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 되어 보기

탈성장 여정에서 어떤 인간이 되어야 조금 더 적합(?)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탈성장에 대한 배움은 짧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지구와 그 안의 생명공동체를 떠올리며, 지구별 인간으로서 함께 했으면 하는 세 가지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물고기가 다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북미 마지막 선주민 크리족 추장

성장의 한계

12년 전쯤, 회사 생활을 할 때 갑작스럽게 갑상선에 이상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큰 병이 아니었음에도 빨리 알아차리지 못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병이 나고 나서야 일에만 빠져 살던 바쁜 일상이 멈추었고, 강제로라도 멈추게 되니 그제야 왜 아프게 되었을지 원인과 함께 삶의 태도와 방식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서야 새삼 깨달았습니다. ‘나는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말입니다. 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착취한 대가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회복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연 안에서의 성장은 생명의 순환을 통해 일어납니다.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서로의 도움으로 생명이 유지되며 멈춤과 쉼을 통해 회복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계를 모르는 성장을 향한 돌진은 착취할 대상이 존재할 때까지만 가능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니 개인의 여정을 지구 전체로 확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장 자체를 목적했던 인류는(주로 북반구의) 개발과 이윤에 중독되어 절제력을 잃었고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생명을 원자재와 상품으로 전락시켰습니다. 물질적 편리는 거저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자연에 대한 잔인한 착취와 왜곡된 소유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구조적 파괴와 폭력에 의한 시스템은 소수 특권층의 배만 불렸고, 세계 상위 부유층 10%가 절반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극심한 탄소 불평등을 만들어냈습니다. 지금의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세계와 기후 붕괴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는 피폐한 지구가 바로 그 민낯입니다.

성장 ?!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지금의 위기 속에서 탈성장 담론이 반가웠습니다. 탈성장은 기후위기와 불평등의 원인이 된 끝없는 경제성장과 자본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며 다양한 모험과 실험들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여러 시선과 이론들 그리고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지금도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탈성장은 기업의 이익, 과잉 생산과 소비 대신 돌봄의 재생산 경제를 중심으로1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회 환경을 만들고 공생공락의 의미 있는 삶을 살자는 근본적인 전환입니다. 경쟁보다는 돌봄을, 소유보다 공유하는 커먼스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연대와 자율성을 통해 지역적으로도 연결된 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우연히 독일의 한 탈성장 연구그룹에서 탈성장을 소개하는 글2을 보았는데,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영어로 ‘degrowth’라고 표현되는 탈성장은 프랑스어로 “la décroissance”, 이탈리아어로는 “la decrescita”입니다. 둘 다 라틴어에 기원을 두는데 여기에는 ‘대홍수 이후 정상적인 흐름으로 되돌아가는 강(a river going back to its nomal flow after disastrous flood)’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실제 지구는 대홍수와 같은 재난 상황입니다. ‘본래 순환의 질서로 흐르는 강’으로 돌아가기(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홍수를 일으킨 성장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 사회, 정치 체제의 전반적인 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장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기 위한 세 가지

그렇다면 강으로 회복되는 이 여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탈-성장(성장에서 해방되는)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기 위하여, 함께 해보았으면 하는 것 세 가지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깨어남의 고통을 축하하기,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기, 사랑하기

하나. 깨어남의 고통을 축하하기

“깨어난다는 것은 세상의 고통에 대하여 깨어나는 것이다.

지구가 위험에 처해있고

수많은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대해 깨어나는 것이다”

틱낫한
깨어난다는 것은 세상의 고통에 대하여 깨어나는 것이다. 지구가 위험에 처해있고 수많은 생명이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에 대해 깨어나는 것이다.
사진출처 : Perec

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있다면, 현실을 직시하고 성장주의의 허상에서 깨어나고 지금의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풍요의 이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추구해온 편안하고 익숙하고 열망하는 삶의 방식을 잃을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옳다고 믿어왔던 것들이 더 이상 말이 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이 문제가 우리의 의식 속에서 깨어나 고통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각성은 다차원적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특정한 문제의 현실과 심각성에 대한 지적이며 냉정한 확신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정서적, 문화적, 정치적 정화도 수반됩니다. 이때 각성은 현 시스템이 체화(embodied)된 우리의 자아를 인식하게 해주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실재적으로 고통을 느끼거나 심리적, 신체적 반응(깨어남 증후군, waking up syndrome)을 겪는다고도 합니다.3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고 부정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고통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알려주는 소중한 신호입니다. 삶에서 고통이 늘 반가운 손님은 아닙니다만, 지금 마주하는 깨어남의 고통이라면 진정 축하할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진실에서 도망가지 않고 직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진실만이 고통을 주기에 모든 진실은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4 우리에겐 지금 이런 깨어남의 고통이 필요합니다.

