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 출간] 녹색정치의 핵심 명제, 생태적 지혜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커먼즈, 탈성장, 추첨제 민주주의, 순환 경제, 적정 기술, 도시 농업, 공동체 밥상, 비거니즘 등 녹색 정치가 소중히 키워 온 무수한 ‘개념어’들을 담고 있다. 또한 생태적지혜연구소가 그간 키워낸 집단지성의 목록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호혜와 공생의 감각을 되살리고, 낡은 자본주의 체제 바깥으로의 탈주를 도모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강력한 나침반이자 등대가 될 것이다.

생태적지혜연구소 기획,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알렙, 2026)

‘생태적 지혜’란 1979년 서독의 녹색당이 처음 제창한 ‘녹색 정치의 4대 핵심 가치(four pillars)’ 중 하나입니다. 2001년 호주에서 세계녹색당(Global Greens)이 창설되면서 ‘4대 핵심 가치’는 ‘6대 원칙’으로 확장되었고, 생태적 지혜는 그 하나로 채택되어 국제 녹색 정치의 근본 명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생명의 연결망이 끊어지고 ‘여섯 번째 대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이 출간된다는 사실에 들뜬 마음으로 원고를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녹색당 당원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강령 전문의 주해서를 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글은 녹색당 강령의 기초에 깊이 참여하신 고(故) 신승철 님을 매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녹색당’이라는 작은 씨앗”(녹색당 강령 전문)

녹색당 강령의 이 첫 문장은 모든 것을 하나의 중심 원리나 기원에서 파생되는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질서로 이해하려는 ‘나무-뿌리 사유’를 벗어나, 녹색당 자신이 ‘차이’를 발생하는 ‘생성(becoming)의 동력’으로서의 ‘특이성’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영두는 그의 글 「특이성」에서 “마치 씨앗 안에 거대한 나무로 자랄 가능성이 담겼듯, 특이성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무한한 방식으로 발현될 가능성 그 자체를 품는다”(512쪽)고 하면서 “개별적인 주체나 사물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이전의 잠재적인 상태이며, 아직 분화되지 않았지만,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나 의미를 발생시킬 수 있는 특별한 지점”(511쪽)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씨앗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미래진행형」(김진희)의 삶의 태도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신승철은 강령의 이 첫 문장에 대해 “어떤 완성된 모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발아하고 창안하며 늘 씨앗처럼 잠재성과 깊이를 가진 상태” 속에서 녹색당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내고 자신의 삶을 재창안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녹색당 강령 전문)

우리 안에서 출발하는 거대한 혁명.
사진출처: Couleur

김신윤주는 「떡갈나무 혁명」에서 “봄이 오면 다람쥐가 망각한 먹이 창고에서 새순이 움트듯, 무수한 도토리는 기계적 무의식의 흐름에서, 자연의 책략에서 발아의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싹을 틔운다”(611쪽)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여기-가까이’의 국지적인 삶의 자리에서, 가장 미세한 정동의 흐름에서 시작되는 분자들의 혁명이 우리의 연결망을 따라 퍼질 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거대한 떡갈나무 숲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것”(611-612쪽)입니다. 이것은 혁명이 수동적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순간적인 기회에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없다. 우리는 더욱 강건하게 스며들고 움트고 발아하는 필사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은 생명 평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 자신의 생활양식이자 행동양식”(신승철)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처럼 의식적으로 세를 확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서 출발하는 ‘자기로부터의 혁명’을 통해서 점차 스며들 듯 주변과 가장자리의 변화를 촉발하는 방식으로 온 산을 뒤덮는 떡갈나무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별의 생명을 지키는 지구의 아이들…… 녹색 전환의 씨앗을 심는 농부”(녹색당 강령 전문)

