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실천의 가치

탄소배출량은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구 평균 기온 또한 매년 이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절망’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자신의 역할을 망각하며, 작은 실천조차 주저하게 된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국가와 기업이 발표하는 대규모 탄소중립 계획에 익숙하다. 2030년까지 몇 퍼센트 감축, 2050년까지 완전 탄소중립과 같은 선언들은 거대하고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개인과 지역사회가 체감할 수 있는 실천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전 외곽의 작은 농촌 마을인 미호동의 사례는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미호동 주민들은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자신들의 삶과 마을에 맞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재생에너지를 도입하고,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강화하며, 탄소중립을 생활화한 이들의 노력은 우리가 거시적 담론에만 매몰되지 않고, 현재 가능한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한다. 김종철의 『녹색평론』에서 제기된 질문,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를 다시 떠올리게 하며, 이 책 『에너지전환마을 발명록』(2024)은 한 마을이 이루어낸 실천적 변화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미호동에서 시작된 변화
미호동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작은 마을의 실험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이 마을의 중심에는 상수원 보호구역과 개발제한구역이라는 환경적 제약 속에서 재생에너지를 도입하고 자립형 경제 모델을 구축한 노력이 있다.

먼저, 미호동 주민들은 태양광 발전 설비를 적극 도입해 마을 전체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였다. 가구의 70% 이상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였으며, 이를 통해 총 329kW의 발전 용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특히, 임대아파트 옥상을 활용한 공유 햇빛발전소 구축 사례는 에너지 복지와 공동체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발전소에서 발생한 수익은 주민들에게 환원되었고, 이를 통해 주민들은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 자리 잡았다.
또한, 미호동의 넷제로공판장은 환경과 경제를 결합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이곳에서는 비닐 대신 신문지나 감잎을 포장재로 사용하고, 친환경 농산물과 지역에서 생산된 천연 제품을 판매한다. 공판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를 넘어, 주민들이 서로 신뢰를 쌓고 공동체를 강화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이 점에서 경제적 효과를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특히 주목할 만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RE100 전통주 프로젝트다. 미호동 주민들은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활용해 지역 쌀로 만든 전통주를 상품화하였다. 드라이한 맛과 전통적인 풍미를 자랑하며, 그 의미만큼이나 맛도 뛰어나 성공을 거두었다. 이 사례는 단순히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연결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사람 중심의 에너지 전환
미호동의 에너지 전환이 단순히 기술적 접근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은 이 마을이 가진 또 하나의 특별한 매력이다. 처음에는 외지인들의 등장이 미덥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대덕구청, 신성이앤에스, 해유, 대전충남녹색연합 등 다양한 주체와 신뢰를 쌓는 데 성공했다. 덴마크의 마을 사업에서 ‘커피 타임’이 중요했듯, 미호동에서도 맥주를 마시고 도토리묵을 먹으며 사람들은 서로 마음을 여는 데 성공한 것이다.
평균 연령 70대의 여성 활동가 그룹인 솔라시스터즈는 미호동의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주체다. 이들은 태양광 발전 설비를 점검하고, 마을 투어를 안내하며, 에너지 관련 앱 사용법을 주민들에게 교육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단순히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령 주민들에게 새로운 역할과 자긍심을 부여한 점에서 솔라시스터즈의 활동은 사회적, 심리적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또한, 마을 주민들은 공판장에서 농산물을 판매하며 제로웨이스트 문화를 실천하거나, 에너지마을학교를 통해 탄소중립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주민들이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은 기술과 정책 중심의 기후위기 대응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으로, 지역 사회의 역량 강화와 자립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에너지마을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은 주민들이 기후위기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가게 하는 데 기여했다. 70대 주민들의 대화 속에서 탄소배출, 넷제로, 제로웨이스트, RE100 등이 술술 나오게 되었다.
다양한 아이디어
책에서는 미호동의 이야기가 해유를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모여 함께 써 내려갔다고 반복해서 강조된다. 처음 신성이앤에스 이사장과 만났을 때는 공판장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났으나, 결국 1층에는 공판장이, 2층에는 도서관이 생겼다는 식이다. 마을의 목표를 정해놓고 착착 실현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단련된 마을 사람들은 이제 청년들이 더 많이 함께하기를 기대하고, 예술적인 프로그램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또한, 개인적으로 패시브하우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부 주민들은 독립 전력망이 마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래를 디스토피아로 상상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낄 때일 것이다. 시스템의 부속처럼 자신을 생각하는 개인이 시스템의 붕괴를 느낄 때, 자연스럽게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래를 공부하고 에너지 공동체를 만드는 수련의 과정을 겪고 나면, 지역은 자립과 자치의 네트워크가 된다. 철학자 한병철은 자유의 독일어 어원이 ‘친구들 사이에 있음’이라고 말하며, 집단에 (구)속되어 있을 때 인간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을이 있고 자신이 그곳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낄 때, 개인은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디어가 머릿속에서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성장하는 주민들, 선진 노동자(?)

책에서는 변화하는 마을 주민들의 진술이 반복적으로 기술된다. 학습된 경험 때문이었을까? 많은 주민들은 처음 활동가들을 보고 ‘단물만 빼 먹고’ 사진 몇 장 찍고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젊은 것들이 지랄’한다고 생각하거나 담배를 팔지 않는 것도 불만이었고 ‘이상한 사람들이 홀라당 빼’간다고 생각했다. 일회용품도 못쓰게 하고. 그래서 많은 마을 주민들은 장터가 열린다고 해도 “내가 가도 되나?”고 생각했다. 마을 분들 모아 놓고 ‘친교 활동’을 했는데 대단히 불편해하셨다.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판 벌리는 그저 뻔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해유와 두 통장님은 그들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고 함께 떡 해 먹고 맥주 마시며 친해지고 기다렸다. 공판장이나 마을 학교 참여하시라 말 걸어 주었고 완판의 경험, 견학 다니며 배우고 기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눈뜨고 물, 식량, 에너지 다 있는 자신이 사는 미호동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눈뜨며 차츰차츰 변해 갔다. 결국 장례식이나 결혼식(예정) 때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관계로 깊어져 갔다.
80년대의 ‘선진노동자’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당시 대한민국의 산업은 중화학 공업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대규모 사업장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에 따라 노동운동의 규모와 성격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현실을 직시하며(리얼리즘), 그 현실을 더 나은 세상으로 발전시킬 주체로서의 선진노동자 이론이 등장했던 때였다.
이 오래된 단어가 문득 떠오른 것은, 지금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을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불, 체코의 홍수, 사막에 내리는 눈, 그리고 동토가 녹아내리는 기후위기의 현실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이끌어갈 개인으로 성숙해야 하지 않을까? 미호동의 주민들이 서서히 변화하는 그 놀라운 모습을 보며, 이 마을이 거대한 변화의 인큐베이터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가능한 최선의 실천
미호동 사례는 현재 가능한 실천적 변화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이 마을의 노력은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기술과 정책에 의존하기보다,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주체가 되어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환경적 실천을 넘어, 공동체와 개인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준다.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시작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우리의 실천은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미호동의 이야기는 이를 증명한다.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이루는 것처럼, 미호동의 실험은 거시적 담론을 구체적인 현실로 변환시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미호동의 사례는 기후위기 시대에 지역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며, ‘작지만 강력한 변화’라는 교훈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