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리퀴드폴리탄(liquidpolitan) 트렌드 사용법 : 트렌디한 노마디즘,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부유하는 고객들의 지역방문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과 로컬크리에이터의 활동은 분명 유동하는 세계라는 트렌드의 반영이다. 하지만 정착해서 살고 있는 주민들은 안 보인다. 리퀴드폴리탄의 주체에 기업, 행정, 로컬크리에이터는 있는데 왜 주민은 없을까.

지역에 붙들린 정주생활의 갈라진 틈에서 새어나오는 흐름들이 다시 유동하는 세계를 불러냈다. 사진 출처: Aleh Tsikhanau

유동하는 세계가 돌아왔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 봄이 오는 것’과 같이 지역에 붙들린 정주생활의 갈라진 틈에서 새어나오는 흐름들이 다시 유동하는 세계를 불러냈다. 틈과 흐름들 중에서 유독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반나절 만에 부산과 제주 심지어 해외까지 갈 수 있는 교통수단과 아무 때나 자유롭게 연결될 수 있는 디지털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기술 발달, 이것 말고도 사람들의 역설적인 욕망과 새로 개척되는 로컬시장이 지금 등장하는 유동 세계의 배경이 된다. 역시나 다른 트렌드처럼 그 속도 복잡하다. 그럼에도 새로운 문명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도시에서 생태문명을 상징하는 농촌(지역)으로 미끄러지듯 횡단하는 역설적 욕망에 기대를 건다.

먼저 유동하는 세계를 눈치 챈 이들도 새로운 문명을 기다리는 자들이었다. 김지하 시인은 자끄 아딸리(Jacques Attali)나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노마디즘(nomadism)을 반기며 신유목문화의 등장을 예고했다. 그러면서 정착성에 대비되는 노마디즘만으로는 미래 비전을 꿈꿀 수 없고 정착성이 고려되지 않은 노마디즘은 피로감과 공허함을 불러올 뿐이라며 정착과 노마디즘의 이중적 교합을 제시했다. 바로 유목 이동성에 중심을 두면서 숨겨진 차원에서는 농촌이나 지역에 뿌리를 두는 정착적 유목주의(sedentary nomadism)다.

정착적유목주의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 왜냐하면 소비주의에서 출발해 유동하는 세계를 주장하는 ‘리퀴드폴리탄(liquidpolitan)1’이나 지방소멸에 적응하는 전략으로 정주인구보다 확장된 의미로 등장한 ‘관계인구(생활인구)’는 모두 정착과 대항되는 트렌디한 노마디즘을 말하는 데 그칠 뿐, 정착과 이중적 교합까지 더 나아가지는 못한다.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 《삼체》(2024)의 윌 다우닝처럼 우주의 미아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지 않은가.

현장으로 돌아와서 인구감소와 고령화, 기후위기, 산업 쇠락 등의 복잡한 이유가 얽혀 축소도시를 경험하고 있는 지역이 아직도 인구증가를 계획하는 건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우스운 일이 되었다. (인구증가로 성장을 계획하는 이들은 축소도시를 인정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우리보다 빠르게 출생아수가 줄고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은 지방창생전략으로 창조적 인구감소를 계획하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걸 인정하면서 전통적인 인구개념을 재구성한 관계인구로 지역 활력을 계획하겠다는 것이다.

리퀴드폴리탄의 결과도 그동안 경험했던 주민 없는 지역활성화처럼 이해관계에 따르는 갈등을 촉발하면서 오히려 지역에 피로감과 열패감만을 줄 수 있다. 사진: Tim Mossholder

주소지를 지역에 두는 정주인구와 다르게 일, 교육, 치유, 봉사, 오락 등 지역과 관계를 갖고 정기적으로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관계인구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생활인구라는 개념을 쓰고 있다.) 관계인구는 늘어나고 있는 유동인구를 배경으로 지역 활력을 계획하는 정책적 대상이며 방법이다. 이 정책과 방법에는 트렌드 분석에 따른 욕구발견과 욕구해소라는 기업적방식이 작동한다.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나를 발현(發顯; apparition)하고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 부유하는(floating) 고객 욕구 해소를 위해 적극적인 브랜딩(branding) 전략이 기획된다. 플로팅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문화도시가 시작된 1980년대 유럽의 도시들처럼 제조업 기반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지역들이 문화로 지역이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적극적으로 문화와 관광을 신성장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렇게 고객과 도시들의 욕망을 소비적 관점으로 콘셉트화 것이 2024년 트렌드로 소개된 리퀴드폴리탄이다.

