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마주보기] ② 동트는 새해, 비자림로에서는

새미(솔빈)는 숲정이의 딸이다. 숲정이는 새미의 엄마이다. 엄마는 딸이 살아가는 세상을 자연답게 가꾸기 위해 시민운동을 하였다. 정성스럽게 ‘선과 정의’를 지키려 노력하지만 좌절과 허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의지를 잃은 엄마가 그동안의 경험과 생각들을 딸에게 이야기한다. 딸 새미는 고단한 엄마, ‘숲정이’를 위로하고 ‘엄마’를 바라본다. 이것은 주고 받는 “마주보기 이야기 글”이다. 숲정이와 새미는 새해가 된 오늘, 제주를 떠올린다.

새미야, 엄마는 ‘말’이 있다

어둠에서 출발했다. 안녕, 새미.

새해를 만나기 위해 어둠에서 새 길로 출발했단다. 색다른 세상을 꿈꾸며 성산일출봉으로 갔지. 익숙한 길이지만 새 길처럼 느껴지더구나. 엄마는 어둠이 주는 평온을 외할머니로부터 물려 받았단다. 어릴 적에 거름 냄새 나는 외할머니 가슴을 쪼물닥거리며 파고 들곤 했어. 엄마의 한 팔을 펼쳐 끌어당겨 안으면 ‘아이고, 좋다. 밤이 있어서 내가 산다. 밤이 좋다.’며 이할매1는 자주 말씀하셨지. ‘노동’이란 것은 삽 한 자루 달랑 들고 다니며 논물 보는 정도가 전부였던 외할아버지의 한량스러움을 생각하면 외할머니의 밤은 각별했으리라 짐작된단다. 외할머니로부터 각인된 밤은 엄마에게도 특별했단다. 세상을 모두 재우고, 너희들도 잠들면 엄마는 종종 혼자가 되어 까맣게 음악을 들었고, 가끔은 울기도 했단다. ‘까맣’이 주는 위로로 씩씩하고 용감하게 낮 시간을 하얗게 견딜 수가 있었지. 2023년 첫날은 귤빛으로 어둠에서 해오름으로 희망이 떠오르기를 기대했단다. 성산읍 수산리 땅에 들어설 즈음일까. 하얀 차가 뒤집혀 있었단다. 느릿한 차들의 행렬 속에서 ‘허 남바’2를 단 제주 허씨 관광객이 까뒤집어져 있었어. 엄마랑 같은 희망으로 어둠속을 달리고 있었을 텐데. 이 어둠 속에, 이 희망 속에.

제주도민의 능숙함으로 광치기 해변에 자리를 잡았단다. 썰물에 맞추어 바다를 첨벙 건너 바위섬 위로 덩그러니 혼자 섰지. ‘성산일출봉’은 엄마가 한반도 남쪽 끝, 해가 떠오르는 상징성을 긍정하며 지난 2년 동안 매월 첫째주 토요일, 기후위기 피켓팅을 한 곳이기도 하지. 기후위기 대응은 서울 중심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절실해야 한다는 엄마 나름의 응답이었다. 나그네 제주도민인 엄마는 제주 사람이 일어나기를, 한반도가 퍼즐처럼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하였지. 뜻을 품고 자리를 따뜻하고 인내롭게 지키다 보면, 공기가 먼저 공감하고 흐르는 물이 돌고 돌아 감동이 사람의 몸속으로 퍼지면 드디어 움직임이 시작된단다. 그러나 ‘따뜻하고 인내롭게’는 아주 어렵다. 지금 제주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동문시장에서 기후위기 피켓을 드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계시고, 지난해 924 기후행진을 이어서 제주에서도 제주기후위기행진이 정기적으로 생겼다. 엄마는 반갑고 기쁘지만 속마음은 ‘고단’ 했단다. 깊은 숨을 쉬며 엄마는 사라질 수 있는 용기를 만들었단다.

