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농부, 자연농을 만나다

유기순환 농사를 지향해 온 도시농부가 기후위기 시대에 맞는 농사방식 으로의 전환을 고민하면서, 자연농으로 40여 년 실천하며 자급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연농 자급농부(최성현, 개구리)를 만나, ‘자연농부학교’라는 교육과정을 통해 실험한 현장의 이야기

“○○씨앗은 언제 뿌려야 하나요?” 라는 질문은 도시에서 농사 교육을 하는 나로서는 가장 흔하게 듣는 질문이다. 뿐만아니라 씨앗을 뿌리고 작물을 돌보는 과정마다 어떻게 하면 되는지 사소한 질문까지도 많다. 농사일을 얼마 접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많은 것들이 어려운 문제들인가보다. 책을 통해, 사람을 통해 많은 공부를 하며 농사짓기를 하는 도시농부들이 참 많다. 책과 사람에게서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생길 때면 나의 경우는 ‘자연에서는 어떨까?’를 생각해본다. 그러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른 봄 추위가 가시지 않은 들판을 살펴보면 겨울을 난 먹을 수 있는 나물과 풀들이 많다. 보통의 경우 3월 말, 4월 초에 잎채소 씨앗을 뿌린다. 책에도 사람들도 그 시기에 씨앗을 뿌리라 한다. 하지만 그 시기에 이미 밭에는 작은 초록 채소잎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작년에 떨어진 씨앗이 작은 봄기운을 차곡차곡 쌓아 잎을 올려낸 것들이다. 자연에서는 씨앗을 받아 따로 보관했다가 뿌려주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생명 자신의 방식으로 씨앗을 떨구고 때가 맞으면 싹을 틔우고 자라게 되고 또 씨앗을 만든다.

자연농부학교. 사진제공 : 곽선미
자연농부학교. 사진제공 : 곽선미

사람의 농사는 수많은 연구와 노력으로 그 생산성은 높아져 온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농사를 이야기한다면 부정적이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공론화되어 있다. 기후위기에 직면한 현 상황에서 재생농업, 보존농업, 자연농법, 생명역동농법, 퍼머컬쳐 등등 지속 가능한 농사방식으로 제안되고 있다. 이미 20여 년 전 일어난 도시농업운동에서는 유기순환 농사를 지향하며 도시농부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순환의 고리가 제대로 연결된다면 지속가능하고, 그 방식은 유기순환 방식의 농사라고 믿었다. 우리의 전통농업이 4천 년을 이어왔으니 우리의 순환농사는 어느 정도 그 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유기물을 땅에 다시 돌려주고, 섞어짓기와 사이짓기, 돌려짓기를 했던 소농의 방식. 여기에 땅을 깊이 갈지 않는 자연의 방식을 더해 보면 어떨까? 자연의 여러 형태의 숲은 누군가 땅을 갈지 않고 거름을 주지 않아도 큰 나무를 키워내고 많은 생명을 깃들게 하고 있다. 사람의 농지 또한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답으로 가장 근접한 농사 방식은 현재로선 ‘자연농’이 아닐까 싶다.

‘도시농부를 위한 자연농부학교’ 올해 6월 25일부터 11월 26일까지 만5개월 동안 서울 인근 고양시 우보농장을 거점으로 자연농을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는 17명. 이 과정에 ‘안내자’로는 홍천에서 ‘지구학교’를 수년간 이어왔던 최성현 농부였다. 40여 년의 삶을 자연농 방식의 농사로 먹거리를 자급하고 있는 그에게서, 농사법만이 아니라 그의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삶의 철학까지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정의 첫째 날 밭에서 이루어진 씨뿌리기는 자연에 무릎을 대고 시중드는 그의 태도를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이 밭의 땅은 농사짓기에 어떤 땅인가요? 괜찮은 땅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내가 만나는 땅이 가장 좋은 땅이다”였다. 풀과 벌레를 적으로 여기지 않는 농사를 짓지만 작물이 자라도록 ‘시중’드는 일에 풀을 베는 과정은 마음 아픈 일이라고 했다.

두텁게 유기물로 덮여있는 최성현 농부의 밭. 사진제공 : 곽선미
두텁게 유기물로 덮여있는 최성현 농부의 밭. 사진제공 : 곽선미

자연농의 세계는 ‘무경운’으로부터 열린다고 한다. 경운의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는 제초에 있다. 땅을 갈며 풀을 제거하는 것으로 농사를 시작하고 부족한 유기물을 외부로부터 들여온다. 그러나 자연농의 방식에서는 풀은 뽑지 않고 베어 눕히고, 눕혀진 풀은 흙을 보호해주고 거름이 된다. 밭 전체를 갈지 않고 모종 심을 곳만 열어서 심고, 씨앗 뿌리기 위한 곳만 얕게 긁어낸다. 씨앗을 뿌린 후 맨흙이 드러난 곳을 풀로 덮어준다. 흙을 깊게 갈지 않고 필요한 곳만의 흙을 열고 작물이 자라는 데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풀을 베고 베어낸 풀은 흙 위에 덮어준다. 흙 위에 두껍게 유기물(풀, 짚 등)이 쌓이면 그것이 흙을 보호하고 작물의 거름이 되고 다른 생명의 집이 되어 흙 속에도 흙 위에도 사는 생명이 많아진다. 인간이 해충으로 생각하는 것을 먹어 줄 천적도 늘어나니 농약 없는 농사도 가능해진다. 벌거숭이 땅이 없이 밭의 모든 곳을 유기물(주검의 층)로 덮어주는 것으로 흙을 보호하고 흙 속의 생명에게 먹이 주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들이 먹기 좋게 손작두로 옥수수대나 볏짚 등 밭에서 나온 것들을 작게 잘라 흙에 잘 닿도록 정성을 들인다. 풀을 벨 때도 풀에 깃든 생명이 옮겨갈 수 있는 자리를 주기 위해 한 줄 건너뛰어 풀을 벤다. 무경운을 시작으로 무제초, 무비료, 무농약의 세계가 열린다. 땅을 갈지 않고 여러 생명이 어우러지는 숲과 같이 사람의 농사도 자연의 방식을 따라 짓는 것이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 여긴다.

