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히 사랑하는 자의 ‘그늘 넓은 나무’가 되는 법 – 한승욱 시집 『히어리꽃』 발간 기념 인터뷰

2026년 3월,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인이자 화가 한승욱의 5번째 시집 『히어리꽃』 이 발간됐다. 이를 기념하고자 생태적지혜연구소에서 진행된 ‘음주낭독회’를 위해 작가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나누었다.

자신의 탐조 경험을 담아 생태적지혜에 기고한 첫 에세이 글에서부터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던 작가 한승욱의 5번째 시집 『히어리꽃』 이 지난 3월 발간됐다. 이를 축하하며, 회화와 사진, 수필과 시까지 다방면의 창작 활동을 활발히 이어나가는 한승욱 작가와 서면 인터뷰를 나누었다.

Q-소연: 그동안 화가로서의 한승욱이나 카메라를 든 사진가로서의 한승욱은 자주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시인으로 만나는 건 또 새로운 것 같아요.

A-승욱: 2021년이 시작되던 때, 삶의 어느 시기에 도달하면 돈을 버는 일에 전념하며 그림을 그리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느리게나마 그림 창작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웃음) 저는 일본의 하이쿠(俳句, はいく)를 좋아했는데요. 작은 표현의 힘을 믿고 단 한 문장씩이라도 표현해 보려 했어요. 언제든 출퇴근길에도 할 수 있는 최소단위의 창작 표현을 익히고, 오래 간직한 문학의 꿈을 키워 가보자 시작한 것이 어느덧 다섯 번째 시집을 펴낸 것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Q-소연: 그렇군요. 5번째 시집 『히어리꽃』 소개도 부탁드려요.

A-승욱: 매년 일상, 그리고 삶에서 감각한 심상을 주제로 시집을 만들어 왔습니다. 자체 제작으로요. 예컨대, 작년에 만든 시집은 『제비꽃』인데요. 사람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생각에 벗어나서 ‘얼마나 솔직하게 나를 쏟아내 표현할 수 있는가’를 실험했던 시집이었습니다. 그렇게 한껏 비우고 난 뒤, 이번 시집 『히어리꽃』을 지으면서는 조금 더 편안한 표현, 자유로운 표현의 영역을 엿본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이번 시집이 갖는 특이점이 있다면, 이전의 시집들은 제가 편집과 디자인까지 도맡았지만 이번에는 저의 멋진 친구 이연우 작가님께서 편집과 디자인을 해주셨어요. 이연우 작가님의 은덕으로 시집이 잘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집 인덱스에 저의 이름만이 아닌 이연우 작가님의 ‘해방해방’ 디자인 사업체명이 함께 있는 것도, 이연우 작가님께서 써주신 추천의 말도, 제게는 큰 기쁨이 되었어요.

혼자 쓴 글들이 쌓이며 성숙을 이뤄가는 것 같아요.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 요즘도 매주 시를 쓰고 있는데요. 앞으로 계속 더 자유롭고 맑은 표현을 희구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합니다.

Q-소연. 말씀하신 것처럼 승욱 작가님의 시에는 일상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경의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풍경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서 참 재밌어요. 모두가 공감하듯, 통근길 지하철 안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오죽했으면 ‘지옥철’이라는 말도 나오고 말이죠.

어떻게 이렇게 출퇴근길의 풍경을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지 또 그것을 시로 창작하는 마음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한승욱, 『히어리꽃』, 6쪽 (사진 제공: 한승욱)

A-승욱: 저의 네 번째 시집 『제비꽃』 중 「성격 망치는 출퇴근길」이란 시가 있는데요. 그 시의 마무리는 이렇게 됩니다.

이것을 사랑할 수 없는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더 창작하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품어보려고

많은 분들이 그러실 것 같은데요. 직장인들은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다양한 고난을 겪곤 합니다. 공황이 올라오기도 하고요.

그럴 때 이런 작은 표현의 힘이 저를 살려줍니다. 마음에서나 공책에나 무엇을 쓰고 그리다 보면, 대상이나 내 마음을 더 바라보게 되고 구분해서 보게 되고 상상도 해보고 다듬게 되는데요.

