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키움 특집] ② 심층생태학과 비폭력적 전환 – 『딥 에콜로지』를 읽고

제13회 생태적지혜연구소 콜로키움에서 『딥 에콜로지』(원더박스, 2022) 후반부(7~11장)에 대한 발제문으로 발표된 글이다. 심층생태학이 보다 현실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저자의 질문에 ‘야생’이라는 키워드를 따라서 그 방법을 함께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들어가는 말

빌 드발・조지 세션스, 『딥 에콜로지』(원더박스, 2022)
빌 드발・조지 세션스, 『딥 에콜로지』(원더박스, 2022)

노르웨이의 철학자인 아르네 네스가 심층생태학을 주창한 이래 많은 학자들이 이를 계승하고 있다. 『딥 에콜로지』의 저자 빌 드발과 조지 세센스는 계승자로서 전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는 정치, 경제, 과학적 관점에 대해 비판과 질문을 던지며 심층생태학적 제안을 하고 있다.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경각심을 일깨우고 행동을 촉구하는 말들이 다분히 도덕주의적이고 강압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변화해야 할 주체들이 더 크게 반발하거나 ‘그린 워싱’처럼 교묘하게 눈 가리고 호도하는 변화에 그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그런 오해와 편견과 방어를 넘어설 수 있을까.

‘생태심리학의 보다 현실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 연결되어 있나?’, ‘문명의 전환은 생활양식의 전환인가? 사회시스템의 전환인가?’, ‘야생의 권리는 자연적으로 주어지는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아르네 네스는 심층생태학을 개별적인 자아(self)를 넘어서 큰 자기(Self)로 나아가는 자아실현의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위의 문제제기에 대해 심층생태학적 실천이 가능하고, 관계지향적이며, 인간과 비인간존재 모두의 자기실현이 가능한 길은 무엇인지 대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야생으로 가기

나는 가장 좋은 것을 말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안다. 그것은 가장 좋은 것을 늘 말하지 않은 채로 남겨 두는 것이다.

월트 휘트먼 [회전하는 지구의 노래 A song of rolling Eearth]

저자들은 7장에서 심층생태학이 가능하게 하는 장소로 ‘야생지’를 제안한다. 7장은 마치 야생지를 보존하기 위한 미국의 투쟁사를 읽는 듯한 인식을 받을 수도 있다. 자연을 인간을 위해 소비하고 개발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자원경제학자부터 자연을 지키고 관리하는 청지기로 인간을 바라보는 인간중심주의, 지구는 ‘우주선’이고 기술적으로 진보한 인간들이 그 우주선의 ‘부조정사’가 될 운명을 가졌다고 보는 뉴에이지나 물병자리 음모론까지 다양한 모순과 한계점을 지적하고 있다.

야생지에 대한 심층생태학의 관점은 자연이야말로 삶의 일체성을 경험하고 상호 연관되고 살아있음의 실체를 경험하는 장소로 보았다. “야생지는 스스로 살 권리와 꽃 피울 권리를 지닌 다른 존재들의 서식지다(내재적 가치). 그러므로 야생지는 자기완성(self-realization)과 생명 중심적인 평등 둘 모두의 기반이 되기에, 공공정책의 결정과 재창조적인 체험의 대상이 되는 야생지의 문제는 심층생태학적 견지에서 큰 중요성을 지닌다.”(p.199)

야생으로 돌아간다는 “장소와 밀착해 있고, 야생동물들과 영적 교감을 나누었으며, 정신과 물질이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깨달은 원시 문화의 사람들은 이렇게 더 깊은 장소성을 체험”하는 것이다(p.201). 자연을 보호하든, 함께 살든, 인간은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지 직접 경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가장 첫 번째로 야생과의 긴밀한 유대를 쌓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간은 야생과의 경험을 통해 비인간존재에 대해 관심 가지게 된다. 콘도르의 인공번식과 같은 기술적 개입의 문제점 혹은 멸종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는 방관의 문제점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영화 《울프 앤 라이언: 위대한 우정(LE LOUP ET LE LION, The Wolf and the Lion, 2021) 포스터.
영화 《울프 앤 라이언: 위대한 우정(LE LOUP ET LE LION, The Wolf and the Lion, 2021) 포스터.

