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1930년 3월 30일 – 1992년 8월 29일) .• 국적 : 프랑스 • 정당 활동 경력 : 프랑스 공산당(1945–1956), 국제공산당(1955–1958), 『공산주의 길』(1958–1964) • 모교 : 파리8대학 • 학술적 배경 : 20세기 철학, 서양 철학, 대륙철학, 정신분석학, 후기 마르크스주의, 후기 구조주의, 제도적 정신요법 • 주요 관심사: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철학, 정치철학, 기호학 • 주요 개념: 집합체(Assemblage), 욕망하는 생산, 탈영토화, 생태적 지혜(Ecosophy), 분열분석 ■ 영어판 https://en.wikipedia.org/wiki/F%C3%A9lix_Guattari ■ 프랑스판 https://fr.wikipedia.org/wiki/F%C3%A9lix_Guattari |
피에르-펠릭스 가타리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정치 철학자, 기호학자, 사회활동가, 시나리오 작가다. 그는 질 들뢰즈와 함께 분열분석을 공동 정립했고, 아르네 네스(Arne Næss)와는 다른 독자적인 생태적 지혜(ecosophy)를 창안했다. 가타리는 질 들뢰즈와의 문학적·철학적 협업으로 2권으로 된 『자본주의와 분열증』, 즉『안티 오이디푸스』(1972)와 『천 개의 고원』(1980)의 이론적 저작을 펴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생애
라 보르드 병원
가타리는 프랑스 파리 북서부에 위치한 노동자 계급 지역인 빌뇌브-레-사블롱에서 태어났다. 그는 10대 시절에는 트로츠키주의 정치활동에 참여했으며, 이후 1950년대 초에는 프랑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제자이자 그의 정신분석 대상이었다. 이후 그는 라캉의 제자인 장 우리(Jean Oury)의 지도 아래, 쿠르슈베르니 시내에 위치한 실험적인 정신병원 ‘라 보르드(La Borde)’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가타리는 장 우리를 루아르 밸리의 소메리에 위치한 한 사립 정신분석 병원에서 처음 만났는데, 이는 가타리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장 우리의 형, 페르낭의 소개를 받은 것이었다. 가타리는 라 보르드 설립 2년 뒤인 1955년에 장 우리를 따라 그곳으로 갔다. 당시 라 보르드는 철학, 심리학, 민족학, 사회복지학 전공 학생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이었다.

라 보르드가 발전시킨 특별히 새로운 지향점 중 하나는 분석가/피분석가로 이뤄진 전형적인 한 쌍 구조에서 탈피해 열린 대면의 집단 치료를 택한 것이었다. 프로이트 학파의 개인주의적 분석 방식과는 다르게, 이 실천은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여러 주체들의 역동성을 분석했다. 이러한 접근은 가타리를 더 넓은 지평의 철학적 탐구로, 철학·민족학·언어학·교육·수학·건축 등 다양한 지적·문화적 영역에서의 정치적 참여로 이끌었다.
1960-1970년대: 정치와 사회 활동
1955년부터 1965년까지 가타리는 트로츠키주의 신문 『공산주의자의 길』의 편집을 맡으며 글을 기고했다. 그는 반식민주의 투쟁들 및 이탈리아 아우또노미아(자율주의자)들을 지지했다. 또한 1960년대 초 여러 정신과 의사들을 결집시킨 ‘제도적 정신 요법 및 사회치료 모임(GTPSI)’에 참여했고, 그 결과 1965년 11월 ‘제도적 정신 요법 협회’가 창립되었다. 이와 동시에 가타리는 다른 전사(戰士/militants)들과 함께 ‘제도 분석 및 연구를 위한 그룹 연합(FGERI)’과 그 기관지 『연구(Recherche)』를 창립했는데, 이들은 철학, 정신분석학, 민족학, 교육, 수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었다. 『연구』는 노동, 학교, 약물 중독, 페미니즘, 동성애와 함께 그 당시에 소위 ‘도착(perversion)’이라 불리던 것들에 대해 비도덕주의적인 접근을 취한 수십 권의 특집호를 출판했다. ‘제도 분석 및 연구를 위한 그룹 연합’은 가타리의 다양한 정치적·문화적 참여의 측면을 대표하게 된다. 그는 청년 히스패닉 집단이나 (중국의 농촌인민공사(人民公社/people’s commune)[1958년 중국의 대약진 운동과 농업 집단화 과정에서 설립된 농촌의 기초 행정 및 경제 조직―옮긴 이] 시기의) 프랑스–중국 우호 단체에 개입하거나 알제리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 ‘학생 복지·보험 제도 조직(MNEF)’ 및 ‘프랑스전국학생연합(UNEF)’과 협력, ‘대학 심리 지원처(BAPU)’ 정책 참여, ‘대학 노동 그룹(GTU)’을 조직하는 일뿐 아니라 정신과 남성 간호사를 위한 교육활동 방법 훈련센터(CEMEA)와 연계한 교육 과정을 개편하거나 1958년에는 간호사 친목회를 결성, 건축학 연구 및 “학생과 청년 노동자”를 위한 주간병원 건설 프로젝트 등에 관여했다.
