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협동운동의 전략지도] 서문: 구성적 실천, 새로운 지평에 선 협동조합의 과제

저성장시대에 직면하여 생협과 협동조합운동의 혁신적인 전략은 있을 수 있을까? 협동운동이 어떻게 회복탄력성(resilience), 융통성, 신축성을 갖추고 시대의 변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전망 수립과 주체성 생산을 이룰 수 있을까? 더 나아가 협동조합이 저성장시대를 넘어 기후위기와 같은 문명의 전환의 시기에 탈성장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모든 의문점들에 대해서 명확히 대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전략적인 시선에서 지도제작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번 [저성장시대 협동운동의 전략지도] 시리즈는 2019년 봄에 진행한 〈한살림재단 생명협동연구〉의 결과물로서, 총 9회로 나누어 재게재될 예정이다.

저성장시대의 개막은 협동조합운동에게 있어 하나의 거대한 지평의 변경이다. 이는 기존 사업체 면에서는 위기의 국면이면서도 동시에 내부에 결사체라는 관계망의 실존으로 인해 ‘위기에 특히 강한 협동조합’의 면모와 잠재력을 발휘할 계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국면은 저성장의 국면에서 사업체 위기와 이와 연결된 결사체 역시도 함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결사체를 다시 점검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더 나아가 커뮤니티 일반이 어떻게 저성장이나 역성장 시대에 활력 있게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단과 전망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협동운동은 생활양식의 거대한 변화에 적응하고 대응함으로써 협동조합이 생명력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기존 방식을 고수하면서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을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저성장시대에 직면하여 생협과 협동조합운동의 혁신적인 전략은 있을 수 있을까? 협동운동이 어떻게 회복탄력성(resilience), 융통성, 신축성을 갖추고 시대의 변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전망 수립과 주체성 생산을 이룰 수 있을까? 더 나아가 협동조합이 저성장시대를 넘어 기후위기와 같은 문명의 전환의 시기에 탈성장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 모든 의문점들에 대해서 명확히 대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전략적인 시선에서 지도제작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을 횡단적으로 연결한 지도제작서이다. 저성장 상황은 하나의 거대한 지평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이상증후이다. 즉, 기후위기와 생태계위기 등을 통해서 자원-부-에너지의 축소와 감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물적 토대와 전제조건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 상황에 대해서 하나의 답이나 하나의 모델이 모든 것들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거대한 지평의 변화가 초래한 여러 문제설정 사이에서 각자가 느끼는 강도 차이, 온도 차이, 밀도 차이처럼 이 글에는 요철과 굴곡, 주름 등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것을 편편하게 만들지 않으며, 일관되게 비스듬한 횡단선을 그려 나가려하는 것이 이 글의 의도이자 취지이다. 여러 가지 개념과 여러 가지 모델이 등장하지만, 이 속에서 저성장시대의 협동운동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일관된 방향은 미래진행형적인 무의식의 행렬을 그려나갈 것이다.

저성장시대, 협동운동의 과제와 전망

이 글은 2019년 봄에 〈한살림재단 생명협동연구〉에서의 연구과제로 제안되고 기획되었다. 협동조합에서의 색다른 저성장의 현실이 가시화되던 시점이자, 지구환경이 기후변화와 전환사회로의 전망으로 나아가려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모색하던 시점이었다. 기후위기라는 명백한 자연과 생명이 갖는 외부효과의 소멸은 경제위기로 다시 엄습하고 있는 상황이, 아주 절박한 상황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던 시점이었다. 저성장 국면에 대한 협동조합의 대응과 적응의 과제는 단지 성장의 드라이브를 다시 거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전환사회로의 전망을 분명히 하면서, 내부경제 활성화와 커뮤니티의 관계의 실질화 등이라는 미래진행형적인 과제를 전진배치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이에 대한 단상과 스케치로 이루어진 아이디어 박스이자 사고실험의 결과물이지만, 현 저성장과 기후위기 시대 상황이 던지는 거대한 문제설정을 끊임없이 직면하면서 지도를 그려나간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 글은 “성장이 멈춘 시대에 어떻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숨은 질문을 품고, “저성장시대의 협동운동은 어떻게 메타볼리즘[Metabolism : 신진대사]을 형성하고 다이내믹한 시스템을 짤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문제의 시작과 끝은 ‘관계’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 글의 면면에서 관찰될 수밖에 없다. 컨비비움(convivium)처럼 공생공락(共生共樂)하는 관계, 모듈(module)처럼 결사하여 의기투합한 관계, UTB[Base Therapeutic Communities : 치유집단]처럼 서로에게 지지대가 되어주는 관계 등의 극도로 미세한 관계망의 설계가 있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미니교환시스템이나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 결사체], 간(間)공동체로서의 사회로의 확산모델을 꿈꾸어볼 수 있다. 이 모든 커뮤니티의 모델링의 이유는 자원의 성장, 소재의 풍부함으로부터 기인하여 활력과 정동이 발생했던 성장주의 사회 형태가 끝장나고, 활력과 정동, 돌봄, 욕망을 통해서 커뮤니티와 사회를 구성해 내야 자원이 돌게 되는 저성장 사회 형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성장시대와는 다른 공동체 순환 전략

저성장시대에 어떻게 메타볼리즘을 형성하고 다이내믹한 시스템을 짤 수 있는가? https://pixabay.com/illustrations/body-blood-circulation-aterien-75303/
저성장시대에 어떻게 메타볼리즘을 형성하고 다이내믹한 시스템을 짤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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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에 대한 문헌과 자료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이렇게까지 제한된 문헌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제까지 성장과 자본주의적인 진보의 전망 속에서 아카데미가 작동해왔던 바에 그 이유가 크다. 탈성장이나 저성장과 관련하여 뜻 있는 저자들의 작업이 소수가 있지만, 주변부나 가장자리의 소음이나 잡음으로 여겨져 왔을 뿐, 그것이 우리 앞에 닥친 새로운 과제라는 절박함과 긴장감 속에서 읽혔던 적은 아직까지 없었던 것이다. 그 소수의 문헌들이 갖고 있는 아이디어와 단상, 사고실험, 이야기구조 등은 이 글을 쓰는데 풍부한 전거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단계에 불과하고 협동운동의 전망과 과제를 담아내기에 아직도 미세한 부분에 대한 설명력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성장시대는 협동운동으로서의 하나의 거대한 모험이자 실험의 장이 개방되었음을 의미한다. 저성장 국면이 커뮤니티의 파견부대로서의 협동운동이 전위적으로 실험하고 도전해야 할 지점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사유와 실천의 ‘고도로 자유롭지만 고도로 조직된 스키마[Schema : 도식작용]’를 벼려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 글은 정동(affect)과 활력의 피로도를 느끼는 협동조합원들에게 오히려 정동, 활력, 돌봄, 살림, 모심, 보살핌, 섬김의 미래적 전망을 선취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던져주고자 노력했다. 전환사회의 전망은 정동사회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글은 이러한 배치와 관계망의 강도, 밀도, 온도 속에서 싹튼 지혜와 정동이라고 할 수 있다. 저성장시대에 직면한 협동조합의 색다른 실험과 실천이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와 협동조합의 미래로 향하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를 위한 아주 색다른 사고실험인 이 글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이 글은 〈2019 한살림 생명협동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신승철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