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부터 먼저 탈성장하겠습니다

세계 각국 정부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탄소배출을 급격하게 줄이겠다고 약속하면서 동시에 탄소배출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탄소배출이 실질적으로 감축되는 시점은 무한하게 지연되고 있다. 그 속에서 한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특히 물질조건과 행복을 동조화하는 수 많은 개인들이 어떻게 탈성장을 선택할 것인가?

2022년 말에 출간된 그레타툰베리의 『기후책(The Climate Book)』은 기후위기에 대한 담론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된 교과서 같은 책으로 보였다. 툰베리는 더 이상 기후위기에 관한 비슷비슷한 책을 이젠 그만 쓰고 이 책을 끝으로 탄소 감축을 ‘실천’하자고 말하는 듯했다. 그만큼 과학, 사회, 경제, 정치 등 전영역에 대해 다루고 있었고 함께 한 각 분야 전문가들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한다. 당분간 어떤 기후에 관한 저서도 이 책이 다루는 영역을 벗어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철학자들은 단지 지금껏 세계를 해석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를 변혁시켜야 할 때이다.”와 같이 기후학자들은 지금까지 기후변화가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고 탄소감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연구해 왔다면, 이제는 탄소감축을 시작할 때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탈성장 이외에 대안은 없다

그레타 툰베리 저, 『기후책』(김영사, 2023)

기후위기로부터 인류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사회는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탄소배출량은 철저하게 경제성장과 동조화되어 있다. 탄소 배출량 증가와 경제성장이 비례한다는 것이 현실이고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면서도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아직까지 증명된 적이 없다. 탄소와 경제성장의 동조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업과 관료들은 대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존재들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본인들은 진심으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을까?

따라서 탄소배출을 감축한다는 것은 결국 ‘탈성장’ 이외에 어떠한 얼터네이티브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화학을 전공한 마가렛 대처가 살아온다면 ‘There Is No Alternative’ 라고 탈성장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유일한 해법은 탈성장밖에 없다는 생각에 이르고 나면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빠지고 말 것이다. 태어나서 한번도 자신의 집이 부자집이라거나 늘 돈이 더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아 온 자들이 여기서 물질 소비 수준과 에너지 사용을 더 줄여야 한다니, 대체 무엇을 어디에서 줄여야 할까? 더 허리띠를 졸라맨 세상에서 과연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또한 탈성장을 받아들이고 가난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더라도 탈성장 이론에서 말하는 ‘좋은 삶’의 조건들을 갖추는 건 너무나 어렵다. 스마트폰을 최신형으로 바꾸거나 철마다 해외여행을 다니는 건 쉽다. 친구 한 명을 더 사귀는 것이 어찌 람보르기니 한 대를 사는 것보다 쉬울까?

툰베리의 글을 읽으면 현실 속에 절망과 파국은 희망보다 훨씬 가깝게 와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항공산업에 대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현재 항공산업 부문에서 배출되는 탄소 배출량은 공식적인 계산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이 1년에 몇 억 톤의 탄소를 배출하여 1인당 평균 배출량이 얼마다 라는 바로 그 배출량의 계산식에 항공기가 서울과 도쿄, 서울과 뉴욕을 날아다니며 내뿜는 그 막대한 양의 탄소는 아예 계산에서 제외한다고 한다. 궁금한 것들을 Chat GPT에게 물어가며 몇 가지 계산을 해보게 되었다.

탄소를 줄이자며 탄소배출을 장려

· 첫번째 질문 : 서울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때 1인당 몇 리터의 항공유를 소비합니까?

· 답은 ‘한 승객당 603리터 정도의 연료를 소비하게 됩니다.’

필자는 대체로 한 달에 한 번 주유소를 가며 기름통을 가득 채우면 60리터, 9만원 어치의 휘발유를 주유한다. 그런데 12시간 동안 무게 350톤짜리 보잉777이 서울에서 뉴욕까지 편도로 날아갈 때 1인당 603리터의 연료를 소비한다. 왕복 비행에는 1200리터 이상이 소비된다. 이는 중산층 가정이 1년 동안 사용하는 휘발유보다 더 많은 화석연료를 단 한 번의 왕복 여행으로 소비한다는 말이다. 탄소배출량에 포함도 되지 않으면서 말이다. 휘발유는 1리터는 대략 1600원. 왕복을 위해 필요한 연료 1200리터는 기름값만 190만원이다. 여기에 기장, 스튜어디스의 임금, 2번의 기내 식사와 중간중간 제공되는 간식과 공항 사용료는 대체 얼마를 더 포함해야 할까? (물론 항공사는 1리터에 1600이 아닌 7~800원에 공급 받는다. 세금을 감면해 주기 때문이다.)