가타리는 1967년에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대한 연대와 지원 조직(OSARLA)’을 공동 창립했다. 이후 1968년에는 다니엘 콘벤디트(Daniel Cohn-Bendit), 장자크 르벨(Jean-Jacques Lebel), 줄리언 벡(Julian Beck)을 만났다. 1970년 가타리는 『연구』에서 탐구한 접근법을 발전시킨 ‘제도 연구 조사 및 교육 센터(CERFI)’를 설립했다. 1973년에는 동성애를 주제로 한 『연구』의 특집호를 발간한 일로 “풍기문란” 혐의로 기소되어 벌금형을 받았다.
1977년에는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표방한 ‘새로운 생태적·해방적 실천을 위한 이니셔티브 센터(CINEL)’를 창립했다. 1977년 가을, 이탈리아 자율주의 운동의 탄압에 반대하여 9월 23일부터 26일까지 볼로냐에서 열린 국제 집회의 연장선상에서 창설된 CINEL은 파리 보지라르 거리에서 모임을 가졌다. 얀 물리에-부탕(Yann Moulier-Boutang), 미셸 뷔르니에(Michel Burnier), 프랑수아 팽(François Pain), 미셸 튀비아나(Michel Tubiana), 제라르 프로망제(Gérard Fromanger) 및 익명의 자율주의 활동가들이 결집한 CINEL은 이탈리아 및 독일 출신 정치 망명자들의 강제 송환에 반대하고, ‘자유 라디오’를 수호하기 위해 활동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펠릭스 가타리는 4년 뒤인 1981년, “라디오 토마토”의 창립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게 된다. 또한 CINEL은 자유 라디오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두 가지 중요한 행사를 조직했다. 하나는 1978년 3월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 이탈리아 자유 라디오들의 모임인 “알프레도(ALFREDO)”이며, 다른 하나는 1978년 7월 이에르에서 열린 록 페스티벌 “안티브루유(Antibrouille; 혼선 방지)”였다. 1981년, CINEL은 대통령 선거 문제를 두고 분열되었다. 가타리가 코미디언 코뤼슈(Coluche)의 후보 출마를 지지한 반면, 얀 물리에-부탕은 1차 투표부터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에게 투표할 것을 촉구했다. CINEL은 사회당 집권과 함께 사라졌다.
이후 1980년대에는 ‘에코소피[생태적지혜](écosophie’를 주창하며 환경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질 들뢰즈와의 만남과 『안티 오이디푸스』출간

사진 출처: André Cros, Wikimedia Commons
가타리는 1968년 3월 22일 벌어진 시위를 기점으로 68년 5월 프랑스에서 전개된 대규모 항의 시위에 깊이 관여했다. 1968년의 여파 속에서 가타리는 뱅센느 대학에서 질 들뢰즈를 만나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안티 오이디푸스』의 기초 작업을 시작했다. 이 책은 미셸 푸코가 서문에서 “비(非)파시즘적 삶을 위한 입문서”라고 평가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랫동안 자크 라캉의 세미나에 참여했고 또 그에게 정신분석을 받아왔던 가타리는, 질 들뢰즈와의 협업이 진행됨에 따라 라캉주의와 점차 거리를 두게 된다. 나아가 그는 탈영토화(deterritorialisation) 개념의 창안자이다.