영화 《울프 앤 라이언》에는 밀렵군에서 잡혀 서커스단으로 팔려가는 아기 사자와 과학자들이 스노우 울프의 복원을 위해 어미를 잡아갔기 때문에 고아가 된 아기늑대의 우정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의 즐거움이 목표였든 동물의 복원이 목표였든 인간의 개입하는 순간부터 또 다른 인간의 개입과 인간과의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인간이 아무리 기술적으로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생태계를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통제하고 있다고 착각할 뿐이다.

인간의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는 야생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런 야생에서는 우리는 한 번도 자연에서 소외된 적이 없어서 자연으로 돌아가기도 성립되지 않는다는 일체감과 온전함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저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에 충분한 장소로 가보면 어떨까.

2. 목격자가 되고 책임을 받아들이기

우리는 행동은 그 자체로 진실이어야 하지요. 우리의 행동은 그 자체로 방어이자, 선언이며, 목적입니다.

로버트 아잇켄 노사(1982)

기포드 핀쇼는 자연자원과 공공지를 전문적이고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자연을 균형 있게 사용하고, 숲을 현명하게 사용하며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유전적으로 개량하는 것은 역사에서 인간이 중심인물이자 주인공이라는 가정과 자연 전체는 인간을 위한 자원이니 인간이 무한정 조작할 수 있다는 사상에 기반한 관리 이데올로기의 중심개념이다.”(p.236) 저자들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져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들을 ‘가치중립적이고, 의사결정할 때 정치적 입장을 초월한다.’ 생각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환경운동가들을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서서 ‘주관적’으로 논쟁한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자원보존과 개발관리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성찰하지도 않으며 환경운동가와는 대화 불가능하게 된다.

제임스 크리스천은 뉴에이지의 비전으로 현재의 인간이 진화적 운명을 주도하고 있으며 다른 생명체의 운명도 통제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인간은 ‘수동적 운명에서 삶과 운명을 능동적으로 통제하는 존재’로 전환되고 있다고까지 얘기하였다. 이런 비전은 인간의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게 만들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저자는 뉴에이지 사상가들이 자연에 대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전혀 능동적이지 않으며 도리어 우리의 두려움과 건강하지 않은 욕망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아이슬리는 인간의 기술과학을 비판하며 “날아오르는 로켓에는 인간의 모든 두려움과 회피가 투사 되어 있다. 그는 두 세계를 건너 도망쳐왔다. 바람 부는 야생 대초원의 회랑에서 정신이 환히 밝혀진 세계로까지 말이다. 그러고도 그는 여전히 도망친다.”라고 하였다. 인간의 미성숙한 내면이 기술과학을 더 맹신하게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행동이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이들은 반대로 자신의 정당성이나 선함을 더 굳건히 믿고 있을 수도 있다. 심리치료사인 스캇 펙은 악한 사람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악을 의식하는 동시에 그 의식을 피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악은 죄책감의 결손이 아니라 그것을 회피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자신의 악심을 직시하는 고통, 자신의 죄성과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고통이다”1 자신은 옳고 타인이 나쁘다고 비판하고 있다면 바로 자신이 악인일 수 있다. 내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성찰하고 자기 반성을 할 수 있다.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비인간존재 모두의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 악인지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환경단체 ‘그린 피스’의 활동가들이 핵폭탄 실험을 막기 위해 작은 배로 남태평양을 향해 갔을 때 이들은 악을 지켜보았다. 잔혹함의 목격자가 되어 직시하였다. 묵묵히 지켜보는 자(bearing witness)가 양심을 자극했기 때문에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목숨을 위협당하기도 한다. 목격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이들은 목격했으면 직접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만 잔혹 행위를 막기 위해 행동은 직접적이면서도 비폭력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스캇펙은 인간 악의 근원적 치료법을 사랑이라고 제안한다. 사진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스틸이미지
스캇펙은 인간 악의 근원적 치료법을 사랑이라고 제안한다. 사진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스틸이미지

스캇펙은 악을 악으로써 없애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가 악에 오염되어 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인간 악의 근원적 치료법을 사랑이라고 제안하였다. 진정한 힘은 생명 자체에서 나온다. 이제 두려움에 의해 행동하는지 사랑에 의해 행동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야 할 때이다.

