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가까이] ⑦ 공동체가 언제나 거기 있을 거라는 착각

[지금 여기 가까이] 시리즈는 단행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삼인, 2017)의 내용을 나누어 연재하고 있다. ‘저성장을 넘어 탈성장을 바라보는 시대에,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지금, 여기, 가까이’에서 찾고자 하는 이야기다.

그때 그 공동체는 어디에 있을까?

대학에 들어간 후 문학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시를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나름 시집을 끼고 다니는 문학 소년이었기에, 그래도 열심히 쓰는 편이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합평회 할 때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고 당장 글 쓰는 것을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가장 조마조마한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속엣것을 내보이고, 내밀한 것을 들키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문학회에 속한 학생들 사이에 꽤나 날카롭고 비판적인 대화가 오갔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글을 교정교열하고 편집하는 선배의 목소리가 저의 마음뿐만 아니라 몸을 칼로 베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저의 글을 합평회에 내놓고 나서 여러 가지 지적을 듣고 나서 뒤풀이 자리에서 술 한 잔 마시고 나면, 지옥에 갔다가 유턴을 해서 천국으로 온 기분도 들었습니다. 당시 실천문학, 참여문학이 대세였던 관계로 문학회 사람들은 대부분 리얼리즘을 추구하였는데, 마음에 관한 묘사가 디테일하거나, 근대사회 또는 도시를 찬양하거나, 조금이라도 유미적인 색채를 띤 작품은 발 디딜 곳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품들이 비판과 냉정, 객관적인 판단의 잣대 위에서 갈기갈기 찢겨나갔던 것이 합평회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뒤풀이 자리는 그 어떤 자리보다 재미있고 발랄했지요.

그러던 문학회가 와해되고 해체되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정치적 논쟁 때문이었습니다. 90년 당시 노동문학과 민족문학이라는 양대 산맥에서 중립지대는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합평회 역시도 상호비판의 와중에 금방이라도 난투극이 벌어질 것 같은 지경이었습니다. 서로에 대한 비판은 너무나 날카로웠기에 공동체는 더이상 봉합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문학회라는 공동체가 미리 전제되어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나이브한 것이었습니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속시키고자 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면서 분리의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역시 그 일로 문학회를 그만두었습니다.

비판담론은 공동체가 미리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비판이 보다 나은 성숙과 발전의 방향성으로 향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사진출처 : Julia Larson
비판담론은 공동체가 미리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비판이 보다 나은 성숙과 발전의 방향성으로 향할 수 있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사진출처 : Julia Larson

그때 생각을 하면, 비판담론의 한계를 절절하게 느끼게 됩니다. 비판담론은 서로를 공감하거나 교감하는 것이 아니라, 날카롭게 서로를 대함으로써 분열로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지요. 당시의 비판담론은 공동체가 미리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비판이 보다 나은 성숙과 발전의 방향성으로 향할 수 있다고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속해 있던 문학회는 서로에 대한 비판이 분열로 향했고, 더이상 공동체적 질서를 유지할 수 없는 날카로운 입장 차이로 향했지요. 그리고 침묵과 우울, 냉소의 시간이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그날부로 시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요. 왜냐하면 시를 다시 쓰기에는 제가 너무 피폐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비판담론에 취약한 공동체

K씨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날카로운 지적과, 맺고 끊음이 분명한 효율적인 언행 등 합리주의자로 유명했던 친구입니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이나 사회적 맥락의 변화와 상관없이 “올바른 것은 올바른 것이다” 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신념의 잣대에 따라 세상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경향이 있었지요. 매우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86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떠올릴 때, 저는 습관처럼 K씨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에도 K씨가 자리에 참여해 있으면, ‘무슨 비판이라도 하러 온 것일까?’하는 생각에 적잖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 자신도 몇 번 얼굴을 붉힌 적이 있고, 몇 번 끝없는 언쟁을 하면서 서로를 비판했던 적도 있습니다.

최근 K씨의 가족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K씨의 팔에는 돌박이 딸아이가 안겨 있더군요. 그런데 저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K씨는 딸아이에게 모든 감각을 열어 수용하고 공감하는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즉, 딸바보 아버지가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모든 촉각과 감각을 열고 수용하고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마치 인민재판을 하듯이 정권에, 견해가 다른 그룹에, 동료들에게 비판을 쏟아내던 K씨의 모습은 거기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날 K씨가 아이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K씨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아이에게 대하는 것처럼 모든 감각을 열고 수용하고 공감하는 대화를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 세대의 청년시절을 장악했던 비판담론은 상대방을 타자로 보는 형태였습니다. 대화상대를 자신의 아이처럼 공감하고 교감하려는 생각은 거의 없었지요. 적어도 우리가 하나의 공동체에 몸 담고 있는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그렇게 무섭게 상대를 다그치며 비판의 칼을 휘두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공동체 감수성은 무디다 못해 거의 없다시피 했지요.

