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즈를 지키기 위한 기독교적 반란 -『마그나카르타 선언』을 읽고

자기의 소유로 된 토지라 하더라도 빈틈없는 자기만의 것은 아니라는 것, 자신의 토지 안에서 남과 함께 사용해야 하는 공통재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상생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구약성경의 전통에서 말하는 인간과 삶의 거룩함을 실현하는 길이다. 이러한 신앙에 기반하여 공유지를 빈틈없이 사유화하려는 종획운동에 맞선 반란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듯이 차지하는 자들아! 만군의 야훼께서 내 귀에 대고 맹세하신다. “많은 집들이 흉가가 되어 제아무리 크고 좋아도 인기척이 없게 되리라. 포도밭 열흘갈이에서 술 한 항아리밖에 나지 아니하고 종자 한 섬에서 곡식 한 독이 가까스로 나리라.”

이사야서5:8-10

구약성경 이사야서는, 마치 이 땅에 홀로 거주할 것처럼 집을 연이어 차지하고 땅을 끊임없이 사들여 빈틈 하나 남기지 않고 혼자만의 소유로 삼으려는 지주들을 비판한다. 그들의 집은 흉가가 되고 그들의 땅은 황폐해질 것이라고, 지주들의 이와 같은 경제적 착취가 이스라엘의 멸망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구약성서로부터 사적 탐욕에 대한 경고는 계속 된다

미국의 역사가 피터 라인보우는 그의 저서 『마그나카르타 선언 –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에서, 1215년 영국의 존 왕을 강제하여 승인된 마그나카르타 선언은 인간 보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적 선언(대헌장)과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이들이 공유지를 사용하여 경제적 자급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경제적 선언(삼림헌장)이라는 두 개의 헌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전거로서 시대와 국적을 넘어 인용되는 마그나카르타 선언이 법률적 자유와 경제적 자립을 두 개의 헌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권을 보존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 역시 이 두 가지로 구성된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고 하겠다.

1215년 마그나카르타 선언 이후 토지가 없는 가난한 이들이 왕과 영주와 교회의 숲을 공유지로 사용하며 경제적인 자급을 유지하는 것은 누구도 침해하지 못할 당연한 권리처럼 존중되었으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6세기는 종교개혁으로 중세가 종말을 고하고 근세가 열린 시점이다. 영국 내에서의 종교개혁은 영국의 교회에 대한 로마교황의 지배권을 거부하고 스스로 교회의 수장이 된 헨리 8세가 주도했다. 헨리 8세는 가톡릭 교회의 소유였던 영국 내 수도원과 그에 부속된 공유지를 해체하여 영국의 신흥 지배 세력인 젠트리(Gentry)들이 땅을 차지하고 종획(Enclosure)을 통해 이익이 될 길을 열었다.

“노르위치에서 더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던… ” 으로 시작되는 저 문구는 1999년에 설립된 케트 기념관 문 앞에 걸려있다. 20세기의 마지막 해, 갑자기 케트를 기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노르위치에서 더 공정한 사회를 추구하던… ” 으로 시작되는 저 문구는 1999년에 설립된 케트 기념관 문 앞에 걸려있다. 20세기의 마지막 해, 갑자기 케트를 기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진 출처 : flicker

저자는 종교개혁을 빌미로 진행된 수도원의 해체는 국가가 지원하는 대대적인 사유화 작전이었으며 영국의 토지를 상품으로 만든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19세기 저널리스트 윌리엄 코벳(1763-1835)을 인용하여, ‘개신교에 의한 종교개혁을 토지 수탈(빈곤화의 원인)로 이해하는 동시에 마그나카르타 위반으로 규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종획을 통해 상품으로 전락해 버린 땅은 땅에 거주하는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는 마법과도 같은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종획에 의한 토지의 사유화가 진행되자 공유지에서 노동하여 자급을 유지하는 노동은 사유지를 침범한 범죄가 되었으며, 공유지를 사용하여 소박한 삶을 이어가던 여성의 노동은 해로운 것,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였으며 여성의 몸은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마그나카르타 선언의 자립정신이 토지 사유화로 무너졌다

공유지를 이용하여 자급할 권리를 빼앗기자 즉각적인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이 반란은 자주 종교적인(기독교적인) 성격을 가졌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반란이 1549년 7월, 이스트앵글리아에서 일어난 케트의 반란(Kett’s Rebellion)이다.

