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살림은 곧 아이 살림이자 하늘 살림이다

『중용』에 “천지의 화육을 돕고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했다.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이 둘이 잘 순환하도록 매개하는 존재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인간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수운 선생의 ‘다시개벽’이란 결국 천지 사이에서 천지를 매개하고 돌보고 살리는 인간의 창조적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라고 생각한다.

올봄부터 드디어 땅에 내려앉게 되었다. 오랫동안 자연농을 동경해 왔지만 그럴 땅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올해 초 지인이 용담정 아래 300평 땅을 빌려주었다. 작년까지 농약과 비료, 제초제로 농사짓던 땅에는 검정비닐이 덮여 있었고, 멧돼지와 고라니를 피하기 위한 울타리도 있었다. 제일 먼저 울타리와 비닐을 걷어내고 새로 밭두둑을 만들었다. 네모반듯한 모양보다 달팽이, 반달, 열쇳구멍 등 자연을 닮은 모양으로 밭을 디자인하였다. 그 과정에서 퍼머컬처(permaculture: 영속농업) 공부도 하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삽질과 호미질은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갈수록 마음은 편안해졌다. 먼 길을 돌아서 근본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호미를 들고 보니 땅이 보이고, 나와 지구의 연결을 느끼게 되었다. 사진출처: rkit
호미를 들고 보니 땅이 보이고, 나와 지구의 연결을 느끼게 되었다.
사진출처: rkit

말로만 동학을 하는 것이 어느 순간 싫어져서 가담하게 된 것이 환경운동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였다. 환경운동은 최전선이었다. 가장 급진적이었고, 가장 반정부적이었으며, 가장 반자본주의적이었다. 4대강에서부터 제주도 강정, 밀양 송전탑, 탈핵, 소성리 사드까지 많은 현장을 누볐다. 곳곳에서 자본의 욕망과 부딪혔다. 환경의 문제는 결국 경제의 문제이며, 정치의 문제라는 것도 뼈저리게 실감했다. 한 번도 이긴 적 없는 싸움을 수행(修行)삼아 했다. 내 안의 분노를 평화로 바꾸는 것이 승리의 유일한 지표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 묘한 기쁨을 발견했다. 더운 한여름, 땀을 비 오듯 적시면서 이웃 종교인과 함께한 생명평화순례길은 그 어떤 발걸음보다도 가벼웠다. 천막농성장의 한구석에서 쭈그려 지샌 하룻밤이 그 어떤 호텔방에서의 잠보다 달콤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의 목소리를 따르는 삶을 살게 된 기쁨이었을까? 그 길에서 만난 얼굴들은 투쟁의 한가운데서도 때때로 어린아이같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제도권 대학의 사람들에게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웃음이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전선의 포화는 멈추었다. 적들은 일순간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 무렵 나는 운명적으로 방정환을 만났다. 경주에 작은 어린이집을 개원하면서 방정환을 공부했다. 어린이에게 기쁨을 돌려주고자 했던 소파 선생의 꿈을 이 작은 공간에서나마 이뤄주고 싶었다. 그런데 하늘은 나를 다시 인도로 보냈다. 말로만 듣던 세계적인 생태영성공동체, 오로빌(Auroville)로 가게 되었다. 갓 두 돌이 된 아이를 안고, 뱃속에 아기를 품은 아내와 함께였다. 오로빌의 삶은 거칠고 무덥고 불편했지만, 느리고 평화로웠다. 맨발로 붉은 땅을 밟으며 아이와 뛰어놀았고, 40도가 넘는 공동부엌의 뜨거운 불판 위에서 빈대떡을 구웠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스리 오로빈도의 공부 모임에 참여하고, 마트리만드리의 명상홀에서 쏟아지는 빛을 느끼며 명상을 했다. 거기서 둘째를 낳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꿈같은 시간이었다.

오로빌의 삶은 길지 않았다. 만 2년이 채 안 되었을 때 코로나로 인해 귀국길에 올랐다. 정착한 곳은 경주. 아이 둘을 ‘방정환한울어린이집’에 보냈다. 처음 개원할 때 우리 아이들을 그곳에 보내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다행히 인근의 대학에서 강의할 자리를 얻게 되고, 방정환배움공동체의 일을 맡게 되었다. 처음 한 일이 마을카페를 여는 것이었다. 엄마들의 아지트이자 배움터로 삼고자 한 것이었는데, 1년도 못 가 문을 닫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삶의 공부가 부족한 탓이었다. 뼈아픈 실패였다.

그리고 올해 다시 인연이 된 것이 용담정 아래의 밭이었다. 수운 선생의 묘소에서도 머지 않은 곳이다. 기계를 쓰지 않고 모든 일을 호미와 삽으로 했고, 개울에서 물을 직접 길어다 뿌렸다. 두 달 동안 비 한 방울 구경하지 못한 봄 가뭄을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으로 느끼며 기후 위기를 절감하기도 했고, 마침내 비가 내릴 때의 말할 수 없는 기쁨도 느끼기도 하였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봉우리가 맺힐 때의 기쁨은 또 말할 수도 없었다. 밭 위로 두루미가 날고, 저녁 어스름 은은한 달빛의 황홀감 역시 표현하기 어렵다.

