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은 어떻게 기득권이 되었나? -『불평등의 세대』를 읽고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불평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신자유주의자들은 불평등은 항상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결과라고 가볍게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워킹 푸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열심히 일해도 불평등의 간격은 좁아지기는커녕 점점 커져만 간다. 여기에 사회학자인 저자는 기존의 불평등을 세대 내에서 찾지 않고 세대별 격차에서 찾는다.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 2019  이철승 저)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 2019 이철승 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에서 불평등은 점점 심해지는 듯하고 우리는 행복하지가 않다. 2020년 서울시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70%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소득 불평등 상황이 나빠질 것으로 보는 여론이 60%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불평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신자유주의자들은 불평등은 항상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며, 각자의 능력과 노력에 따른 결과라고 가볍게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워킹 푸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로 열심히 일해도 불평등의 간격은 좁아지기는커녕 점점 커져만 간다. 여기에 사회학자인 저자는 기존의 불평등을 세대 내에서 찾지 않고 세대별 격차에서 찾는다. 이 책은 바로 여기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서이며 부제는 ‘누가 한국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이다.

저자는 세대별 불평등을 살펴보기 위해서 산업화 세대(1930년대생), 386세대(1960년대생) 그리고 포스트 386세대(1970년대 이후 생), 세 부류의 세대에 대한 자료를 제공한다. 저자는 “386세대가 권력을 잡고 민주주의가 공고화된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어쩌면 더욱 심화된 ‘불평등 구조’를 가진 사회가 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는 심화되었고, 비정규직은 신분화되어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의 주기적 상승으로 상층 자산계급과 중하층 자산계급의 격차는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청년 실업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닌, 계층 고착화의 기제로 바뀌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의문의 해답을 이 책을 통해 제공해주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386세대는 다른 세대들이 가지지 못한 장점을 이용하여 기득권층에 진입했다고 말하며, 이들의 장점을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386세대는 사회 각계에서 산업화 세대의 기득권을 몰아내며 권력과 부를 독점했다. 둘째는 386세대의 권력 독점 기저에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응집력 있게 구축된 학벌, 노동조합의 네트워크가 있다. 셋째는, 산업화 세대와 386 세대에게는 한국의 고도성장에 편승해 급속한 자산을 증식할 기회가 있었다. 넷째는, 각계 조직의 상층부가 된 386세대는 동아시아 특유의 위계구조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며 사회의 자원을 독점했다.”

이들 386세대들이 이러한 자신들만의 장점을 가지고 사회를 지배하면서 불평등을 초래한 주범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가 말하는 386세대들의 죄는 다음과 같다.

“현재 대한민국의 리더는 386세대다. 이들이 불평등의 해결을 주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희생과 양보는커녕, 자신들의 밥그릇을 넓히고 단단하게 만드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노동자 386세대는 민주노조 운동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해, 향후 한국 사회 최대의 이익집단으로 성장했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386세대의 정규직 교사들.”

386세대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희생과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by Markus Spiske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MbG7kwWptII
386세대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희생과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사진 출처 : Markus Spiske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나름대로의 해결책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사회적 자유주의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자유 경쟁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약육강식의 논리에 국가가 개입한 것이라면, 사회적 자유주의 체제는 시장의 폭압적인 자기 재생산과 확장, 그로 인해 피폐해지는 사회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 합의를 통한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국민연금 혜택을 줄이고, 임금 피크제를 통해 절약한 임금을 합쳐 청년 세대 신규 임용에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청년세대를 위한 복지국가의 확대를 주장한다. 여기에는 적극적인 국가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저자는 실행하기가 힘들겠지만, 386세대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희생과 양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객관성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저자의 분석이 전적으로 객관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겠으나, 하나의 사회학적 연구서로 보면 많은 도움이 되겠다. 또한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인 만큼 하나의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물음은 우리가 경청해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신분제 사회를 만들어놓고 내 자식이 신분제 사회의 상층에 오를 확률을 높이는 전략과, 신분제 사회를 해체하고 내 자식과 다른 자식들이 자유로운 개인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사회적 위험을 분담하며, 노동의 대가를 적절히 공유하는 사회를 만드는 전략 중 어느 쪽이 현명한가?”

이환성

공학계 앤지니어로 10여년간 인간중심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인문학에 목말라했다. 지금은 현장을 떠나 자유로이 독서와 함께 인문학에 빠져 있으며 철학과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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