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토론회 특집] ① 마그나카르타와 공통의 숲 – 『마그나카르타 선언』을 읽고

이 글은 2022년 12월 22일에 '탈성장 전환에서의 생태헌법정신'을 주제로 한 [탈성장 대토론회] 발제문으로 발표된 내용이다. 800년 전 제정된 “진짜” 마그나카르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자본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축소되고 왜곡되기 전, 마그나카르타에는 모두의 자유를 위한 ‘공통권’을 담지하는 삼림헌장이 있었다.

“1215년 6월 중순 존 왕은 템스 강 옆의 러니미드라 불리는 초원에서 반란을 일으킨 국왕봉신들과 마그나카르타의 63개의 조항들이 정하는 방향에 따라 서로에게 의리를 지킬 것을 맹세로써 약속하였다.”1

공통장(commons)의 역사가 피터 라인보우는 『마그나카르타 선언: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에서 1215년 제정된 마그나카르타를 다룬다. 800년도 더 지난 영국의 헌장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마그나카르타는 일반적으로 인권의 기초로 알려져 있다. 그 오래된 헌장은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등의 기초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마그나카르타의 39조2가 중요하게 언급되는데, 그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인신보호영장, 배심재판, 고문 금지, 적정절차 등 인권의 중요한 원칙이 발전되어 나왔다. 그러나 라인보우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인권의 기초로서의 마그나카르타라기보다는 그 기초의 왜곡 그리고 잊혀진 헌장 및 그와 더불어 사라진 어떤 영역에 대한 것이다. “영국 역사가 전개되는 동안 마그나카르타 중에는 39조처럼 … 진화한 부분도 있지만 상부한 여성에게 합당한 에스토버스를 제공하는 7조와 삼림헌장 전체처럼 법률문서들 사이에 묻혀 먼지만 뒤집어 쓴 부분도 있다.”(P.105)

피터 라인보우 저 『마그나카르타 선언: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 (갈무리, 2012)
피터 라인보우 저 『마그나카르타 선언: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 (갈무리, 2012)

책의 부제,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공통장3”은 문제의 옛 헌장이 지닌, 그 상반된 과정을 겪은 두 측면을 가리킨다. “첫째는 왕의 정치적 권력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고, “둘째는 공통장에서의 생계자급을 보호하는 것이다.”(P.13) 다시 말해 전자가 왕의 전횡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사법적 권리와 관련된 것이라면 후자는 공통인(commoner)의 경제적 생존을 다룬다. 전자가 진화한 헌장이라면 후자는 잊혀진 헌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에서 살필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전자의 진화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가? 2) 잊힌 후자의 헌장이 보호한 공통장이란 무엇이었는가? 3) 두 헌장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후자의 사라짐은 전자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이 모든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두 번째 질문부터 시작해 보자.

숲 공통장과 자급의 삶

라인보우는 공통장과 관련하여 마그나카르타의 47조와 48조에 주목한다. 47조는 삼림의 폐림 — 숲을 왕의 관할에서 제거하는 것(따라서 숲을 공통장으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 — 을, 48조는 삼림과 관련한 악습에 대한 조사와 폐지를 명시한다. 라인보우는 봉건적 유물이자 영국의 특성으로 무시되었던 이 두 조항을 자급 관점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당시의 자급적 삶에서 숲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

마그나카르타가 제정된 13세기에 나무는 오늘날의 기름이나 금속보다 훨씬 더 삶에 중요했다. “읍 전체가 목재를 사용했다. 시골지의 버팀목과 대들보, 굽은 목재 서까래, 오크로 된 예배당의 긴 의자. 그 다음에 바퀴, 자루, 그릇, 탁자, 의자, 숟가락, 장난감 그리고 기타 도구들이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다. 나무가 바로 에너지의 원천이었다.”(P.63-4) 숲이 제공하는 것은 나무에 그치지 않았다. 숲은 말과 소, 양을 방목하기 위해 필요한 초지를 제공했으며, 도토리와 너도밤나무 열매가 있는 돼지 먹이의 공급처이기도 했다. 이처럼 숲은 무수한 필요에 부응했다.

