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그리의 『야만적 별종』 세미나(8월 모임 후기)

네그리 『야만적 별종』에 관한 세미나가 2021년 8월 한달간 매주 화요일마다 오후1시 연구공간L 주최로 온/오프라인을 통해 진행되었다. 9월 모임에서도 『야만적 별종』를 이어서 읽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참여 문의: 010.2716.0746

네그리의 『야만적 별종』세미나

■커리큘럼 : 네그리, 『야만적 별종』, 윤수종 역, 새길, 1994.

■2021년 8월 3일 (화요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내용

  • 79쪽부터 강독(영 p. 13, 불 p. 53)
  • ‘무지의 피난처‘ “스피노자의 ’무지한 자의 피난처인 신‘은 결코 귀족적이고 추론적인 입장의 특징을 나타내지 않는다. … 스피노자 철학이 무지한 자의 종교, 빈자의 구원을 역사적이고 결정적인 진리의 발전에 대한 물질적 구조로 채택할 때 결정하는 전도. 그러므로 민중적인 종교는 수동적 요소가 아니라 과학의 능동적 조건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근본적인, 토대가 되는, 그리고 구성적인 상상력의 역할을 한다.”(주석 43, 79쪽) 이때 스피노자의 ’무지의 피난처‘는 비판적인 용어이지만, 그것이 대중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만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마치 ’금욕주의‘와 허무주의에 대한 니체의 서술을 연상시킨다. 즉 ’왜 유럽인은 허무주의에 빠지는가?‘ 그것은 그들이 신에 사라진 그 자리에서 무엇이라도 믿고 따를만한 삶의 원칙을 세우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허무주의에 대한 신봉 아래에서 작동하는 전제는 누구든 어떻게든 살아가고 싶어한다는 것, 삶이 그를 지배한다는 것을 말하며, 우리는 그것에 기초해 ‘삶의 긍정’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도 마찬가지이다. 다중은 왜 자신들의 무지에 대한 ‘도피처’ ‘피난처’를 찾고자 했던 것인가? 자신의 무지를 해소하고 싶어하는 ‘앎에의 의지’는 그들 안에 숨겨진 채 작동하는 ‘진리에의 사랑’, ‘참된 인식으로의 방향성’을 읽어내게 만든다.
  • 스피노자 사상의 역동적 중심. “그것은 자연주의적 내재주의를 절대적으로 존재론적이고 절대적으로 합리주의적인 관념의 한계까지 밀고나가는 르네상스 사유이다. 그것은 네덜란드의 본원적 축적과정을 통해 달성된 성숙과 자본주의 혁명의 차원과 관련된 이러한 종합을 구성하는 강력한 총화이다.”(80-81)
  • “출발점은 휴머니즘 및 르네상스이다. 그것은 생산력의 자생성으로서, 생산력의 활기차고 직접적인 사회화로서,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 의한 가치의 규정으로서 시장이라는 생각이다. 전유의 철학은 시장의 철학에서 자연적으로 전개된다. 시장은 개인적 전유에 대한 미덕적인 일치이고 생산능력의 사회화이다.”(86)

