

가믄장아기 이야기는 거지 집안 이야기다. 이러한 점이 가믄장아기 이야기의 두드러진 특징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한국 무교의 경우, 거지가 신이 된 이야기가 흔하지 않으니, 거지 집안 이야기가 별나 보일 수도 있으나, 신격 치고 시련을 겪지 않는 존재는 없다보니 가믄장아기가 거지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겪는 시련이 특별하게 보이질 않는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고난 끝에 부자가 된 가믄장아기가 부모를 찾기 위하여 벌인 일이 거지 잔치였다는 점은 다소 특별한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또한, 왕후가 된 심청이 맹인 잔치를 열었던 것과 비교하여보면 특별하다 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렇듯 가믄장아기 이야기만의 특성은 아니지만 효(孝)라고 집약할 수 있는 사람다움을 이루기 위하여 자기의 빈틈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즉 자기가 거지 집안 출신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지 않은 선택으로 본다면 가믄장아기가 거지 잔치를 연 것은 주목하여 볼 수 있는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이러한 선택을 가믄장아기가 차지하게 되는 전상이라는 자리에 대한 현용준의 설명과 연결시켜보자. 앞에서도 인용한 바와 같이 현용준은 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 평상시와 달리 술을 마구 먹거나, 해괴한 짓을 하여 일을 망치거나 가산을 탕진할 때 그 행위를 ‘전상’이라 한다.”10 현용준은 이 전상 때문에 사람들이 도둑질이나 노름을 그만두지 못하게 된다고 하기도 하였지만, 전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농업·공업·상업 등 어떤 직업에 집착·몰두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현용준은, 그러한 차원에서, 전상이 일상에 끼치는 영향이 마치 전생 인연 같다고 설명하였던 것이다.11 이는 전상이 사람의 일상의 성격을 규정하는 결정적 조건이라는 말에 다름아니다. 그런데 현용준은 굿을 통하여 “나쁜 ‘전상’을 제거하고 좋은 ‘전상’으로 행운이 오도록 기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때 주인공은 가믄장아기 즉 삼공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삼공이 차지하게 되는 것은 “평상시와 달리 술을 마구 먹거나, 해괴한 짓을 하여 일을 망치거나 가산을 탕진”12하는 행위 즉 전상인데, 이는 겉보기에는 구차(苟且)하다거나 비루(鄙陋)하다거나 남루(襤褸)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행동이다. 이것을 차지한 삼공은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전상을 “문자 그대로 인간살이 모든 일”13이라 하였던 것을 상기하여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모든’이라는 낱말에 주목하여볼 필요가 있다. 이 ‘모든’에는, 나쁜 전상도, 좋은 전상도 다 포함될 것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일상에는 멋진 것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일상이 구차하거나 비루하거나 남루할 것이다. 그것이 전생 인연이든, 부모님이든, 물적 조건이든 간에, 외부의 무엇인가에 의하여 규정된 일상이 티없이 아름답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일상을 빚어내는 전상을 차지한 신이 일상에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고 남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상’ 차지 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 속의 틈을 긍정하게 하는 신격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전상이 사람들로 하여금 “농업·공업·상업 등 어떤 직업에 집착·몰두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주장이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현용준의 설명은 ‘전상’ 차지 신이 사람을 뭔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도록 만드는 힘으로 생각하게 하기도 하지만, 생각의 방향을 조금 돌려보면, 그 신은 농업·공업·상업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그러니까 놀고 먹는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일상 속의 틈을 ‘보호’하는 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상’이 전생(前生)이고, ‘전상’ 차지 신은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집착·몰두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전생의 업에 의해서이건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 의해서이건, 각자의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결정력이 자기의 일상 속의 틈을 보호해주는 힘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면 옛날 제주도 사람들은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을 듯하다. 사진출처 : Robert Linder