그러면 어느새 마음이 낫고 사람과 상황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상상과 표현은 회복의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을 해도 버젓한 행위가 될 수 있는 글쓰기의 품 안에서 살려고 한 표현이 재미를 드릴 수 있다니 정말 기쁜 일입니다.

Q-소연: 작가님을 실제로 알지 못하는 독자들이라 하여도, 시를 읽다 보면 작가님께서 시 쓰기나 그림 그리기 등의 창작 활동과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맨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님의 소개에서 직접 언급하고 계시기도 하시고요. 이러한 점에서 작가님께서는 본인의 시를 ‘생활시’라고 표현하고 계시죠.

A-승욱: 제가 할 수 있는 표현을 하다 보니 생활 밀착형 시가 되었어요. 예전에는 길을 걷다가도 새롭고 환상적인 영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곤 했는데요. 어느덧 그런 감각은 거의 사라진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실무중심적으로 살고 있는 제가 어딘가로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표현을 찾다 보니 ‘생활시’라 부를 수 있는 글쓰기가 드러났나 봐요. 언제 어디서든 시를 쓰며 머물러 생각하고 숨 가쁜 상황에서도 제 호흡을 찾을 수 있어요.

이문재 시인님의 시집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중 「너도 봄날」이라는 시에서 이런 표현이 있어요. “시를 쓰게 하는 시 서로 읽어주기”. 생활시는 지상에 발 붙이고 살아가는 우리가 언제든 접근하기 편안한 시라고 생각해요. 나아가 그럴 수 있다면 저의 그런 시가 시를 쓰게 하는 시가 되면 좋겠습니다.

좌) 한승욱, 『히어리꽃』, 97쪽 / 우) 한승욱, 『히어리꽃』, 31쪽 (사진 제공: 한승욱)

Q-소연: 승욱 작가님의 시집을 가볍게 손에 딱 쥐고, 「아침 생맥주 생각」 같은 시를 웃으면서 읽다가도 「퇴근길」이나 「점심 굶기」 같은 시를 읽으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써 저역시 너무나 공감이 가고, 어딘가 처연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직장인의 삶을 그린 시가 많아 웃음기와 눈물기를 모두 머금게 됩니다.

작가님 스스로가 직장인으로서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삶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쓰여질 수 있었던 시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장인으로, 그러면서도 예술가로 살아가는 삶은 어떤가요?

A-승욱: 누구나 예술을 할 수 있지만,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좌) 한승욱, 『히어리꽃』, 40쪽 / 우) 한승욱, 『히어리꽃』, 47쪽 (사진 제공: 한승욱)

Q-소연: 평범한 삶의 풍경을 예술로 다시 표현해내는 것, 예술가의 눈으로 몸으로 겪은 일상 생활은 이렇게 다시 시의 형태로 그리고 그것을 좀 더 응축시켜 그림으로 그려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 속에서 예술하기’ 그리고 ‘예술로 살아가기’에 대해 작가님의 생각을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을지요?

A-승욱: 직장인 승욱이 예술인 승욱을 후원하고, 방세를 내줍니다. 반대로 예술인 승욱은 직장인 승욱의 마음을 안아주며, 좋은 궁합을 이뤄 살고 있는데요. 예술엔 퇴근이 없는데 직장엔 퇴근이 있더라고요? 미술인으로서 살며 익힌 그림, 사진, 영상 기술이 직장에서도 활용되면서 두 정체성이 중첩될 때도 있어요. 정말 감사한 것은 제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거예요. 벌써 5년차인데요. 보람을 느끼는 직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역할을 늘리며 지속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승욱, 『히어리꽃』, 49쪽 (사진 제공: 한승욱)

Q-소연: ‘예술로 살아가기’ 참 어려운 시대입니다. 지금처럼 병존하는 삶을 사는 작가님께서 터득한 자신만의 팁이 있을까요?

A-승욱: 저 역시 20대 후반까지는 제가 가진 미술 재능으로 어떻게든 생활할 수 있는 돈벌이를 해내려 노력 했는데요. 제 경우엔, 일단 실패했습니다. 그렇기에 직장에 들어와 첫 1년은 매일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내 예술은 계속 된다, 내 예술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라고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다시 창작하고 기획 활동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데요. 아무리 노력해도 자투리 시간 창작으로는 전업 작가 수준의 깊이를 더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많이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예술가에게 요구되는 많은 덕목이 있지만 ‘괜찮다. 지속하는 것엔 힘이 있다. 매너리즘의 늪에 빠져도 좋다. 내가 온유한 사람이 되어가고 자유로운 표현을 향해 마음을 넓혀가고 창작을 이어간다면 내 창작물도 유연한 아름다움을 함양해갈 것이다’라고 여기며 한편으론 안일하게 창작 생활을 잇고 있습니다.

