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

[9.21 기후행동 특별판] 기후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깨달음

티벳불교에서는 고난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것을 깨달음의 기회로 삼는 수행을 한다. 기후위기라는 암울한 현실 앞에서 우리도 기후위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깨달음과 수행의 길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기후변화를 공부하던 모임에서 올 여름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매주 광화문에 나가서 시민들에게 기후위기를 알리기로 한 것이다. 나는 중간에 합류했지만, 그때가 모임이 시작된 지 딱 일 년이 지나던 시점이었다. 어쩌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면 알수록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더 괴로운 일이 되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일요일이면 광화문으로 향하게 되었고,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인원이 차츰 늘어 참여자가 10명이 좀 넘는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런 적극적인 활동을 해오던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모임은 각별히 애정이 가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일단 일요일 오후 두 시간을 광화문에서 보낸다는 작은 희생을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지는 조금씩 조정하고 채워나가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골판지에 크레파스로 기후위기를 알리는 피켓을 만들었고, 환경과 관련된 책을 전시해 놓았다. 지금은 내용이 점점 다양해져서 노래, 합주, 거리 강연, 다이 인(die-in) 퍼포먼스 등을 보이기도 한다. 그 중 소수의 인원으로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것이 다이 인 퍼포먼스인데, 우리는 기후위기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몸으로 형상화하고 그 둘레를 바닥에 분필로 그린 후, 기후난민, 해수면 상승, 식량 부족 등의 원인을 적어놓았다. 때때로 퍼포먼스를 보면서 그것이 정말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어 슬픈 마음이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의 미래 : 이기심 vs 이타심

서울녹색당 기후변화 의제모임의 다이 인(die-in) 퍼포먼스 사진. by 권영은
서울녹색당 기후변화 의제모임의 다이 인(die-in) 퍼포먼스 사진.
by 권영은

기후위기는 우리에게 절망적인 미래를 이야기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이상기후와 지구온난화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는데, 앞으로 그 피해와 고통을 받는 이들은 늘어나게 될 것이다. 특히 세계의 가난하고 취약한 지역의 사람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입게 될 것이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고탄소 생활을 영위하면서 국경을 봉쇄하고 난민문제에 반대하는 선진국들의 움직임이 예상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와 이기심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기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가 이타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주변에서는 스웨덴의 청소년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보고 새로운 인류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도 이러한 입장에 보다 무게를 싣고 싶다. 기후변화라는 역경으로 인해 모두가 변화할 기회를 맞이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기후위기가 아니었다면 좁은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기후위기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인해 매주 사람들과 연대하고, 또 주변에 조금이나마 기후위기를 알리고자 글을 쓰게 되었으니, 현실적으로 나와 접촉은 없을지라도 지구에 살고 있는 많은 존재들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더 많아진 것이다.

역경과 깨달음

모든 종교에서 고난과 고통은 중요한 주제다. 부처도 깨달음을 얻은 후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설하였는데, 그 첫 번째가 고통의 진리였다. 그는 고통이 있다는 진리로 시작하여, 고통의 원인, 고통의 소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가르쳤다. 이는 고통과 깨달음이 떼려야 뗄 수 없음을 보여준다. 고통이 없다면 깨달음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부처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기후위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후위기가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와,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에 대해 울부짖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또한 지구가 온실가스에도 끄떡 없이 항상 멀쩡한 모습이라면 우리의 삶에도 브레이크가 없을 것이다.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집과 차, 편리하고 즐거운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고 그것만이 전부라는 사고에서 빠져나오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류는 성장과 더하기의 노선에서 벗어나, 기후위기가 제시하는 탈성장과 빼기의 방향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서게 되었다.

덧셈에서 뺄셈으로

기후위기가 제시하는 삶의 방향성은 마치 수행의 과정과 유사하다. 처음 사람들은 삶의 여러 가지 문제에 지쳐 영성, 종교, 수행에 귀의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더 얻거나 이뤄야 할지를 찾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그다지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언가를 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내 안에 행복이 있음을 아는 것으로, 다만 그 행복을 가리고 있는 것을 정화하거나 녹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외적인 조건에서 행복을 찾기보다 내면의 행복과 기쁨을 발견하는 자세로 이행하게 된다. 물론 이것이 외적인 조건을 모두 무시하거나, 내적인 세계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극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수행이 삶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자발적 가난이자, 의도적인 불편함이다. 즉, 우리는 삶을 영위할 물질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지만, 이미 우리는 충분히 소유하고 있고 더 이상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빈자의 성자’로 알려진 프란체스코 교황은 교황의 직위에 부여된 모든 호화로움을 내려놓고, 검소하고 청빈한 삶을 사는 것으로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그는 해외순방 시에도 방탄차가 아닌 해당 국가의 소형차를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기후위기와 환경문제에 관한 관심을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실제 바티칸을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타심과 행복

수행이 삶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자발적 가난이자, 의도적인 불편함이다. 즉, 우리는 삶을 영위할 물질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지만, 이미 우리는 충분히 소유하고 있고 더 이상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출처 : Wouter de Jong
수행이 삶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자발적 가난이자, 의도적인 불편함이다. 즉, 우리는 삶을 영위할 물질적인 것들을 필요로 하지만, 이미 우리는 충분히 소유하고 있고 더 이상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by Wouter de Jong

부처는 고통의 원인을 집착이라고 보았는데, 전 생애에 걸쳐 우리가 가장 집착하는 대상은 우리 자신이다. 자신에 대한 자만심이나 비관 모두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볼 수 있으며, 행복한 사람일수록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보다 자유롭다. 자신에 대한 집착은 경쟁과 소유로 향하게 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공존과 나눔으로 옮겨가도록 한다. 위대한 성인들은 자신에 대한 관심이 아닌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살아갔고, 자신과 남을 같게 혹은 남을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티벳불교 전통에서는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습관화된 마음을 길들이기 위해 남과 나를 바꾸는 통렌(tong len)수행을 한다. 이것은 심상화를 통해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내가 받아들이고, 나에게 있는 모든 좋은 것을 타인에게 돌려주는 수행이다. 즉, 좋은 것을 가져야 하고, 나쁜 것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가야한다는 우리의 일반적인 마음과는 정반대되는 수련법이다. 이를 통해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괴로움을 줄일 수 있고, 또한 타인의 고통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강한 마음을 갖게 된다. 마치 우리 몸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강도 놓은 훈련을 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도 역경과 어려움으로 단련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샨티데바는 『입보살행론』에서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은 남들의 행복을 바라는 데서 오고,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자신만의 행복을 바라는 데서 온다네.”라고 말한다. 이번 주 토요일(9월 21일)은 전 세계 시민들이 유엔 기후회의에 앞서 거리로 나와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의 메시지를 전하는 날이다. 내가 더 많이 소유하고 성취해야 하며, 더 즐거워야 한다는 마음의 강박에서 잠시 벗어나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동참해보면 어떨까? 우리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들을 위해 마음을 내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우리는 행복에 가까이 다가간다. 내 마음이 넉넉하게 나눌 수 있고 따뜻할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하지 않은가?

문윤형

생태와 영성 그리고 마음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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