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문명에서 예술은 무엇을 할 것인가? – 연극 서사구조를 중심으로 ①

기계류가 생산 현장을 장악하고 인간은 할 일이 없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는 대중들에게 ‘연극의 서사구조’는 참여, 관람, 비평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생명력과 활력을 발휘할 기회를 준다. 특히 이미 예고되어 있는 극적인 것보다 더 극적인 전환의 역사적인 과정에 대해 미리 체험할 기회와 마음의 준비를 시킬 수 있는 것이 ‘연극’이라는 점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들어가며 : 전환의 필요성과 연극의 역할

2021년 8월, 〈국가간기후변화협의회,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이하 IPCC)〉의 「IPCC 6차 평가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이대로 탄소배출이 계속 이루어지면 2021~2040년 이후 1.5℃의 기온상승을 예견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1.5℃ 상승 이후 우리가 국면할 상황이다. 기후위기가 더 큰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양성피드백’에 의해 기후위기가 인류의 통제권으로부터 최종적으로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양성피드백 목록으로는 이산화탄소에 대한 해양수용력의 약화, 흰 땅이 검은 땅이 될 때 빛 흡수력 증가, 북극의 영구동토층에서의 메탄가스 방출 등 총 9개 항목에 달한다.

이를 기후위기에 있어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한다. 2019년 5월, 《호주국립기후복원센터》에서 발표한 『실존적인 기후 관련 안보 위기 – 시나리오적 접근』라는 보고서에서는 기후위기가 2030년 내로 티핑포인트에 진입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으며, 이를 IPCC 6차 평가보고서에서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며, 호주보고서의 지적대로 가용한 자원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가히 안보 위기에 준하는 기후위기 국가비상사태에 돌입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미 영국, 캐나다 등의 전 세계 16개국과 800여 개 지방정부에서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2030년까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려면 어떤 수준의 생활양식이 자리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 보고는 계속되고 있다. 7.3년 남아 있는 2030년까지 IMF 금융위기 사태 감축 규모의 두 배에 달하는 GDP 14%의 감축이 매년 이루어져 하며, 현재의 소비수준과 비교할 때 2030년까지 물질발자국이 1/30로 감축되어 1970년대 수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생활양식은 성장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파시즘으로 변모한 성장주의의 기저에는 자기만 아득바득 살겠다는 이기주의와 미래세대, 제3세계 민중, 기후난민에 대한 분리와 배제를 기반하고 있다. 증오, 폭력, 혐오, 차별, 분리 등의 방법론을 통해서 소수자와 이주민, 난민, 장애인 등을 배제하고 자신만 잘 살고자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사랑과 욕망, 정동(affect), 돌봄 등으로 이루어진 인류문명 전반에 대한 비아냥이자 문명 자체의 명백한 퇴조이며, 전환 필요성에 대한 긴급한 요청이다.

전환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있지만, 전환에 대한 대체적인 상은 능동적 전환으로서의 탈성장과 수동적 전환으로서의 저성장이 대비되고 있다. 탈성장의 경우에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과 적응을 차근차근 준비해서 문명이라는 비행기의 파국적인 경착륙의 상황을 피하고 연착륙으로 향하는 길이다. 반면 저성장의 경우에는 결핍, 부족, 전망상실 속에서 파국적 상황이 오기까지 성장을 계속하려고 아득바득하다가 현실의 변화 속에서 끌려다니는 과정이며, 실제로는 경착륙이 와야 한다는 체념까지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극적인 전환의 계기와 특이점을 찾아 그것의 이야기 구조를 설립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사실상 드라마와 같은 달콤한 전환의 과정이 아니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극적 요소는 더욱 빛을 낼 것이다. 역사적으로 극적인 상황은 여러 번 연출되었지만, 그것이 가진 파급력에 대해서 완화하고 중화하려는 시도 역시도 존재했다. 그러나 문명의 전환 과정이 갖는 어떠한 행위보다 극적인 요소를 더욱 살릴 수 있는 색다른 연극 테마로서의 전환 시나리오가 갖는 서사적 구조에 착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전환 과정이 갖는 요철, 굴곡, 주름 등의 무수한 특이점이 가진 이야기들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고, “될 대로 되라”식으로 무덤덤하게 살고 있을 때, 전환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 삶의 과정에 대한 전환 이야기 구조를 설립하고, 이 속에서 극적 반전을 꿈꾸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연극 예술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이러한 반전의 가능성은 전환사회로 불연속적이거나 계통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서사구조이며, 기존의 혁명 담론과의 차이점은 이념화된 완성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과정형이자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또한 혁명처럼 공동선으로서의 모두가 더 잘 사는 방향이 아니라, 생명과 자연을 향해 안으로(in) 되 말리는(volution) 역행(involution)의 과정이 전환사회의 전망이다. 다시 말해서 성장이 아닌 탈성장의 과정인 것이다.