그러한 “숲이 있는 공통장은 한 사람이 소유하고 있으나 다른 이들, 즉 공통인들에 의해 사용되는 곳”(P.63)4이면서 땅 없는 이들의 자급에 필수적인 토대였다. 그러한 이용, 즉 공통하기는 당시 이미 오랜 시기에 걸쳐 작동하던 공통권(common rights)에 의해 보장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에스토버스를 제공하는 7조”는 관습적으로 작동하던 그 권리를 명시한 것이다. 여기서 에스토버스(estovers)란 세 가지 기본적인 필요, 즉 건축과 울타리치기와 땔감을 위해 필요한 목재를 취할 수 있는 권리 — 집수리권, 산울타리권, 땔감권 — 를 통칭하는 말로, “생계자급, 영양섭취 및 섭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에스토버스란 “관습에 따라 숲에서 채취하는 것을 가리키며 종종은 생계자급 일반을 가리킨다.”(P.70)

마그나카르타가 제정된 13세기에 나무는 오늘날의 기름이나 금속보다 훨씬 더 삶에 중요했다. 사진 출처: Sigmund
마그나카르타가 제정된 13세기에 나무는 오늘날의 기름이나 금속보다 훨씬 더 삶에 중요했다.
사진 출처: Sigmund

공통권은 7조뿐 아니라 삼림헌장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었다. 마그나카르타에서 별도의 헌장으로 만들어져 이후 잊히게 된 그 “삼림헌장의 1조는 목초지를 ‘관습적으로’ 사용해 왔던 사람들에게 목초지를 공통재로서 보존해 주었다.” 또한 “9조는 자유민들에게 숲을 개방하고 돼지방목권을 제공”했으며, “13조는 모든 자유민들이 꿀을 채취할 수 있게 정하였다.”(P.72) 이렇게 실질적인 관습과 그것을 뒷받침한 규약으로 작동한 숲 공통장은 “연료의 저장고”였으며, “맛있는 먹을 것들이 있는 식품저장고”이자, “약초와 치료약이 든 약상자였다.”(P.73) 이러한 공통장은 공유하는 자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니슨이 말하듯 공통의 “황지는 다른 공통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을 그들에게 주었으며 그럼으로써 그들을 상호관계가 자라나오는 교류 네트워크의 일부로 만들었다.” 즉 땅 없는 이들은 자원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공통의 재화(common goods)로, 스스로를 공통의 주체(commoner)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공통장은 어떤 재화뿐 아니라 그것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의 집합화를 동시에 함축했다. 이처럼 “공통장은 사회적 관계인 동시에 물질적 사물이다.”(P.22)

요컨대 공통장은 땅 없는 이들의 자급 기반이자 “민중의 안전망”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재화의 이용이 계급 간 힘 관계에 따라 좌우되었다는 것이다. 공통권이 처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공통권의 행사를 둘러싸고 지주와 공통인 간의 분쟁이 상시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은 분명하다. 지주는 세금, 개간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공통권을 무화시키고 수익을 얻고자 했고 소작인은 소송, 울타리 걷어내기, 숲 습격 등의 방법으로 이에 대응했다.5 공통권은 그러한 적대의 산물이었다. 그러한 투쟁을 통해 공통장은 ‘생산’되거나 반대의 경우 위축되었다.

자본의 마그나카르타

16세기는 공통장에 대한 인클로저(enclosure)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다. “1551년과 1684년 사이에 많은 반란과 봉기들이 그리고 혁명이 패배하면서 공통화는 상당히 감소하였다.”(P.19) “영국의 사유화”가 시작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공통장의 파괴, 즉 인클로저는 자본주의가 태동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인클로저는 땅과의 정신적 유대를 파괴했고 공통인들을 다양한 노동규율에 종속시킴으로써 프롤레타리아화의 예비작업을 했다.”(P.83) 이렇게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던 이 시기 마그나카르타는 튜더 왕조의 군주정이 힘을 독점하면서, 또한 상품이 공통화를 대체하면서 잊혀졌다.

마그나카르타가 다시 등장하는 건 17세기에 이르러서다. 그러나 “노예제의 재개, 식민지 정복, 공통장의 인클로저, 여성에 대한 다양한 공격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이 시기에 마그나카르타는 점점 자본의 헌장으로 기능하게 되었으며 이를 위해 삼림헌장은 버려져야 했다. 가령,

아메리카의 다른 식민지들의 특허장 또한 마그나카르타를 언급했다. 이 식민지 개척자들은 왕의 권위에 맞서는 데 마그나카르타를 활용한 반면에 (뉴욕의 자유헌장은 마그나카르타 39조를 인용했다) 막상 자신들이 원주민의 숲지대를 침입하게 되었을 때에는 삼림에 관한 조항들을 무시하였다. 마그나카르타는 식민지의 자유와 탐욕스러운 제국 모두의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P.122

대서양을 건넌 마그나카르타는 선택적으로 수용되었다. 미국은 사적 소유, 자본주의, 노예제의 나라였다. ‘자유권’은 받아들여졌지만 공통권은 부정되었다. 이렇게 삼림헌장을 털어낸 마그나카르타는 미국에서 자본주의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조약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미국은 부르주아 공화국으로 시작했으며 마그나카르타는 그 목적에 복무해야 했다.”(P.223) 라인보우에 따르면 미국에서 예의 그 39조는 사적 소유를 뒷받침하는 조항으로 해석되었다. “개인의 자유권들과 재산권들이 … 마그나카르타의 위대한 원칙들이다. … 최초의 13개의 주들은 모두 사유재산의 불가침성을 보장하려고 했다. 그 방법은 마그나카르타의 유명한 39조에서 용어들을 추출하고 채택하는 것이었다.”(P.222)

