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하트 「핵 주권」 ③ : 번역

이 글은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의 「핵 주권 Nuclear Sovereignty」(Theory & Event, Volume 22, Number 4, October 2019,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pp. 842-868)에 대한 번역문으로, 총 6회에 걸친 시리즈 중 세 번째 글이다.

핵 헌법

핵무기 보유국에 생긴다고 상상되는 주권 권력은 내적으로 평행한 효과를 낳는다. 즉 핵 주권 외부[국외와 외교]는 군주정 내부[국내와 내치]에 상응한다. 최근 수십 년 간 전 세계의 헌법 체계는 행정부에 권위를 집중시키는 쪽으로 권력의 무게추를 이동시켰다. 대량무기, 그것도 절대적 파괴력을 가진 무기가 정치적 의사결정을 한쪽으로 집중시킴으로써 민주주의에 반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은 불가피한 일일지 모른다. 더욱이 이러한 헌법의 변형은 군사논리와 군사화된 사회관계의 영향력 및 파급력을 증가시키는 일과 나란히 진행된다. 이러한 군사화 과정에 깊이 감춰져 있을지라도 핵무기의 위협은 항상 존재하는데, 그 결과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일이 바로 군사화된 헌법, 그리고 핵 헌법이다.1

20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행정부와 입법부 중 어느 곳에 전쟁 개시의 권한을 줄 것인가가 크게 논쟁된 바 있다. 미 헌법이 분명 전쟁 선포권을 의회에 부여하긴 했지만, 대통령들은 이 권한을 뺐어오는 데 성공했다. 미국의 베트남전 패배와 대통령의 직권남용이 폭로된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의회는 자신의 입헌권력의 몫을 되찾은 다음 대통령의 전시작전권에 제한을 두고자 했다. 그러나 의회의 이러한 노력은 효과가 없음이 입증되었고, 행정부는 이 전투에서 확고한 승리를 거뒀다. 2003년의 이라크 침공 이전에도 이미 그러했지만, 현재는 행정부가 의회가 자문을 받는 경우는 자신들이 내린 결정을 입법화할 경우뿐이다.

미국 대통령은 다른 정부 부서나 기관들의 동의 없이도 세계의 도시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무기를 발진시킬 수 있다.
by M.H. 출처 : https://pixabay.com/ko/illustrations/%ED%8A%B8%EB%9F%BC%ED%94%84-%EB%AF%B8%EA%B5%AD-%EB%8C%80%ED%86%B5%EB%A0%B9-%EB%AF%B8%EA%B5%AD-1822121/
미국 대통령은 다른 정부 부서나 기관들의 동의 없이도 세계의 도시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무기를 발진시킬 수 있다.
사진 출처 : M.H.

행정부의 의사결정권을 지지하는 핵심 주장 중 한 가지는 다음과 같이 광범위한 효과를 지닌 현상의 징후이다. 즉 미국이 20세기 후반에 일으킨 수많은 군사적 갈등들은 전쟁이 아니라 경찰행동으로 이해되며, 그래서 그 갈등들은 의회의 결정이라는 헌법에 명시된 요구사항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쟁과 경찰행동의 분할선이 주권국가들 간의 경계선과 더불어 흐릿해진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표준적인 근대적 정의에 따르면 주권국가들 간의 갈등이지만, 경찰행동은 주권의 영토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안보상황과 안보장치의 확대는 군인과 민간인의 경계선을 흐려지게 한다. 사회 전체가 잠재적인 전쟁 지대가 된 것이다. 한편에서 경찰이 점점 더 군대화되는 동안 반대편에서 군대는 해외와 자국에서 경찰작전을 벌인다. 이 모든 것이 결합된 발전은 행정권력이 증가하는 쪽으로 나아간다.2