신승철·이윤경은 「스튜어드십」에서 이것을 “양육자, 관리자, 집사로서의 마인드를 갖는 것”(292쪽)이라 말합니다. “생명은 ‘자라면서 동시에 키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발아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독려하고 양육하며 부추기는 실천”(293쪽), 즉 ‘적극적인 돌봄과 살림’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유기농업에 종사하는 농부의 실천과 같습니다. 양육과 섬김, 돌봄의 과정에서 “생명과 자연은 더욱 풍요롭게 증식하고 결실을 맺으며, 인간 역시 그 풍요 속에서 함께 살아”(294쪽)갑니다. 인간은 ‘지구의 아이들’이자 씨앗을 심는 부드러운 농부의 마음으로 “자연의 시중꾼, 대지의 양육자, 생명의 대리인으로서 끊임없이 생성하고 구성되어야”(신승철) 합니다.

세 가지 생태학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출처: torsmedberg

마지막으로 장윤석은 「세 가지 생태학」에서 이분법을 넘어선 삼분법의 힘을 강조하고, 가타리와 신승철의 ‘자연 생태, 사회 생태, 마음 생태’의 렌즈를 통해 한국의 ‘전환 운동’의 흐름을 ‘녹색 전환,’ ‘기후 정의,’ ‘생명 평화’의 세 흐름과 연결시켜 설명합니다. “세 가지 생태학이라는 삼분법의 목적은 구분이지 분리가 아니”(351쪽)며 “이 세 가지 생태가 서로 다르지만, 불화하거나 상충하지 않고, 설령 그러하더라도 연결된 셋이자 하나”(351쪽)인 것처럼, 장윤석은 전환의 배치가 녹색 전환, 기후 정의, 생명 평화라는 세 축의 불화와 상충이 아닌 ‘조화로운 황금비율’에 달렸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심화와 더불어, 기후 녹색 운동이 양적·질적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그 균열 또한 깊고 넓어지고 있습니다. 사회 생태의 ‘체제 전환 운동’과 마음 생태의 ‘생명 평화 운동’ 사이에서, 그 거리는 상당합니다. 지리산-월정사와 태안-창원 사이의 거리는 단지 지리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개념적으로는 ‘문명 전환’이 ‘체제 전환’을 포용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의 실천이 그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장윤석이 희망하는 ‘조화로운 황금 비율’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결국 ‘주체성 생산’의 관점에 서야지만 이 세 흐름을 연결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근대적 자아를 넘어 모든 존재가 다종다양하게 얽혀 있는 관계적 존재임을 깨닫고, 이 깨달음을 “웃음과 낙관” 그리고 “협동과 연대”(녹색당 강령 전문)를 가지고 활력 있는 생명 에너지로 전환 할 수 있는 “뜻과 지혜와 아이디어를 갖고 그 일을 해낼 사람” (347쪽)을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입니다. ‘되기(becoming)’, 생성의 과정은 영성에 기초하지 않으면 위태롭습니다. 분리 정립을 통해 자기 존재의 가치가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포용과 협동 속에서 돌봄, 살림, 모심의 ‘정동’을 함께 만들어갈 존재가 필요합니다.

『생태적 지혜 개념어 사전』은 녹색 정치가 소중히 키워 온 무수한 ‘개념어’들을 담고 있습니다. 커먼즈, 탈성장, 추첨제 민주주의, 순환 경제, 적정 기술, 도시 농업, 공동체 밥상, 비거니즘 등의 사회 생태 전략들은 이미 녹색 정치의 주요 요소입니다. 또한 이 책은 그동안 생태적지혜연구소가 천착해온 집단지성의 목록을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호혜와 공생의 감각을 되살리고, 낡은 자본주의 체제 바깥으로의 탈주를 도모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강력한 나침반이자 등대가 될 것입니다. 지구라는 유한한 행성에서 뭇 생명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갈 ‘미래진행형’의 세상을 열망하는 모든 시민들, 그리고 정의로운 전환을 향해 현장에서 발로 뛰는 활동가와 연구자들에게 이 아름다운 사전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김찬휘(녹색당 공동대표)

김찬휘

“다정함을 정치적 가치로 긍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전복적이다”는 페트라 켈리의 말을 믿으며 겸손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자유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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