호미를 들고 보니 땅이 보이고, 나와 지구의 연결을 느끼게 되었다. 어린이 운동의 끝에서 자연농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해월의 삼경(三敬)을 어떻게 구현할까 하는 고민이 어린이 운동으로, 또 땅 살림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땅을 회복하는 것이 아이 살림의 기초이기도 하다. 그리고 땅 살림의 핵심이 잡초, 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잡초는 뽑아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후 위기를 막아낼 가장 강력한 우군이라고 한다. 풀은 줄기보다 뿌리가 훨씬 더 길고 풍성하다고 한다. 그 뿌리로 인해 풀은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고 땅을 비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공중의 탄소를 포집하기도 한다. ‘이 땅에 거대한 뿌리를 박음’으로써 땅을 살리고 하늘을 살리는 것이다.

비는, 풀을 포함한 땅의 모든 생명 활동에 대한 하늘의 감응이며 선물이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땅과 하늘이 잘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용』에 “천지의 화육을 돕고 천지와 더불어 셋이 된다”고 했다.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이 둘이 잘 순환하도록 매개하는 존재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인간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수운 선생의 ‘다시 개벽’이란 결국 천지 사이에서 천지를 매개하고 돌보고 살리는 인간의 창조적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인간의 마음의 급박해지면 땅의 소식을 하늘에 전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늘로부터 응답을 받을 수 없다. 결국 마음 살림과 땅 살림, 아이 살림이 연결된다. 해월의 삼경(三敬)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다.

어린이 운동은 진정한 인간 해방을 꿈꾼 개벽운동었다. 사진 출처 : trilemedia
어린이 운동은 진정한 인간 해방을 꿈꾼 개벽운동었다.
사진 출처 : trilemedia

올해는 천도교 소년회가 주축이 되어 어린이날을 제정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방정환 선생은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제대로 돌봄과 교육을 받지 못하던 어린이들을 위해 하루라도 어린이가 주인된 날을 만들어 어른들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당시 어른들에게 어린이들은 주머니 속 물건 같은 자기의 소유물이 아니면, 기껏해야 보호해야 할 대상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온갖 심부름을 도맡고 가사를 돕는 일꾼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당시 일제 식민지 지배의 설움 속에서 아이들은 가장 힘없는 존재였고,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에 구박과 폭력, 학대에 시달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올바른 심신의 성장을 위한 돌봄과 배움은커녕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슬픔과 억압 속에서 짓눌려 지내야 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선생은 어린이날을 정해서 어린이 본래의 씩씩함과 생기를 회복시켜주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가슴에 기쁨을 회복시켜주려고 어린이날을 제정하였다.

원래 어린이날은 5월 1일이었다. 그 이유는 그날이 노동절이기 때문이다. 무산자 계급의 노동자의 계급해방을 촉구했던 그날, 어떤 측면에서는 노동자보다 더 억눌려 있는 어린이들의 해방을 위해 그날을 어린이날로 정했던 것이다. 방정환 선생은 인간 해방의 끝은 어린이 해방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방정환이 주도한 어린이 운동은 단순한 보호운동이나, 인권운동을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어린이 해방을 부르짖음으로써 진정한 인간해방을 꿈꾼 개벽운동이었다.

지난 6월 13일, 아기 기후소송단이 정부를 상대로 기후 위기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 주된 청구인으로 정부가 법령으로 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가장 오랜 시간 살아가야 할 ‘아기’들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법률대리인으로 부모들이 참여한 것이긴 하지만, 소송주체가 우리보다 더 오래 미래를 살아갈 우리의 아이들이 당연한 권리로서 그들이 살아갈 미래를 위한 목소리를 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본다.

나의 둘째 아이는 2019년생이다. 이제 만으로 3세이다. 지금의 기대수명으로 볼 때 2100년에도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기후 위기가 우리 인류를 삼키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말이다. 우린 지금 아이들의 미래를 빌려 쓰고 있다.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지 100년이 되는 올해, 땅을 살리고 하늘을 살리고, 우리 아이들을 살릴 방법은 어디에 있는가? 땅 살림이 곧 아이 살림이고 하늘(기후) 살림이 아닐까? 풀에게 삼가 무릎을 꿇는다.

김용휘

동학을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철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천도교한울연대 공동대표, 방정환한울학교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방정환배움공동체 ‘구름달’ 대표. 대구대 교수. 2018년부터 2년간 인도 오로빌공동체를 탐방하고 돌아왔다. 지금은 경주에 정착해서 두 아기를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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