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발명] ㉒ 지역을 위한 예술, 예술을 위한 지역

‘지역활성화’로 이야기되는 성장중심 지역개발의 한계는 명백하다. 청년이 가진 역동성과 예술가의 창발력이 절실하다. 지역은 예술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예술가들은 지역의 눈높이에 맞는 예술 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만나야 한다. 지역과 예술의 융합은 물리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인 결합을 이어야 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

지역은 문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지역을 구성하는 문화는 계속해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식의주 등의 생활양식이 변화하면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지역을 과거에 멈추게 하지 않고 주민이 주체가 되어 오늘에 맞는 생활공간으로 회복하는 것이 창조적 지역 만들기이다. 여기서의 회복은 개념적으로 지역을 과거로 되돌리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회복은 지역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에 뿌리를 두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회적 경향을 반영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변화를 지역의 정체성으로 수렴하고 다시 생활로 되돌려 확장하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지역개발과는 다르다. 회복은 지역개발처럼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주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반적인 개발기준에 따르는 직선적이면서 고정된 성장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가기에 더 나은 지역으로 만들자는 창조적 지역 만들기의 방향과는 다르게 지역 활성화 현장에서는 지역개발이 창조적 지역 만들기의 전부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오래 전부터 사회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전환되었는데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주민과 행정 사이의 역동적인 창조과정 속에서 해결해야 할 기후변화, 불평등, 지방소멸, 주민 갈등, 지역상권 침체, 지방학교 폐교 등의 지역의 여러 가지 문제는 그대로 남은 채 지역개발의 결과로 건물들만 남아있다. 지역 활성화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한계점에 다다랐다. 많은 비용과 인력을 들였지만 지역에서의 주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지역은 고립되어가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빈곤, 건물만 남은 지역개발

예술은 상상력으로 사회적 혁신을 촉진 시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술가는 상상력으로 세계를 재구성해 새롭게 N개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과 복잡성의 사회에서는 예술가의 사회적 창발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창조도신론’과 ‘내발적발전론’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사사키 마사유키 교수도 지역을 창조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예술가와 청년에게 두고 있는 이유다.

예술가가 가진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발상이 지역의 변화를 꾀할 수 있고 청년이 가진 역동성이 지역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학을 전통문화사상인 풍류와 굿으로 해설하는 김지하 시인은 문화에 있어서 창조적 내용 및 새로운 비전,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이고 이 사람의 마음을 가장 예리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다. 예술가는 지역문화 창조의 동력이 되는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고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변화는 예술로 가능하고 예술가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안타깝게 지금의 예술은 생활을 창조하는 능동적 행위자로의 사회적 실천과 지역에 익숙하지 않다. 단지 예술은 향유의 대상이지 사회적 활동으로는 잘 생각되지 않고 지역 활동으로 불러오기는 더욱 낯설다. 근대산업의 등장으로 인해 기계화되고 양산되는 예술을, 사회적 활동에서 분리된 예술을 다시 사회로 불러오려던 윌리엄모리스(William Morris)의 미술공예운동(Arts & Craft Movement)도 있었고 민주주의를 위해 적극적으로 사회참여를 실천하고 있는 리얼리즘(Realism)예술과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브랜달리즘(Brandalism)도 있지만 아직 예술이 지역까지는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창신의 하루, 당신의 수건(2021년) 출처 : 아트브릿지 ‘뭐든지 예술활력’ 백서

예술로서 생활을 하는 예술가들이 1% 될까? 예술이 누군가에게 규정된 틀로 정의되고 사회에서 분리되었을 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사회적 활동과 분리된 향유의 예술은 자본과 시장에 포섭되어버렸다. 시장에 내놓을 작품을 가진 몇 퍼센트의 예술가를 제외한 매년 대학을 졸업하는 20만 명의 예술가들(물론 대학 졸업장은 예술창작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되지 못하지만)은 치열한 시장경쟁 속에서 자신이 가진 상상력과 창발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예술을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바늘구멍 같은 판매를 위한 예술을 전업으로 하는 활동에서 지역에서의 예술로 활동의 배치를 새롭게 하다 보면 현재 겪고 있는 경제생활과 예술 활동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잃어버린 예술의 사회적(지역)활동을 되살리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는 문제를 만들고 있는 틀 안에서는 풀기가 어렵다. 어렵더라도 도전적으로 문제의 틀을 뚫고 나와서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세상을 만날 때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지역은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 예술가에게는 예술을 하면서 생활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활동의 배치가 필요하다. 예술가는 주민들의 마음을 연결해 지역을 활성화할 수 있는 수많은 사건(작품)을 만들 수 있다. 또 지역과 관계가 멀어진 주민들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지역은 예술가에게 시장에서 탈출해 자유롭게 생활하며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할 수 있다. 다행히도 청년 예술가들은 이미 종로 창신동, 마포, 용산, 수원, 부산 영도, 전주, 춘천 등에서 지역을 자신들의 새로운 활동의 무대로 삼아 활약하고 있는 중이다. 지역과 예술의 융합은 지역 회복이 절실한 전환의 시대에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win-win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다.