리퀴드폴리탄은 정주와 집중 등 근대적 특징과 규격화된 하드웨어 방식을 지양하고 창의적인 주체를(기업가/기획자/행정) 유연하게 잇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잇기는 지역 내부에 존재하는 유·무형의 자원과 외부의 아이디어를 포괄한다. 이러면서 비선형의 방식과도 같은 다양화·다핵화를 특징으로 하는 택티컬 액티비즘(tactical activism)으로 대규모 개발보다는 작은 실험을 통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성장해 나가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전과 다른 도시성장 방법이다. 그래서 소셜 디벨로퍼(social developer)와 로컬크리에이터(local creator)들의 활동으로 플로팅하는 고객들을 도시로 유입하는 양양 서피비치, 부산 알티비피얼라이언스, 인천 개항로 등의 시그니처 스토어(signature store)를 성공적인 사례로 들고 있다.

듀얼 하우스나 듀얼 라이프는 여러 가지 이유로 도시와 농촌(도시)을 이으며 느슨한 정착성을 가진 이중적 생활이다. 사진: Dane Deaner

여기서 앞에 주의를 주었던 정주와 유목의 상호교합적인 정착적 유목주의가 등장해야 한다. 부유하는 고객들의 지역방문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과 로컬크리에이터의 활동은 분명 유동하는 세계라는 트렌드의 반영이다. 하지만 정착해서 살고 있는 주민들은 안 보인다. 리퀴드폴리탄의 주체에 기업, 행정, 로컬크리에이터는 있는데 왜 주민은 없을까. 네트워크를 작동하는 주체이자 대상이기도 한 양면성을 가진 주민의 성격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리퀴드폴리탄의 결과도 그동안 경험했던 주민 없는 지역활성화처럼 이해관계에 따르는 갈등을 촉발하면서 오히려 지역에 피로감과 열패감만을 줄 수 있다. 지금 반짝하는 지역의 힙한 명소들도 주민참여 없이는 돈이 되는 곳에 투자를 하고 수익을 만들어내는 신자유시장에 휘둘리며 지역공동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성격만 제조업에서 문화관광사업으로 바뀌었고 주체만 대기업에서 소셜디벨로퍼와 로컬크리에이터로 바뀌었을 뿐이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은 그 결과로 생겨난 말이다. 그래서 한 해 약300만 명이 방문하고 전국 지자체의 관심을 받으며 ‘백종원 효과’라 불리는 예산시장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불안하다. 백종원씨가 시작한 예산시장 재구성이 런던 코인 스트리트(Coin Street)의 코인스트리트빌더(Coin Street Community Builders:CSCB)와 달스턴(Dalston)의 해크니개발협동조합(Hackney Cooperative Developments:HCD)처럼 주민이 참여하는 공동사업체로 발전해 예산시장지역을 운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유동하는 세계를 즐기고 있는 도시와 도시, 도시와 농촌을 이동하며 생활하는 듀얼 하우스(dual house)나 듀얼 라이프(dual life) 트렌드에 더 주목하게 된다. 듀얼 하우스나 듀얼 라이프는 편리, 자연, 문화, 생업, 취향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도시와 농촌(도시)을 이으며 느슨한 정착성을 가진 이중적 생활이다. 이 사이에서 생성되는 장소애(topophilia)가 지역을 존중하고, 지역생태계를 지지하고, 지역에 기대어 더불어 살아가는 적정한 관계 돌봄을 갖게 한다.

유동하는 세계가 돌아온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다음에 그래서 어떤 지역을 디자인할 것인가?’에 해답을 구성하는 일이다.


  1. 편집자 주: 리퀴드폴리탄은 지역을 액체처럼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인 형태로 바라보는 개념으로, 인구 감소와 광역교통이 발달하는 상황에서 지역이 하나의 고정된 공간이 아닌 유연한 모습을 갖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가 공저한 『트렌드코리아 2024』(미래의창)에서 2024년의 10대 소비트렌드 중 하나로 꼽혔다.

이무열

지역브랜딩 디자이너. (사)밝은마을_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 대표로 달에 누워 구름을 보는 삶을 꿈꾼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책을 내고는 근대산업문명이 일으킨 기후변화와 불평등시대에 ‘지역이 답이다’라는 생각으로 지역발명을 위한 연구와 실천을 하며 곧 지역브랜딩학교 ‘윤슬’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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