소비적 약탈문화에 중독되어 버린 자아가 무언가 위험을 감지하였습니다. 과도하게 넘쳐나는 세상에서 탈출을 시도하자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배자에 의해 규정된 삶”5 속에서 우리 자신은 어느새 주체로서의 자리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깨어남의 고통은 모든 이를 위한 존엄 속에서 자기 결정적인 삶을 되찾는데 훌륭한 파수꾼이 되어줄 것입니다. 고통을 피하고 외면하기만 한다면 불안은 더 커집니다. 오히려 고통을 끌어안는 순간 고통은 잦아들 것입니다. 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깨어남의 고통을 함께 축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은 가치를 회복해야할 시간입니다.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본래의 의미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되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삶과 자연, 인간의 존엄, 일과 인간관계,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해서 돈으로 매길 수도 없고

희생할 수도 없는 가치들입니다”

교종 프란치스코, 렛 어스 드림6

손가락이 아니라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봐야 합니다. 깨어남의 고통은 우리 내면의 깊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상처 입은 지구와 인간의 공격과 약탈로 영원히 사라져갈 운명에 내몰린 수많은 생명들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이 우리들을 초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 늦기 전에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라고 말입니다. 이대로는 우리 모두 이 지구별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고…

보이지 않는 가치와 신념들이 보이는 세상의 것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탈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장 뒤에 숨겨진 것들을 마주해야 합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깊이 성찰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성찰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탈성장 담론이 지향하듯, 지속적인 대화와 서로간의 격려 속에서 ‘지구의 모든 생명공동체들이 좋은 삶’을 위한 가치와 체제(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를 함께 바꿀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분명 이 과정에서 다시 생명을 얻게 된 보이지 않는 것들은 세상의 보이는 것들을 새롭게 만들어낼 것입니다. 진정한 깨어남은 본래 우리가 지녔던 창조적 생명력이 피어나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깨어남은 또 다른 존재들을 깨우는 큰 힘입니다. 불편하고 피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겠으나, “함께 느끼는 고통이야말로 혁명의 효소”7입니다. 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기 위해 두려움에서 용기를 내어, 깨어남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고자 결심하신 분이 계시다면 존경의 마음을 담아 축하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정체성과 관계를 바꾸려면

집합적인 성찰과 시간이,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디그로쓰8

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저항하기

“우리는 알고 있지. 이 땅이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의 일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생명의 그물망은 우리가 짜는 것이 아닌,

우리는 그저 그 그물에 든 하나의 그물코일 뿐”

북미 선주민 씨애틀 추장
생명의 그물망은 우리가 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 그물에 든 하나의 그물코일 뿐이다. 
사진 출처 : brewbooks  
www.flickr.com/photos/brewbooks/2773568797
생명의 그물망은 우리가 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그 그물에 든 하나의 그물코일 뿐이다.
사진 출처 : brewbooks  

과도하게 넘쳐나는 세계 속에서 미처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지만 우리는 고립되고 독립된 존재가 아닙니다. 온 지구의 촘촘한 생명 그물망 속에 연결되어 다른 존재들에 기대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라고 부추기는 성장 강박과 소비 중독은 우리의 욕구와 순간의 쾌락만을 자극합니다. 주변의 존재들, 소소한 아름다움 그리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무상의 선물로 가득 찬 세상을 발견하지 못하게 합니다. 끊임없이 공허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소비하게 만들어야 세상이 돌아갈 수 있으니까요. 매 순간, 소중한 것들이 허공에 흩어져갑니다.