그 이유를 깊게 들어가 보면, 비판담론이 기반으로 삼던 헤겔의 변증법에 가닿게 됩니다. 헤겔의 변증법에는 인륜적 공동체가 언제나 미리 전제되어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것으로 나이브하게 서술되어 있지요. 즉, 정(正)에 대한 반(反)이 있다하더라도 합(合)에 도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비판과 부정, 모순과 대립은 공동체를 성숙시킬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현재처럼 1인 가구가 지배적인 삶의 유형이 되고, 공동체의 끈이 연약해진 상황에서 비판이나 모순과 대립은 곧장 공동체의 와해와 해체로 향하게 됩니다.

오늘날 날카로운 비판이나 논쟁이 오가는 자리를 마주치면, 사람들은 불편한 마음을 갖고 그 자리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지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공감하고 교감하고 감각을 열고 수용하는 아이를 대하는 태도처럼 자신을 대하는지, 그것이 아니라 비판하고 논쟁하면서 타자로서 자신을 대하는지 말이지요. 작금의 공동체들은 사소한 언쟁이나 마찰에도 사라질 수 있을 정도로 연약하고 갈등에 취약하기 때문에 돌보고 보호하고 북돋아져야 한다는 점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실천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실천이어야 합니다.

비폭력 공감 대화 속으로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2012, 한국NVC센터)에서는 대화상대를 비교하거나 평가하거나 폭력을 부추기거나 깔보거나 하는 일상의 대화법의 문제점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온건히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와 공감하는 태도 속에서 권유와 청유, 부탁, 배려, 감사, 교감, 돌봄, 사랑, 수용, 신뢰, 정서적 안정 등의 대화법이 가능하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제 자신이 굉장히 부끄러웠습니다. 일상의 대화 속에 숨어 있는 권력담화나 폭력과 증오의 논리, 경쟁심리, 혐오발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책입니다. 특히 상대방이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인정투쟁이 아니라, 차이와 다양성의 경우의 수의 일부로 상대방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언제나 중요하니까요. “너의 자리는 없어!, 너는 틀렸고 옳지 않아!”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그것을 듣는 사람들은 심리적인 궁지에 몰리게 되고 결국 폭력과 증오는 스멀스멀 종양처럼 뿌리를 내릴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자신의 아이에게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감각을 열고 수용하고 공감하는 대화를 한다면 어떨까? 사진출처 : William Fortunato
마치 자신의 아이에게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모든 감각을 열고 수용하고 공감하는 대화를 한다면 어떨까? 사진출처 : William Fortunato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고 교감한다는 것은 무척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과 엄청난 상냥함에 뭐든지 주고 뭐든지 할 것만 같은 감수성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랑이 싹트고, 욕망이 숨쉬고, 정동이 감싸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저의 경우에는 아내와 티타임을 갖거나, 서로 수다를 떨며 손을 잡고 걸어가거나, 시장에 들려서 장을 함께 볼 때는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고 교감하는 귀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희 두 사람은 비판담론이 지배하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서로 속에 숨어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온건히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상대방에 자리 잡을 곳을 배려해주는 비폭력공감대화는, 늘 저희 옆에 공동체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대화의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아내와의 관계가 성숙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동거 시절 때는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비폭력공감대화가 익숙지 않아서 많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연구실에 출근하면서 대화, 식사, 운동, 걷기, 작업, 휴식 등 함께 하는 영역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넓고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내와의 공감 대화는 색다른 효과를 발휘합니다. 저의 철학과 생각들을 삶의 스토리로 풀어쓰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책 속에는 그것을 읽어나갈 아내의 자리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독자가 아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지요. 그 점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부분입니다. 즉, 이 책 역시도 아내와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소재이고 비폭력 공감대화 과정의 성과라는 생각도 듭니다.

