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살아가기 – 『몸의 인지과학』을 읽고

불교사상과 인지과학을 통해 공통으로 밝혀진 사실은, 자아라는 것은 없으며 확고하게 고정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란 개체가 환경과 함께 벌이는 구조적 연합의 산물이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는 명상이다.

1. 철학을 앞서가는 기술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배우고 있는 학부생이다. ‘후기 청소년’의 끄트머리에 있는 나이로 청소년과 청년, 아마추어와(내 기준 석사 박사부터인) 프로의 경계에 서 있다. 이번 가을 학기에는 지구대학(ESU)이라는 배움터에서 미래학 수업을 병행했다. 그곳에서 미래를 선도하는 과학기술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철학의 역할 중 하나가 인간의 세계관을 디자인하는 것이라면, 기술은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느낌 즉, 세계감을 바꿔나가고 있다.

전공강의 ‘동양의 지혜’ 시간에는 〈장자〉를 다루었다. 그중에서 ‘호접지몽(胡蝶之夢)’ 이야기는 단 하나의 리얼리티(실재)를 확정할 수 없는 인간 분별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생생한 이 현실의 느낌은 말 그대로 느낌일 뿐이고,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누구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나’는 ‘현실의 나’일 수도 있고 나비의 꿈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인 이데아론에서 비롯되는 ‘실재냐 가상이냐’의 질문이 어리석은 분별이라는 것을 전한다. 이 세계에는 많은 삶이 제각기 살아가고 그것들은 모두 각자의 세계를 지닌 소중한 존재이다.

이러한 감각을 몸속 깊이 심어주는 것은 오늘날의 기술이다. 케빈 켈리는 약 30년 전의 책 『통제 불능』에서 VR(가상현실)기기에 대한 때 이른 체험기를 공유한다. 그 당시의 투박한 하드웨어와 시청각 자극만으로도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아찔한’ 착각이 일어나는 것이 성공했다. 여기에 촉각까지 더해진다면 그 환상은 실재보다 더 생생해질 것이라고, 며칠 전 진로 상담을 위해 방문한 철학과 교수님은 설명하셨다. 기술에 자문하고 흐름에 올라타기 위해 그 교수님은 『감각의 역사』를 공부하고 계셨다. 언젠가는 우리가 직접 날갯짓을 해서 꽃과 들판을 오고 가는 나비가 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2. 근거 없는 세계

프란시스코 바렐라 등 공저 『몸의 인지과학』(2013, 김영사)
프란시스코 바렐라 등 공저 『몸의 인지과학』(2013, 김영사)

『몸의 인지과학』은 인지과학을 통해 자아가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는 발제되는 것임을 주장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근거적’ 세계관의 실증만으로는 현대 사회가 허무주의 경향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이에 대한 대안적인 세계감을 조성하는 방법으로서, 책 전반에서 비서양적 사유 전통인 불교 사상을 도입한다.

불교의 지관적(mindfulness/awareness) 전통은 인지과학이 밝혀낸 ‘자아 없음’을 무아(無我)라는 개념을 통해 일찍이 밝혀냈었다. 또한, 새로운 인지과학 접근인 ‘발제론’에서 제기하는 ‘세계의 기반 없음’을 ‘공(空)’ 사상을 통해서 설명해냈다. 불교는 그러면서도 수양과 실천을 통해 인간의 내적 경험을 변형할 수 있음을 긍정하고, 나아가 다른 존재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비(慈悲)’의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지구 전체적 사고’에 명백하게 기여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자아와 근거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세계관은 파격적이다. 책의 초반부, 데카르트의 코기토에서부터 현상학의 지향적 의식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의 흐름은 객관론과 주관론의 진동에서 유지되는 실재론으로 정리된다. 즉, 인간 외부에서 확정적으로 존재하는 세계 혹은 세계를 전적으로 가공해 내는 주관을 가정함으로써 실재에 대한 헛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모두가 실천과 수행이 없는 앎이기 때문에 추상적이고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것들의 한계를 돌파할 불교적 전통이 뿌리내린 동아시아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한편으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여기까지의 내용 또한 이론적이다. 특히 인문학적 비판이기 때문에 사고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 이외에는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주제가 인지과학이기 때문에, 지금껏 나온 주장들을 입증하는 근거들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초기 불교 사상은 오온(五蘊: 색, 수, 상, 행, 식)이 업(業, 의식 경험의 수레바퀴)에 의해 자동으로 굴러가며 경험을 구성하고, 반복되는 패턴으로서 자아라는 느낌이 창출된다고 설명한다. 온들의 연속만 있을 뿐 자아란 없음을 밝힌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인지과학 연구에서 사건들은 뇌의 ‘지각 단위’로 ‘자연 분절’되어 동시적으로 조직됨이 보고된다. 자체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며 사건을 단선적으로 소화하는 자아는 없다.

