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댁이야기] ⑧ 코삐뚤이 신랑

처녀적 보성댁은 수녀가 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수녀가 되기를 포기하고 어머니를 도우며 산다. 중매가 들어와, 친구들보다 늦은 나이에 자신처럼 천주교 신자인 남편과 혼인을 한다.

열심한 카톨릭 신자였던 보성댁은 수녀가 되고 싶어 했다. 수녀원에 들어가 하느님께 일생을 바치며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했다. 그러나 보성댁이 열일곱 살일 때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 꿈은 무산되어 버렸다.

어려서 열병을 앓은 후 바보가 되어 버린 큰동생, 이제 갓 돌을 넘긴 막내동생을 가난한 어머니에게만 맡겨 두고 집을 떠날 수 없었다. 가난한 살림이다 보니 어떻게든 입을 줄여야 해서 둘째 동생은 열 살을 갓 넘겼을 때 남의 집에 아기보개로 보내졌다. 어머니에게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막내동생을 데리고 밥벌이를 하시라고 할 수가 없었다. 수녀가 되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며 장사를 다니는 어머니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살피는 동안 보성댁은 열아홉 살의 큰애기가 되었다. 보성댁의 친구들은 모두 시집을 가 새댁이 되어 살면서 아이들 낳은 사람도 있었다. 보성댁의 어머니는 사는 게 만만치 않았지만 스물을 바라보는 딸을 마냥 데리고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딸의 혼처를 알아보고 다녔다.

“우리 안나를 인자 시집보내얄 건데, 어디로 보내야 할랑고……”
“잉? 인자 안나 시집 보내게? 갸 시집 보내고 어찌케 살라고?”

같이 장사를 다니는 율포댁이 눈이 똥그래지며 물었다.

“글긴 한디, 다 큰 가시나를 여워야지 언제까지 데꼬 살 것이요.”
“그러네 이. 나가 한 번 알아 볼까라?”
“이, 그라믄 좋제. 근디 알다시피 우리는 가진 게 없어서 해줄 것이 없응께, 그걸 생각하고 찾아봐 주씨요. 이”

어느 날 낯선 아주머니가 한 명 집을 찾아 들어왔다.

“예말이오. 여그가 순천떡 집이요?”

저녁을 준비하던 안나(보성댁)가 손님을 맞았다.

“누구신디……, 엄니 아직 안 오싰는디요.”
“이, 요 큰애기가 그 큰 딸인갑다. 나가 자네 시집보내 줄라고 왔는디 말이시.”
“예? 저요? 그, 그것은 엄니랑 얘기해야 쓰껏인디요.”

안나는 씻던 쌀을 들고 부엌에 들어가 서둘러 밥을 앉혔다.

“이, 근디 엄니는 언제 오신당가?”
“곧 오실 때 되었어요. 쫌만 기달려 보씨요.”

그러나 장사를 마치고 집에 온 어머니는 집에 온 중매쟁이를 돌려보냈다.

“여그 보성 시장에서 고깃집 하는 집 아들인디, 인자 시물둘이어라.”
“잉? 그 집이믄 성당에 안 댕기는 집인디. 안 되겄소. 우리 딸은 성당 댕기는 사람이랑 혼인을 시켜야 헌디. 그거시 우리 교회법이라서 안 믿는 사람한티는 못 보내요. 이라고 찾아 왔는디 미안하요 이.”
“옴마, 큰애기가 이쁘고 얌전해서 쓰겄드만, 근다믄 할 수 없제요. 계시씨요 이”

수녀가 될 수 없었던 보성댁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안나의 혼처를 찾던 중, 어느 날 순천에서 사는 안나의 대모 헬레나씨가 찾아 왔다.

“안나야, 잘 살았냐.”
“옴마, 대모님 오셌소. 어찌 어려운 걸음 하셨다요.”

오랜만에 만나는 대모를 안나는 반갑게 맞이하였다. 힘든 살림 속에서 자신을 아껴주는 대모의 방문이 그지없이 반가웠다.

신부는 신랑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코가 삐뚫어졌다는 소문에 신경이 쓰인다. 사진출처 : pxhere
신부는 신랑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코가 삐뚫어졌다는 소문에 신경이 쓰인다.
사진출처 : pxhere

“잉, 잘 있었냐? 느그 엄니는? 장사허러 나가싰냐?”
“아니요, 오늘은 장사 쉬고 뒷집에 잠깐 가셨어요. 모시고 오까요?”
“이, 별로 바쁜 일 하시는 거 아니믄 좀 오시라 해라.”
“예, 금방 댕게 올게요.”

뒷집 아주머니와 안나의 혼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어머니는 순천 살 때 사이좋게 살았던 헬레나씨의 방문 소식에 깜짝 놀라며 서둘러 집으로 왔다.