■2021년 8월 10일 (화요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내용

  • 2장 스피노자 서클의 유토피아 강독(95쪽)
  • 『신과 인간 및 인간의 지복에 관한 소론』은 통상 이해하는 대로 『에티카』의 첫 번째 초고이거나 스피노자의 미진한 사고를 보여주는 ‘손상된 텍스트’가 아니라, “암스테르담에서 라인스부르흐까지 그의 서클[마이너한 젊은 유대공동체의 일원들]에 속했으며 아마도 그 텍스트를 손상시킬 뿐인 혼란을 초래했지만, 그 텍스트의 생산에 개입한 사람들과 공유한 이데올로기적 상황에 대한 중요한 기록”(95-96쪽)이다.
  • 『소론』 1부를 정리하면 이렇다. (1) 절대적 내재성으로서, 자기원인으로서의 신 관념 (2) 신에 대한 모든 신인동형론적 관념에 대한 논박 (3) 3가지 연속적인 이행들. 즉 ① 신의 본질과 존재의 절대적‧선험적 동일성, ② 신 관념과 긍정적 무한성 관념의 수렴 ③ 신의 본질과 자연의 본질의 동일성. 이러한 단계들에는 어떠한 단계도 없으며, 오직 상이한 접근 각도에서 평가된, 끊임없이 자신의 중심성 속에서 긍정적 무한성 속에서 반복되는 동일한 실체의 순환 및 유동성만이 있을 뿐이다.
  • 스피노자 서클이 공유하고 있던 ‘범신론’적 세계관. 네그리는 이것이 “그 최대의 긴장 속에서, 원래 그것을 형성했던 혁명적 결정들의 복합 속에서 나타난다”(98)고 말한다. 즉 네덜란드의 종교개혁과 근대적 과학혁명, 르네상스의 인간주의가 복합된 당시의 네덜란드의 상황 안에서, 스피노자는 자신의 서클의 구성원들과 더불어, 기독교적 신관념을 벗어나 신에 대한 근본적인 추론을 전개해나갔다. 르네상스 자연주의의 영향권 하에서의 브루노의 철학과, 갈릴레오와 데카르트의 물리적 세계관, 상업적 자유 및 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은 그로 하여금 어떤 ‘유토피아’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긍정적 유토피아는 예외적인 역능을 지닌 채 제시되지만, 불분명함 및 미규정성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는 용어들 속에서 신비적 절멸과 논리적이고 존재론적인 객관주의 사이에서 애매하게 주저하고 있다.”(102)

■2021년 8월 17일 (화요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내용

  • 102쪽(영 p. 25, 불 p. 70)부터 강독 시작
  • 『소론』 2부에서는 “존재의 충만함 속에서 인간본질이 구성된다. 이것은 문제를 명확히 하기보다는 격화시킨다. 한편으로 형이상학적 장치는 자신의 모호함을 지닌 채 발산을 넘어 ‘하향경로’라는 연역을 넘어서 전개된다. 다른 한편, 인식의 수준에 대한 정교화와 의견의 그림자 및 경험의 혼동에서 신념과 명확한 인식 간의 점진적 구별로의 이행은 이성적 인식의 절대성과 윤리적 가치의 결정성을 순수한 긍정의 지형 위에 고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제 종합으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 지성, 의지, 자유 사이의 공생적 관계로서의 인식 관념이라는 스피노자 서클의 유토피아가 지닌 두 번째 계기와 마주하고 있다.”(102-103)
  • “범신론의 미학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며 방법의 구성적 역능은 단지 암시되었을 뿐이고, 실체적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애초의 이해는 연역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기보다는 스쳐지나가 버리는 일종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창조한다. 그럼에도 후속하는 모든 접합의 토대에 있는, 이러한 ‘절대성 속에 자신을 근거시키는 것’은 완전히 내재적인 표면이론을 향해 나아가는 힘을 지니며 모든 인지적 우주를 강고한 구성적 지평에로 단조화한다는 것은 여전히 진실이다. … 내재성은 세가지 실재적 범주, 즉 다의성[equivocality를 모호함이라 번역한 것은 오역임], 우위, 유비라는 세 가지의 존재론적 접합에 대한 중지로 제시되는 존재의 지점까지 발본화된다.”(104-105)
  • “첫번째 관점은 정념이라는 전통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에 있다. … 존재로 가득 찬 전체 구조는 정념의 형성과 정념으 결합을 절대성으로부터의 연역의 결과가 아닌 절대성의 구성 동력으로 본다. …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지복의 관념의 구성에 의해 작동되는 두 번째 관점이다. 최고의 지복, 즉 인식과 자유 사이의 접합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획은 신과 정신의 합일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구성과정, 인식과 자유 간의 교감, 절대적 사회성에 대한 인식으로 이루어진다.”(105)

