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느매기의 삶의 지혜, 서로의 경계를 넘은 공존

이 글은 노숙 유경험자들이 모여 경제적・정신적인 자립을 꿈꾸며 만든 사회적 협동조합 노느매기의 이야기이다. 노느매기 조합원들 사이에서 경험한 관계의 어려움을 통해 상호공존의 지혜와 새로운 관계 맺기의 원동력에 대해 성찰해 보았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개방성 속에서 삶의 예술이 가르쳐주는 관계의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우리가 한 번씩은 익숙하게 들어봤지만 모든 구절을 다 외우지 못하는 시 중에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있다. 「풀꽃」이 세 개의 시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2
이름을 알면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풀꽃 3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있는 그대로를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지만 그 안에서 기죽지 않는 나를 꽃피우는 것- 그것이 꽃처럼 아름다운 관계 맺기가 아닐까…

2013년 노느매기 협동조합(노숙 유경험자들이 모여서 경제적・정신적인 자립을 꿈꾸며 만든 마을기업이자 사회적 협동조합)을 결성할 당시 나는 조합에서 상근을 하지는 않았기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조합 내부의 사정에는 비교적 어두운 편이었다. 이사로서 수행해야 하는 최소한의 역할에 만족하고 조합 실무자를 응원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조합 초창기 생활학교라는 이름으로 나들이, 교육프로그램, 밥상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한 프로그램에서 서로 마주 보고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리만큼 다가가 보는 경험을 가져봤다. 관계의 친밀함을 물리적으로 표현해본 것이다. 다가서는 거리가 다들 달랐고 가까이 오지 않았음을 이유로 비난하거나 섭섭해 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아…그렇구나’하며 인정해야 하는 당연함을 새삼 배워보는 시간이었다. 평소에 이야기를 자주 나눠본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내가 반응했던 거리는 가까운 듯 멀었던 것 같다. 당연하면서도 내심 미안했다.

사회복지사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역전이(逆轉移)를 객관적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노숙인 시설에서 일을 하면서 느꼈던 역전이 상태의 감정은 한마디로 무력감이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해도 별로 기쁘거나 발전이 없는 상태의 이용자들을 보면서 무력감을 함께 호흡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이들은 일자리를 나눠주는 권력을 가진 사회복지사 앞에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시설 또는 개인에게서 청탁을 받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지극히 이타적인 그분의 선택이라 여기며 짐짓 모르는 척했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권력 관계로 유지되는 시설에서 벗어나 협동조합으로 함께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먼저 해내야 하는 것은 무력감에서 벗어나 함께 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마음을 모으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내보이며 잇대고 함께 행동하고자 하는 기운들이 모였다.

사회로부터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스스로에게마저 배제와 소외를 경험해 온 노느매기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것은 일정 부분 치유의 과정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 
사진출처 : PublicDomainPictures
사회로부터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스스로에게마저 배제와 소외를 경험해 온 노느매기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것은 일정 부분 치유의 과정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
사진출처 : PublicDomainPictures

함께 땀 흘려 작물을 가꾸고, 함께 새참을 먹고,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로 김장을 담그는 잔치의 경험들은 우리에게 공동체라는 소속감을 부여하고, 이것이 우리를 위로했다. 곧 우리 안에서 자발적인 사업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학교에서 나오는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어 팔아 수익을 내보자는 생각이었다. 곧 비누 선생님을 모시고 교습을 받으면서 우리 조합원들은 자신의 의지와 경험이 체화된 비누를 하나의 다른 자아인 양 고이 다루고 정성스레 다루었다. 어떤 면에서는 작품을 빚어내는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관계의 어려움을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 영등포 지역의 주거돌봄 사업을 노느매기가 맡아서 하게 된 후부터였다. 집수리 사업은 비누나 텃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고강도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텃밭 고랑 사이를 천천히 걷는 데 익숙해 있던 조합원들은, 이제 몇 대의 자동차에 팀별로 다니며 계절의 변화와 동네의 모습, 사람들의 표정을 살필 여유를 잃어갔다. 사업량이 늘어나며 서로의 소통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음에도 겨우 몸을 가누며 침묵 속에 짐을 챙기고 퇴근하는 모습들을 지켜봐야 했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니 만 3년의 시간 동안 이어져온 강도 높은 작업들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피로도도 증가시켰다. 이에 소통 과정에서 생긴 갈등이 적극적, 혹은 소극적인 공격성 또는 불만으로 나타났다. 침묵은 곧이어 외면으로 나타나거나 화가 난 표정으로 변해갔다. 서로를 위로할 여유가 없는 긴장 속에 몇몇은 하루 이틀을 무단으로 결근하기도 했다. 신입 조합원이 아닌 중간 관리자가 되어서도 피로와 긴장을 이기지 못해 무단이탈하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다. 단지 한 두 사람의 결근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경직되고 억압된 분위기가 사무실과 현장을 지배했다.

한 중간 관리자가 이틀을 무단결근 후 말없이 출근하자, 나는 현장으로 출발하기를 중단시키고 제안했다.