1972년 들뢰즈와 가타리가 발표한 『안티 오이디푸스』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언론은 정신분석학이 좌파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평가했는데, 그에 따르면, 정신분석학이 “초기에 보여주었던 혁신적이고 파격적인 면모를 상실”했으며, 정신분석학의 “오이디푸스 담론”은 일종의 “사회적 초자아”를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디디에 에리봉에 따르면, 『안티 오이디푸스』는 “정신분석적 규범성과 오이디푸스주의에 대한 비판”이자 “오이디푸스주의를 파괴하는 문제 제기”로, 이는 가타리가 라캉의 작업에 정면으로 맞서기 때문이다.
“라캉이 기계로서의 ‘a(소타자)’와 비인간적 성(sex)으로서의 ‘A(대타자)’를 통해 발견한 것은 구조의 바로 이러한 이면이다. 즉, 정신병적인 영역을 오이디푸스화하는 대신, 분석적 영역을 분열증화(schizophréniser)하는 것이다.”
– 『안티 오이디푸스』
1970년대–1980년대: 탈제도화와 반(反)정신분석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와 함께, 가타리는 정신분석의 기존 방식이 권위주의적으로 변모했으며, 고백 기법은 그리스도교에서 활용해 온 방식과 닮아 있다고 주장했다. 정신분석의 권위주의적인 구조와 자본주의와의 공모 관계에 대한 심층적 비판은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 개의 고원』 두 권으로 이뤄진 두 사람의 사상적 작업『자본주의와 분열증』에 담겨 있다.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들뢰즈와 가타리는 국제정신분석협회(IPA)를 포함한 가장 권위 있는 정신분석 학회들의 저명한 인사들인 제라르 멘델(Gérard Mendel), 벨라 그룬베르거(Béla Grunberger), 재닌 샤세게-스미겔(Janine Chasseguet-Smirgel)의 사례를 들어, 전통적으로 정신분석이 그 역사 전반에 걸쳐 ‘경찰국가’ 체제를 열정적으로 향유하고 수용해 왔음을 주장한다.
1980년대-1990년대: 후기 작업
가타리는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되는 핵심적인 상품을 ‘주체성 (subjectivity)’ 자체로 보았다. 가타리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상품과 경험을 구매하는 것을 통해 충족될 수 있는 새로운 욕망을 지닌 소비 주체를 생산하는 것이 소비사회를 창출하는 전제 조건이다. 가타리는 마지막 저작 『카오스모제』(1992)에서 다시 한번 주체성의 문제로 돌아와 다음과 같이 묻는다. “주체성을 어떻게 생산하고, 모으고, 풍부하게 하며, 주체성이 돌연변이적인 가치 우주들(Universes of value)과 양립할 수 있도록 그것을 끊임없이 재창안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정신분석과 횡단성』(1957–1972년의 논문 모음)에서부터 『인동의 세월』(1980–1986), 『분열분석적 지도제작』(1989), 그리고 들뢰즈와의 공저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작업을 관통한다.
『카오스모제』에서 가타리는 주체성을 다음 네 가지 요소로 분석할 것을 제안한다.
(1) 물질적·에너지적·기호적 흐름(들),
(2) 구체적·추상적 기계적 계통(machinic phyla),
(3) 가상의 가치 우주(들),
(4) 유한한 실존적 영토(들).
이 도식은 가타리가 이해하는 주체성의 생산에 관여하는 구성요소들의 이질성을 포착하려는 시도로, 여기에는 기표적 기호론(semiotic)의 구성요소뿐 아니라, (그것이 수행할 수 있는 어떤 의미 기능과도 “병렬적으로 혹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비기표적(a-signifying) 기호학(semiologic)의 차원” 역시 포함된다.
가타리의 철학 종합
펠릭스 가타리는 언어 안에서 무의식적 요소를 고립시키거나, 이를 기표적 지평 안에서 구조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무의식은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장 전체와 관계를 맺고 있다. 욕망의 대상은 사회적 장(결과적으로 정치경제학에 의해 정의된 장)과 공동의 영역을 갖는 실재로서 결정된다.
