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적연구방법을 통해 살펴본 영케어러의 돌봄과정] ④ 연구참여자3의 돌봄 경험

이전 글에서는 여섯 명의 영케어러들에 대한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이번부터는 본격적으로 ‘질적연구방법을 통해 살펴본 영케어러의 돌봄과정’에 대한 세 번째 연구참여자의 돌봄경험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 글에서 소개하는 참여자들의 익명성과 특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신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소개하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특정성이 두드러지는 부분은 언급하지 않거나 언급하더라도 조금씩 다른 정보들로 대체하여 기술하였다.

1. 참여자3의 상황

힘들어도 남들하고 똑같이 잘 사는 척 해야 되고 그래서 주변에 얘기하지 않았다. 사진출처 : engin akyurt
힘들어도 남들하고 똑같이 잘 사는 척 해야 되고 그래서 주변에 얘기하지 않았다.
사진출처 : engin akyurt

참여자3은 중학생 때부터 집에서 치매 할아버지를 모시기 시작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자영업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학생이었던 참여자3이 할아버지 돌봄에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어려서 오히려 돌봄 받아야 할 나이에 돌봄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돌봄 행위는 낯설었고, 형제자매도 없는 상황에서 부모님이 안 계실 때는 본인이 할아버지의 보호가 되어야 했다. 자신과 가족의 모든 생활이 할아버지 돌봄을 중점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참여자3의 돌봄은 대학입시를 시작하기 전이었던, 할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시다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당시 인터뷰 시점이 참여자3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두 달이 조금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참여자3은 종종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참여자3의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2. 인터뷰

1) 또래와 다른 나

참여자는 본인이 또래들이 가족 내에서 수행하는 역할과는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본인의 상황에 대해 친구들과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에 괴로워하였다. 특히 청소년기의 경우는 남들과는 다르다는 사회적 위치나 가족적 역할에 대해서 예민해지는데, 이런 점들로 인해 가족돌봄 청소년들은 자신의 상황을 쉽게 공개하기 어렵다.

어…… 되게 말하기… 그때는 어렸을 때라서, 지금이면 그냥 편하게 ‘할아버지가 아프셨어서, 그냥 어렸을 때 간병을 했었다’라고 지금은 얘기할 수 있는데 그때는 그게 되게 창피하다거나 남들과 같지 않다. 그때는 청소년기 때는 남들과 다른 게 되게 부끄러운 걸로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얘기 못하고 숨기고 했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집에도 친구들이 괜히 안 부르게 되고 약간 그런 거? 튀면 안 되고. 남들과 똑같이, 힘들어도 남들하고 똑같이 잘 사는 척 해야 되고 그래서 얘기 안 했던 게 큰 것 같아요.

문제는 단순히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데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상황을 숨긴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와 같이 취약계층을 ‘발굴’이 아니라 신청주의 중심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에 지원 대상자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밝혀야 한다. 그러나 참여자3과 같은 가족돌봄 청소년의 경우, 자신의 상황을 밝히는 것에 기피하고 낯설어한다. 소위 말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원처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발굴작업을 하지 않는 이상 가족돌봄 청소년을 발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가족돌봄 청소년을 지원하기 위해선 세세한 발굴작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2) 가족 내 정적(靜寂)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참여자3의 가족은 치매 할아버지를 모시게 되었고, 상태가 점차 악화되자 24시간 곁에서 누군가가 돌봐야하는 상황이었다. 돌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연히 어린 참여자3 또한 돌봄에 투입되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집안의 모든 대소사는 물론 가족원들 모두 돌봄으로 일과를 보냈다. 즉, 가족들의 중점은 당사자의 일과가 아닌 돌봄 대상자에게 맞춰지기 시작했다.

전에는 가족들끼리 대화할 시간이 없고, 대화 토픽이 이제 다 할아버지 위주로 돌아갔었으면,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그 후에는 조금 더 서로를 돌아보고 서로에 대해서 얘기하고 하는 시간이 많아졌던 것 같아요. (중략) 이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제 많이 없어졌죠. 많이 가족들 관계가 좋아졌죠.