3. 발제하는 마음

생물체는 신체로 환경과 접촉하며 세계를 구성하고, 감각과 운동으로부터 창출되는 인지 구조에 따라 지각하며 살아간다. by freepik https://nl.freepik.com/vrije-photo/slimme-landbouw-5-0-groen-plantaardig-product-landbouwtechnologie-sociale-media-plaatsen-achtergrond_13301005.htm
생물체는 신체로 환경과 접촉하며 세계를 구성하고, 감각과 운동으로부터 창출되는 인지 구조에 따라 지각하며 살아간다.
사진 출처 : freepik

또한, 세계는 자아 없는 마음에 의해 발제된다. 발제란, 진화생물학적 문화적 역사를 축적한 한 체계가 자율적인 내적 규정에 따라 환경과 ‘구조적 연합’을 벌여 세계를 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세계는 미리 주어진 것이 아니고 표상을 통해 회복되는 것이다.”(p.253) 생물체는 신체로 환경과 접촉하며 세계를 구성하고, 감각과 운동으로부터 창출되는 인지 구조에 따라 지각하며 살아간다. 반면 기존의 인지과학은 마음에 대해, 고정된 세계를 기호로 정확하게 표상하여 적절하게 계산하는 것을 상정한다. 그러한 가정에서 출발했지만, 자체의 기반을 흔드는 연구 결과에 따라, 그리고 그것을 새로운 통찰로 담아내는 발제론에 의해 ‘근거 없는 세계’는 우리가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 세계관으로 자리 잡는다.

인지과학은 발제론 이후 어떠한 모습으로 거듭날 것인가? 이 책이 쓰인 지 벌써 30년이 지났기에, 질문은 그사이 3세대 인지론이 얼마만큼 수용되었고, 혹시 4세대가 나타났는가를 묻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답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벗어난다. 그러나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2세대 인지과학으로 언급된 ‘창발론’과 ‘마음의 사회 이론’마저도 ‘30년 후인’ 나에게는 여전히 참신하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직은 이 책의 세계관이 인지과학 내부 혹은 일반 대중에게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위 두 이론이 폐기가 아닌 업데이트로 충분한, 아직 잠재력과 효용성이 있는 이론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현상적 의식을 설명하고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것에 있어 큰 틀에서 맞는 접근이라는 생각에서다. 의식에 대한 제켄도프의 심-심 관계(하위인격 단계의 무의식적 계산에서 현상적 경험이 ‘투사’된다는 관점)는 그리하여 다시 새로운 심-신관계 문제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지 구조에 신체를 포함하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문제해결을 마음의 주요한 요소로 상정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4. 허무하지 않은 수행

명상의 최고봉은 지관의 명상이다.
명상의 최고봉은 지관의 명상이다.
사진 출처 : Yanalya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허무하지 않은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가를 짚어보고 글을 마치려고 한다. 근거 없는 마음, 근거 없는 세계에서 요구되는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사실 자아가 없고 실재하는 세계가 없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일은 없다. ‘나’라는 사람이 바닥으로 푹 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러한 이유로 자아와 진짜 세계에 대한 강박에서 우리가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자아는 근거가 없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은 가질 수 있다. 그 자신감으로 우리는 스스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얻고 행복해질 수 있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 같이 살 만한 세계를 발제할 수 있을지로 고민의 주제를 옮길 수 있다.

나는 명상을 자주 하는 사람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나름 전도사 역할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 보통은 ‘헤드 스페이스’ 같은 비종교적인 가이드 어플을 소개한다. 하지만 명상의 최고봉은 신비적/회복적/인지 강화적 등등의 실용적 명상과는 구분되는 지관의 명상임을 이 책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다. 물론 명상은 실용적인 기능이 있다. 하지만 지관의 명상은 명상의 효능을 기대하고 그것으로부터 힘을 얻으려고 하는 자기의식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돕는다. 단절된 개인주의적 자아가 아닌 연결된 네트워크상의 고유한 한 점으로 자신을 파악하게 하는 명상은, 근본생태주의가 지향하는 의식적·영성적 변화의 한 실천 방법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이론과 학문에서부터 실천과 수행을 도모하는 완전한 책이다. 철학과 과학 양쪽 모두에서 박식하고 통찰력 있는 견해를 지녔고, 그 합을 통해 진보적인 사상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구현해낸다. 책의 내용이 어렵기도 하지만 조밀하면서도 묵직한 면이 있기에, 마치 내용 있는 두 권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최상의 저술이라고 생각되는 글쓰기의 모델이고 나 또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과학과 함께 가는 철학, 그리고 수행으로 나아가는 사상을 겸비하고 싶다. 한때 별명으로 사용했던 ‘스선생’(스님 선비 연습생)이란 단어를 다시 써보려고 한다. 또한, 생태적 지혜를 통해서 산물의 진화와 우주 만물의 진로에 기여하고 싶다.

마카야

“의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시창작 선생님이 시집에다가 적어주셨다. 진지하고 잡생각이 많음을 어찌 저리 사랑스럽게 표현하셨을까! 성향을 따라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고, 철학자와 창작자 그리고 없는 제작자 정체성까지도 몽땅 살려 지구를 살리는 데에 보탬이 되려고 한다. 아, 일단은 내 한 몸 잘 보전하는 수신개벽부터 실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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