자본과 효율이 우선되고 폭력이 횡행하는 시대를 목도하며 예술을 한다는 게 무척 슬프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예술의 덕목 중 하나는 성찰이라 생각해요. 내가 가진 만큼 누군가는 가지지 못하잖아요? 고속화도로에서 어떤 차량이 빠르게 칼치기를 하며 달릴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자리를 내어준 덕분일 거예요. 예술은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와 마음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예술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삶에서 예술의 마음을 안고 살 수 있다면 다르게 보고 언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승욱, 『히어리꽃』, 49쪽 / 한승욱, 『히어리꽃』, 81쪽 (사진 제공: 한승욱)

Q-소연: 한편으로 이번 시집에는 사랑과 관련된 시도 많이 실려 있는데요. 사랑하는 게 참 귀한 요즘, 나홀로 살아가기의 외로움이 기본이 되는 요즘, 어떻게 이렇게 사랑, 연애, 결혼에 대해 가감 없이 솔직하게 표현하실 수 있었나요?

A-승욱: 솔직하게 주제를 선정하되 누군가 마음 힘들어 할 표현은 하지 않는 것이 제 글쓰기의 지향점입니다.

어떤 표현이 덜 부담스러울까, 그런 감정을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는데요. 제가 경험한 우리 사회는 외로움이나 고독, 에로스적 사랑, 갈망, 미혼으로서 나이 들어가는 마음 등 이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관용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모두가 갖고 있는 마음이겠죠.

Q-소연: 한승욱은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누구보다도 열렬하게 세상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있구나, 그리고 그 때문에 아파하고 있구나 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고독 속에서 나이 들어감에 대한 공포나 고통이 여실히 담겨 있으면서도 다시금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저도 물들게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랑의 순환이라고 할까요. 그 순환의 동력은 무엇인가요?

A-승욱: 청소년기와 20대 때 내적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태어난 이유가 뭘까’, ‘삶은 너무 지난한 고통이다’, ‘이 질곡 속에서 무엇으로 살아야할까’ 같은 질문을 많이 했는데요. 사랑을 나누는 삶이면 살아 볼만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바보처럼 보이더라도 헌신하며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제 꿈은 화가나 문학가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늘 넓은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한 줌 바람도 쉬었다 갈 수 있는 잎이 넓은 나무요. 그 꿈에 다가가려면 매일 생각과 언어와 행동의 순간에서 더 유연하고 더 이해하고 더 사랑하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 예술 행위도 맑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좌) 한승욱, 『히어리꽃』, 13쪽 / 한승욱, 『히어리꽃』, 27쪽 (사진 제공: 한승욱)

Q-소연: 「2022년 6월 20일」(p.15)를 보면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마음 쓰는 일은 무서운 일이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영혼에 남는 게 없다

결국에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시를 읽을 기회를 주시고, 긴 인터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A-승욱: 다양한 힘과 관점, 표현방법이 있지만 사랑의 힘은 언제나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최재천 교수님께서 “알면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았는데요. 바라보면 알고 싶어지고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실천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커다란 응원을 받아서 저도 더 이것에 힘쓰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승욱 작가의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는 “애환”의 (예술)생활시 『히어리꽃』을 읽는 묘미는 시집을 다 읽은 후 다시 첫 페이지, 첫 번째 시를 읽는 것에 있습니다. ‘사랑의 순환’을 경험하고 싶다면, 현재 『히어리꽃』은 gkstmddnr93@naver.com 메일을 통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소연

생태미학을 공부하며 삶에서 예술을 경험하는 일을 기획하고, 글을 씁니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하기도 하지만, 사회를 이끌어나간다고 믿습니다. 예술을 통해 체현하는 감각적 경험은 강한 울림으로 우리를 사유로 이끌고, 의미를 생성해나가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도록 하는 정동적 힘을 지닌 예술에 대해 주목하고 이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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