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노래졌다네

기후위기는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했다. 이론으로만 인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으로 출발해 생동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듣겠다고 다짐했다. 이야기를 들으며 연결되려 노력하는 것. 기후위기는 그간 사회 안에서 각자도생으로 깨져버린 관계와 돌봄을 회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회복과 전환의 사회를 꿈꾸며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하얀 실들이 방구석 천장에 처져 있다. 치우려고 보니 촘촘히 처져 있는 실들 사이로, 유유히 걸어 다니는 거미가 보였다. 자신이 만든 길 위에서 자유로이 걷는 거미를 보니 왠지 모를 부러움이 느껴졌다. 심지어 이동하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길을 낼 수도 원하는 만큼 공간 확장도 가능하다. 탄소배출도 없이. 거미줄을 치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같은 세입자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나는 월세를 내고 있건만 저 거미는 무전취식을 하네?’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내 생각을 읽었는지 거미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 땅이 너희들 것도 아닌데 토지를 공(公)과 사(私)로 나누고 건물을 짓고 부수고 그 땅을 터전 삼아 살던 동물과 식물의 삶도 파괴하면서 만든 세계에서 너도 별수 없이 그 굴레에 갇혔구나.’

물든 손은 연결되려 노력했던 흔적이 아닐까. 우리는 이렇게 귤락 같은, 거미줄 같은 연결됨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연결을 통해 서로를 이미 돌보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by lilartsy 출처 : www.pexels.com/ko-kr/photo/5541019/
물든 손은 연결되려 노력했던 흔적이 아닐까. 우리는 이렇게 귤락 같은, 거미줄 같은 연결됨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연결을 통해 서로를 이미 돌보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사진 출처 : lilartsy

거미의 한 소리를 듣고, 이래저래 침울해졌다. ‘이럴 땐 역시 먹으면서 풀어야 해.’ 얼마 전에 주문해서 받은 귤 한 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한 손에 세 개의 귤을 집은 후 뜨끈뜨끈한 온수 매트 위에 자리를 잡았다. 겨울용 두꺼운 이불로 칭칭 감고 두 손만 꺼낸 채로 귤 하나씩 하나씩 껍질을 깠다. 주황색의 껍질을 벗기니 알맹이와 알맹이를 둘러싼 촘촘한 흰 귤락1이 나를 반겼다. 자세히 보니, 거미줄과 닮았다. 벗어날 수 없는 것인가. 나도 모르게 거미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게 까먹다 보니 박스 안에는 귤 하나가 남았다. ‘대체 누가 다 먹었냐.’ 그 옆으로는 귤껍질들이 찜질방에 나들이 온 손님들처럼 등을 지지며 널브러져 있었다. 널브러진 채 나를 바라보며 ‘네가 다 먹었잖아. 내가 증인이다.’

남은 귤 하나를 마저 깠다. 다시 마주하는 흰 귤락. 촘촘히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것이 관계망 같기도 했다. 이렇게 연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미줄과 귤락을 번갈아 보며 거미와 나의 돌봄 관계망에 대한 고민으로 빠졌다. 관계란 무엇이고 돌봄이란 대체 무엇일까. 고민의 수렁에 빠져있을 때쯤 전화벨이 울렸다.

거미와 대화하고 귤을 까먹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딸~ 뭐해?”

거미와 대화를 하다 슬퍼져서 귤을 까먹고 있는데 귤을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응~ 공부해.”

“아이고, 바쁘네. 바쁜데 통화 괜찮나?”

거짓말에 뜨끔했지만, 입 근육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들을 이어갔다.

“괜찮아~ 왜?”

“오늘 힘들어 죽겠는데 동네 아지매한테 물건 배달하러 갔다가 잠깐 들어오라 해서 들어갔는데 몇 시간 동안 이야기만 들었다. 눈치 보여서 일어나도 못 하고. 듣다 보니까 네 생각이 나서.”

아빠의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직장이 끝나고 부업으로 고로쇠 수액을 배달하러 갔다. 유난히도 피곤한 날이라 배달하고 바로 집으로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날이라고 했다. 잠깐 들어와서 차만 마시고 가라는 말에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두 번 거절하기 민망해 차를 마시게 된다. 그러다 상대방이 운을 떼기 시작하였고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음 배달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자리를 피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생각이 났던 이유가 있었다. 1년 전 아빠는 나에게 갑자기 할머니에 대해 기록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답했다. 누군가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글로 남겼으면 하는 마음이 오랫동안 있었다. 기록으로 남겨진 글이, 가족을 외치지만 이름뿐인 가족으로 남겨진 우리 마음에 엉킨 어느 한 부분을 풀어주길 바랐다. 할머니에 대해 말하자면, 할머니는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경험했던 피해 당사자였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가정폭력 피해 사실에 대해 가족으로부터 방치되었다. 화가 난 나에게 다섯 아들은 “네가 뭐 할머니, 할아버지랑 뭐 얼마나 자주 있어 봤다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비수가 된 말들 사이로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 그 자체를 지워버리고 살았다.