■2021년 8월 24일 (화요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내용

  • 117쪽부터 강독(영 p. 33, 불 p. 81)
  • 『지성개선론』은 이렇게 말한다. “가장 단순한 노동에서 도구로, 도구에서 다른 노동 및 도구로 점차 나아가면서 적은 노동으로 많은 어려운 일들을 해내는 지점에 이르렀던 것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지성은 자신의 본유적인 역능에 의해 스스로 지적 도구를 만들며, 그것(지성 도구)에 의해 지성은 다른 도구 또는 더욱 깊이 탐구하는 역능을 얻고 지혜의 절정에 도달할 때까지 점차 나아간다.”(117쪽 재인용)
  • 이에 대해 네그리는 이렇게 해설한다. “스피노자적 유토피아의 존재론적 법규는 여기서 자신의 역능이 고조된 채 나타나는가? … 진정한 방법은 적실한 질서에 따라 진리를, 사물들의 객관적 질서를, 또는 관념들(이 3가지 모둑 동일한 것을 표현한다)을 찾는 방법이다. 그래서 진리의 객관적 연계는 지각과 관련한 의존에서 벗어나게 되고 구성기획에만 종속된다. 우리는 객관적 존재의 절대적 발본주의에 맞닥뜨린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사실 이러한 실재론은 자신이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진리를 통해 스스로에게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지지만을 제공할 수 있는 상황 속에 살아 있다.”(117-118)
  • 그러나 『지성개선론』은 미완의 저작이다. 네그리는 그것이 스피노자가 봉착한 사유의 한계, 어떤 인식의 막다른 길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고 보면서 하지만 그 안에서 이후 배태될 어떤 새로운 사유의 한계지점을 읽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이렇게 얘기된다. “구성전략 대 범신론적 유토피아. 그러나 이것이 지배적인 요소일 수 있는가? 그것은 이 지점에서 가장된 형태로 방법의 구축적 확장성을 지배하는 유토피아의 엄청난 긴장일 뿐인가? 그러면 우리는 한계, 즉 더 이상 단순히 극복해야 할 장애가 아니라 유토피아적 사유의 현실적 위기지점에 이른 것은 아닌가? … 구성전략과 범신론적 유토피아 간의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닌가?(120-121)
  • 이것은 『소론』의 범신론적 유토피아와 『지성개선론』의 인식의 개선의 문제가 충돌한다는 것. 범신론 즉 모든 것이 ‘신’이라면, 왜 우리는 인식을 개선하고 무엇인가를 알려하는가의 문제로 나타난다.

■2021년 8월 31일 (화요일) 오후 1시 30분-4시 30분

■내용

  • 127쪽부터 강독(영 p. 39, 불 p. 89), 2장 3절 「존재론적 밀도」
  •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와 『형이상학적 사유』은 루드비히 마이어가 서문을 써서 1663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들의 위치는 스피노자 사상의 기원에 있어서 그리고 그의 서클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사실상 『지성개선론』의 방법론적 시도의 위기가 요구하는 중단과 비판적 성찰의 계기를 의미한다.” 『원리』와 『사유』는 스피노자 사상의 발전에 있어 매우 필수적인 어떤 중단이 일어났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즉 이 저작들에서 일어난 사유의 과정은 “구속되지 않는 존재역능을 향한 개방을 암시”(129)한다.
  • 마이어는 이들 책에 대한 「서문」에서 “유토피아적이고 혁명적인 반데카르트주의의 3가지 근본적 주안점, 즉 사유와 연장 간의 이원론 부정, 인간 영혼의 독립성 부정, 그리고 지성과 의지 간의 동일성을 강조한다.”(129) 『소론』의 범신론적 유토피아와 『지성개선론』의 지성의 점진적 발달의 방법론이 상호 충돌하고 이론적으로 해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념론으로의 도피에 직면하여 존재론을 주장하는 것” 이것이 강조되어야 할 점이다. 스피노자는 “극단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이론은 존재로 직접 후퇴하고 모든 가능한 관념론 형태에 대항해 전쟁기계를 작동시킨다.”(130) – 『형이상학적 사유』는 정확히 무엇을 다루고 있는가? “시작부터 그것은 존재의 정의를 자신의 핵심문제로 가정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그 자체로 존재의 정의(필연적이거나 가능한 상태로서 명석판명하게 인식되는 것)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부정적인 정의를 갖는다. 즉 현실적 존재는 비현실적 존재, 허구, 환영, 이성의 존재와 구별된다.”(131) 이때 “공통의 이름들”이 중요하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플라톤적 흐름(보편자와 초월적 실재론)에 맞서면서 다른 한편으로 아리스토텔레스적 흐름(동일자와 종의 분류)에 맞서면서 모든 존재의 존재론적 본질을 ‘코나투스’의 이름으로 포착한다. 그래서 “유비적 존재에 대한 스콜라주의적 표상, 단성성에 대한 관념론 표상 양자를, 그리고 권력의 상을 개혁하는 신스콜라주의와 변형의 책임을지지 않는 데카르트주의 및 관념론 양자를 파괴”된다.(135)

연구공간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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