이 책이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취하는 것도 끊임없이 성찰하는 과정 자체가 심층생태학의 목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기력과 회의주의, 악은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 비폭력과 자비를 행할 유일한 사람은 우리다.

3. 추앙하기

나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우리의 모든 인생 동안 남을 불멸의 경의감을 선물로 주라고 요정에게 부탁할 것이다.

레이첼 카슨 [경의의 감각(Sense of wonder)]

저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이아의 매혹과 신성성으로 다시 회복하고 우리 자신을 치유 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훼손된 생태계의 회복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과 과학 그리고 장소성의 결합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콘도르가 그 장소에 있을 때 비로써 온전히 콘도르가 되듯이 우리 인간도 우리가 살고 있는 대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을 대지와 조율할 수 있을 때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흐르는 개울에 스민 영혼과 교감하고 동물 친구들과 소통하며 마을과 주변 전체와 함께 살아갈 기회를 가져보는 보자. 그 안에서 우리가 생생하게 경험하는 감각과 감정을 충만히 해보는 것이다. 이런 감각적이며 정서적인 경험은 정서가 자라나는 어린 시절에 경험할수록 좋다. 어린 아이들에게 플라스틱 장난감이나 전자기기가 아닌 산과 들, 냇가와 바닷가에서 이들을 매혹시키는 자연에 빠질 기회를 주어야 한다. 레이첼 카슨은 에세이 『경의의 감각』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만일 사실이 앎과 지혜를 만드는 씨앗이라면, 감정과 감각의 인상은 이 씨앗이 자라나는 비옥한 토양이다. 인생의 초년은 이 토양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 새로운 것과 미지의 것에 대한 흥분, 공감, 동정, 존경, 혹은 사랑과 같은 감정이 일어나면, 우리는 우리 감정의 대상물을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우리가 경탄하는 존재를 사랑한다. 우리의 몸과 정신과 영혼이 통합하는 과정은 자연을 만지고 냄새 맡고 감정을 느끼고 자연의 신비에 몸을 떠는 속에서 매 순간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론

아쉽게도 한국은 ‘새마을 운동’,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 개발 이데올로기가 뿌리 깊어 개발되지 않은 야생이란 남아 있지 않고 야생을 탐험하는 방법도 배우기 어렵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가족과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유교적 무속적 전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삶에 알게 모르게 이어져 오고 있다. 동양에서는 우주 질서가 지구에 반영되고 인간에게도 반영된다는 전통적 이해가 있다. 생태적 삶의 방식은 절기에 맞춰 살아가는 전통과 잘 맞다. 하늘과 땅을 알고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먹고 입으며 영적으로 연결된 삶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닐 수도 있다.

인간도 자연으로 돌아가 비인간존재와 대화함으로써 야생성을 회복해 보자. 성취나 소유가 아닌 존재 경험 자체에서 이미 충분함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생명에 존재 이유가 있겠는가. 의미 찾을 시간에 춤을 춤으로써 존재를 축복하는 것은 어떨까?


살아서 흐르는 이 땅이
모두 저기에 있다, 영원히

우리가 그 땅이다.
그것이 우리를 통해 노래한다.

옷이나 연장이 없어도
우리는 지구에서 살 수 있다.

-게리 스나이더 [프레지저 크리크 폭포 옆에서] 『거북섬』 (1974)


  1. 『거짓의 사람들』 스캇 펙

이미진

몸, 마음, 영, 지구의 통합적 치유를 지향하는 심리상담사입니다. 어릴 적에는 곤충채집을 하러 다니는 도시 꼬마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인간의 심리적 안녕과 성장을 돕는 일을 하는 심리상담가가 되었습니다. 생태영성을 만나면서 저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정체성이 통합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둥근마음심리상담센터장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기반감정코칭학과 외래교수

전문상담사, 청소년상담사, 가족세우기 촉진자, 명상지도자, 에니어그램 강사, NLP 프렉티셔너, 공명코치, 생태심리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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