헌법의 권력이 행정부로 집중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많은 좋은 근거가 있다. 그 중 하나는 헌법의 변형이 군사적인 협치구조 및 의사결정과 일치하거나 그것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이다. 워싱턴 정가 쪽의 언어로 말하자면, 이것은 권위가 포토맥강3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미 국무부에서 펜타곤으로 이동한 것으로 번역된다. 물론 전통적 분업에 따르면, 펜타곤은 주로 군사 작전을 지휘하는 반면 국무부는 외교정책을 책임진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펜타곤은 넓게 퍼지는 안보 및 군사 장치의 덩굴을 따라 비-군사업무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했다. 제임스 맥카트니와 몰리 싱클레어 맥카트니에 따르면, “국무부가 미국의 외교정책을 관장한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하라. 가장 최근의 행정업무에서 미국의 외교 정책을 통제하는 주 권력은 … 펜타곤이었다.”4 트럼프 대통령 하에서는 이 과정이 극적으로 가속화되었으며, 미국의 대외정책의 군사화와 그에 상응하는 외교의 몰락이 촉진되고, 국무부에 대한 펜타곤의 승리가 공고화되었다. 국방예산의 확대는 분석가, 대사관 직원 등을 포함하는 외교사절단의 급격한 인원감축과 일치했다. 베테랑 외교관 리차드 홀브룩의 전임 보좌관인 로난 패로우는 이렇게 탄식한다. “세계에서 진행되는 미국의 많은 개입에서, 군사적 동맹은 한 때 민간의 외교와 균형을 이루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외교를 잠식했고, 이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5

브루스 애커먼이 주장하길, 협치 구조에서 군 역할의 확장은 군대의 정치화와 일치했다.6 최근까지 미군 장교들은 일반적으로 선거 정치와 관련해 초당파적 입장을 유지했으며, 이는 군 장교의 의무는 그가 재직할 때에는 선출된 정치지도자가 누구든 상관없이 지도자가 내린 결정을 따르고 실행하는 것이라는 원칙과 궤를 같이 한다. 실제로 과거 수많은 미군 장교들은 자신들의 비정치적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 정치적 지위, 특히 행정부 참모로서의 정치적 지위를 차지하거나 TV에 나와 국제적인 갈등의 문제를 논설하는 전․현직 장성들과 제독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군대의 정치화와 나란히 정치, 외교, 협치가 군사화되는 과정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50년대 말 찰스 라이트 밀즈는 어떻게 정계, 재계, 군부에 대한 통제가 점점 더 똑같은 소수의 몇몇 사람들의 손아귀에 놓일 수 있는지에 대해 탄식한 바 있다. 밀즈에 따르면 전에는 이 세 영역들이 상대적으로 자율적이었다. 군사기구는 정치와 돈벌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정치 영역은 자본과 군 명령으로부터 독립적이었다. 경제는 상대적으로 군대와 정치세력들과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밀즈가 주장했듯이 1950년 무렵에는 이 세 영역에 대한 통제권이 점점 더 겹쳐지고 있었다. 지배하는 하나의 사회적 몸인 ‘파워 엘리트’가 출현하고 있던 것이다. 거기에는 고위직 군부, 기업체의 중역들, 정치부장들이 한데 모여 있다. 실제로 이 세 영역들에는 종종 똑같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중책을 맡는다. 전임 군 장교가 기업의 CEO가 되고 나중에는 정치인이 되는 식이다.7 밀즈가 50년 전에 인식했던 이러한 경향은 이후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더 가속화되었다.