여기서 연극예술의 극적인 이미지와 함께 논의할 부분은 연극 자체가 전환사회 이후에 삶의 양식으로 뿌리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물질 발자국이 극도로 적고, 탄소배출도 하지 않는 여가와 문화 활동으로서의 연극예술은 미래 전망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기계류가 생산 현장을 장악하고 인간은 할 일이 없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는 대중들에게 참여, 관람, 비평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생명력과 활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예고되어 있는 극적인 것보다 더 극적인 전환의 역사적인 과정에 대해 미리 체험할 기회와 마음의 준비를 시킬 수 있는 것이 ‘연극’이라는 점에 대해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2. 문명의 전환과 이행기의 전략의 부재

1) 전환의 시나리오와 이행기의 전략의 부재

녹색 전환은 점진적인 전환으로서 전환비용의 문제가 수반된다. 재생에너지나 전기자동차, 수소용광로 등의 성장 기반 산업 형태를 유지한 채 이루어지는 전환비용은 천문학적이다 . 그런 점에서 전통적인 농업 문명 형태로 전환하는 ‘문명의 전환’이 힘을 얻는 중이다. 녹색전환과 문명의 전환의 사이에서 급격한 전환이 있기 전에 과정형적이고 진행적인 산업재편의 점진주의를 채택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대한 이야기 구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환사회의 전망을 탄소중립의 상에 따라 소급적이고 파급적으로 시나리오화할 수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적 접근은 제한된 탄소예산을 통한 소급적인 적용을 통해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으로 논의는 끝나며, 현재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메시지도 주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이야기 구조의 빈곤에 처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미래세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암묵적인 동의 속으로 빠져든다. 나중으로, 나중으로 미루는 이유 속에는 지금 할 일에 대한 구체적인 상과 이야기 구조가 없다는 변명이 관철된다. 전환사회를 향한 상상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탄소중립에 이르기 위한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는 파급적인 특이점들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구조가 설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인문학의 역할이며, 전환사회를 향한 상상력의 역할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는 마음의 위기, 상상력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이다. 결국 이야기 구조의 빈곤에 의한 위기지점에 대해서 인문학이 예리하게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시나리오적 접근이 문제 삼는 것은 선형적이거나 원환적이거나 프랙털적인 파급효과에 대한 문제설정에 있다. 사진 출처 : Pixabay
시나리오적 접근이 문제 삼는 것은 선형적이거나 원환적이거나 프랙털적인 파급효과에 대한 문제설정에 있다.
사진 출처 : Pixabay