할머니가 치매로 인해 외부 활동이 쉽지 않아졌고 그 과정에서 몸의 면역력이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다 폐렴까지 겹치면서 산소호흡기로 삶과 죽음이 동시에 이어져가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요양원에서는 가망 없음을 알려왔고 집으로 모셔 가라고 전했다. 통보를 받은 날 가족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물론, 이 가족회의는 다섯 아들이 모여 진행했다. 결론은 넷째 며느리인 엄마에게 돌봄의 몫을 넘긴 것이다. 엄마는 여러 차례 거절 의사를 밝혔다. ‘내가 왜 해야 하는가’라는 엄마의 질문에 아빠는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다하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 말에 더 화가나 결사반대한다는 말을 수화기 너머로 전했다. 생각지도 못한 반대에 부딪힌 형제들은 다시 회의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는 아빠가 그 자리를 메우기로 결론 지어졌다.

일 년이 넘도록 아빠는 퇴근 후에 할머니를 홀로 돌봤다. 돌봄 노동이 쉽지 않다는 것을 학습하는 시기가 되기도 했다. 이 시기 이후 아빠는 어디 가서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돼지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숟가락이 단순히 숟가락 하나 얹으면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의 이야기를 꺼내면 아빠는 서운함을 토로하는 것을 넘어 짜증을 낸다. 그 당시, 엄마가 할머니를 전적으로 돌보는 것에 반대했던 것이 내가 단순히 엄마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다. 가끔 이런 반응을 통해 다시금 나눠진 성 역할의 공고한 벽을 느끼곤 한다. 사실 나로서는 이곳의 전복된 역할에 대해 약간의 희열을 느끼기는 했다. 전반적으로 굉장히 가부장적인 경상도 시골 풍경의 일부를 조금은 바꿔낸 듯한 뿌듯함 때문이다.

남성 돌봄 제공자로서 아빠가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빠가 할머니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이 교차 반복했다.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는 이 가정폭력에 대한 기억을 가족 모두가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또한, 그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할머니에 대한 추억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봄이 어떤 의미이고 이 돌봄으로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와 같은 깊은 토론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나의 욕심이 먼저 앞서버렸는지 아빠는 결국 중간에 포기와 가까운 선언을 했다. 글을 쓰려고 보니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게 하나 없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에 시달린 할머니에 대한 기록을 시도하다

아빠는 어린 시절 오랫동안 아팠다. 할아버지는 오래 못 산다고 갖다 버리라고 했다. 할머니는 자식을 어찌 버리냐고 당신의 아픈 자식을 몰래몰래 챙겼다고 한다. 다행히 고비를 넘겼지만, 병원 신세를 오래 졌다. 할머니는 그런 아빠를 몇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매일같이 업고 다니면서 읍내에 있는 병원에 다녔다. 가족 눈치를 많이 보았다고 한다. 다섯 형제 중 할머니와 가장 오래 함께 했었는데 아빠는 할머니에 대해 마음 아픈 감정만 떠오르지 다른 건 아는 게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되려 나이가 드니 아빠로서 자신의 아버지인 할아버지가 더 그립고 그때 그 시절의 마음이 이해 간다는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화가 났지만 회유했다. 잘 떠올려보라는 말과 함께 생각나는 장면을 기억하려 애써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역사적으로 남성의 삶은 기록으로 남겨져 공적 기억으로 남게 되었지만, 여성의 삶은 기록에서 배제되면서 역사에서 잊혔다는 말을 주입식 교육처럼 계속 읊었다. 할아버지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이 사회에 하나 더 보태는 것보다는 언제나 배제되었던 여성의 이야기를 주목해줄 수 없는가라 전했다. 할머니의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모두가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조카들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을 풀 수 있을지 누가 아느냐고도 말했다. 아빠는 그 말을 듣고 노력해보겠다는 말을 다시금 내뱉었다. 이후, 떠올리려고 노력하다 보니 조금씩 할머니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떠오른다는 말을 가끔 들려주었다. 아빠가 배달 간 곳에서 그분의 이야기를 듣다 나를 떠올리게 된 이유가 바로 이런 비슷한 사연 때문이었다.