케트의 반란은 영국의 노르폴크(Norfolk)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 지역의 지주들이 토지가 없는 자들에게 공유지로 개방되어 있었던 숲에 울타리를 설치했는데, 수많은 세월 동안 그 숲의 공유지를 사용하여 가축을 기르며 자급해 오던 이들은 삶의 터전으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울타리를 파괴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불법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주들이 오랜 세월 모두에게 존중받아 온 마그나카르타 선언을 파기한 것이라고 보았다.

반란을 이끈 케트는 본래 반란자들이 처단하려 했던 지주였으나, 그는 자기 땅의 울타리를 허무는 반란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다. 반란은 한 달 반 정도(1549년 7-8월) 지속되며 왕의 군대를 맞아 승리를 거두기도 했으나 곧 진압되었고 지도자 케트는 체포되어 런던탑에 수용되었다가 그해 12월 7일 노르위치(Norwich) 성채의 벽에 매달려 교수형에 처해졌다.

케트의 반란은 실패했지만

반종획 운동에 맞선 영적인 승리를 위한 기도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반복된다. 
by Jacob Anikulapo 출처 : www.flickr.com/photos/thewaz/4917451655/in/photostream/
반종획 운동에 맞선 영적인 승리를 위한 기도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반복된다.
사진출처 : Jacob Anikulapo

비록 반란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반란자들은 마우스홀드Mausehold에 있던 한 오크나무 아래서 대안정부를 구성했으며 그들의 소망을 요구가 아닌 기도의 형식으로 희구했다. 저자인 피터 라인보우가 소개하는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그 어떤 사람도 더는 종획하지 못하기를 기도로써 희구한다. 셋째, 우리는 그 어떤 영주도 공유지에서 커머닝에 관여하지 않기를 기도로써 희구한다. 열여섯 번째, 우리는 모든 속박된 사람들이 해방되기를 기도로써 희구한다. 신이 그 소중한 피를 흘리시며 모두를 자유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만 세상에 존재할 것처럼, 집에 집을 이어 붙이고, 토지에 토지를 이어 붙이며 온 땅을 빈틈없이 소유하려는 자들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그 세상의 관리를 맡기시며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진실한 청지기가 되라고 명령하신(누가복음 12:42) 신의 뜻을 거스르는 자가 된다.

중세에 종말을 고하고 근세를 열어젖힌 세계사적 사건인 16세기 종교개혁이 마그나카르타 선언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가난한 자에 대한 수탈을 가속화하고 인간과 자연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신의 창조물이 아닌 돈으로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를 심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 민망하다. 그러나 삶의 터전인 토지에 대한 공유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케트의 반란과도 같은 많은 반종획 운동이 기독교 신앙을 근거로 일어났고 또 현재의 무자비하고 무차별적인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그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맘몬주의에 맞선 영적인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 꾸려진 농성장에는 국내 거대항공사 아시아나 기업의 하청의 하청기업 청소노동자로 일하다가 코로나 사태로 비행이 급감하자마자 해고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있고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30분이면 이곳에서 기독교인들이 모여 해고자 복직을 간구하는 기도회가 열린다.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는 해고를 회피하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노동자들을 해고한 기업의 불법성에 맞서 법적인 승리를 이루어낼 것을 기도로써 희구한다. 둘째, 우리는 경영악화의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만 돌리고 자신은 여전히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보존하고 있는 기업의 비도덕성에 맞서 도덕적 승리를 이루어낼 것을 기도로써 희구한다. 셋째, 우리는 인간을 아무 때나 쓰다 버릴 수 있는 물건처럼 취급하는 이 시대를 지배하는 맘몬주의에 맞서 영적인 승리를 이루어낼 것을 기도로써 희구한다.

김희룡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성문밖교회의 목사로 일하고 있다.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