부처님의 자비의 구성주의

부처님의 공(空) 사상에 따르면, 그 사람이 아무리 화려한 언변과 지적인 구축물을 과시한다하더라도 그것의 토대는 무근거의 전제 위에 놓인 사상누각과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사상은 연기설(緣起說) 즉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먼저 제시합니다. 볼펜은 지금 책상 위에 놓여 있지만, 그 책상은 바닥 위에 있고, 바닥은 골목 위에 있고, 골목은 지구 위에 있고, 지구는 태양계 내에 있고 등등을 반복하다보면 자신이 “~은 ~이다”라고 확실히 단정할 수 있다고 여겼던 영역이 사실은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무근거의 전제임이 드러납니다. 동시에 공사상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은 것이 우선이라고 말합니다. 즉, 자신이 확실히 존재한다고 여기는 볼펜도 곧 사라질 것이며, 확실하다고 여기는 책상도 흙이 되고 심지어 공기 중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즉, 모든 것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에 기반하고 있다는 생각이 공이라는 개념입니다. 공사상만 생각하다보면 궁극의 허무로 향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는데도 확실하다고 여기고 자신을 과시했던 그 사람을 생각해보면, 저 자신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느낌도 듭니다. 저 역시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방랑객과도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그러나 궁극의 허무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필경사 바틀비〉와 같은 태도 말이지요. 필경사 바틀비는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소!”라는 말을 반복하며, 노동도 식사도 이사도 퇴거도 거부한 극중 인물입니다. 결국 바틀비는 궁극의 허무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이러한 궁극의 허무의 역설은 상대방이 무근거의 전제 위에서 필사적인 삶의 의지와 생명에너지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응시하게 합니다. 이에 따라 부처님은 자비심을 갖고 생명을 대하는 색다른 방법으로 궁극의 허무를 벗어나게 됩니다. 즉, 자비의 구성주의에 따라 무근거의 전제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하는 생명을 따뜻하고 보듬어 안는 색다른 삶의 방식이 그것입니다. 세상을 온화하고 따뜻하게 평화롭게 대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고, 궁극의 허무에서 자비의 구성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청년 시절 동안 저는 많은 사람들을 비판하고 궁지로 내몰고 냉소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왜 상대방에게서 작은 아이를 발견하지 못했을까? 왜 비폭력공감대화로 온건히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을까? 왜 생명의 몸부림과 안간힘, 절박함과 같은 모습을 응시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도 듭니다. 저는 부처님의 자비심처럼 삶의 궁극으로 가서 생각한다면, 저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생명평화의 세상의 약속은 아주 가까운 데 있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런 선택의 시점이 다가올 때 늘 최선의 선택은 늘 자비이며, 공감이며, 배려입니다. 공동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는 실천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 되고 공감대화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삶은 과정이며 진행형이기 때문에 아직 기회는 많습니다. 이제 저 자신이 달라져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변화는 슬며시 찾아올 것입니다.

구성적 실천의 신지평을 위하여

포스트모던 사상은 근대성의 의미, 가치, 진보, 이성 등의 공리들을 해체하였습니다. 그 해체가 주는 해방감이나 자유로움 등에 매료되었던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포스트모던 사상은 마치 벽돌더미가 쌓인 것처럼 분리되고 분해된 질서를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신자유주의와 공명하고 이에 협력하는 사상이라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규제완화와 화폐와 자본의 자유를 외치면서 기존 질서를 와해시키고 해체하려는 강력한 힘으로 나타났지요. 특히 공동체주의와 대결하는 자유주의, 개인주의의 질서였던 점이 드러났습니다. 어쩌면 공동체는 답답하고 보수적이고 간섭이 심하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지나간 이후, 우리는 고독, 소외, 무위, 외로움, 불안, 우울 등에 쌓인 개인이라는 주체성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고립무원의 이러한 개인의 탄생은 공동체의 돌봄, 사랑, 정동으로부터 완벽히 분리된 주체성이었습니다. 그리고 관계를 통해서 해결할 많은 부분을 소비로 해결하고자 하는 주체성이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화석연료 사용을 통해 개인이 점유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비폭력공감대화는 공동체를 미리 전제시킨 헤겔주의도 아니고,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포스트모던 사상도 아닌, 공동체를 구성하는 실천적인 과정에 주목하는 대화법입니다. 물론 대화방법을 통해서 공동체가 구성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상대방에 눈과 코, 귀 등 감각을 열기 위해서는 언어사용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 전반적인 교감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비폭력공감대화는 상대방의 자리를 내 안에 만들어놓고, 공동체가 늘 구성되는 과정을 설정하고, 공동체에서 많은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판짜는 사람으로서의 지위와 배치를 갖습니다. 보다 부드럽고 평화적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삶의 애환과 불안을 감싸 안는 실천이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우리는 비폭력공감대화를 통해 허무주의, 해체주의, 비판담론의 대안을 응시합니다. 즉, 구성적 실천의 신지평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은 작은 시작일 것이지만, 눈덩이 효과를 통해서 세상 사람들을 함께 바꾸어나가는 실천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비폭력공감대화의 가능성과 도전, 실험정신이 저를 새롭게 만드는 아침입니다. 아침이 늘 올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색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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