“우리 함께 이야기를 합시다.”

무겁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이야기를 했다.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사과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왜 화가 났는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상의를 충분히 하고 다른 업체에 일을 주었으면 했는데, 일방적으로 내 일을 다른 업체에 주어서 무안하고 허탈합니다.”

얼마 전부터, 힘들고 고된 일정 속에서 밀려드는 일거리의 속도와 양을 줄여보고자 고민을 해왔다. 그러던 중 우리와 같은 일을 하는 외부 업체에 타진해보니 다행히 주거돌봄 일거리를 흔쾌히 분담하겠다는 곳이 나타나서 협약식을 했다. 그런데 이 관리자는 이 일거리를 어떻게든 자신이 맡아서 처리하고자 했는데 충분한 상의없이 다른 협력업체에 일거리를 넘겼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자신을 무시하고 자신의 노력을 평가절하하는 행동으로 여겼던 모양이다. 기한 내에 일을 처리해 내야 하는 집수리 사업의 특성상 일이 몇 주나 지연되는 것은 사업의 존폐에 영향을 미칠 만한 심각한 사안이었다고 판단됐음에도 현장에서 일을 진행하는 사람의 입장은 나와 달랐던 것이다. 사실 그가 하는 말이 지금도 다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은 처음에 배웠던 그것, 즉 공간과 거리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서로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하고, 함께 하는 공간 안에서 서로 침범당하지 않는 경계에 보호받으며 소통하는 것이 가능해야만 조합과 일 속에서 상호공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엄혹했지만 정해진 기간 내에 처리해야만 하는 일의 압박, 그리고 의뢰인과 신뢰의 관계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 책임자의 마음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았고 침묵의 이틀에 대해 오히려 화가 났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지만, 그래도 애써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해야 하듯이 나와 너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공존하는 법을 배우려 한다.

글의 시작, 아니 우리 조합의 시작부터 ‘우리’, ‘서로’ 같은 관계를 전제하는 용어를 우리는 사용해왔다. 하지만 사실 우리를 이루는 그 안의 ‘나’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불완전한 ‘나’들이 모여서 ‘우리’를 이루는 과정은 일차 방정식 같은 단순한 대안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은 입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회로부터 뿐만 아니라 가족들, 오랫동안 스스로에게마저 배제와 소외를 경험해 온 노느매기 조합원들과 함께 하는 것은 일정 부분 치유의 과정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가 경험하는 병원이나 상담실의 치유와 달리 노느매기 조합은 현실의 치열함 속에서 오랫동안 사회와 자신에게서 상처받은 치유자들의 관계 안에서 치유가 이어져야 한다.

어떤 효과적인 소통의 이론이나 전문가 하나의 도움으로는 자아로부터의 소외와 사회로부터의 상처, 일터의 스트레스가 복잡하게 얽혀서 존재하는 이 실타래를 풀 수 없다. 그렇다면 엉킨 관계의 뭉치들을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나는 노느매기협동조합이 시작될 때부터 노느매기가 일반적인 직장들과는 다른 양상으로 일을 진행하리라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처리는 물론 관계 맺기에서도 기존의 모든 조직관리 이론을 비웃는 듯한 독특한 사건들과 말들이 존재한다. 경험을 통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과 관계, 일터를 사랑해주는 것’이다. 사회의 포기와 가족의 포기와 직장의 포기와 나로부터의 포기가 우리 조합원들의 삶의 경계를 우그러뜨리고 점점 가두어 오지 않았던가. 그러니 ‘포기하지 않고 함께 하는 것’만이 이 새로운 관계 맺기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동시에 ‘경계 정하기’도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몸으로 배운 이 조합에서의 경계 설정하기는, 조합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 상황, 의견 차이 때문에 때로는 나를 밀어내려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관망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그 감정과 행동-때론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을 만큼 거친-의 역동 안에 내가 잠식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단지 바라보고만 있다고 관망은 아닐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개방성을 체험하고 실천하면서도 잠식당하지 않는 나만의 경계를 지켜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보고 싶다. 배려의 관찰이나, 플러싱 룰 등 많은 이론들을 안전하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의 환경을 조성해보고 싶다. 정해진 결론 너머를 상상하는 것, 예술이 우리 삶에 가르쳐주는 통찰이 아니던가. 나와 조합, 우리의 관계 속에서 그 너머를 끊임없이 상상하고 싶다.

박상호

사회적협동조합 노느매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노느매기는 경제적취약계층 남성 독신가구들이 모여 사회적 관계망을 만들고 스스로 돕고 성장하며 마을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창립된 협동조합입니다.
영등포구 주민이 되고 싶은 강서구민이며 새로운 탐험을 좋아하고 매사에 열정적으로 임하며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에너지를 찾아내는 것을 활력으로 여기며 즐겁게 살아가는 중년입니다.

댓글 1

댓글

댓글 (댓글 정책 읽어보기)

*

*

이 사이트는 스팸을 줄이는 아키스밋을 사용합니다. 댓글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아보십시오.


맨위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