미국 헌법과 미국 사회를 군사화시키는 모든 요소들의 기원은 직․간접적으로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에 있다. 1945년 8월 미국 대통령은 전에 만들어진 그 어떤 것보다도 파괴적인 무기에 대한 결정권을 부여받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대통령은 다른 정부 부서나 기관들의 동의 없이도 세계의 도시들을 완전히 파괴하는 무기를 발진시킬 수 있으며 그 뒤로는 핵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인류의 지속적 생존을 위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독점권이 행정부의 손아귀에 쥐어진다는 사실—이는 오랫동안 핵 버튼 위에 올려진 미국 대통령의 손가락이나 대통령이 있는 어디든 동반되는 “핵 축구공”의 이미지로 그러졌다—은 첫 원폭 이후 수십 년 동안 정부 내 권력 균형을 극적으로 기울게 했다. 우리는 핵무기에 대한 권력이 협치 구조 및 그 토대를 얼마나 많이 채색하고 때로는 결정하기까지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즉 이러한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핵무기에 대한 권력이 전쟁을 개시할 권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다음 단계로 내려가 그러한 권력이 전쟁과 경찰행동 간의 경계가 흐려진 결과 국외와 국내의 사회 영역 전체에 어떤 영향력을 확산시켰으며, 또 가장 밑바닥에서는 국가의 안보상태 및 항구적 위기상태의 발전과 더불어 전쟁 권력이 얼마나 더 깊숙이 사회조직으로 스며들었는지를 말이다. 다시 말해 핵폭탄은 미국 헌법을 변형시키는 어느 정도로 강력한 추동력인가? 미국 헌법은 어느 정도로 핵 헌법이 되었는가?8

※ 다음 편에 계속…


  1. 현재 진행되는 헌법의 군사화가 미국이나 핵 열강들에만 한정되지 않는 점에 주목하자. 일본을 재무장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아베 신조 수상은 “국가의 주권적 권리인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며, 육․해․공군을 유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일본 헌법 9조를 약화 혹은 폐기하고자 했다.

  2. 같은 시기 동안, 정치권력은 여러 가지 점에서 전쟁 권력과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는 행정부로 집중되었으며, 헌법의 균형추는 더욱 기울어졌다. 가령 미국 대통령들은 행정명령을 통해 통치하고, 비상지휘권을 발동시켜 자신들의 일방적인 권력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통제권을 의회에서 행정부로 이동시켰다. 게다가 행정부는 일정한 합법적 위상을 지닌 의견을 제출하는 변호인단을 활용한 법의 날개를 펼쳐 대법원의 권력을 끌어내렸다. 이에 대해서는 Bruce Ackerman, The Decline and Fall of the American Republic, Cambridge, MA: Harvard Unversity Press, 2011를 보라.

  3. [옮긴이주] ‘포토맥강’(Potomac River)은 버지니아 주의 하이타운과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페어팩스 스톤에서 발원하여 대서양 연안의 체서피크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으로, 인근에 워싱턴 D.C와 리치먼드가 있다.

  4. James McCartney with Molly Sinclair McCartney, America’s War Machine: Vested Interests, Endless Conflicts, New York: St. Martin’s Press, 2015, p. 9.

  5. Ronan Farrow, War on Peace: The Decline of American Influence, New York: Norton, 2018, p. ⅹⅺ, [한글본] 로난 패로우, 󰡔외교의 몰락 – 미국 외교의 붕괴와 글로벌 리더십의 포기󰡕, 박홍경 옮김, 북플러스, 2019, 33쪽.

  6. 민간 통제의 상실과 그에 상응하는 미군의 정치화에 대해서는 Bruce Ackerman, The Decline and Fall of the American Republic, pp. 43-64를 보라.

  7. C. Wright Mills, The Power Elit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56, [한글본] C. 라이트 밀즈, 󰡔파워 엘리트󰡕,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3.

  8. “핵폭탄은 가장 깊은 입헌적 뿌리까지 내려가 우리의 이후 역사를 변경시켰다.” Garry Wills, Bomb Power: The Modern Presidency and the National Security State, New York: Penguin, 2010, p. 1.

박성진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전공분야인 영문학에서는 낭만주의에, 비전공분야인 철학에서는 맑스주의와, 탈구조주의에 관심이 많다. 문학과 철학의 접목에 관심이 많다. 특히, 자연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빗발쳤던 낭만주의 시대에 쓰인 시들을 좋아하고,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와 상상력을 좋아한다.

이승준

형식적으로는 시간강사이자 독립연구자이며, 맑스주의자, 페미니스트, 자율주의 활동가 등등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특이체이자 공통체이면서, 풀과 바다이고, 동물이면서 기계이고, 괴물이고 마녀이며, 그래서 분노하면서도 사랑하고, 투쟁하고 기뻐하며 계속해서 모든 것으로 변신하는 생명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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