돌봄이 장기화되면서 가족 내 정적 또한 길어지고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곧 간병학대나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 
사진출처 : Boris Hamer
돌봄이 장기화되면서 가족 내 정적 또한 길어지고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곧 간병학대나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
사진출처 : Boris Hamer

인터뷰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참여자3은 돌봄이 종료되면서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가족들 관계가 좋아졌’다고 고백하듯이 말했다. 참여자3의 경우, 가족은 다른 참여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평하게 돌봄이 분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이 돌봄으로 인한 부담과 어려움을 경험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돌봄으로 인해 집안의 ‘정적(靜寂)’이 생겼다고 표현하고자 한다. 돌봄으로 인해 집안 내 분위기가 위축되고 우울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족 내에서 ‘돌봄 부담’이 돌봄 인력 부족 또는 경제적 어려움 외에도 돌봄자 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해당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가족 내에서 아픈 가족원이 발생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며, 밝은 분위기를 지속하기 어렵다. 하지만, 돌봄이 장기화되면서 가족 내 정적 또한 길어지고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곧 간병학대나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할 수도 있다. 더 이상 돌봄이 사적 영역에서 가족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지적할 수 있는 사례이다.

3) 돌봄을 경험한 뒤 정책과 제도에 관심

한편, 돌봄경험을 통해 긍정적으로 승화된 부분도 있었다. 참여자3의 경제상황은 크게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돌봄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그리고 비교적 온라인으로 정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연령대인 참여자3은 치매 할아버지가 받을 수 있는 지원정책이나 복지제도를 적극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복지혜택을 받은 경험을 통해서 삶과 복지정책이 크게 맞닿아 있음을 느꼈다고 인터뷰했다.

사회복지나 사회나 그런 문제에 관련된 꿈을 꾸게 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영향이 좀 컸어요. 이제, 예를 들면, 할아버지 장애등급 판정을 받을 때도 거의 할아버지가 거동을 못하시는데 장애 등급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진짜 등급이 높게 나와야 받을 수 있는 혜택들도 많고 치료비 지원도 많이 되고 하는데, (중략) 이제 할아버지 장애등급 판정이 바로 높아져서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거를 보고 나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정책이나 그런 게 생각보다 내 삶과 되게 많이 연관돼 있다는 거. 그래서 진로에 영향을 준 것도 있어요. (중략)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그리고 또 그런 습관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투표를 하거나 선거철이 되면 그런 전단지 같은 걸 뿌리잖아요. 그러면 이제 복지 쪽에서 무슨 정책을 펴는지를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 혜택이 좀 더 많이 돌아가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그는 돌봄 과정 속에서 지원과 혜택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사회의 복지제도나 지원정책이 ‘내 삶에’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하였다. 나아가 돌봄이 종료되었음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진로 탐색이나 후보자의 선거공약 등을 살펴보는 등 지속적으로 복지정책을 살펴본다고 인터뷰했다. 이러한 과정과 행위는 돌봄자들이 자신의 돌봄을 경험한 뒤에도 이어지는 정동(affect)적 맥락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3. 결론: 연구참여자3의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를 마친 참여자3은 조금 후련한 얼굴이었다. 이번 인터뷰는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돌봄을 수행해온 가족돌봄 ‘청소년’의 경험을 분석한 글이다. 인터뷰를 통한 분석 지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가족돌봄 청(소)년의 대상, 범위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는 사례였다. 참여자3은 동거가족들과 함께 돌봄을 분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에 대한 부담을 느꼈고, 개인의 삶에도 어려움이 생겼다. 이는 가족돌봄 청소년 또는 청년이 함께 돌봄을 수행하는 가족원이 있음에도 여전히 돌봄에 대한 부담과 이로 인한 삶에 대한 영향이 미치고 있음을 시사하는 사례이기도 한다. 따라서 가족돌봄 청(소)년이 무조건 독박돌봄을 한다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 아닌 가족원들과 함께 돌봄에 동원되어도 삶에 영향이 있다는 점은 강조한다.

또한, 돌봄 경험이 사회참여로 연계되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참여자3의 돌봄 경험은 사회적 관심과 정치참여 등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기존의 가족돌봄 청(소)년들이 돌봄을 경험하게 되면서 돌봄에 대한 재의미화, 자기 성숙 등과 같이 인식적인 차원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를 느꼈다고 인터뷰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참여자3과 같이 일상 속에서 충분히 취할 수 있는 행동을 긍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가능성이 돌봄경험이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명아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젠더와 노인, 그리고 돌봄.
앞으로 다양한 가족과 젠더의 돌봄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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