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산책] ㉑ 그래, 이제 나 없이 살아봐라

부암동 은행나무에 주민들 몰래 제초제를 주입한 사건으로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나무를 너무나 막 대하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그래, 이제 나 없이 살아봐라‘ 선언하고 떠나 버리면 어떡하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도시환경 속에서 어떻게 나무를 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나무는 ‘안전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내포된 위험요인’이 되면 ‘관련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몰래 제초제를 주입해 죽여도 되는 존재일까요? 사진 제공 : 강세기

지난 5월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이 미술관 외벽 부근에 있는 은행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언론매체 보도 이후 일주일 만인 6월 1일 미술관에서 올린 사과문에 따르면 은행나무가 ‘안전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내포된 위험 요인’이 되었기에 ‘관련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으나, 이 과정에서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어 사과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미술관 측을 비난하는 이유는 1992년 개관한 미술관보다 훨씬 이전에, 그리고 마을 주민 누구보다 먼저 또 함께 100여 년 넘게 살아온 은행나무를 합의 없이 사람들 몰래 죽여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과문에는 죽이고자 했던 생명에 대한 사과는 물론 은행나무에 15개 이상의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주입한 사실에 대한 언급조차 없어 더 큰 비난이 일고 있습니다.

사실 나무에 제초제를 주입하여 독살하려 한 사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가게 간판을 가려서, 주차에 방해가 돼서, 보호수 지정으로 인해 재산권 행사에 방해가 될까 봐 나무를 독살하거나 밤사이 몰래 베어버리는 사건들은 종종 보도되어 왔습니다. 죽이기까진 아니더라도 닭발 모양으로 과도하게 가지치기를 하거나, 나무 아래를 숨도 못 쉬게 포장으로 덮어버리거나, 나무에 꽁꽁 묶어둔 현수막이나 철사를 그대로 놔두거나 하여 나무가 죽지 못해 살아가게 만드는 일들은 주변에서 늘 일어나는 일이지요. 부암동 은행나무 사건을 계기로 나무들이 입장문을 낸다면 어떤 내용이 담길까요? 백 년도 못사는 것들이 어르신 나무를 해코지하다니 너희도 목졸림과 목마름과 호흡곤란 속에서 살아봐라, 어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한탄하겠지요?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단 삼일 동계올림픽을 치르겠다고 망가뜨린 가리왕산의 수백 년 된 수만 그루 거목들, 지금도 이 산 저 산에 케이블카 놓겠다며, 골프장 짓겠다며, 좀 더 빨리 가는 길을 낸다며 파헤쳐지고 베어지고 있는 나무들을 생각해 보면 아찔합니다. 만약 나무들이 ‘그래, 우리 없이 너희들끼리 잘 해봐라. 우린 더 이상 너희랑 안 산다’ 선언하고 모두가 떠나 버리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

베어지고 있는 나무들이 ‘우린 더 이상 너희랑 안 산다’ 선언하고 모두가 떠나 버리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 사진 제공 : 강세기
베어지고 있는 나무들이 ‘우린 더 이상 너희랑 안 산다’ 선언하고 모두가 떠나 버리면 어떤 세상이 될까요? 사진 제공 : 강세기

이 뜨거운 계절,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을 생각하니 아득하네요. 빌딩 숲 도시일지라도 나무 그늘 하나 없다는 상상을 하니 숨이 턱 막힙니다. 아,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산소를 뿜어주는 나무가 없으면 숨이 막히는 일은 상상이 아니라 그야말로 현실이 되겠네요. 나무가 없으면 생활용품도 가구도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채워지겠지요. 목재 고유의 촉감이니, 무늬와 색이니 하는 것들은 한때 나무와 함께 살던 시절에 누렸던 화려한 추억이 되어 꽃들과 함께 사라지겠네요. 종이는 어떻게 하지요? 책은 몰라도 화장지가 없으면 힘들 것 같은데요. 비가 오면 품어주고 날이 가물면 내어주는 물 저장 기능을 하는 나무가 없으면 어떻게 여름 폭우와 봄 가뭄을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산사태는 누가 막아 줄까요? 밤도 잣도 없고 당장 여름 복숭아부터 나무에서 나오는 과일도 못 먹겠네요. 과일이 문제가 아니겠군요. 참나무가 없어 도토리가 사라지면 청설모나 다람쥐는 어떡하죠? 나무 구멍에서 사는 하늘다람쥐, 딱따구리는 어디서 잘까요? 추운 겨울이 오면 땔감이 없어 큰일이겠네요. 석탄 석유가 있으니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지금 우리가 펑펑 쓰고 있는 석탄과 석유도 아주 오래전 나무들이 땅속에 묻혀 만들어진 것이니 먼저 나무들에게 고맙다고 해야겠어요. 보금자리를 내주고 생명 피라미드의 제일 기초가 되어 모든 생명의 먹이를 공급해 주는 식물의 주요 구성원인 나무가 없으면 지구 생태계 전체가 빠른 소멸의 길로 들어가겠지요. 부암동 은행나무 한 그루에서 너무 멀리 갔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번 부암동 은행나무 사건은 ‘차가운 도시 속에서도 자연과 무한한 우주적 공간에 대한 가장 순수한 시정을 토로하는 온기를 지닌 회화를 추구’하는 작가(환기미술관 홈페이지 소개글)를 기리는 미술관이 사람들 몰래 나무를 죽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는 점, 그리고 죽이고자 했던 생명과 그 생명을 둘러싼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사과가 없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생명은 살라는 하늘의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나무는 그 누구보다 하늘의 뜻에 순응하여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적응하여 사는 존재입니다. 이런 나무들을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환경 속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나무에 관한 의사결정은 나무 소유자가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부암동 사례와 같이 소유와 관리주체가 모호한 위치에 있는 나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편으로 나무 소유자에게 나무의 생사에 대한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해도 될까요? 100년 된 나무는 죽여서는 안 되고 60년 된 나무는 죽여도 되는 걸까요? 이와 같은 논의가 부암동 은행나무 한그루에서 시작하여 더디더라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나무들이 ‘너희랑 안 산다’ 선언하고 떠나가기 전에 말입니다.

강세기

빨리 이루고 많이 누리기 위해 무겁게 힘주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천천히 조금씩 가볍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풀과 나무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숲과 산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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