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느냐, 정화되느냐 – 균류와 인간의 공진화를 위한 예술적 접근

푸른곰팡이에 잠식된 웹툰 작가 기안84는 자신의 웹툰을 매개로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곰팡이 포자를 퍼뜨리며 혐오를 재생산한다. 그렇게 ‘공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반면, 유독성 물질로 가득 찬 인간을 정화하고자 ‘죽음의 버섯 수트’를 고안하는 작가 이재림도 있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 자신의 몸을 버섯에 내어주자고 외치는 이재림은 버섯과, 나아가 전 지구적 생태계와 인간의 ‘공생’을 꿈꾼다. 이 글은 두 가지 상반된, 균류와 인간의 공진화에 대한 예술적 접근들을 살펴본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 톺아보기] 방구석 관람자들과 함께 하는 ‘비대면’ 전시 동행③

작품 소장, 미술품 재테크 등이 연일 화제인 요즘, 이번 《제 13회 광주 비엔날레 –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에서는 미술의 경제적 가치를 넘어, 예술 본연의 기량을 뽐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시대의 ‘최전선’에 선 작품들이 전시된 비엔날레는 자칫, 난해하고 불친절한 행사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조금만 가이드를 해준다면 즐거운 유흥이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현대 미술 관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전시 리뷰이자 누군가를 위한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 함께 ‘비대면’으로 전시를 감상해본 후 이번 비엔날레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 톺아보기] 방구석 관람자들과 함께 하는 ‘비대면’ 전시 동행②

작품 소장, 미술품 재테크 등이 연일 화제인 요즘, 이번 《제 13회 광주 비엔날레 –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에서는 미술의 경제적 가치를 넘어, 예술 본연의 기량을 뽐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시대의 ‘최전선’에 선 작품들이 전시된 비엔날레는 자칫, 난해하고 불친절한 행사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조금만 가이드를 해준다면 즐거운 유흥이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현대 미술 관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전시 리뷰이자 누군가를 위한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 함께 ‘비대면’으로 전시를 감상해본 후 이번 비엔날레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총 3회에 걸쳐 살펴보고 있다. 이 글은 시리즈 중 2번째 글이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 톺아보기] 방구석 관람자들과 함께 하는 ‘비대면’ 전시 동행①

작품 소장, 미술품 재테크 등이 연일 화제인 요즘, 이번 《제 13회 광주 비엔날레 –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에서는 미술의 경제적 가치를 넘어, 예술 본연의 기량을 뽐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시대의 ‘최전선’에 선 작품들이 전시된 비엔날레는 자칫, 난해하고 불친절한 행사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조금만 가이드를 해준다면 즐거운 유흥이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현대 미술 관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이 전시 리뷰이자 누군가를 위한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 함께 ‘비대면’으로 전시를 감상해본 후 이번 비엔날레가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앞으로 3회에 걸쳐 고찰해보고자 한다.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1995)을 읽고

2018년 제주도에 도착한 500여명의 예멘 난민들로 인해 예상치 못한 ‘인권’과 ‘주권’의 대립적 구도가 촉발됐다. 무국적자 혹은 망명자인 난민의 등장이 주권을 부각시키고 존속시킨다는 아이러니는 국민-국가를 지탱하는 주권 체제의 역설을 드러낸다. 바로 이것이 조르조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1995)을 집필하며 분석한 근현대 정치철학의 주요 화두이다. 현대 사회에서 난민은 신성한 생명, 즉 호모 사케르(Homo Sacer)’이자 ‘벌거벗은 생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오늘날에 더 많은 존재들, 어쩌면 모든 존재가 호모 사케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서발턴의 말을 들을 수 있는가?

20세기 말, 스피박은 ‘서발턴이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 물음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서발턴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가’를 자문해볼 때다. 21세기 “구글 베이비(Google Baby)” 문제는 스피박의 서발턴 담론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서발턴의 말하기는 지금도 왜곡되고 있으며, 그들은 또 다시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예술은 감각을 통해 사유한다

사유의 세 가지 방식으로서 ‘철학’은 ‘개념’을 통해, ‘과학’은 ‘기능’을 통해, ‘예술’은 ‘감각’을 통해 사유한다. 이 글은 예술의 사유 방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마지막 공저 『철학이란 무엇인가』(1995)를 통해 예술이 카오스 속에서 ‘구성의 구도’를 끌어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았다.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예술 작업 〈예술가는 여기 있다(The Artist is Present)〉(2010)도 함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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