39조를 기원으로 하는 미국 헌법수정조항 제5조 ‘적정절차’ 조항도 비슷하게 왜곡되었다. 미국 대법원장 토니는, 노예는 “백인이 존중해야 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결하면서 적정절차 조항이 노예라는 ‘재산’에 적용된다고 주장했다(P.223-4). 이렇게 마그나카르타는 노예소유주를 옹호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자본가를 옹호하기 위해서도 사용되었다.

로치너 사건(1905)은 제빵 노동자들에게 주당 최대 60시간 노동을 정하는 법은 고용주와 고용자 사이의 계약의 자유를 방해한다고 판결했다. 수정조항 제14조의 적정절차 조항이 확대되어 계약을 할 권리도 포함하게 된 것이다. … 우리는 왕에 의한 억압을 제거할 의도에서 나온 조항이 이제 제빵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것으로 사용됨을 발견하게 된다.

P.227-8

왕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던 자유는 소유의 자유, 시장에서 ‘자유롭게’ 계약할 자유, 경쟁할 자유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전자의 자유를 보호하며 왕의 권위를 제한했던 마그나카르타는 후자의 자유를, 즉 사적 소유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개인의 권리와 자유무역의 보호자”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소유의 자유는 당연하게도 소유자를 위한 것이었으며, 그 자유로 인한 새로운 억압은 감춰지고 무시되었다. 그로 인해 오늘날 적정절차 조항은 “인권에 손상을 입히고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작동한다. 그것은 축적되고 조직된 자본의 마그나카르타가 되어 버렸다.”(P.228) 이렇게 왕의 권력을 제한하기 위해 마련된 정치적・사법적 권리로서, 근대 인권의 기초로 여겨진 마그나카르타의 한 측면은 인권이 아니라 재산권에 봉사하며 “지배계급의 우상이 되었다.”(P.230)

공통권과 자유

공통권의 상실은 자유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출처: Museums Victoria
공통권의 상실은 자유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Museums Victoria

지금까지 살핀 건 마그나카르타의 축소와 왜곡이다. 13세기의 옛 헌장에서 공통권을 보호하는 삼림헌장은 잊혀졌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보호하던 조항은 재산권에 봉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공통권의 제거와 자유권의 왜곡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통권의 상실은 자유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자유로우려면 공통인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때의 자유는 소유의 자유가 아니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가리킨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억압은 노동의 강제다. 자본주의의 전제조건이었던 시초축적, 즉 인클로저는 생산자로부터 생산수단을 분리했고 그로 인해 후자로부터 ‘자유롭게’ 된 인간은 노동력을 팔아야만, 즉 임금노동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 임금노동은 우리를 노예와 같은 인간으로 만든다. 디거스파의 지도자 윈스턴리는 “임노동을 하는 이상 적의 지배를 받으나 동포의 지배를 받으나 다를 것이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한 노동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협력하는 공통인이 되는 것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통권은 자유의 토대로 기능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통권을 이해할 때 우리는 지배층이 공통권 혹은 공통장에 혐오와 불평을 쏟아내는 이유를 잘 알게 된다.

당국은 공통권, 특히 공통의 목초지가 거지들을 먹여 살리고 도둑들, 부랑자들, “돼먹지 못한 건달들”이 활개를 칠 수 있게 한다고 불평했다.

P.109

에쎅스 햇필드포레스트의 소유주는 1826년에 이렇게 불평했다. “열매가 익기 시작하자마자 … 성격이 나쁜 게으르고 지저분한 사람들이 … 큰 무리를 지어 … 와서 … 열매를 따거나 열매를 딴다는 핑계로 무리를 지어 빈둥거린다. … 그리고 저녁에는 … 숲에서 맥주와 화주(火酒)를 마시고, 숲은 온갖 방탕한 행위를 할 기회를 그들에게 제공해 준다.”

P.175

그 “거지들” “도둑들” “부랑자들” “돼먹지 못한 건달들” “성격이 나쁜 게으르고 지저분한 사람들”은 노동을 거부하고 공통장에 기대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그들은 자본주의의 질서 유지에 가장 근본적인 장치, 즉 노동의 강제를 벗어나려 한다는 점에서 제거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라인보우가 강조하듯이 여성이 공통권을 보장하는 데서 중심적 역할을 했음을 떠올린다면 여성에 대한 공격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17세기 영국에 수천 명의 여성이 마녀로 몰려 화형이나 교수형을 당했는데 “마녀들을 단죄하는 증거에 들어 있는 주된 요소는 방목권・돼지방목권・에스토버스 등 공통권과의 연관”이었다.(P.104-5)

자본주의적 노동합리화를 위해서는 이런 관행들[마법]을 없애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마법은 … 노동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수단, 다시 말해서 노동의 거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마법이 근면함을 해친다”며 개탄했다.6

요컨대 공통장은 자본주의의 핵심 질서인 임금노동을 거부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했으며, 따라서 제거되어야만 했다. 마그나카르타의 축소와 왜곡은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되었으며 그에 따라 오늘날 우리에게 공통장에 기초한 자유는 사라지고 가난할 ‘자유’만 남았다.