“옴마, 헬레나씨. 어찌 어려운 걸음 하셌소. 잘 지내셌소.”
“잉 예노파씨도 잘 지내셌소?”
“뭐 그냥저냥 지내고 있제. 근디 먼 일이 있다요?”
“이 다른 게 아니고 나가 안나 혼처를 하나 알아 왔소.”
“이? 우리 안나 혼처? 안 그래도 인자 저거 여워야겄다 글고 있었는디, 신자요?”
“이, 신자제. 근디 총각이 나이가 좀 많아. 스물여섯이여.”
“이, 쫌 많소 이, 왜 그러고 나이 먹도록 장개를 안 갔다요?”
“이, 신자하고 혼인할라고 헌디, 신자 처녀가 통 없어가꼬 얼릉 색시깜을 못 찾은 모양이여.”
“이, 그러기도 허겄소. 어디 산다요?”
“잉, 해룡면 알제? 거기에 여수머리라고 바닷가 동네 살아. 농사 짓고 갯것하고 사는 집이여.”
“이, 총각이 스물여섯이믄 맘이 좀 바쁘기는 허겄소.”
“이, 근디 인물도 훤하고 사람이 신심이 깊고 고진이여.”
“헬레나씨가 그러고 말항게 그런 사람이겄제. 근디 아다시피 우리가 근근히 먹고 사는 형편이라 시집갈 때 암껏도 못 해준께 그래도 괜찮으믄 하자 합시다.”
“그것이사 나가 먼저 운을 띄워 놨응게 괜찮을 것이네.”
“그라믄 다행이제. 그나저나 그것 땜에 이 먼 길을 오고 헬레나씨가 애썼소.”
“아이고 우리 안나가 얌전하고 착하고 신앙심도 깊고 긍께 나가 왔제. 중매 잘못 섰다가 뺨 석 대 맞으믄 안 됭께”
“그나저나 늦었응께 주무시고 가시씨요. 안나야 언능 저녁 차레라.”
“네 엄니.”

스물여섯 노총각과의 혼담

안나는 마음이 이상했다. 수녀가 되는 걸 포기했으니 어디로든 시집을 가기는 가야겠지만 엄마랑 어린 동생들을 두고 내가 가도 되는 걸까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안 간다고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누구나 그렇게들 살았으니까. 어머니가 사돈될 분들하고 만나고 온다고 기차를 타고 순천에 가자 안나는 마음이 간질간질한 느낌이었다. 혼인해서 남자하고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집안 곳곳을 쓸고 닦고 걸레를 빨고 이미 닦은 마루를 또 닦았다. 워낙 좁은 집이라 금방 끝나는 청소였다. 어머니는 순천에서 보성으로 오는 막차를 타고 느지막이 집에 오셨다. 안나는 많은 것이 궁금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사돈될 양반들도 전부 신자드라. 호두에 공소가 있대. 너 거기 시집가믄 주일 미사는 매번 참예는 못 해도 공소 예절에 나가믄 되겄드라. 형 하나 있고 누나가 둘 있고 막내 아들이란다. 시어매 될 사람 말하는 거 봉께 막둥이라고 되게 싸고 키운 거 같은디, 뭐 괜찮겄제. 돈이 없어서 몸뚱이만 보낸당께 괜찮다 글드라. 아들이 노총각이 되부러서 맘이 급했는가비여. 설 쇠고 양력으로 이월에 하기로 했다. 순천 성당에서 흘 거잉게 그리 알고 있어라.”

혼인이 착착 진행되어 속도가 붙자 겁이 덜컹 나고 나 시집 간 뒤에 울 엄니는 어찌 살까 걱정이 커졌다.

“엄니, 나 그냥 시집 안 가믄 안 될까요? 엄니랑 안자랑 아가다 두고 시집갈라고 헝게 맘이 안 놓이요.”
“먼 소리냐. 나사 어찌케든 살아갈 것잉게. 혼기 놓치면 나중에 너므 첩살이 배끼 자리가 안 난단 말이다. 그런다고 널 노처녀로 늙게 할 수도 없는 거 아니냐.”
“그래도…….”
“아므 소리 말어. 엄마가 가랄 때 가는 거여.”

며칠이 지나자 중매를 섰던 대모가 찾아 왔다. 들고 있던 보퉁이를 내밀며 말했다.

“안나야, 이거 느그 시댁될 집에서 주드라. 니가 암껏도 못 갖고 간다고 항께 이걸로 니 옷 지어 입고 오라고 하드라.”