고단하게 새 해를 기다렸다. 검색해 본 성산일출봉의 장엄한 일출을 고대하며 웅성웅성 소리에 섞여 한참을 기다렸지만 수평선 위로 붉은 기운을 없었다. 밖으로 나오라는 고함소리에 친절하게 ‘네, 잘 알겠습니다.’ 협조하며 바위섬 밖으로 나와 섰기도 했지만, 햇님은 좀처럼 떠오를 기미가 없었지. 연잿빛 구름이 기세 좋게 수평선 위로 널찍하게 퍼져 가더구나. 새 해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빠져나간 듬성한 해변 뒤쪽에서 누군가의 짧은 탄성과 함께 구름과 구름 사이 햇님이 삐쭉 혀를 내밀더구나. 수평선 한참 위로 하늘 중턱에서 드디어 새 해가 힘겹게 햇살을 보였지만 금세 구름 속으로 사라졌단다. 엄마는 잠시 후, 저 위의 구름 밖으로 아기 햇님이 솟아 오를 거라 직감했어. 한 무리 청년들의 농지거리를 얻어들으며 같이 서성거렸단다. 새미야, 예측할 수 있는 미래는 얼마나 수월한지. 끝내 해가 오르더구나. 여기저기 포기하지 않았던 모두는 그나마 만족스럽게 일출을 보았단다. 자리를 떠나올 때, 새 해는 다시 구름 깊숙하게 덮혔단다. 희뿌연 유리창 앞이 이상하여 일기예보를 보니 ‘미세먼지 아주 나쁨’이었단다. 미세먼지 아주 나쁨은 ‘새 해’를 순식간에 ‘헌 해’로 만들어 버리더구나.

팔색조, 긴코리딱새, 맹꽁이, 으름난초, 붉은배새매, 황조롱이, 원앙, 두점박이사슴벌레, 양치류 60여 종이 살고있는 비자림로에 들렀단다. 도로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아픈 그곳, 나무 베어진 슬픈 자리를 거부하고 싶었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인연이기에 눈가로 물을 질질 흘리며 갔단다.

사진제공 : 숲정이
사진제공 : 숲정이

고통은 절대로 배려하는 법이 없지. 짐승으로서 미어 찢기는 가슴을 토닥이며 울었다. 너와 함께 ‘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절실하게 공사중단을 외치지 않았니? 나무 베어져 슬픈 그 자리에 희망으로 너와 어린 나무들을 꼭꼭 다시 심기도 했잖니? 비자림로는 2.94km 도로 확장 공사가 계획되어, 2018년 8월 7일 삼나무 1000그루가 베어 쓰러졌지. 도로 공사에 저항하는 ‘우리들’은 “나는 한 그루 나무예요” 퍼포먼스와 “바느질 퍼포먼스”, “필리버스트”를 진행했더구나. 너와 내가 ‘쉼’으로 제주살이를 시작한 2019년, 그해 3월 다시 1000그루 벌목이 진행되었고 비자림로의 ‘우리들’이 나무오두막을 비자림로 숲에 들이고 ‘생명으로서’ 함께 저항하며 살기를 시작하자, 어쩔 수 없는 ‘우리들’이였던 너와 나는 ‘쉼’을 포기하는 인연이 되었지.

엉성한 채식 김밥을 만들어 처음으로 비자림로 숲으로 간 날, 엄마는 허탈한 큰 웃음을 허공으로 던질 수밖에 없었단다. “저의 고통이 부족한가요?” 2019년 3월 천미천 주변 500그루 나무가 베어지자, 우리는 4월 그 이상의 나무를 심었고 아이들의 게릴라 놀이터도 만들었단다. 행정과 삼나무 외 184그루 나무 이식을 약속받았고 24시간 모니터링을 계속 유지했지. 헌신적인 ‘우리들’이 무척 사랑하며 견디어 내었지. 자본은 2019년 5월 다시 벌목을 시작 하였지만 법정 보호종인 팔색조 울음소리로 공사를 다시 중단시킬 수 있었지. 2019년 5월 29일, 그 날 엄마는 정말이지 선흘 동백동산에 가고 싶었단다.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나무 귀걸이를 달랑달랑 달고 살랑거리는 옷을 꺼내 입고 서귀포에서 한라산을 넘었지만 결국은 비자림로에 갔단다. 그날, ‘우리들’이 애기뿔쇠똥구리를 발견하였고 드디어 생태정밀조사를 하게 되었단다. 결과로 팔색조, 애기뿔쇠똥구리, 맹꽁이, 붉은해오라기, 붉은배새매, 긴꼬리딱새를 만났고 이어서 멸종위기2급 두점박이사슴벌레, 제주고유종 다수, 천연기념물 솔부엉이까지 조사 되었단다. 2019년 8월 20날, 천미천 원앙번식을 확인하고 10월부터 영산강환경청 앞 텐트농성을 하였지. ‘우리들’은 부드럽고 유연하게 저항하였단다.

