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읽고: 우리의 ‘상식’은 어디서 온 ‘상식’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이 경제발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현실을 직시한다. 대항발전을 주장하며 삶의 풍요로움이 경제발전만 추구한다고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명시한다.

한 달에 한두 번 〈생태적지혜연구소/철학공방 별난〉에서 독서모임을 가진다. 처음 그곳에 방문한 게 작년 겨울인데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독서모임이 너무 즐겁고 재밌기만 하냐면 그렇지 않다. 가끔 ‘왜 이걸 하고 있지?’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익숙하지 않은 책을 뒤적거리며 ‘내가 이해한 게 맞나? 아. 모르겠다’, 때론 ‘아. 알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꼬박꼬박 책도 읽고 참여도 하고 질문이 오면 성실하게 대답도 한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거냐?’ 라고 물으면 전혀 그렇지 않다. 철학공방을 다녀오면 들어가기를 미뤄뒀던 방을 들어갔다 온 기분이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또한 정확히 그런 느낌의 책이었다.

나는 아마도 이 책의 머리말에 등장하는 ‘왠지 모르게 위기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막연하고, 분명히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p.7)’인 듯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생활과 상황이 매우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우면서도 ‘이대로 괜찮을까?’ 란 생각이 든다. 어딘가 미묘하게 잘못되고 있는 느낌이라거나 잘못된 것은 아닌데 뭔가가 무엇인지 잘 몰라서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틀린 곳으로 향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느낌’이 이 책에서 말하는 세계 경제 시스템에서 비롯된다거나 자연파괴, 환경파괴, 교전권, 경제발전 등의 구체적인 어휘를 통해 사유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세상의 ‘상식’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던 그 ‘느낌’을 다른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몇 년 전에 도쿄의 한 아는 사람이 처음으로 미국에 가서 워싱턴디씨를 보고 와서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큰 발견을 했습니다. 미국은 아직도 발전 가능한, 계속 발전하고 있는 나라라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라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발전이란 자연이 남아있다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완전히 발전된 나라에는 자연이 제로라는 의미입니까?”라고.

p.58

자연이 남아있다면 경제성장은 가능하다

20세기의 경제발전 이데올로기를 자연스럽게 학습한 현실주의의,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게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데 나조차도 이 책의 이 구절을 읽으며 어딘가 서늘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가 말한 것과 같은 경제발전의 의미는 좌우간 세계 어딘가에 삼림이 남아있으면 아직 발전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파괴되지 않은, 매립되지 않은 산호초가 어딘가에 있으면 발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뀌지 않은 자연이 어딘가에 있으면 발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입니다.

p.59

‘사람이라면 응당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도모해야지’ 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인데 ‘경제발전’이 이렇게도 무서운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이전과 다른 관점을 생각하게 했다. 이 책의 이러한 흐름으로 가면 결국 환경보호, 기후위기에 관한 이야기인가 싶다. 또한, 이 책이 18년 전(초판 인쇄 2002)에 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나게 앞선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란 의문이 든다. 그리고 저자는 이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과 진지하게 풀어내야 할 문제들을 제시한다.

경제발전으로 비로소 빈부의 차이가 생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본래 있었던 빈부의 차를 경제발전이 합리화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합리화라고 하는 것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형태로 고쳐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빈곤의 근대화’란 곧 ‘빈곤의 합리화’라고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p.83

저자는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들을 풀어서 설명한다. 현실적으로 사고한다고 자부했던 사람, 나는 발전을 지향하고 내가 하는 행위는 더 나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사실 자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발전’을 바로잡으면 우리 모두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구조적으로나 원칙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하나는 모두가 경제발전하면 지구가 견디어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의 인간의 소비조차 지구는 견디어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p.85

‘나는 경제발전을 지향하지도 않고 현재에 만족하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안 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이 나온 지 벌써 20년가량 되었으니 그때보다 더 심각하게 지구는 소비되고 있으며 그 결과를 우리는 올해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앞으로도 경제성장을 계속하며 풍요로운 사회를 추구해갈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 없이 제로성장 상태로도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 문제 설정으로 관점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p.96

‘관점을 바꾼다.’, ‘프레임을 바꿔라’ 등 다른 시점과 시선으로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기술의 발전, 경제성장보다 중요하다. 이것은 철학에 관한 이야기이며 아주 크게 바라봤을 때 어느 곳으로 가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제로성장을 환영한다는 것은 소극적인 정책이 아닙니다… 물질만의 풍요가 아니라 참다운 의미의 풍요를 추구하는 사회, 그리고 정의에 바탕을 둔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겁니다. 경제성장 사회와는 크게 다른, 훨씬 재미있고 신나는 역사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뜻입니다.