가타리에 따르면, ‘주체성에 대한 지도학(cartography)’이 분석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과학성(scientificity)의 모든 이상을 벗어던져야 한다. 이러한 지도학은 동일성의 체제와 재현의 모델에 종속된 주체화 양식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위에 구축된다. 정신분석가이자 동료 연구자였던 수엘리 롤니크(Suely Rolnik)가 ‘차이 속의 불안(malaise in difference)’라고 부른 것이 바로 이것이다. 가타리의 윤리는 이와 같은 과학적 이상에 맞서 모든 층위에서의 ‘존재론적 구성주의’를 내세운다. 이는 아기들의 행동학적 단계를 파악하는 데에도 적용되며, 청년들에게 있어 ‘존재론적 기능’을 수행하는 록(rock) 음악, 나아가 다양한 기호학적 성분들―현대적 가족 로망스의 요소로 통합된 과학이나 미디어―이 포함될 수 있는 정신증에서의 파토스적 포착(pathic apprehension)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정신이 다양하고 이질적인 성분들로 이루어진 결과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정신은 언어의 영역뿐만 아니라 비언어적 소통 수단, 건축적 공간과의 관계, 행동학적 행위, 경제적 지위, 미학적·윤리적 열망 등을 모두 포괄한다. 이는 주체성이 정신의 보편적 구조에 의해 미리 설정된 ‘주어진 것’으로 간주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우리는 차별화된 주체화의 생성들을 전제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무의식이 구조적인 것이 아니라 과정적(processuel)인 이유이며, 무의식은 단지 가족 로망스(오이디푸스)로만 환원될 수 없고, 기술적·사회적 기계들과도 연결되어야 한다. 또한 무의식은 전적으로 과거만을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
“특이성(singularité), 즉 유한성은 우리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동일성의 논리나 종속의 관계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타자의 특이성을 포착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하나의 과정―프로이트적 콤플렉스나 라캉의 무의식적 수식 같은 주체성의 보편적 원리들을 참조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지도학과 고유 메타-모델화를 만들어내며,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불안과 고립 속에 놓여 있던 자리에서 실존적 영토를 재구성하고 세상과의 관계 즉, 삶의 가능성을 다시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러한 과정―의 ‘친구’로 거기에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이 활동은 (미리 정해진 틀을 강요하는) 모델화를 거부하며 과학적 패러다임보다는 미학적 패러다임의 가치 아래 수행되는 활동입니다. 매번 하나의 치료 안에서, 하나의 특이한 작품을 빚어내는 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1991년 그리스에서 한 TV 인터뷰 중 발췌
생태주의자
‘3·22 운동’(1968)의 일원으로서 가타리는 프랑스 68혁명에 참여했다. 『천 개의 고원』에서 드러나듯이, 생태주의 운동에 헌신했던 그는 생산[중심]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좌파를 호소했다. 그는 1989년에 발간된 저서 『세 가지 생태학』에서 에코소피[생태적지혜]라는 개념을 발전시킨다. 그에게 있어 세 가지 생태학은 “실천적이면서 사변적이고, 윤리-정치적이면서 미학적인 새로운 유형의 에코소피”, 즉 다음 세 차원을 결합하는 “포괄적 생태학”이다.
‧ 환경 생태학: 자연 및 환경과의 관계를 다루는 차원
‧ 사회 생태학: 사회체(socius), 즉 경제적·사회적 현실과의 관계를 다루는 차원
‧ 정신 생태학: 정신과의 관계, 즉 인간 주체성 생산의 문제를 다루는 차원
이는 가타리가 말하는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오직 효율과 이윤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체제)’가 초래하는 파괴와 표준화, 평준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다. 이를 위해 그는 새로운 실천과 창조적이고 특이한 새로운 ‘주체화 과정’, 그리고 세상을 더 “거주 가능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실존적 영토들을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실천적 개방성은 친밀한 존재 방식, 신체, 환경이나 민족, 국가, 또는 인류의 보편적 권리와 관련된 거대한 맥락적 집합체들에 이르기까지, 실존적 영토를 길들이는 모든 방식들을 포함하는 ‘에코’ 예술(art de “l’éco”)의 본질을 이룬다.”