엄마는 비자림로 ‘우리들’에게서 감명을 자주 받았단다. 엄마는 줄곧 상냥한 저항을 꿈꾸었지만 ‘상냥’을 행정은 거들떠보지 않았고 자본은 무시하기 일쑤였지. 엄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날선 표현들을 장착하고 틈을 주지 않는 속사포 랩이 보통이 되었단다. ‘화’를 당연시 하는 일상이 엄마에게는 죽고 싶은 고통이었다. 하지만 비자림로 ‘우리들’은 온유하게 저항하더구나. 사람이 위로였다.

‘우리들’은 계속 어린나무들을 꼭꼭 심었지만 2020년 5월 27일 도로공사가 예고도 없이 재개 되었단다. 제주자치행정도의 환경청이 제시한 법적 과정을 무시한 일방적 공사 재개였지. 얼마나 황당한 일이니? 행정이 범법행위를 뻔뻔하게 하다니, 세상은 요지경이다. 다음 날 공사는 중지 되었고, 공사 시 사전고지 미이행으로 제주도는 과태료를 부과 받았단다. 2020년, 비자림로 ‘우리들’은 무리한 확장공사 감사원 감사 청구인을 모집했고 21년 10월에는 주민투표 청구인 증명서를 교부신청 했지만 제주도는 허락하지 않았단다. 법에 호소하며 ‘우리들’은 우리를 키우기 위해 나무 베어진 슬픈 자리에서 새롭게 자라나신 어린 나무들을 제주도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곤충 로드킬을 조사했단다. 새벽 길, 제주시에서 구좌까지 1시간을 달려 비자림로 도로공사 예정지 2구간 곤충들의 사체를 슬픔으로 같이 기록해준 새미 아빠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구나.

사진제공 : 숲정이
사진제공 : 숲정이

지금, 2023년 1월 비자림로는 생태도로를 만든다며 다시 나무들을 벌목하고 있단다. ‘우리들’이 공사중단 집행 정지 환경 소송 중이며, 아직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은 이 때에 아름드리 나무를 베며 도로공사 시행은 부당하다며 뜯어 말리고 있지만 권력과 자본은 삼나무 벤 그 자리에 팽나무와 후박나무들을 돈 들여 다시 심어서 생태도로라더구나. 도로폭을 줄여 공사를 진행한다며 어찌나 당당하던지. 팔색조, 긴코리딱새, 맹꽁이, 으름난초, 붉은배새매, 황조롱이, 원앙, 두점박이사슴벌레, 양치류들은 어디에 기대어 살아갈꼬? 파헤쳐진 생태도로라니? 비자림로 도로는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라 주장하더니, 절대 성산 제2공항 연계도로가 아니라고 아우성이더니, 권력은 핵무장론을 내밀며 ‘제주도 핵무장 최적지’란 막말을 마구 쏟아내고 있구나. 군사 섬이 되어가는 제주도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한 전쟁준비를 하는지?

나무 베어져 쓰러진 슬픈 그 자리에 엄마는 씨앗부터 싹을 틔워 키운 꿀밤나무를 심었단다.
나무는 ‘말’이 없지만 엄마는 ‘말’이 있다.

용서하지 말자.

뜯겨 흩뿌려진 사람의 입술 끝
사랑한단 말은
위선과
아집의 혓바닥이니
사람의 사랑 따위 용서하지 말자.

사람은 죽여주자.

사람 따위는 죽여주자.

날 선 칼로 갈기갈기 찢어 죽이자.
날 선 돌멩이로 쩍쩍 갈라 죽이자.

사람 따위는 죽이자.

네가 선택하지 않은
너의 죽음의 길로
사람을 죽여 악세사리처럼 달랑이며 가자

사람은 죽여주자.

용서하지 마세요.
부디 죽여주세요.

숲정이야, 나는 얼굴들에 마음이 찔린다.

