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 디지털 시대, 나를 위한 고립의 시간

초연결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은 점차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다. 0과 1의 이진화된 마음 공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이 되고 있는지 누구로서 존재하는지 돌아봄과 둘러봄의 고립된 시간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 초연결. 가상과 현실이 융합되어 그 경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연결성의 세계. 현실세계에서의 행위가 가상공간을 변화시키고, 가상공간에서의 행위가 현실세계에서 실현되는 실시간 동작-상태 동기화 시스템. 우리는 지금 초연결의 도(道) 위에 있다. 연결되지 못하는 모든 것들은 도태되고 연결되는 모든 것들은 종속되는 강제 속을 무감각으로 걷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가는 기술문명의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분리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기저 메커니즘은 융합(convergence)과 발산(divergence)이다.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경계를 허물며 하나가 되었다가 그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들이 퍼져나가듯 파생되는 것. 융합과 발산의 교차 순환고리는 마치 끊임없이 회전하는 원심분리기의 분해능처럼 사람들을 분리시켜 가고 있다. 문제의 원인은 속도에 있다. 융합과 발산을 통해 인류는 이전부터 “변화”를 채굴(mining)하여 왔는데 현 시대에 이르러 이 채굴의 속도가 채굴된 광석을 확인할 시간조차도 가질 수 없을 만큼 빨라진 것이다. 혹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지난 1만 년 동안의 기술문명의 발전이 지난 100년 동안 일어났고, 지난 100년 동안의 발전이 앞으로 10년 동안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무한히 가속화되고 있는 변화의 순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반성”과 “둘러봄”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 결과 중 하나로서 “관계”의 총체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일주일이 7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든 연결에서 벗어나 고립되어 글을 써 보자. 
사진출처 : pxhere
일주일이 7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든 연결에서 벗어나 고립되어 글을 써 보자.
사진출처 : pxhere

4차 산업혁명의 연료는 데이터(data)다. 디지털화된 데이터, 즉 컴퓨터 연산이 가능한 상태의 자료다. 아날로그 세계의 수많은 신호들이 발빠르게 디지털 세계로 변환되고 있다. 이것을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변환)이라 한다. 인류는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en genome project)를 통해 스스로의 유전정보를 이미 디지털화하였다. 디지털이 주는 빠른 계산속도의 매력은 날씨, 경유 가격, 신발 사이즈 등의 물리적인 대상뿐만 아니라 좋아요, 싫어요 등의 비물리적인 대상도 디지털화시켰다. 생활권 내의 모든 것이 디지털의 대상으로 변환되면서 우리의 인식 체계도 디지털적 내면으로 점차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도 이진화(binary), 즉 디지털 언어로 다시 쓰여져 가고 있다.

0과 1의 이진 세계는 중간이 없다. 과정도 없다. 오직 양극단만 있을 뿐이다. 디지털의 빠르고 강한 연산 능력은 바로 이 극단에서 나온다. 아날로그 세계의 도도하고 끊김없는 연속성은 0과 1의 이진 세계 속에서 분할되고 단절되어 기계적으로 분리된다. 이러한 이진화 과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인스턴스(instance)로 코딩(coding)된 관계로 변환시켰다. 여기에서 인스턴스는 프로그래밍 용어로 재사용 가능한 설계 코드의 복사본을 의미한다. 붕어빵틀이 재사용 가능한 설계 코드라면, 붕어빵틀에 밀가루 반죽과 팥소를 넣어 만들어낸 붕어빵이 인스턴스다. 디지털 내면 속에서 나의 기호와 필요에 맞는 만남과 모임의 유형이 하나의 재사용 가능한 설계 코드로 생성되고 인스턴스로 복사되어 사용된다. 인스턴스의 장점은 쓰고 버리는 것이 간편하다는 것이다. 모임도 만남도 인간관계도 인스턴스로서 극도로 세분화된 나의 필요(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일정한 행위의 반복은 “어색함”에 대한 감각을 무뎌지게 하고 “다름”에 대한 생각의 발생을 현저하게 낮추어 새롭지 않은 모든 것들을 무감각의 세계로 수렴시킨다. 습관의 장점과 단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현재 만남의 습관은 어떠한가? 일주일이 7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디지털적 만남은 과정의 생략이 발생하여 0에서 1로, 1에서 0으로의 전환만 있을 뿐 중간과정에 대한 기억을 남기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관계에 기반한 만남으로 구성된다. 나와 나의 만남(관계), 나와 너의 만남(관계), 나와 생활권 내의 모든 사물과의 만남(관계), 나와 세계와의 만남(관계). 한 개인의 힘으로 시대적 변화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시대적 변화 속에서 나의 세계를 새롭게 하는 것은 가능하다.

먼저는 모든 연결에서 자유로이 벗어나 고립의 시간을 가지는 것을 시도해 보자. 숲을 보기 위해 숲 밖으로 걸어 나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 2~3시간을 고립되어 보자. 자연 속에서 고립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고립은 생각을 위한 시간이다. 돌아보는 것이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누구인지. 다음은, 둘러보는 것이다. 내 주변(가족, 친지, 친구, 이웃, 동료 등)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최근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건강한지, 즐겁게 사는지, 어떤 도전을 하고 있는지… 그들은 내게 누구인지. 그리고, 기록하는 것이다. 나의 생각이 메모장의 현실 속으로 걸어나올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기록되지 않은 생각은 거짓이 되거나 소멸한다. 기록물은 다음 고립의 때에 참고서가 되기도 하니 유익하다. 마지막으로, 돌아간다. 다시 나의 일상으로. 나의 세계와 만나는 시대적 변화 속으로. 기록된 나와 함께.

이영두

잠들어 있는 질문을 깨우기 위해 여행 중인 시골 공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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