배추밭옆 양배추밭은 청벌레의 밥상. 사진제공 : 곽선미
배추밭옆 양배추밭은 청벌레의 밥상. 사진제공 : 곽선미

배추벌레를 찾아 양배추밭에 옮겨주며, 자연농 방식의 자급 농부로 살아온 그이지만, 농사는 슬픈 일이고, 인간은 잘못 진화했다고 여긴다. 해서 점점 숲에서 나는 것을 먹는 법을 터득하고 싶고, 최근 그는 밤나무에서 그 해답을 조금은 찾았다고 한다. 산 가까이 사는 그는 그 산에서 많이 나는 ‘밤’을 식량으로 먹는 길이 그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이렇게 살 수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향할 수 있다고 본다. 농사 이전의 수렵 채취의 역사가 더 길다고 하면 너무 멀리 간 걸까?

도시농업에서도 무경운 농사를 이야기해왔다. 작물이 잘 자라는 토양의 상태는 땅속에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환경이 되면 자연스럽게 땅이 좋아진다는 것. 땅을 가는 일은 오히려 땅의 구조를 망가뜨리고 생물들에게 재난을 주는 일이 되는 것. 돌이켜보니 그렇게 이론적으로 교육했지만, 실제로는 땅을 갈고 농사를 지어 왔다. 물론 땅을 가는 것은 그 나름의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만큼의 부정적인 면도 있음을 알고 있기에 땅을 갈고 유기물 멀칭을 하는 등의 조치를 하며 땅을 갈아 왔다.

자연농의 방식이 무경운이라 하지만 실은 무경운이 아니다. 땅속 생명들이 살아가면서 구멍도 내고 영양도 주니 굳이 사람이 따로 땅을 갈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도록 땅을 가꾸는 것이다. 자연의 방식으로 지속되도록 사람의 농지를 가꾸는 일인 것이다.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을 꿈꾸고, 생태적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흙과 가까이 하는 귀농의 삶을 운동으로 펼친 역사도 25년을 넘어서고 있다. 귀농하기 어렵다면 도시에서라도 농사짓는 길을 안내한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다. 유기순환농사, 씨앗받는 농사로 흙과 더불어, 생명과 더불어 사는 길을 도시 사람들에게 교육하면서 적잖은 도시농부와 활동가, 도시농업 공동체, 도시농업단체들이 늘어났고 지금도 농사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 위기는 예상대로 현실로 다가왔고 재앙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이 재앙을 초래한 중심에는 인간의 활동이 있다. 인간의 농사가 기계화, 규모화되면서 생겨난 경운의 문제에 주목하게 된다. 해서 방법론적인 대안이 여러 가지로 제시되고 있다. 농부로서 어떤 방식의 농사를 지어야 지속가능할까를 다시 한번 고민되었고, 인간의 농사가 아닌 자연의 방식을 돌아본다.

아직은 유기물이 부족한 자연농부학교 교재밭. 사진제공 : 곽선미
아직은 유기물이 부족한 자연농부학교 교재밭. 사진제공 : 곽선미

‘도시농부를 위한 자연농부학교’는 기후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그리고 나를 지속하기 위한 농사방식을 소개하고 실천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 참여자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과정을 마치고 여러 가지 또 다른 실험과 교류가 일어나고 있다. 과연 이 방식으로 얼마만큼 내가 해낼 수 있을까를 실험하기 위해 겨울을 맞기 전 도시농부로는 넓은 면적의 밭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이들이 몇몇인가 하면, 잊었던 자신의 자연성을 다시 찾았다는 참여자도 있다. 귀농지에서 자연농을 지향하며 사과농사를 짓는 귀농인. 기후 위기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참여하게 된 초보 농부도, 일찍이 앞으로의 삶터를 산 가까이에 준비한 청년 또한 자연을 지향하는 방식을 배웠다. 도시에서 도시민과의 교류, 농민과의 교류 방식으로 자연농을 선택하기도 했다. 방식은 다르지만 자연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그와 닮은 다양한 답이 찾아지리라는 기대를 해본다. 자연이 씨앗을 떨구듯 자연농부학교도 이들을 도시에 떨구었다.

곽선미

2009년부터 은평구에서 텃밭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 반농반도(半農半都)로 먹거리 자급을 했던 소도시 출신으로 자연과 닮은 삶의 지향이 도시의 여러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현재 사단법인 텃밭보급소 대표로 활동하며 흙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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