p.100

‘제로성장이란 말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가 아닌 것을 저자는 강조한다. 상부상조하여 재미있고 자주적인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는 의미를 뜻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요즘 하는 프로젝트들이 바로 더글러스 러미스가 이야기하는 프로젝트들인 것 같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나누고 누군가의 도움과 의견을 모아서만 가능한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힘을 주어 누군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으려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했을 때 훨씬 풍요롭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느낀다. 모두가 갖고 싶거나 이루려 하는 것을 탐하지 않고 나와 ‘우리’에게 집중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런 결정을 할 때 환경과 동물, 지구 등 전체적으로 나의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기도 한다. 아직 나와 나의 동료들의 활동은 미미해서 무언가를 바꾸고 큰 영향력이 되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고 결정하기 때문에 억울하거나 누구를 탓하지 않는다. 경쟁에서 이겨 일등이 되고 싶은 것도 없다. 이런 활동과 생각은 경제적인 풍요를 넘어 각자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것 같다.

제로성장은 훨씬 재미있고 신나는 프로젝트

월가의 황소는 주식시장의 영원한 성장을 상징한다. 무서운 표정으로 월스트리트에 혼자 덩그렇게 달리는 황소는 대체 어디로 가려고 저렇게 힘을 쓰는 것일까? 사진 출처 : https://snappygoat.com/b/e51e21c3b195c1d8c3bcbbcca34bef729135ee3e
월가의 황소는 주식시장의 영원한 성장을 상징한다. 무서운 표정으로 월스트리트에 혼자 덩그렇게 달리는 황소는 대체 어디로 가려고 저렇게 힘을 쓰는 것일까?
사진 출처 : snappygoat.com

저자는 그런 사회를 추구하는 과정을 잠정적으로 ‘대항발전(counter-development)이라 부른다. 대항발전의 첫째 목표는 ‘줄이는 발전’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각자가 경제활동에 쓰고 있는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고, 둘째는 ‘경제 이외의 것을 발전시키자’이다. 시장 이외의 모든 즐거움, 행동, 문화, 그런 것을 발전시킨다는 뜻이다. 경제 용어로 바꿔 말하면 교환가치가 높은 것을 줄이고 사용가치가 높은 것을 늘리는 과정을 뜻한다. 혼자서 할 수도 없고, 남에게 시킬 일도 아니다,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 주체적으로 생산, 소비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면한다.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과 소비에 중독되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상식’이라고 믿고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의 폭력(전쟁)이나 환경문제 등 21세기는 그러한 정치활동에 참가하는 것이 당연시되지 않으면 해결 될 수 없는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그래서 참가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민사회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은 자기자신이 변하는 ‘민주화’가 필요합니다.

p.154

…지금부터의 정치, 경제, 문화를 변화시키려는 활동은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주의 주장, 특별한 신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구와 인간사회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냉철한 현실주의자는 이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이해가 넓어지면 이 ‘이면의 상식’은 ‘표현의 상식’, 주류의 상식이 될 것입니다.

p.155~p.156

알면 알수록 조심스러운 일들이 많아진다. 이전에는 죄책감 없이 하던 사소한 일들이, 겁 없이 했던 것들이 조금씩 걱정이 되기도 하고 불편하다. 그런 과정이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 서글프다. 아이와 같이 겁내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와 무모함이 때로 그립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간의 데이터를 무기삼아 실수를 줄여보기도 하고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욕심낼 수 있을 때 욕심내고 실수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반성하고 앞으로의 도약을 위해 공부하고 상황을 읽어 보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무언가를 할 때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기술과 경제 발전에 의한 삶이 아닌 사람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가능성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는 작업을 할 때 ‘더 좋은 기기가 있으면 더 좋은 작업이 나올 텐데….’, ‘더 넓은 작업실이 있으면 더 큰 프로젝트를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을 텐데….’, ‘안정적인 수입이 있으면 하고 싶은 작업만 실컷 할 텐데….’ 등 어떻게든 단가를 올려 좋은 작업환경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아름다운 동료의 작업을 보면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저거 사야지’, 그리고 나면 ‘그 작품 전시할 공간이 필요하니 돈 더 많이 벌어서 공간을 넓혀야지,’ 등의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문다.

이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앞으로 더 재밌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지’, ‘인정받고 더 큰 프로젝트를 해내야지’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많은 돈을 벌어야지’라는 개념과 더 가치 있는 작업에 대한 관점을 앞으로는 좀 더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익과 발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고 나의 활동과 수익이 전체를 위한 길이기를,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들은 다른 이들이 양보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박현주

동양화, 판화를 전공하고 시각작업과 제작업을 하고 있는 박현주입니다. 실질적인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적절하고 적당한 영향을 주고받음을 목표로 합니다. 공동체, 비예술인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활동을 많이 합니다. 그러한 작업과 활동에 영향을 받아 창작작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