옛날 제주도에서 무당굿에 의지하여 살아갔던 사람들의 일상은 지금 여기의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 가운데 일을 선택하여 할 수 있었던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전생의 업에 따라 직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태생 즉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냐에 따라 자식의 직업이 결정되다시피 하였을 것이다. 부모가 누구며 어떤 일을 하느냐가 자식의 직업 결정에 끼치는 힘이 거의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전상’ 차지 신은 그런 결정력을 의인화한 것일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결정력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 사람들은 이러한 결정력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결정력 자체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강한 압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때 이런 압박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힘이라고 스스로 규정하는 것은 이런 압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자기를 압박하는 힘을 자기를 보호해주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지금 여기의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할 듯하다. 이에 비하여 옛날 제주도 사람들의 삶은 어떠하였을까? 앞서 말한 결정력이 자기의 일상 속의 틈을 보호해주는 힘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면 옛날 제주도 사람들은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을 듯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상은 품위있고 매력적이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글쓰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일상을 구차(苟且)하다거나 비루(鄙陋)하다거나 남루(襤褸)하다고 표현한 것을 과장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런 표현으로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 소아병적(小兒病的)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일말의 진실조차 없다고 단정하기는 주저된다 하겠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전상’ 차지 신이 된, 거지 부부의 딸인 가믄장아기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지하는 운명의 신”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고 하는데, 현용준은 전상이 일상에 끼치는 영향이 마치 전생 인연 같다고 설명하였다.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이 잘못된 것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인간이 견뎌내는 일상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하여 현용준의 설명은 전생 인연이라는 말을 동원하여 일상들이 사람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하여 빚어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전상’ 차지 신이 사람들의 일상을 그저 결정짓기만 하는 신이었다면 그가 제주도 무당굿의 제3공으로 등장할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 그는, 운명을 정하여주는 신으로 표현되지만, 정해진 운명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일상을 긍정하고 숨 쉴 수 있는 틈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도록 자리매김된 존재였을 듯싶다. 사람들은 굿이라는 종교의례에 참례하는 것을 기회로 숨을 크게 쉴 수 있는 틈을 확연히 체험하였을 것이며, 아직 무교가 일상적이었을 시대에는 개인적으로 행하는 자잘한 무교 의례에 힘입어 매일 조금씩이나마 숨 쉴 틈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직업 선택의 자유는 법으로도 보장되어있으며, 자식이 부모의 직업을 승계하도록 강요하는 관행도 소멸되었고, 자식이 부모의 직업을 어쩔 수 없이 승계하도록 하는 물적 조건들 또한 현저히 힘을 잃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자본주의가 전생 인연이나 부모 혹은 물적 조건 못지않게 사람의 행위와 선택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에서 사람들의 일상은 무한히 자유로울 것 같지만 철저하게 자본주의의 작동기제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 작동기제에서 느끼는 공포는 사람을 자본주의 만능 사상으로 몰아넣기 십상이다. 예컨대 ‘이생망’ 즉 이번 생은 망했다는 속어가 바로 그런 사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사상은 자유의지가 발휘될 틈이 전혀 없다고 보는 일종의 허무주의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허무주의는 자본주의를 맹종하는 삶의 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듯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자본주의가 세계에 대하여 완전한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관리되는 자본주의적 일상 속에도 자유의지를 펼칠 수 있는 틈은 있는 듯하다. 그런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맹종하는 삶의 방식으로 빠져든다. 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

지금 여기의 사람들이, 옛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제주도 무당굿을 일상의 일부로 여길 필요도 없고, 여길 수도 없을 것이다. 세계의 변화가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관리되는 느낌으로 휩싸인 지금의 자본주의 세계를 향하여, 혈연과 물적 조건과 사회적 조건에 지금의 우리가 자본주의에 결박되어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결박되어 있었던 시대가 전할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빠짐없이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지금 못지않게 일상의 삶이 결정되어있었던 상황 속에서, 신격에 의지해서일 망정, 일상 속에서 틈을 터서 사람들이 숨쉴 수 있도록 하려 하였던 시도가 담겨있는 삼공본풀이를 보면서,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에서도 틈을 찾으려는 시도를 그만두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낙관적 태도를 전제로 할 것이고, 낙관은 ‘이생망’이라는 회의의 언어를 우회하여 대안적 공동체의 기본이 되어줄 것이다.


  1. 제의에 포함되어있는 한 단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공본풀이’ (집필 : 현용준)

  3. 네이버 지식백과에 수록된 ‘감은장애기’는 제주도 무당굿의 일부분인 ‘삼공본풀이’의 내용을, 생략 없이 가급적 그대로 살리고 있으면서도, 거기에서 제주도 만의 색채를 많이 빼서 널리 읽을 수 있는 읽을거리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주도 만의 색채를 알려면, 최소한 아래 소개하는 현용준의 요약과 비교해 가면서 읽거나, 제주도 무당이 노래한 삼공본풀이 전체를 받아적어 정리한 텍스트와 비교해 가면서 읽어야 할 듯하다.

  4. [네이버 지식백과] 감은장애기 (문화원형백과 새롭게 펼쳐지는 신화의 나라, 2004.,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공본풀이’ (집필 : 현용준)

  6. 뉴제주일보 ‘세 번째 제주여신의 이름을 인용한 ‘가믄이오롬’’ (2023.06.01.) 참조.

  7. ‘가믄’은 ‘검은’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인 듯하다. ‘장’은 장식(裝飾) 즉 꾸밈을 뜻하는 말의 줄임인 듯하다. 이와 같은 추정이 맞다면, 가믄장아기는 검은 색으로 꾸민 아기라는 뜻이 될 것이다. “큰딸은 은그릇에 밥 먹여 키워서 ‘은장아기’가 되고 둘째 딸은 놋그릇에 밥 먹여 키워서 ‘놋장아기가 되고 셋째 딸은 나무 바가지에 밥 먹여 키워서 ’가믄장아기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널리 통용되고 있기는 한데, 이런 이야기에 아쉽게도 ‘장’의 의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딸려 있지 않아, 위와 같이 추정하여 보았다.

  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공본풀이’ (집필 : 현용준)

  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공본풀이’ (집필 : 현용준)

  10.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공본풀이’ (집필 : 현용준)

  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공본풀이’ (집필 : 현용준) 참조.

  1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삼공본풀이’ (집필 : 현용준)

  13. [네이버 지식백과] 감은장애기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