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성찰・소수자 됨과 우분투 – 기후 위기 속에서 『삼국유사』 「감통」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 읽어보기

서정주가 그의 시 「꽃밭의 독백 - 사소 단장」의 소재로 삼기도 하였던 『삼국유사』 「감통」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를 읽을 때, 사람들은 대개 선도산 성모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는 지혜라는 비구니도 등장할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앞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그는 어떤 행적을 남겼길래 그 글 속 그 위치에 자리하게 된 걸까?

솔개의 인도로 서쪽에서 온 만물의 어머니

꽃밭의 독백(獨白) – 사소(娑蘇) 단장(斷章)

서정주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1958년 서정주가 『사조(思潮)』라는 정기간행물에 실은 이 시는, 서정주의 네 번째 시집 『신라초(新羅抄)』에 실렸다. 시집은 1961년 12월 25일 정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에는 『삼국유사』를 소재로 한 시들이 다수 수록되었다. 「꽃밭의 독백 – 사소 단장」이 그 예다. 이 시 속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소라는 인물은 꽃을 바라보다 슬며시 개벽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낸다.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e북), 저자 일연, 번역 신태영, (한국인문고전연구소, 2012)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e북), 저자 일연, 번역 신태영, (한국인문고전연구소, 2012)

원래 사소는 『삼국유사』 「감통」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다. (1) 안흥사의 비구니 지혜(智惠)가 꿈에 나타난 선도산 신모에게서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았다면서 안흥사를 고쳐 지었는데, 거기에 부처들・부처들의 수호자들・천신・신라의 산신령들을 함께 모시고, 해마다 봄 가을에 참회하고 계율을 지키기를 다짐하는 법회를 연다고 하였으나, 세월이 흐르고 나니, 절은 남았지만 법회는 끊어졌다. (2) 선도산 신모 사소(娑蘇)는 중국 황제의 딸로, 황제가 보낸 솔개가 선도산을 사소의 거처로 점지해서 그 산은 서연산(西鳶山)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사소는 신라가 섬기는 신 가운데 서열 3위 이내에 드는 지선(地仙)이 되었고, 혁거세(蓋赫居)와 알영(閼英)을 낳았다. 알영은 하늘나라의 여러 선녀들에게 비단을 짜게 하여 붉은빛으로 물들여 관복을 지어 혁거세에게 주었다. (3) 중국 송나라에 있었던 우신관(佑神館)에 사소가 중국 황제의 딸, 바다를 건너 진한으로 가서 해동의 시조를 낳은 사람, 선도산의 지선(地仙)으로 모셔져 있었다. (4) 닭[雞]이 서쪽에 속해 있기 때문인지, 신라는 계룡(雞龍)・계림(雞林)・백마(白馬) 등으로 불렸다. (5) 신모의 전령인 솔개는 신라에서 신성시되었다.1

서정주는 『삼국유사』 「감통」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 가운데 ‘(2)’에 해당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춰 시를 쓴 것 같다. 서정주가 시 속에서 개벽이라고 했던 것은 사소가 혁거세와 알영을 낳은 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신라를 연 사람들이다. 그들을 세상에 있게 한 것은 신라를 있게 한 것이니,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힌 것이라 할만하다. 한편, 이야기 속에 아버지가 누군지는 나와있지 않다. 그렇다면 사소는 독자적으로 생명을 창조한 주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달리 말하자면 사소가 나이들면 산신 할머니가 되는 것이고, 산신 할머니는 독자적으로 생명을 창조한 주체이니, 과장되게 말하자면 ‘만물의 어머니’라 할 수 있고, 출산을 보살피는 신 즉 삼신 할머니의 원형이라 생각하여볼 수도 있겠다.