못 산다. 숲정이씨는 새해부터 사람 죽일 생각하고 있네. 나는 새해가 되니 사람들의 얼굴에 마음이 찔린다. 공원 벤치에서 담배 피우는 아주머니의 얼굴. 아버지의 품에 안겨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열매처럼 옹골찬 친구의 얼굴.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을 관찰하는 노인들의 얼굴. 닳고 닳아 숨길 수 없이 삐져나오는 냉소적인 회사원의 얼굴. 주름이 늘어난 엄마, 아빠의 얼굴.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어쩐지 어제보다 깊어 보이는 내 얼굴. ‘까맣’이 주는 위로가 새로 떠오른 해로 덮이는 순간, 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마음이 찔린다.

비자림로 나무들에게도 얼굴이 있었다. 베어진 자리 옆에 우뚝 서 있는 나무들은 내게 말을 걸었어. “여기, 내가 숨 쉬고 있어요. 잊지 말아줘. 이렇게 발을 굳건히 딛고 당신보다 깊은 숨을 처절하게. 하늘은 높고, 나는 날고 싶어요. 맞아, 나는 살고 싶어.” 그 간절함에 응답하고 싶었다. 팔색조, 애기뿔쇠똥구리, 맹꽁이, 붉은해오라기, 붉은배새매, 긴꼬리딱새, 두점박이사슴벌레, 솔부엉, 황조롱이, 으름난초 등. 우리는 그들을 반드시 지켜내고 싶었잖아. 사라지는 제주를 두고만 볼 순 없었잖아.

그럴 때 보통 엄마는 용서할 수 없는 이를 죽이려 하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빠짝 날선 말들을 장착하고는 그 거대한 권력과 폭력에 틈을 내주지 않으니 말이야. 여린 당신을 알기에 ‘화’가 일상이 된 하루하루가 얼마나 괴로웠는지도 알아. 그래서 어린 딸은 고통 받는 엄마가 너무 싫었다. 고통은 절대 배려하는 법이 없으니 말이야. 그러나 비자림로의 ‘우리들’은 온유하게 저항했지. 그 길에 함께한 숲정이씨가 밤이 주는 위로와 같은 위안을 얻은 걸 알고는 참 기뻤어. 반대로 나는 피가 끓는 분노를 경험했다. 아슬한 도로 위 저항의 외침을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공사를 재개하는 권력이. 울부짖고 있는 우리를 조롱하는 관계자의 영악함이. 그 앞에 묵묵히 서 있는 나무들이 너무나도 애처롭고 분노스러워 피가 끓더라. “숲정이야, 피가 끓는다.” 하니까 당신은 “딸아, 피가 끓으면 죽는다.”했어. 그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한바탕 웃었던 순간이 선명해. 돌이켜보니 비자림로에서의 투쟁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네.

사진제공 : 숲정이
사진제공 : 숲정이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되는 곳엔 무수한 생명이 살고 있다. 그래서 환경영향평가에 의해 공사가 ‘반려’되었지.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23년 1월엔 또다시 나무들의 목숨이 끊기고 있구나. 그들을 대신한 당신의 말처럼 뜯겨 흩뿌려진 사람의 입술 끝, 사랑한단 말은 실로 위선과 아집의 혓바닥이구나. 나에게 말을 걸었던 얼굴들이 사무친다. 친구들아, 나 또한 용서하지 말고 부디 죽여줘. 너의 목숨과 나의 목숨은 같으니 용서하지 말고 부디 죽여줘. 이젠 나무들의 얼굴에 마음이 찔린다.

엄마,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우리는 베어진 그 얼굴들을 기억한다. 그들을 안은 우리는 새로이 떠오른 햇님 아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당신처럼 말이 있어야겠지. 따뜻한 인내는 아주 어려워. 그렇지만 뜻을 품고 자리를 지키다 보면, 공기가 먼저 공감하고 흐르는 물이 돌고 돈 뒤 사람의 몸속으로 퍼져 움직임이 시작될 테지. 새해가 떠오르듯 움직임이 시작될 거야.


  1. 경상도 사투리로 ‘외할머니’

  2. 제주도를 누비는 렌터카들의 번호판은 모두 ‘허’씨 이다.

숲정이

우리 동네를 낮게 아우르는 숲

솔빈

그 순간, 녹색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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