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존재들과 연결된 생명의 그물코를 몸과 마음으로 느꼈으면 합니다. 다양한 생명의 온갖 빛, 색깔과 향기를 맛보면 어떨까요? 지구의 생명들은 내 존재 밖에 있는 객체들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성장해나가는 주체이자 동반자입니다. 나의 숨이며 나의 몸입니다. 지구가 태어난 46억 년 전 그때부터 돌과 흙을 포함한 크고 작은 생명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진화(供進化)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인류도 사회, 문화적 여러 체제와 다른 이들의 돌봄에 의해 생존해 왔습니다. 인간이 생명의 그물망에서 스스로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착취하고 폭력을 행사하던 동안에도, 지구의 생명들은 하나의 유기적 공동체로서의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던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현존을 체득할 때, 생명의 순환 속에 자리한 진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느리게 오래도록 자세히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것과 친밀한 일치를 느낄 수 있다면 벅찬 경이로움과 깊은 고마움을 만날 것입니다. 생명은 절대 누군가(무언가)의 성장을 위한 자원이 될 수 없는 귀한 선물입니다. 쉽게 소비될 수 없는 본래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적을수록 풍요로운(less is more)” 탈성장으로의 삶을 만들어가자는 다짐에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경외와 존중을 담았으면 합니다. 소중한 실재들을 그저 소비하지 않기 위해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확고한 저항입니다. 자신을 비우고 절제함을 배우며 자신 안에 한계를 짓는 일은 그저 낭만적이거나 금욕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공존을 위한 절제이자 자발적인 가난입니다. 보다 내가 나일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수많은 생명들, 그리고 나에게 기대어 있는 살아가는 존재들을 단순히 소유하고 지배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입니다. 고귀한 결심들이 모여 구조적인 체질 개선에 힘을 보탰으면 합니다. 생명의 그물망 속, 거대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분명한 인식과 책임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나와 다른 이, 인간과 비인간 존재 모두를 위해 소중한 관계들을 지켜가겠다는 결단은 신성한 저항의 시작입니다.

셋. 사랑하기

“산업사회에서 낭만적이거나 사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자연과 우리를 먹여 살리는 지구를 사랑하라고 호소하는 사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조롱하기 일쑤다. (중략)

개인주의와 근시안적 사고는 우리가 보기에는 오늘날 사회 체계의 가장 큰 문제이며

지속 불가능성의 가장 뿌리 깊은 원인이다. 그 문제를 집단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랑(love)과 동정(compassion)을 제도화 하는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다.”

성장의 한계9

예전에 『성장의 한계』를 읽으면서 책 전반에 거론되는 무거운 현실과 절망적인 전망에 압도되어, 뒤쪽엔 어떤 근사한 해결책이 제시되길 기대하며 책을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책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저자들이 본인들은 그런 말을 쓰는 영역의 사람들이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주저하며 “비과학적 용어”들로 이루어진 다섯 가지 대안적 도구들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꿈꾸기, 네트워크 만들기, 진실 말하기, 배우기, 사랑하기’입니다. 처음엔 저도 역시 “이런 연약한 도구들도 과연 성장주의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인 ‘사랑하기’가 거기에 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기’가 약해 보이는 도구이긴 해도 또 그만큼 놀라운 힘을 가진 것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사랑하기’는 정말 중요합니다.

탈성장 담론을 접한 후 『성장의 한계』 저자들이 얘기했던 “사랑과 동정(연민, 자비로도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의 제도화”를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누군가 그녀에게 문명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질문을 한 사람은 낚시바늘이나 토기, 간석기 등을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러졌다가 붙은 흔적이 있는 대퇴골(healed femur)”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미드는 “만약 당신이 다리가 부러졌다면 위험으로부터 달아날 수도 없고 물을 마시러 강에 가거나 사냥을 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는 누군가가 그 사람이 치유될 때까지 돌보아주었음을 나타내요. 이 연민의 증거(evidence of compassion)가 문명의 시작입니다.”

어느 때보다 초연결된 세계이지만 심화되는 개인주의와 파편화로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더 커져가는 지금, 연민과 사랑을 말한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사랑, 연민, 공감, 연대, 협력과 같이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는 것들의 힘이 컸습니다. 약하거나 병든 자들을 외면하지 않고 서로를 돌보고 고통을 함께 겪어내며(연민:com함께+passion고통을 겪다) 살아가는 방법이 오히려 모두를 살리는 방법임을 인류의 조상들은 일찍이 깨달았던 것입니다. 민중적 전통에서도 내 눈앞의 이웃은 물론이거니와 이방인과 같은 낯선 타자에 대해서도 환영했던 공동체의 삶의 방식인 상호부조와 환대가 있었습니다. 故김종철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신 풀뿌리 민중 자치의 핵심이기도 한 상호부조와 환대의 윤리는 자타(自他)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가 되는 것으로, 공감능력에 기반한 타자에 대한 감정이입이며 결속감을 의미합니다.10 이는 우리 안에 이미 심겨져 있는, 탈성장 과정에서 꼭 기억해야 할 ‘사랑하기’의 강력한 유전자입니다. 나 혼자만 이 세상에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긴밀한 돌봄으로 서로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하기’는 개인 간의 사적인 차원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서로를 돌보는 몸짓으로 넘치는 사랑은 또한 사회적, 정치적 사랑이 되며,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모든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사회에 대한 사랑과 공동선에 대한 투신은 개인들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차원의 거시적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애덕의 탁월한 표현입니다.