만물의 어머니이자 삼신할머니의 원형이라면 그 자체로써 대단한 존재다. 그래서인지 『삼국유사』를 편찬한 사람은 중국 송나라 우신관(佑神館)에 사소가 중국 황제의 딸・바다를 건너 진한으로 가서 해동의 시조를 낳은 사람・선도산의 지선(地仙)으로 모셔져 있었다는 전언을 『삼국유사』에 적어넣었다. 중국이라는 권위를 끌어다가 사소의 대단함을 정당화한 것이다. 신라가 계룡(雞龍)・계림(雞林)・백마(白馬) 등으로 불리웠던 것은 닭[雞]이 서쪽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도 적혀있는데, 이는 서쪽 즉 중국 혹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를 사소의 배경이라고 하는 것과 바를 바 없다. 이야기 속에서 사소를 돕고 거처로 인도하는 매[취(鷲)] 혹은 솔개[연(鳶)]는 불교에서 신성한 존재로 꼽는 새다. 영취산(靈鷲山)[Gridhakuta]은 본래 고대 인도 마갈타국(摩竭陀國)의 왕사성(王舍城) 북쪽에 있는 산이다. 기사굴산(耆闍崛山)으로 음역하기도 한다. 『법화경』에 석가모니 부처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 영취산은 신성한 공간이다. 그리고 매 혹은 솔개는 그 신성공간에 산다는 것 때문에 신성한 새가 된 듯하다. 그러니 사소가 솔개의 인도를 받았다는 것 또한 불교를 배경으로 사소의 권위를 정당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삼국유사』 「감통」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라는 이야기의 지면의 반 이상은 사소가 만물의 어머니이자 삼신 할머니의 원형임을 설명하는데 할애되었다. 한 사람이 솔개를 매개로 중국과 신라를 넘나들며 신라라는 세계가 생겨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는 사뭇 장쾌하다 아니할 수 없다. 서정주도 이에 끌려서 이 이야기에서 시 쓰기의 계기를 찾은 것 같다.

관용・성찰・소수자 됨

이렇게 정리하다가 스쳐 지나쳐 버린 이야기가 있었다. “진평왕(眞平王) 때에 지혜(智惠)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있었는데 행실이 아주 어질었다. 안홍사(安興寺)에 살았는데, 불전을 새로 수리하려 했으나 힘이 모자랐다. 어느 날 꿈에 구슬로 쪽머리를 장식한 아름다운 선녀가 와서 위로하며 말하였다. “나는 바로 선도산(仙桃山)의 신모(神母)이다. 네가 불전을 수리하려 하는 것이 기특하여 금 10근을 주어 돕고자 한다. 내가 있는 자리 아래에서 금을 꺼내어 주존(主尊)과 삼상(三像)을 장식하고 벽에는 53불 육류성중(六類聖衆) 및 모든 천신(天神)과 오악(五岳)의 신군(神君)을 그리고, 해마다 봄과 가을 두 계절에 10일 동안 남녀 신도들을 많이 모아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점찰법회(占察法會)를 베푸는 것을 일정한 규정으로 삼아라.” 지혜가 놀라 깨어나 무리를 데리고 신사 자리 아래로 가서 황금 160냥을 파내어 불전 수리를 마치고, 모두 신모가 가르쳐준 대로 따랐다. 그 사적은 남아 있지만 절의 행사는 없어졌다.”2 앞에 ‘(1)’로 요약하여놓은 이야기의 원문이다.

혁거세를 낳은 사소가 진평왕 때 비구니 지혜의 꿈에 나타나 지혜가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1)’에서는, 지혜가 신라 시조 혁거세의 어머니인 사소에게서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았다면서 안흥사를 고쳐지으면서, 거기에 부처들・부처들의 수호자들・천신・신라의 산신령들을 함께 모시고, 해마다 봄 가을에 참회하고 계율을 지키기를 다짐하는 법회를 연다고 하였으나, 세월이 흐르고나니 절은 남았지만 법회는 끊어졌다는 이야기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1)’에 따르면, 사소와 지혜는 크게 두 가지 일을 이루었다. [1] 부처들・부처들의 수호자들・천신・신라의 산신령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2] 봄 가을에 참회하고 계율을 지키기를 다짐하는 법회를 여는 관습을 만들었다.

