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토론회 특집] ② ‘전자의 숲’에서도 마그나카르타 정신은 유효할까?

이 글은 2022년 12월 22일에 '탈성장 전환에서의 생태헌법정신'을 주제로 한 [탈성장 대토론회]에서 논평문으로 발표된 내용이다. ‘(대)도시는 어떤 숲일까?’ 오늘날 대다수의 인구가 살아가는 도시라는 생태적 환경에서는 어떠한 공통권을 추구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1. 발제문 분석과 의미

라인보우의 『마그나카르타 선언』1은 13세기 영국에서 입법된 오래된 두 헌장을 재발견한다. 역사가 라인보우는 대헌장과 이를 둘러싼 해석과 인용구들을 연관되는 지점을 찾아내어 비범하게 엮어낸다. 그리하여 망각과 부침의 시기를 겪으면서도, 어떻게 해서 마그나카르타가 계속해서 연명할 수 있었는지를 증언한다. 공통권을 제한하거나 폐지하는 흐름에 맞선 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공식적이고 권위있는 기록과 같은 반열에서 기술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커머니즘’의 역사를 코뮌과 커뮤니즘으로 개괄하고 미래의 자리에 과거의 커머니즘을 올려두며 진보주의 역사를 과감하게 벗어나고 있기도 하다.

피터 라인보우 저 『마그나카르타 선언: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 (갈무리, 2012)
피터 라인보우 저 『마그나카르타 선언: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 (갈무리, 2012)

권범철의 발제문은 마그나카르타를 이해하는 부드러운 열쇠말(안내서)이 된다. 무엇보다 마그나카르타의 존재를 처음 접한 독자에게 이 책의 의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마그나카르타는 ‘인권의 기초로 알려져’ 실제적으로 법에서의 인도적 권리를 보장하는 식으로 발전해나갔다는 설명이 한 축으로 제시된다. 다른 한편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더러 역사적으로도 무시되고 잊혀진 ‘삼림헌장’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른 축으로 부각하고 있다. “전자가 왕의 전횡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정치적 사법적 권리와 관련된 것이라면 후자는 공통인(commoner)의 경제적 생존을 다룬다. 전자가 진화한 헌장이라면 후자는 잊혀진 헌장이다.”

‘삼림헌장’이 잊혀진 이유는, 논평문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중점적으로 설명된다. 16세기 들어 시행된 ‘인클로저(enclosure)’는 공통장을 구획화하고 포획함으로써 자본의 축적을 위한 토대로 만들었던 것이다. 부르주아들의 나라 미국은 영국에서 독립하는 ‘자유’를 위해 마그나카르타를 인용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을 탄압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노예화하는 ‘압제’를 위해 마그나카르타를 활용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유재’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내용이다. 소유에서 공유로 나아가는 것은 그 자체로 운동의 목적이 될 수 있지만, 공유하는 것 자체가 운동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경제적 물질적 기반이 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공유권’이 가진 ‘자급’의 측면은 오늘날에도 모든 자유를 위한 운동의 기반인 된다는 의미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다.

2. 제시된 질문에 대한 단상

논평문에서는 크게 두 가지의 질문이 제기된다. 하나는 ‘도시에서 공통장을 만드는 일이 가능한가?’를 묻고, 다른 하나는 ‘그밖에 오늘날 마그나카르타가 갖는 함의가 무엇인가?’를 묻는다.

첫 번째 질문은 ‘(대)도시는 어떤 숲일까?’를 묻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마그나카르타가 영국의 지나간 법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를 저자는 몇 가지로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생태적 직접성이다. 지역 생태계 안에서 공통권이 실현되는 장소를 꼽으라면, 그곳이 단연 ‘삼림’이었던 것이다. 마그나카르타에서 분화된 삼림헌장이 보장하는 경제적 생득권이 마그나카르타의 정치적 법적 자유를 뒷받침하는 관계를 이룬다는 점은 유의미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다수의 인구가 살아가는 도시라는 생태적 환경에서는 어떠한 공통권을 추구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먼저 공통권의 대상이 되는 영역을 지목하기 이전에 ‘공통적인 것’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대다수의 아파트 건축양식에서 주거 공간은 촘촘하게 구획화되어 다른 사람의 존재는 소음이나 침범자일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CHUTTERSNAP
대다수의 아파트 건축양식에서 주거 공간은 촘촘하게 구획화되어 다른 사람의 존재는 소음이나 침범자일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CHUTTERSNAP

소유자가 있더라도 지역 주민들이 숲의 산물(땔감, 열매, 잔가지 등)을 채취하는 것과 가축동물을 방목하는 것이 관습적으로 허용되었던 사회에서는 커머닝하는 삶의 태도가 자연스럽게 학습되고 몸에 익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한때의 상황과 비교하면 현재의 도시 위주의 생활방식에서 공통적인 것의 감각은 옅어지고 잊힐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아파트 건축양식에서 주거 공간은 촘촘하게 구획화되어 다른 사람의 존재는 소음이나 침범자일 수밖에 없다.