(중략) 사회적 사랑은 참다운 진보를 위한 열쇠입니다.

더욱 인간답고 더욱 인간에 걸맞은 사회를 만들려면

사회생활-정치, 경제, 문화-에서 사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야 하며

사랑이 지속적으로 모든 활동의 최고 규범이 되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회칙 『찬미받으소서』 231항
더욱 인간답고 더욱 인간에 걸맞은 사회를 만들려면 사랑이 지속적으로 모든 활동의 최고 규범이 되어야 합니다.
사진 출처 : Republic of Korea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상호 호혜적 친교와 평등의 연대를 통해 서로를 돌보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사랑입니다. “사회적 사랑은 현대세계의 문제들에 새롭게 접근하는 방식을 가르쳐 줄 수 있고 사회 구조들과 사회조직, 법적 체계들을 내부로부터 쇄신할 수 있는 힘입니다”11. 지금 탈성장이 꿈꾸고 있는 세상도 이런 사랑과 연민의 제도 펼쳐진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탈성장의 최종 목표는 노동 존엄성의 회복, 이기성을 덜 자극하는 경쟁, 더 평등한 관계, 개인의 성취로 순위가 매겨지지 않은 정체성, 연대감 넘치는 지역사회, 인간적인 삶의 리듬, 자연에 대한 존중이다12

우리 삶의 신비로운 현상 중에 하나는 사랑하면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사랑하는가에 따라 우리 삶의 목적과 방향은 무척 달라집니다. 여러분께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삶에서 무엇을 사랑하십니까?” 또는 “무엇을 사랑하고 싶으십니까?”, “어떤 사랑을 하고 계신지요?” 우리는 사랑함으로써 사랑하는 것들을 지킬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을 위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가며

탈-성장에 최적화된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면서도 급박한 위기의 순간에 진부하고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을 만들어낸 것은 결국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지키려는 노력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성장과 기후위기가 양립할 수 없다는 현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탈성장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모두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누구든지 원하는 삶과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열린 장(場)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또한 새로운 사회로의 창조적인 상상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성장과 발전에 대한 허상의 틀을 부수고, 그것이 가능하겠냐는 냉소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서로를 지지하며 함께 꿈을 실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겐 행동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꿈을 꾸게 하는, 우리 삶을 멋진 모험이 되게 하는 아름다운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아무도 혼자서는 삶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

우리를 지탱하고 도와줄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앞을 바라보도록 서로 도움을 줍니다.

함께 꿈꾼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

혼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 곧 신기루만 볼 위험이 있습니다.

꿈은 함께 꾸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모든 형제들에게』 8항13

  1.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데마리아, 요르고스 칼리스 엮음, 『탈성장개념어 사전』, 그물코(2018), 28p

  2. 출처: degrowth.info

  3. Edwards, S. and Buzzell, L., 2010. ‘The Waking Up Syndrome’ in Buzzell,L and Chalquist, C (eds.). Ecotherapy. San Francisco: Sierra Club Books, pp.102-109.

  4. 한병철, 『고통없는 사회』, 김영사(2021), 50p

  5.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데마리아, 요르고스 칼리스 엮음, 『탈성장개념어 사전』, 그물코(2018), 29p

  6. 프란치스코 교황, 『렛 어스 드림』, 21세기북스(2020), 129p

  7. 한병철, 『고통없는 사회』, 김영사(2021), 24p

  8. 요르고스 칼리스, 수전 폴슨,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데마리아, 『디그로쓰』, 신세계(2021), 100p

  9. 도넬라 H.메도즈, 데니스 L.메도즈, 요르겐 랜더스, 『성장의 한계』, 갈라파고스(2011), 426p

  10. 녹색평론 176호, 131p

  11. 교황 프란치스코, 회칙 『모든 형제들에게』, 한국천주교주교회의(2020), 129p (183항)

  12. 요르고스 칼리스, 수전 폴슨, 자코모 달리사, 페데리코 데마리아, 『디그로쓰』, 신세계(2021), 157p

  13. 교황 프란치스코, 회칙 『모든 형제들에게』, 한국천주교주교회의(2020), 16p (8항)

이나경

온 생명과 함께 하느님의 꿈을 꾸고 싶은 성가소비녀회 인천관구 소속의 수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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