“살아온 세월이 억울했는데 누가 내 이야기를 글로 좀 남겨줬으면 좋겠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녹차가 담긴 컵들을 사이에 두고 상대방은 운을 뗐다. 아빠는 일찍 자리를 뜰 수 없음을 이 순간 직감했다.

“이 동네에서 말할 사람도 없고…. 시간 괜찮으면 내 이야기 좀 듣고 가소.”

아빠는 금방이라도 슬픔과 고통을 쏟아낼 것만 상대방의 눈을 보고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네네. 괜찮습니다. 말씀해보세요. 그러잖아도 우리 딸이 사람들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 하는데 이야기 전할게요.”

나는 나의 말만 해왔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by mohamed_hassan https://pixabay.com/images/id-6080057/
나는 나의 말만 해왔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사진 출처 : mohamed_hassan

결혼하고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마을 사람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건넨 적도 없다고 했다. 으레 일어나는 일이니 그냥 그렇게들 넘어갔다. 벌어오는 돈도 한 푼 받아본 적 없다고 했다. 그런 시간을 걷고 또 걸어 오늘이 온 것이었다. 밖으로는 먹고살기 위해 부단히 애썼던 삶. 안으로는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었던 삶. 삶과 죽음은 양면에 있는 게 아니라 한 면에 함께 있었다. 안과 밖, 삶과 죽음, 그 균형도 경계도 무너진 채로.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내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기후위기를 강렬하게 말할 때 가려지는 것에 대해

이미 우리가 놓인 세계 자체가 위기였다. 그렇다면 기후위기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아니,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행동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이 들었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직관적인 느낌이었고 그 느낌대로 기후위기를 주변에 알려왔다. 그러나 오늘내일 당장 죽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기후위기니 기후불평등이니 기후정의니 하는 말을 내뱉어온 그 단어들이 나의 언어가 아님을 말이다. 그저 주어진 언어를 외부에 알리는 수행원의 역할이었다. 생동하는 존재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이지 않고 나는 나의 말만 해왔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에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나에게 기후위기는 이웃의 이야기가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기억되지 못하고 기록되지 못한 삶들. 서로 이어지려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늘 고민되는 부분 중 하나는 파편화된 방식으로 기억되고 기록될 될 수 있는 우려이다. 특정한 이미지를 상정하고 원하는 이미지와 서사만 모아버리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온전히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나는 ‘기후위기 당사자’라는 말을 경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사자성’, 기후위기 당사자. 당사자라는 말 앞에 우리는 계속 대표되는 어떤 이미지를 상상해버린다.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원하는 장면들만을 모으고 재단한다. 그렇게 탄생한 말 가운데 “언제나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현장은 여러 층위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시공간이다. 특정한 언어로만 그곳을 규정하기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생각이 다른 존재들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어떤 언어로 어떤 이미지로 소비하는 외부인인가를 스스로 따져 물어야 한다. 외부인의 경계를 무너뜨려야 함을 알고 경계하려 노력하지만 자주 어려움을 마주한다. 나에게 할머니가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강력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그 언어가 다른 것을 삼켜버린 듯이 말이다. 강렬한 이미지는 끊임없이 나를 유혹한다. 자신을 가장 앞에 세워달라고. 고민하는 와중에 마지막 귤을 다 먹었다. 귤을 다 먹고 난 후, 손을 보니 노랗게 물들었다. 이렇게 노래질 때까지 귤과 연을 맺었지만 난 사실 귤을 모른다. 다시금 노래진 손을 본다.

물든 손은 연결되려 노력했던 흔적이 아닐까. 우리는 이렇게 귤락 같은, 거미줄 같은 연결됨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우리는 연결을 통해 서로를 이미 돌보고 있음을 말하고 싶다.

오늘도 당신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1. 귤락 : 귤 과육에 붙어있는 하얀 그물모양의 껍질. – 네이버 오픈사전

난설헌

안녕하세요. 지구의 방랑자 난설헌입니다. 중학생 때 허난설헌을 좋아해서 활동명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허난설헌에게 애틋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이름으로 인해 웃지 못할 상황도 생기는데요. 아이돌 그룹 AOA 설현과 이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설현으로 잘못 보고 부르기도 합니다. 처음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분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는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식혜와 좀비를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즐겁게 살고 싶은 지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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