이처럼 공통권의 상실이 자유의 상실로 이어진다면, 우리는 이제 마그나카르타의 의미를 다시 살피면서 다른 경로를 모색해 볼 수 있다.

1838년 하츠헤드무어에서 열린 거대한 집회에서 조셉 레이너 스티븐스 목사는 군중을 향하여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를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잉글랜드의 훌륭한 옛 법을 그 당시 그대로 우리에게 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이 법이 무엇입니까?’라는 그의 질문에 군중이 마그나카르타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마그나카르타입니다! 영국의 자유를 정한 훌륭한 옛 법입니다.’”

P.178

여기서 볼 수 있는 건 어떤 운동의 토대, 혹은 요구의 근거로서의 마그나카르타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운동을 이어나가려면 우리를 재생산할 수 있는 물질적인 기반이 필요하다. 삼림헌장은 바로 그 물질적 기반을 보호한다. 따라서 (삼림헌장과 분리되지 않은) 마그나카르타는 한편으로는 우리가 무언가를 주장할 수 있게 하는 토대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활동하는 삶의 토대로도 기능할 수 있다. 이 지점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가 무언가를 주장할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그 주장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

우리는 그동안 어떤 활동 자체에만 주목해왔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활동을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을 구성하는 것이다. 우리를 서로 연결할 뿐 아니라 우리의 생동력을 계속 재생산할 수 있는 공통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오늘날 도시에서 그 공통의 기반을, 공통장을 만드는 일은 가능한가? 그렇지 않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마그나카르타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이 지점에서 800년 전의 그 헌장이 주는 함의는 어떤 것인가?

그동안 도시에서 (온라인상의 협력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을 재생산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의 공통장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고 실험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활동이 일시적인 것에 그쳤던 이유다. 우리가 계속 움직이기 위해, 비물질적인 것들이 우리를 에워싸는 이 시기에 우리는 오히려 공통장의 가장 전통적인 형태에 눈을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 도시의 땅에서 공통의 숲을 이룰 시간이다.


  1. 피터 라인보우, 『마그나카르타 선언』, 정남영 옮김, 갈무리, 2012, 53쪽. 이후 이 책의 인용은 본문에 숫자만 표기.

  2. 39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위가 동등한 사람들의 합법적인 판단이나 나라의 법에 의한 것 말고는, 그 어떤 자유민도 체포 또는 구금되거나 점유한 것을 박탈당하거나 법의 보호를 박탈당하거나 추방되거나 어떤 식으로든 해를 입어서는 안 되며, 또한 짐도 직접 혹은 누군가를 보내서 그에게 강제로 법을 집행하지 않을 것이다.”(같은 책, 333쪽)

  3. 한국어 번역본은 commons를 커먼즈로 음역하고 있지만 이 글에서는 논의상 편의를 위해 공통장으로 옮긴다.

  4. 공통장이라는 용어가 처음 중세 영국 재산법에 등장했을 때, 그것은 공동체가 사용했지만 소유하지는 않은 목초지, 어장, 숲, 토탄지 등의 자산을 뜻했다(George Caffentzis, “commons,” in Keywords for Radicals: The Contested Vocabulary of Late-Capitalist Struggle, ed. Kelly Fritsch, Clare O’Connor, AK Thompson, AK Press., 2016).

  5. 그에 따라 영주와 공통인들 간의 분쟁이 자주, 때로는 폭력적으로 일어났다(Jean Birrell, “Common Rights in the Medieval Forest: Disputes and Conflicts in the Thirteenth Century,” Past & Present, No. 117 (Nov., 1987), 22-49.). 이처럼 중세 장원은 각 신분이 사회질서에서 주어진 위치를 받아들인 정적인 세계가 아니라 끊임없는 계급투쟁의 무대였다(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황성원・김민철 옮김, 갈무리, 2011, 53쪽).

  6.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210쪽.

이 발표물은 2022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일반공동연구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2S1A5A2A03055235)

권범철

도시 연구자라고 쓰곤 하지만 정말인지 의심스럽다. 사실 주업은 육아고 다른 건 다 부업이다. 주양육자가 되면서 사회 활동과 멀어져 거의 집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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