‘[1]’에서 보듯, 부처와 신라의 하느님과 산신령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은, 불교가 순수하지 못한 종교가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불교가 신라 전통 종교문화의 핵심적 요소를 불교문화 안에 받아들여 자리매김하는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신라 사회가 불교를 자신들 안에 받아들여 자리매김해 주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보든 이질적 종교문화 사이의 상호관용[mutual tolerance]이 가능하여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사소는 상호관용을 가능하게 한 영향력의 원천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을 것이다.

‘[2]’가 보여주는 것은 신라불교가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 삶을 권하는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점찰법회(占察法會)는 겉으로는 점을 치고 점괘를 보는 모임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점을 치고 점괘를 보는 과정에서 참회를 하고 계율을 지킬 것을 다짐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는 의례이다. 어떤 사회에서, 참회를 하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는 것은, 그 사회에서 종교가 복을 비는 것이나 통과의례를 그럴듯하게 치르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수준을 넘어서야 가능해지는 것 같다. 불교의 참회(懺悔)는 영어로 번역할 낱말을 찾기 쉽지 않은 단어이다. 해당할 것 같은 penance나 shrift는 ‘보상해주는 행위’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불교의 참회 역시 다른 사람과 관계된 나의 행위를 돌아보는 것인 색채가 강하여 보상과 무관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현생과 전생을 낱낱이 되돌아보는 성찰(省察)[introspection]을 전제로 하는 색채도 짙다고 하겠다.

그러고 보니 지혜가 비구니라는 점도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인 듯하다. 불교에서 남자가 출가하여 비구가 되면 250 계율을 지켜야 한다. 이에 비하여 여자가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면 348 계율을 지켜야 한다. 여자와 남자의 생리적 구조 차이 때문에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이 더 많다고 한다. 그러나 비구니가 비구에 비하여 소수자[minority]의 분위기를 더 강하게 띠고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라는 이야기에서 사소 이야기가 넓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지만, 시작은 비구니 지혜가 열고 있을 뿐 아니라, 관용과 성찰을 신라 사회에 뿌리내리는 일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비구니 지혜의 실천은 사소가 보여준 ‘만물의 어머니’ 되기와 비교할 때 결코 작다 할 수 없다.

관용・성찰・소수자 됨과 우분투

사소 이야기로부터 눈길을 돌려, 비구니 지혜의 행적을 살펴보다가, 생각이 관용과 성찰에 미치니, 이것을 우분투와 연결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 번역기는 북부 소토어 ubuntu를 영어 humanity로 번역한다. 북부 소토어는 남동부 아프리카의 반투족어에 속하는 언어다. 이 번역에 따르면 우분투는 곧 ‘사람됨’이라고 할 수 있다. 라모세[Mogobe B. Ramose]는 우분투가 아프리카 반투족의 철학이며, 이 철학의 밑바닥에는 움직임이 존재의 원칙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하였다.3 라모세의 주장을 정리하면, 우분투는 ‘움직임이 존재의 원칙이라는 믿음 위에서 세워진 철학’이라 해야 할 듯하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하고나면, 그 철학의 내용이 무엇인지 되묻게 될 듯하다. 이보다는, 구글의 번역을 받아들여, 우분투를 ‘움직임이 존재의 원칙이라는 믿음 위에서 이어지는 사람됨[humanity]’이라고 정리하는 것이 우분투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될 것 같다.