· 두번째 질문 : 보잉777의 1회 항공당 감가상각비용은?

· 답은 ‘1회당 항공기의 감가상각 비용은 대략 $35,918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물류와 인적 이동을 원활하게 만들면서 경제가 성장했듯 자본주의는 물류와 인간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항공산업에 보조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사진출처 : Austin Zhang

최근 환율로 계산하면 5000만원 정도 된다. 보잉777의 승객 정원은 317명이므로 1인당 16만원에 달한다. 왕복으로 계산하면 32만원이다. 따라서 현재 스카이스캐너에서 서울-뉴욕 왕복 요금인 바캉스 시즌 220만원, 비수기 109만원은 도저히 불가능한 금액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봉사단체가 아니고서는 말이다. 공항 운영과 인건비, 이윤, 광고비를 고려하면 300만원이 원가일 항공권 가격이 그것의 70%, 30%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것은 면세유와 고용 유지를 장려한다며 지급되는 각종 보조금을 통해 정부가 항공사에 막대한 이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2020년 한해 40조원의 보조금을 항공사 지원을 위하여 지출했다. 항공 산업은 박정희의 경부 고속도로가 물류와 인적 이동을 원활하게 만들자 경제가 성장했듯 자본주의는 물류와 인간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항공산업에 보조금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집과 마을에 머무는 것보다 도쿄나 뉴욕에 관광을 가서 쇼핑도 하고 밥도 사 먹어야 돈이 돌고 경제가 산다. 나아가 돈이 있으니 역시 행복하다는 신화도 이어나갈 수 있다. 괌정부는 대한항공을 이용하여 괌으로 여행을 오는 관광객 한 명마다 10만원씩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10만원을 투자하면 더 많은 돈을 괌에서 소비하니 짭짤한 투자인 셈이다.

오른손은 탄소배출을 감축한다고 약속하면서 왼손은 탄소배출 산업에 공공자금을 퍼붓고 있다. 대체 탄소배출을 언제부터 줄이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수능 공부의 계획만 세우고 있는 한심한 학생에게 공부 시작은 언제 할래? 라고 묻고 싶다. 당뇨병 진단을 받고서도 오늘까지만 초콜릿을 먹고 내일부터는 끊겠다고 말하며 20년째 매일 단것을 먹고 있는 환자와 무엇이 다른가? 그는 진심으로 그래도 자신은 장수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당장 보잉777 운행을 금지하지는 못할망정 보조금을 지급하는 모습을 보며 미시마 유키오가 다자이 오사무의 데카당스를 언급하며 ‘규칙적인 생활과 냉수마찰로 해결할 문제를 문학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해결이 안’ 된다며 ‘나으려고 하지 않는 환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아픈 게 아니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현재 인류는 스스로가 아프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저부터 탈성장하겠습니다

툰베리의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최상위 선진국 사람들처럼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행복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문장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중국 사람 정도는 살고 싶어하고, 중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 정도는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나머지 한국 사람 수준의 물질적 소비를 할 때까지는 행복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듯하다.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 일본 사람은 미국 사람, 미국 사람은 자국의 더 잘 사는 사람처럼 물질 소비를 하기 전까지는 쉬지 않고 돈을 벌겠다고 각오를 한다. 툰베리는 “따라서 선진국에 사는 우리들이 검소하게 살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적고 있다. 뉴욕커, 파리지엥느, 강남스타일 말고, 선진국 백성들이 먼저 디그로쓰 스타일을 만들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상복합에 살면서 슬리퍼 신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브런치를 먹는 걸 부러워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이다. 선진국의 사람부터 땅을 딛고 자급자족하는 스타일이 선망의 대상이 되게 해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은 선진국에서 사는 우리를 보고 있다. 우리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도 꼭 그렇게 하고 싶다며 부러워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우리들부터 물질 소비로부터 벗어나 행복해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들 모두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의심스럽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필자는 신승철 선생님께서 어느 날 마치 종교 사제의 독백처럼 ‘저부터 탈성장하겠습니다’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중세시대에 먼저 이성에 눈뜬 자부터 한명씩 두명씩 근대로 탈주를 시작했듯, 먼저 눈 뜬 자부터 탈성장으로 탈주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회혁명보다 앞서 누군가는 항상 혁명 이후의 삶을 이미 살고 있지 않았겠는가?

두더지

쌍둥이를 낳아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서로를 별명으로 부른다 하여 나를 상징할 수 있는 동물을 찾다가, 나는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살고 있는 사람 같아 두더지라고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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