도시 속의 숲은 어떨까? 한국에서 도시 근처의 숲은 대개 국립공원 혹은 정부기관에서 관리되는 곳이다. 열매, 약초 등의 산림자원은 채취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고 꽃을 꺾는 것은 물론 구획된 잔디밭에 들어가는 것마저 금지되는 경우가 있다. 공원으로서 숲은 감상하거나 휴식할 장소로 기획된 장소일 뿐 그곳에서 생계를 위한 자원을 얻거나 부수익을 올리는 것 혹은 사회운동을 위한 교류와 결집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야생지’2로서의 숲의 필요성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다른 말로 하면 황무지 혹은 개발되지 않은 채 ‘방치된 땅’을 ‘커먼즈의 숲’으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또한 도시의 생활공간 자체가 디지털 세계 안으로 확장되었다는 점도 13세기의 영국과는 판이하게 다른 생태적 상황이다. 고밀도의 도시환경에서 온라인 공간은 과밀한 오프라인 현장을 벗어날 수 있는 대안공간이자, 소통과 소비와 여가활동이 벌어지는 ‘전자의 숲’이다. 따라서 사유와 경쟁의 자유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또한 ‘디지털 자본주의’와 ‘플랫폼 자본주의’3로 변모하여 그곳에 흐르는 정동을 채굴하고 축적의 장으로 점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같은 지역을 사는 주민들 사이로 중고물품을 중개하는 ‘당근마켓’, 농업에 데이터를 적용하고 로컬푸드 공급망을 제공하고자 하는 ‘랩씨드’ 등 상부상조하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탈중앙화된 플랫폼을 개발하여 커머닝의 판도를 확장하는 것이 요청된다.

3. 그 밖의 시사점 및 질문들

그밖에 오늘날 마그나카르타가 갖는 함의는 무엇일까?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립’의 밀접한 관계를 떠올리는 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긴요하다고 하겠다. 책에서는 예를 들어 영국의 노예제도와 종획 운동의 연관성이 교차되어 제시된다. 18세기 영국에서 행해진 ‘얼굴 검게 칠하기’라는 실천은, 해군의 숙소와 함선을 제작하기 위해 커머너들을 제지한 ‘뉴포레스트’ 근처 ‘윌섬체이스’ 지역에서 벌어졌다. 이들은 ‘부유한 자들을 약탈하고’ 제국과 지배계층이 삼림을 독점하는 것에 저항 세력이었다. 이들의 ‘위장’은 그 당시 번성한 해적의 대부분을 탈주노예가 구성하여 이들이 노예무역을 방해하는 역할을 했던 것과 연관된다.

그렇다면 거꾸로 오늘날 커머닝을 적극적으로 재발견하고 실현해야 하는 이유를, 권력기관의 압제적인 행태로부터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2022년 영국은 그해 4월 법원의 판결에 이어 6월 내무부 장관의 서명으로 줄리어 어산지를 미국으로 송환하는 것을 승인했다. 어산지는 호주 출신으로 미국 군인 브래들리 매닝이 빼낸 기밀문서를 위키리크스에 폭로한 전적이 있다. 그 내용으로는 이라크 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 영상,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무슬림 수감자 학대 등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익적인 정보를 공유한 것에 대한 처벌, 고문금지 등의 마그나카르타4의 정신이 다시금 위반되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커머닝은 커머너들로 인해 ‘아래로부터’ 이루어져왔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 ‘기본서비스’를 커머닝의 관점에서 재정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국가 주도의 복지정책으로 추진되어서는,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진정한 자립의 수단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커먼즈를 인클로저에서 복원하려할 때, 공유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 시대에 맡겨진 마그나카르타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피터 라인보우, <마그나카르타 선언: 모두를 위한 자유권들과 커먼즈>, 정남영 옮김, 갈무리, 2012.

  2. 『딥 에콜로지』(빌 드발, 조지 세션스, 2022.)는 생태의식을 함양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야생지’를 보존하는 것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다룬다.

  3. 신승철 외 3명, 『포스트 코로나 시대, 플랫폼 자본주의와 배달노동자』, 북코리아, 2015.

  4. 『마그나카르타 49조: 지위가 동등한 사람들의 합법적인 판단이나 나라의 법에 의한 것 말고는, 그 어떤 자유민도 체포 또는 구금되거나 점유한 것을 박탈당하거나 추방되거나 어떤 식으로도 해를 입어서는 안 되며, 또한 짐도 직접 혹은 누군가를 보내서 그에게 강제로 법을 집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 발표물은 2022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일반공동연구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2S1A5A2A03055235)

배선우

그동안 썼던 별명들은 한때의 나를 잘 설명해줬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다른 또 다른 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격언을 실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의미를 추구하며, 세계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당분간은 지구를 횡단하며 ‘생활철학자’라는 직함으로, 살고 싶은 길, 살아가야 할 길을 궁리하려고 합니다. 잘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주로 서평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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