“살아 있는 이들을 넘어 죽은 이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 그리고 환경에까지 돌봄과 배려를 확장할 의지를 가진 사람됨” 
사진출처 : Pixabay
“살아 있는 이들을 넘어 죽은 이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 그리고 환경에까지 돌봄과 배려를 확장할 의지를 가진 사람됨”
사진출처 : Pixabay

라모세는 모든 생명이 움직임을 통해 끊임없이 복잡한 상호 작용과 교환의 흐름 안에 존재한다고 하였다.4 그리올은, “우분투 철학에 따르면, 인간이 되려면 남에게 생활의 물건들을 주고, 받고, 넘겨주는 실천을 해야 한다”5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에 보이는 ‘남들’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존재까지 포함된다.6 또한, 우분투에 따르면, 공동체는 살아 있는 이들, 죽은 이들(조상),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고 한다.7 이에 더하여 네 번째 축은 환경이라고 한다.8 이러한 생각들은 사람들 서로에 대한 돌봄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한 돌봄과 배려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라모세는 주장한다.9 이 주장들을 종합하면, 우분투는 ‘살아 있는 이들을 넘어 죽은 이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 그리고 환경에까지 돌봄과 배려를 확장할 의지를 가진 사람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사람됨은 ‘움직임이 존재의 원칙이라는 믿음 위에서 이어지는 사람됨’과 표리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움직임이 존재의 원칙이라고 믿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삶을 지속하게 하는 자원을 나누는 상호 배려를 그치지 않게 하여줄 것이다. 또한, 그 원칙을 믿지 않으면, 내 밖의 세계에 대하여 민감할 수 없어서, 관계를 맺고 돌보고 배려할 수 있는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을 자원을 함께 나눠야 할 존재로 인식하는 민감함을 잃는 경우일 듯하다.

우분투를 앞서 말한 사람됨으로 이해하는 것이 엉뚱한 것이 아니라면, 비구니 지혜의 행적과 연결되는 관용・성찰・소수자 됨이야말로 그런 사람됨의 선결조건 같아 보인다. 비구니 지혜는 불교와 신라 전통 종교문화 사이의 상호관용을 추구하였는데, 오늘날 그 수준의 관용정신이 없다면 살아 있는 이들을 넘어 죽은 이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 그리고 환경에까지 돌봄과 배려를 확장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불교인들 안에서 비구에 비하면 소수자일 수밖에 없는 비구니의 자리에서 지혜가 보여준 행동력은 우분투라는 이름의 사람됨을 이어가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할 듯하다. 전생과 현세의 나의 행적을 낱낱이 되짚는 성찰의 태도와 유사한 태도와 결의가 없다면, 죽은 이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이들까지 아우르는 돌봄과 배려가 가능할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삼국유사』 인용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2012. 8. 20., 일연, 신태영)


  1. 『삼국유사』 「감통」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仙桃聖母 隨喜佛事]’ 전체 요약.

  2. 『삼국유사』 「감통」 ‘선도산 성모가 불사를 좋아하다[仙桃聖母 隨喜佛事]’.

  3. Ramose, M. B. (1999) African philosophy through Ubuntu, Harare: Mond Books Publishers., 모고베 B. 라모세, 「우분투」,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데마리아, 요르고스 칼리스 외 (엮음), 강이현 (옮김), 『탈성장 개념어 사전』, 충남 홍성: 그물코, 2018, 375~378쪽 참조.

  4. 모고베 B. 라모세, 「우분투」,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데마리아, 요르고스 칼리스 외 (엮음), 강이현 (옮김), 『탈성장 개념어 사전』, 충남 홍성: 그물코, 2018, 375쪽 참조. / Ramose, M. B. (1999) African philosophy through Ubuntu, Harare: Mond Books Publishers. 참조.

  5. 모고베 B. 라모세, 「우분투」, 375쪽. / Griaule, M. (1965) Conversations with Ogotommeli, Oxford University Press. 참조.

  6. 모고베 B. 라모세, 「우분투」, 376쪽 참조.

  7. 모고베 B. 라모세, 「우분투」, 376쪽 참조.

  8. 모고베 B. 라모세, 「우분투」, 377쪽 참조.

  9. 모고베 B. 라모세, 「우분투」, 376쪽 참조.

이유진

1979년 이후 정약용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1988년 8월부터 2018년 7월까지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였다.
규범과 가치의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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