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대한 연민』을 읽고

사회가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의 근본 원인을 엉뚱한 방향으로 해소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저자는 두려움이 증오, 혐오, 분노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두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강력한 절대군주를 원하며, 이러한 원리가 혐오를 선동하는 포퓰리즘 정치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는 과연 어떤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첨단 과학의 시대, 인공 지능의 시대, 등의 여러 가지의 답이 있겠지만, 현재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볼 때 아마도 21세기는 위기의 시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 위기, 혐오나 분노로 인한 윤리 위기, 그리고 생태계 파괴로 인한 생명의 위기 등등. 저자는 특히 혐오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설명하고, 이러한 위기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희망을 제시해준다.

이 책의 원제는 “두려움의 군주제: 우리의 정치 위기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며,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두려움”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개최하는 시상식 참석차 교토를 방문하던 중 미국의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소식에 경악했다. 그리고 시민들이 왜 트럼프를 선호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고 고심하다가 얻은 결론이 바로 대중 사이에 만연해 있는 “두려움”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이 책을 구상하였다고 한다.

“사회가 두려움에 직면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며, 그 자체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두려움의 근본 원인을 엉뚱한 방향으로 해소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저자는 두려움이 증오, 혐오, 분노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두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은 강력한 절대군주를 원한다.”

이러한 원리가 바로 미국의 다수 시민들이 트럼프를 선택한 메커니즘을 설명한다고 본다. 당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들의 두려움을 이용하여 혐오를 선동하는 포퓰리즘 정치로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두려움은 이성적 사고를 막고 희망을 독살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협력을 방해한다고 말하며 두려움의 위력은 대단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두려움에서 발생하는 세 가지 감정으로, 분노, 혐오, 그리고 시기심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두려움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현재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이 책은 두려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희망에 대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감정의 하나인 ‘시기심’에 대해서도 저자는 언급한다. 시기심은 타인이 가진 것에 주목하고 자신의 상황은 그보다 못하다고 비교하면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시기심이 만연한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과거 미국에서는 대공황 이후에 뉴딜 정책을 펼쳤다. 이때에 등장한 것이 연방 예금보험, 실업보험, 사회보장, 노인의료보험, 저소득 의료보험 등의 정부 정책이었다고 한다.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개개인 모두 당연히 갖고 있는 것을 시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여 시기심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할 생각이었다고 한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우리의 경제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가운데 불평등은 더욱 커져, 민주주의를 위협할 정도로 시기심이 증가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볼 때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과연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언급했듯이 이제는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나 혐오가 아니라 바로 연민을 생각해야 할 시기이며, 불평등을 해소하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기이다.

저자는 우리가 ‘희망’이라는 것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며,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스토아학파가 이야기한 “희망”에 대하여 언급한다. 우리가 희망을 갖고 실행하는 이유는 미래의 결과를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위해 실행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희망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결과에 좌우된다는 관점은 부적절하다. 희망과 두려움 모두 결과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고 불확실성, 수동성, 통제 불가능성을 내포한다. 희망하기를 멈춘다면 두려움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희망과 두려움 모두 불안에 매달린 영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초조한 영혼을 위한 것이다. 희망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늘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현실적인 습관이다.”

저자는 특히 간디, 마틴 루터 킹, 그리고 넬슨 만델라 등을 언급하면서, 이들은 모두 선한 목적을 위해 순수하게 헌신한 사람들이며 모두 희망을 품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했다며 이들을 극찬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분노에 비폭력 저항으로 임했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저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을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음의 5가지 영역을 지적한다.

  1. 시와 음악을 비롯한 예술
  2. 비판적 사고
  3. 타인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실천하는 종교
  4. 폭력을 지양하고 대화로 정의를 추구하는 연대 단체
  5. 정의에 대한 이론

단, 위의 5가지를 얻기 위한 전제 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시민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시민의식이 없는 예술가는 상업 이기주의를 빠질 수 있으며, 사랑과 존중을 실천하지 않는 맹신적인 종교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코로나 시대에 익히 목격한 바 있다.

코로나 시대에 저자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에 경청해보자.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어떠한 시대여야 한다는 것을 희망하며 미래 사회를 설계해 보자. 인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공생 공영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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