-『세 가지 생태학』, 39쪽
사회참여적 지식인이었던 가타리는 1992년 일-드-프랑스 지역 선거에서 장-펠릭스 베르나르(Jean-Félix Bernard)가 이끄는 프랑스 녹색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
가타리의 사망과 사후 출판물
그리스에서 요그로그 벨초스(Yiorgos Veltsos)가 기획한 TV 인터뷰를 마친 지 2주 후인 1992년 8월 29일, 가타리는 라 보르드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가타리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 42구역에 안치되었다.
1995년, 가타리의 사후 저작으로 『카오소피』가 출간되었는데, 이 책에는 실험적인 라 보르드 병원의 책임자로서 그가 수행한 작업들과 들뢰즈와의 협업에 관한 에세이와 인터뷰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선집에는 「누구나 파시스트가 되고 싶어 한다」와 들뢰즈와 공동 서명한 「욕망하는 기계들을 위한 결산 프로그램」 같은 글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가타리의 “분열분석” 이론에 대한 소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발전시킨―하지만 프로이트보다는 더욱 실험적이고 집단적인 분석의 접근 방식을 추구한― 과정을 담고 있다.
1996년에는 가타리의 또 다른 논문, 강연, 인터뷰 선집인 『부드러운 전복』이 출간되었는데, 이 책은 “인동의 시기”라 불리던 1980년대 전반에 걸친 그의 사상과 실천을 추적한다. 그의 분석은 예술, 영화, 청년 문화, 경제, 권력 형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미시정치(micropolitics)’, ‘분열분석’, “여성-되기”와 같은 개념들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개념들은 그가 포스트-미디어 시대의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라고 부른 글로벌 자본주의의 표준화 및 동질화 과정에 맞서, 주체성을 해방하고 정치적이고 창조적인 저항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을 목표로 했다. 예를 들어, 그는 “미시정치”라는 용어를 사용해 사회적 실천을 관찰하는 하나의 특정 수준―욕망과 제도의 표현에 유연함을 갖는 무의식적 경제―을 규정하는 한편, 분절된 세계 속에서 “타자의 담론에 스스로를 관여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개입할 실천의 장을 정의하고자 했다.
주요 저작
영어 번역서
• 1972: Deleuze, Gilles and Félix Guattari. L’Anti-Oedipe. Paris: Les Editions de Minuit, 1972. Anti-Oedipus. Trans. Robert Hurley, Mark Seem and Helen R. Lane. London and New York: Continuum, 2004. [한글본]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안티 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1』, 김재인 옮김, 민음사, 2014.
• 1975: Kafka: pour une littérature mineure. Paris: Les Editions de Minuit. Kafka: Toward a Minor Literature. Trans. Dana Polan. Minneapolis and London: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1986. [한글본]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 『카프카: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 이진경 옮김, 동문선, 2001.
• 1977: Molecular Revolution: Psychiatry and Politics. Trans. Rosemary Sheed. Harmondsworth: Penguin, 1984. [한글본] 『분자혁명: 자유의 공간을 향한 욕망의 미시정치학』, 윤수종 옮김, 푸른숲, 1998.
• 1979: L’inconscient machinique: Essais de schizo-analyse. Paris: Recherches. The Machinic Unconscious: Essays in Schizoanalysis. Trans. Taylor Adkins. Los Angeles, CA: Semiotext(e), 2011. [한글본]『기계적 무의식 – 분열분석』, 윤수종 옮김, 푸른숲, 1998.
• 1980: Mille plateaux. Paris: Les Editions de Minuit. A Thousand Plateaus. Trans. Brian Massumi. London and New York: Continuum, 2004. [한글본]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 자본주의와 분열증 2』, 김재인 옮김, 새물결, 2001.
• 1989a: Cartographies schizoanalytiques. Paris: Editions Galilée. Schizoanalytic Cartographies. Trans Andrew Goffey. London and New York: Bloomsbury, 2013.
• 1989b: Les trois écologies. Paris: Editions Galilée. The Three Ecologies. Trans. Ian Pindar and Paul Sutton. London and New York: Continuum, 2000. [한글본] 『세 가지 생태학』, 윤수종 옮김, 동문선, 2003.