기후 전환사회로 진입하기 위한 로드맵으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제도와 시스템 분야, 생활양식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시나리오적 접근이 문제 삼는 것은 선형적이거나 원환적이거나 프랙털적인 파급효과에 대한 문제설정에 있다. 인문학의 이야기 구조는 “어느 때, 어느 장소, 우리 중 어느 누군가”라는 구전설화의 모티프를 따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떤 장소와 시간, 주체를 특정한 것은 거대한 전환사회로의 흐름을 설명하고 스케치하기에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꿈의 무의식과 같은 형태는 주먹구구, 어림짐작의 형태로 직관과 통찰을 발휘하게 할 수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야기가 구체화되는 것에 있지 않고, 추상력의 작용에 대해서 더 많은 전환사회의 상상력으로 향하게 하는 것에 있다. 동시에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것들은 생명, 사물, 기계, 자연, 미생물 등의 행위자들일 것이다. 전보다 훨씬 행위자들이 많기 때문에 배경, 풍경, 주변으로 간주된 것들이 우글거리고, 웅성거리고, 득실거리며 일련의 모든 것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는 근대의 주인공 담론이 갖는 이야기 구조를 벗어나 완벽히 새로운 신디사이저와 같은 음색의 잡음, 소음, 잉여 이야기를 개방할 것이다. 그것은 삶의 여유, 여백, 여가 속에서 잉여 인간으로 간주해 왔던 소수자들을 혁명가로 등장시키게 하는 대목이다. 그 과정을 통해 인물의 형상을 가진 양육자, 돌봄자, 촉매자의 역할이 빛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 전환사회로 진입하는 연극 활동의 구성적이고 사회 재건적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다.

2) 이야기 구조의 위기가 연극인들에게 던지는 과제

전환과정에 대한 이행기의 전략과 이야기 구조의 부재는 결국 극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력이 전혀 없는 현존 문명의 현실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직면한 현존 문명의 삶은 달콤하기만 하고, 외부가 없고, 부드럽기 그지없고, 타자성에 대한 환대의 태도가 없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인 이득에 매몰되어 기후위기나 전환사회에 대해서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차단되어 있다. 그저 부동산가격이나 주식가격 등에 관심 있는 것이 현대 속인(Das Man)의 현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행기라는 색다른 상황에 대해 직면해 보라는 새로운 극적 설정이 필요하다. 이것은 각자의 실존이 직면한 상황들의 저변에 꿈틀대는 거대한 문명 전환에 대한 통찰력과 영감, 상상력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극적인 반전의 계기는 도처에 있다는 점에 대한 통찰과 혜안을 연극인들이 제공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상황이 아니라, 고도로 추상적인 상상력이 요구되는 작업이 극적인 설정에서 필요하다. 꿈에서의 이야기 구조와 유사한 “어느 장소, 어느 시간, 우리 중 어느 누군가”라는 방식의 이야기의 형태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환의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백과 여지를 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극적인 상황이 파열과 와해, 해체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구성, 창조, 생산으로 향하게끔 하는 원천임을 스스로 깨닫고 구성하는 과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 연극 자체가 가진 극적 구성요소는 이행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새로운 실천적인 각성이 필요하다.

연극예술을 통한 전환사회에 대한 상상력은 “이 말은 어느 누군가가 이미 말한 것이다”라는 관점에서 이야기 구조의 소재 한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한” 반기억 생성의 계기는 바로 연극예술 자체의 현장성, 즉시성, 즉홍성, 전위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재를 보고 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이라도 극적 재창조를 통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설립해야 하는 것이다. 연극예술이 이야기화되는 전환의 과정을 ‘오래된 미래’라는 부르면서도 ‘지각 불가능하게 되기’라는 지칭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야기는 이미 도처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단순히 재현의 양식이 아니라, 창조와 생성의 과정 자체가 갖고 있는 밀도, 속도, 온도, 강도에 의해 색다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연극인들의 준비동작, 만남, 관계 맺기의 형식, 연습 과정, 무대에 오르는 순간의 호흡 가다듬기 등 모두가 이야기 구조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야기 구조의 위기는 바로 구성적인 설계과정과 함께 색다른 이야기 생산의 과정 자체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한 명의 기획자나 한 명의 주인공이 만든 무대가 아니라, 청소부, 벌레들, 태양 빛, 바람, 강아지 등이 함께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이 글은 2022년 《제40회 대한민국연극제 밀양 대한민국 연극 아카데미 설립을 위한 다원 포럼》에 발표 수록된 글입니다.

故신승철

1971.7.20~2023.7.2 / 평생 연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 마지막 4년 동안 사람들 속에서 '연결자'로 살다 가다. 스스로를 "지혜와 슬기, 뜻생명의 강밀도에 따라 춤추길 원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공락(共樂)하고자 합니다. 바람과 물, 생명이 전해주는 이야기구조를 개념화하는 작업을 하는 글쟁이기도 합니다."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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