대모가 내민 보퉁이에는 무명이 여섯 끝 들어 있었다. 안나는 치마 저고리 한 벌을 짓고 남은 천으로 버선 여나므 개를 만들었다. 시집가기 전 마지막 설날이 돌아왔다. 순천에 사는 작은 아버지댁에서 사촌 오빠인 갑주가 세배를 하러 왔다. 안나보다 석달 먼저 태어나서 오빠지 서로 너나들이 하던 사이었다. 어머니에게 세배를 하고 들고 온 보따리에서 떡과 과일을 꺼내 어머니에게 건네고 안나를 보며 빙글빙글 웃었다. 아들이 없이 딸만 넷인 안나네 집과 달리 작은 아버지 댁은 아들이 다섯이고 딸이 둘 있었다. 거기다 살림이 넉넉하여 큰아들은 대학 공부까지 시키고 있었다. 지난 봄에 교육대학에 입학한 대학생이었다. 평소에도 안나를 보면 짓궂은 소리를 잘 하던 갑주였다.

“안나야, 너 시집 간다며?”
“어? 어 으응,”

안나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어쩐지 민망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신랑 얼굴을 처음보다

“근디 너 신랑 얼굴도 안 보고 시집 간담서.”
“어른들이 알아서 하시는 겅께…….”
“근다고 그냥 시집가야? 나가 들어봉께 느그 신랑될 총각이 코가 삐뚤어졌다드라. 코삐뚤이하고 어찌 살래?”

정색을 하고 말하는 갑주를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평소에 안나를 놀릴 때와는 달리 빙글빙글 웃지 않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진짜 신랑감이 코가 삐뚤어졌나보다 생각했다. 그날부터 안나는 걱정이 되었다. 신랑이 코가 삐뚤어졌다고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어쩌지? 그래서 안나는 저녁으로 자기 전에 기도를 했다. 하느님, 신랑이 코가 삐뚤어졌어도 나가 미워하지 않고 살게 해주세요.

결혼식이 다 끝나고 신랑을 얼굴을 확인하고, 잘 생겼다며 안도해야 했던 여성의 고단한 삶. 
사진출처 : Internet Archive Book Images
결혼식이 다 끝나고 신랑을 얼굴을 확인하고, 잘 생겼다며 안도해야 했던 여성의 고단한 삶.
사진출처 : Internet Archive Book Images

설을 지나고 혼례식 날이 다가오자 안나네 가족은 순천으로 향했다. 작은집이 성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고 방이 많아 안나네 가족이 모두 작은집에서 자고 다음날 혼례식을 하게 되었다. 안나는 손수 바느질한 흰 무명옷을 입고 성당으로 향했다. 수녀님이 꽃장식이 달린 하얀 면사포를 안나에게 씌어 주었다. 성당에서 하는 혼배 미사라 신랑은 뒷자락이 길게 늘어진 연미복을 입고 참석했다. 교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혼배성사를 하고 미사를 진행하는 동안 안나는 신랑 얼굴을 보고 싶은 걸 애써 참았다.

혼례의 모든 절차가 끝나고 안나는 신랑의 가족들과 기차를 타고 자신이 살 집으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내리니 가마가 기다리고 있었다. 혼인이라는 걸 하니 생전 타보지 않던 가마를 다 타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가마에 올랐다. 가마를 타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했다. 앞뒤에서 가마를 드는 사람들의 기운이 차이가 있었는지 가마 뒤쪽이 먼저 들리며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넘어질 뻔해서 깜짝 놀라며 몸을 곧추 세웠다. 가마를 타고 30분 가량을 가는 동안 가마꾼들은 일부러 가마를 기울이기도 했고 가마 자체가 많이 출렁거려서 안나는 생전 처음 타는 가마가 불편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어귀에 개울이 흐르고 그 개울을 가로지른 징검다리를 건너갈 때에는 무섭기까지 했다. 집에 도착하자 시댁 식구들과 둘러앉아 서로 인사를 했다.

“이, 아가 여가 느그 시숙이고 동세 성님이다. 여그는 큰 씨눈디 이 동네 쩌그 우게 산다. 글고 여그는 작은 씨눈디 쩌그 험산 산다. 여그는……”

시어머니는 여러 사람을 소개해 줬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기억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거나 안나는 시어머니가 보낸 천으로 만든 버선을 꺼내 만들어온 버선 숫자만큼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걸로 예단을 대신했다. 다른 식구들의 표정도 별로였지만 험산 산다는 둘째 시누이는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얼마 후에 말 옮기기 좋아하는 동네 여인이 전해주는 말에 의하면 둘째 시누이는 자기 집에 가는 길에 동생 장가보내고 버신 한 켤레밖에 못 받았다고 울면서 집에 갔다나.

저녁을 먹은 후 식구들이 각자 흩어지고 남편과 단 둘이 남게 되자 안나는 비로소 남편의 얼굴을 찬찬히 볼 수 있었다. 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갑주의 말과 달리 남편의 코는 삐뚤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갑주 정도는 상대도 못해 볼 만큼 잘 생긴 모습이었다.

최은숙

35년의 교직생활을 명퇴로 마감하고 제 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올해 91세인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글로 남기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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