사회와 분리된 예술에서 지역을 살리는 예술로

지역과 예술이 상호보합하기 위해서는 지역은 예술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지역 활동가들과 주민들은 예술가들의 감수성과 성향 등에 공감하면서 시간과 활동이 자유롭고 이성적 사고에서 벗어나 있는 예술가들의 작업방식까지도 지원해야 한다. 지금까지와 같이 일반적인 규범에 예술가들을 끼워 맞추거나 예술을 목적과 방법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예술가를 목적과 내용을 발명하는 일에 제일 앞장 세워야한다. 결과적으로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자기검열이 되지 않도록 이들의 자유로운 예술 활동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한편 지역에서는 예술가들도 창작의 목적을 지역 활성화에 맞춰야 한다. 끊임없이 예술 활동으로 주민들과 만나야 하고 작품을 창작하는 자신의 관점을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예술이 지역에서 고립될 수가 있다.

문화예술기획사 아트브릿지는 2012년부터 지역과 예술을 주제로 서울 창신동 지역에서 지역과 예술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문화밥상’, ‘창신동 꼭대기장터’ 등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공예술을 넘어 글쓴이와 함께 아트브릿지가 2021년부터 하고 있는 ‘뭐든지 예술활력 워크숍’은 ‘예술로 지역활력, 지역으로 예술활력’이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로 지역을 활성화하고 지역으로 예술가들의 새로운 활동기회를 찾는 프로젝트다. ‘뭐든지 예술활력 워크숍’은 예술가들을 지역으로 초청해 일정기간 동안 관찰과 인터뷰를 시작으로 해서 예술이 가진 상상력과 창발성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품을 융합 창작하는 지역 활성화 모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각자가 가진 다양한 영감과 장르적 특성을 융합하여 예술가답게 지역을 창조하는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제작하게 된다.

2021년도 ‘뭐든지 예술활력’ 워크숍에는 공연, 회화, 국악, 사운드, 패션, 예술기획 등 10명의 청년예술가가 참가하여 창신동지역을 주제로 총 3개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발표된 ‘창신의 하루, 당신의 수건’은 하루에도 몇 번씩 쓰는 수건에 새겨진 지역과 주민의 서사를 수집한 전시작품이다. 또 ‘나의 모하비에게(To My Mojave)’는 창신동 봉제인들이 만든 화려한 도시의 생활과 창신동의 모습을 모순적으로 해석해 동(動)과 정(靜), 개방과 폐쇄, 현실과 이상을 융합한 라이브 퍼포먼스와 함께 제작한 비디오아트이고, ’로컬 에티켓(Local Etiquette)‘은 외부 예술가들의 활동이 주민들의 생활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지역의 생활공간의 특이성에 행위, 음악, 문학예술을 결합하여 관객들이 지역을 이동하며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예술가들은 혼란스러운 사건을 만들며 지역을 발명해 가야

나의 모하비에게(2021년) 출처 : 아트브릿지 ‘뭐든지 예술활력’ 백서
나의 모하비에게(2021년) 출처 : 아트브릿지 ‘뭐든지 예술활력’ 백서

처음 ‘뭐든지 예술 활력 워크숍’을 기획하면서 아트브릿지 신현길 대표와 정했던 몇 가지 원칙이 있다. (1)지역을 활성화하는 데 예술이 가진 창조능력을 적극 발휘할 수 있도록 예술가의 활동에 장애가 되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없애도록 노력한다. (2)워크숍은 참가하는 예술가들이 철저하게 자기 주도로 작업할 수 있도록 무엇이든지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준다. 주위 선배들은 (청년)예술가들의 활동을 안내하고 페이스메이커의 역할로 제한한다. (3)결과도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결과보다는 처음부터 워크숍이 끝나는 하나하나의 과정에 집중한다. 이러면서 완성과 실패의 과정에서 오는 성취감을 오롯이 예술가들이 갖게 한다. 그리고 워크숍 활동이 예술가로서 앞으로의 (지역)활동에 중요한 사건이 되게 한다. (4)예술가를 받아들이는 지역은 이제까지의 사업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이상하리만큼 낯선 방안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물론 주민들은 지역의 주체로서 창작자도 향유자도 될 수 있다.

이 프로젝트가 중요한 것은 창조된 미래에서 지역의 과거를 찾는다는 것과 뚜렷한 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위축되고 있는 지역재생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도 예술도 자기 존재로만 규정하고 정의하기 바빴다. 예술과 지역을 연결하기가 어려웠고 연결한다고 해도 지역예술은 화학적 결합보다는 물리적 결합에 가까웠다. 지금 지역에서 요청하고 있는 것은 예술과의 화학적 융합이다. ‘지역이 가진 문제를 늘 해오던 방식이 아니라 새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은 없을까?’, ‘지역이 가진 오래된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주민들이 지역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역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활동의 기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에 해법을 예술가에게 요청하는 중이다. 2012년 영국은 문화콘텐츠분야를 국가의 주요 동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크리에이티브 잉글랜드’(Creative England)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예술과 기술, 비즈니스를 융합한 ‘크리에이티브 잉글랜드’(Creative England) 프로젝트로 영국 사회 전 부문에서 국가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때 초등학교뿐 아니라 각 부문의 크리에이티브 수업과 프로젝트를 담당한 사람들이 예술가들이다.

지역에서 무언가 낯선 일들이 만나 사건과 같은 영감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 전에 없었던 새로운 아이디어는 안정된 환경(Cosmos)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환경(Chaos)에서, 혼돈적 질서라는 카오스모스(Chaosmos)가 결국 새로운 탄생을 만들어낸다. 지역이 예술가들을 초청해 지역을 발명하는 혼란스러운 사건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예술가들은 사건을 만들기도 하고 즐기기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무열

지역브랜딩 디자이너. (사)밝은마을_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책을 내고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며 곧 지역브랜딩학교 ‘윤슬’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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