• 1991: Qu’est-ce que la philosophie?. Paris: Les Editions de Minuit. What Is Philosophy?. Trans. Graham Burchell and Hugh Tomlinson. London and New York: Verso, 1994. [한글본]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정임·윤정임 옮김,현대미학사, 1999.
• 1992: Chaosmose. Paris: Editions Galilee. Chaosmosis: An Ethico-Aesthetic Paradigm. Trans. Paul Bains and Julian Pefanis. Bloomington and Indianapolis: Indiana UP, 1995. [한글본] 『카오스모제』, 윤수종 옮김, 동문선, 2009.
• 1995: Chaosophy (Texts and Interviews 1972 to 1977 ). Ed. Sylvère Lotringer. Semiotext(e) Foreign Agents Ser. New York: Semiotext(e).
• 1996a: Soft Subversions (Texts and Interviews 1977 to 1985). Ed. Sylvère Lotringer. Trans. David L. Sweet and Chet Wiener. Semiotext(e) Foreign Agents Ser. New York: Semiotext(e).
• 1996b: The Guattari Reader. Ed. Gary Genosko. Blackwell Readers ser. Oxford and Cambridge, MA: Blackwell.
• 2006: The Anti-Oedipus Papers. Ed. Stéphane Nadaud. Trans. Kélina Gotman. New York: Semiotext(e). ISBN 1-58435-031-8.
• 2015: Lines of Flight: For Another World of Possibilities. Bloomsbury Academic.
• 2015: Machinic Eros: Writings on Japan. Eds. Gary Genosko and Jay Hetrick. Univocal Publishing. ISBN 978-193756-120-8.
• 2015: Psychoanalysis and Transversality: Texts and Interviews 1955–1971. Trans. Ames Hodges. MIT Press. [한글본] 『정신분석과 횡단성』, 윤수종 옮김, 울력, 2004.
• 2016: A Love of UIQ. Trans. Graeme Thomson and Silvia Maglioni.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 Guattari, Félix, and Luiz Inácio Lula da Silva. 2003. The Party Without Bosses: Lessons on Anti-Capitalism From Guattari and Lula. Ed. Gary Genosko. Arbeiter Ring Publishing. ISBN 978-189403-718-1.
• Guattari, Félix and Toni Negri. 1985. Nouvelles espaces de liberté. Paris: Bedon. Communists Like Us: New Spaces of Liberty, New Lines of Alliance. Trans. Michael Ryan. Semiotext(e) Foreign Agents Ser. New York: Semiotext(e), 1990. [한글본] 펠릭스 가타리 · 안토니오 네그리, 『자유의 새로운 공간』,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07.
• Guattari, Félix, and Suely Rolnik. 1986. Micropolitica: Cartografias do Desejo. Molecular Revolution in Brazil. New York: Semiotext(e), 2008. [한글본] 펠릭스 가타리 · 수 에리 롤니크, 『미시정치- 가타리와 함께 하는 브라질 정치기행』, 윤수종 옮김, 도서출판b, 2010.
영문 미번역본
※ 이 저작들에 수록된 다수의 에세이들은 개별적으로 영어로 번역되어 있으며, 영어 선집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 La révolution moléculaire (1977, 1980)1980년 판(10/18 출판사)은 1977년 판과 비교해 수록된 에세이들이 상당히 다르다.
• Les années d’hiver, 1980–1985 (1986). [한글본] 『인동의 세월 1980-1985』, 윤수종 옮김, 중원문화, 2012.
그 외 협업 저작들
• L’intervention institutionnelle (Paris: Petite Bibliothèque Payot, n. 382 – 1980). On institutional pedagogy. With Jacques Ardoino, G. Lapassade, Gerard Mendel, Rene Lourau.
• Pratique de l’institutionnel et politique (1985). With Jean Oury and Francois Tosquelles.
• Desiderio e rivoluzione. Intervista a cura di Paolo Bertetto (Milan: Squilibri, 1977). Conversation with Franco Berardi (Bifo) and Paolo Bertetto. [한글본] 윤수종 편역, 『가타리가 실천하는 욕망과 혁명, 문학과학사, 2004에 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